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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속물 엄마를 뽑습니다

등록 2008-02-27 21:19수정 2008-03-01 11:28

너 어제 그거 봤어?
너 어제 그거 봤어?
[매거진Esc] 너 어제 그거 봤어?
장미희·이혜숙·이휘향·박원숙·윤미라
징글징글한 주말 드라마 모친들의 행진

엄마가 돌아왔다. 지난주에 이어 ‘주말 드라마 전성시대’ 2편이 될 오늘의 이야기 주제는 주말 드라마의 엄마들이다. 하지만 고두심과 김해숙으로 대변되는 주말 드라마 ‘전속’ 한국의 전통적인 엄마들은 더 이상 찾기 힘들다. <엄마가 뿔났다>의 장미희를 비롯해, <천하일색 박정금>의 이혜숙, <행복합니다>의 이휘향, <겨울새>의 박원숙과 윤미라까지, 지금 드라마 속 엄마들은 누가 최고의 속물인가를 두고 치열하게 경쟁한다. 자식 둔 처지의 엄마라서 이런 엄마들이 더 징글징글하다는 칼럼니스트 정석희(사진 오른쪽)씨와 따뜻한 드라마 속 엄마를 그리워하는 작가 조진국씨가 이야기를 나눴다.

정석희 요즘 리모콘에 불난다.(웃음) 같은 시간 방영하는 <엄마가 뿔났다>와 <천하일색 박정금>뿐 아니라 요새 볼만해진 <겨울새>와 <조강지처 클럽> <대왕세종> <행복합니다>도 방영시간이 겹치는 바람에 왔다갔다 바쁘다.

조진국 <행복합니다>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전원일기> <쑥부쟁이>를 쓴 김정수 작가의 작품이 맞나 싶더라.


와, 재벌가 사모님이 보면 미치겠다

김정수 작가는 <누나> 때부터 색깔을 조금 바꾼 것 같다. 속물 재벌가와 평범한 집안의 갈등이라는 건 김 작가가 처음 도전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요즘 주말극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엄마들의 천태만상이 흥미롭다. <엄마가 뿔났다>의 김혜자가 가장 전형적이거나 가장 평범한 우리들 엄마에 속하는데, 요즘 드라마 속에서는 오히려 드문 경우에 속한다. 드세고, 욕심 많고, 속물적인 엄마들이 대세다.

<행복합니다>를 보면 재벌가 사모님인 이휘향이 딸의 애인을 미행시킨 다음 미행했던 사람에게 몇백만원을 현금 뭉터기를 집어주는 장면이 나오던데 재벌가 사모님들은 진짜 그럴까?

잘은 모르지만 재벌가 사모님들도 이런 장면 보면 미칠 거 같지 않을까.(웃음) 드라마 속 재벌가 사모님들은 하나같이 괴상망칙하게 그려지니까 말이다. 그런데 <겨울새>의 재벌 사모님 윤미라 같은 캐릭터는 비교적 현실감 있게 그려진 것 같다. 교양 있고 점잖아 보이지만 사실은 자기 자식만 중요한 줄 알았지, 남의 자식이야 어떻게 되든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겨울새>를 보면 초창기에는 박원숙이 진짜 천하의 나쁜 엄마로 등장했는데 뒤로 갈수록 박원숙과 윤미라가 대조를 이루면서도 묘하게 역전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재미있다.

박원숙은 무식하고 거친 데 비해서 윤미라는 어떻게 보면 아주 지능적이다. 같이 키운 자식이나 다를 바 없는데 자기 배 속에서 나온 자식이 아니라고 영은이(박선영)를 사지로 몰아가지 않나. 오로지 자기 아들과 떼어놓기 위해서 말이다. 생각하면 돈만 밝히는 것보다 그게 더 섬뜩하다.

<천하일색 박정금>의 이혜숙도 자기 자식 위해서 남의 자식 인생 망치는 짓을 태연하게 한다. 사실 진짜 악독한 엄마인데 드라마에서는 그런 엄마가 나왔을 때 더 열심히 보게 된다. 센 악역이 나올수록 드라마의 긴장 구도가 더 커지기 때문인 것 같다.

이혜숙을 봐도 그렇고 그 모든 엄마들의 공통점은 내 자식을 위해서 나쁜 짓도 서슴지 않는다고 하는데, 가만 보면 그게 자식을 위한 게 아니라 결국 나 자신을 위하는 거다. 내 딸을 재벌가나 ‘사’자 한테 시집 보내려는 건 자식 호강을 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결국 나를 광내기 위해서 아닌가.


맨 위부터 시계반대방향으로 〈겨울새〉의 두 엄마와 〈엄마가 뿔났다〉,  〈천하일색 박정금〉,  〈행복합니다〉의 속물 엄마들.
맨 위부터 시계반대방향으로 〈겨울새〉의 두 엄마와 〈엄마가 뿔났다〉, 〈천하일색 박정금〉, 〈행복합니다〉의 속물 엄마들.
자식들도 옛날식 엄마를 더 좋아할까

아까 윤미라 이야기도 하셨지만 장미희도 그렇고 “나를 속물적인 사람으로 몰지 마라”고 대놓고 이야기하면서 교양이라는 포장으로 자신의 허영심을 숨긴다. 그런 속물성에 비하면 이휘향이나 박원숙의 패악질은 귀엽게 보일 때도 있다.

여기서 교양병은 어떤 약으로도 고칠 수 없는 불치병에 가깝다. 스스로 너무나 교양 있고 우아하시기 때문에 이들은 자신의 잘못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논리적 알리바이를 가지고 있는 거지.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오랫동안 드라마 속 어머니들이 고두심이나 김해숙으로 대변되는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이미지였는데 요즘 드라마가 바뀐 건 달라진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혼율이 높아진 이유 가운데 하나는 옛날처럼 ‘힘들어도 그 집 귀신이 돼라가 아니라 못 살겠으면 돌아와라’라고 말하는 엄마들이 많아졌다. 이제는 엄마들 스스로가 <엄마가 뿔났다>의 김혜자 같은 엄마가 되길 원하지 않는 거다.

그건 남편과 아들이 바라는 엄마겠지. 나도 항상 따뜻하고 자식을 위해서 모든 걸 다 바쳤던 우리 엄마가 그리우니까 말이다. 여자들의 교육 수준이 전반적으로 훨씬 높아졌으니까 그만큼 자의식도 강해지고 욕심도 많아진 엄마들을 드라마가 자연스럽게 반영하는 거겠지.

엄마들뿐 아니라 자식들도 헌신적인 옛날 엄마를 좋아하는지도 의문스럽다. 우리 딸도 허구한 날 뭐 사달라고 하니까 ‘너 지금이라도 재벌가 사모님이 사실은 내가 니 진짜 엄마다 이러고 짜잔 나타났으면 좋겠지?’라고 농담처럼 말하곤 한다. 젊은 아이들일수록 김혜자처럼 푸근하지만 경제력 없는 엄마가 좋냐, 장미희처럼 이기적이지만 돈 많은 엄마가 좋냐 하면 아마 만만치 않게 의견이 갈릴걸?

드라마가 현실 속에서 변하는 어머니상을 보여주는 것도 의미는 있지만 방송의 기능 중 하나는 저게 맞는 거다라거나 옳은 거다라는 걸 보여주는 것도 있는데, 요새는 그런 게 너무 없어서 아쉽다.

따뜻한 가족 풍경 보여주는 것도 필요

맞다. 옛날에는 드라마를 보면서도 뭔가 교훈을 얻을 만한 인물들이 꽤 많았던 것 같은데 이제는 진짜 찾아보기가 힘들다. 전에 문화방송 주말 드라마 <누나>에서 할아버지의 대사 가운데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말해주면서 심금을 울리는 게 많았는데 그 할아버지는 치매였잖아.(웃음) 그런 게 뭔가 상징적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엄마가 뿔났다>의 3대 가족은 현실적으로는 오히려 보기 힘든 집안 이야기지만 방송에서라도 정 있고 따뜻한 가족의 풍경을 보여주는 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맞다. <엄마가 뿔났다> 같은 홈드라마가 식상하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여기서 할아버지가 편찮을 때 엄마가 자식에게 아는 척해 드려라, 말하고 손주가 할아버지한테 전화해서 안부 묻고 하는 건 노인을 떠받든다기보다 어른이라거나 집안이나 사회에서 약자가 된 노인에 대한 배려 같은 행동들이다. 그런 걸 배우는 드라마의 존재는 중요하다.

정리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선정 최고의 속물 엄마 베스트


금메달 <겨울새>의 이 여사(윤미라)

“범죄로 따지면 최고의 지능범. ‘내 자식 위해서라면 남의 자식 인생쯤이야’주의를 가지고 있지만 워낙에 고상하고 우아해서 이런 본모습을 완벽하게 숨긴다. 자식을 위해 뭔 일을 저질러도 자기 손에는 피 한 방울 안 묻힐 거 같은 캐릭터.”(정석희)


은메달 <천하일색 박정금>의 사 여사(이혜숙)

“자신의 야심과 딸 사공유라를 위해서라면 살인도 저지를 것 같은 욕심과 냉혹함의 화신. 하지만 식모 출신이라는 콤플렉스 때문에 미래의 사돈 앞에서는 한 수 접고 들어가는 양면성의 소유자.”(조진국)


동메달 <엄마가 뿔났다>의 고 여사(장미희)

“재력 못지않게 뛰어난 외모로 우아한 척, 잘난 척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속물. 하지만 뭔가 크게 못된 짓을 벌이지는 못하고, 오히려 천진해서 대범한 미래의 며느리에게 당할 것이 예상되는 미우면서도 귀여운 인물.”(정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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