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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어제 그거 봤어?
[매거진Esc] 너 어제 그거 봤어?
장미희·이혜숙·이휘향·박원숙·윤미라
징글징글한 주말 드라마 모친들의 행진 엄마가 돌아왔다. 지난주에 이어 ‘주말 드라마 전성시대’ 2편이 될 오늘의 이야기 주제는 주말 드라마의 엄마들이다. 하지만 고두심과 김해숙으로 대변되는 주말 드라마 ‘전속’ 한국의 전통적인 엄마들은 더 이상 찾기 힘들다. <엄마가 뿔났다>의 장미희를 비롯해, <천하일색 박정금>의 이혜숙, <행복합니다>의 이휘향, <겨울새>의 박원숙과 윤미라까지, 지금 드라마 속 엄마들은 누가 최고의 속물인가를 두고 치열하게 경쟁한다. 자식 둔 처지의 엄마라서 이런 엄마들이 더 징글징글하다는 칼럼니스트 정석희(사진 오른쪽)씨와 따뜻한 드라마 속 엄마를 그리워하는 작가 조진국씨가 이야기를 나눴다. 정석희 요즘 리모콘에 불난다.(웃음) 같은 시간 방영하는 <엄마가 뿔났다>와 <천하일색 박정금>뿐 아니라 요새 볼만해진 <겨울새>와 <조강지처 클럽> <대왕세종> <행복합니다>도 방영시간이 겹치는 바람에 왔다갔다 바쁘다. 조진국 <행복합니다>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전원일기> <쑥부쟁이>를 쓴 김정수 작가의 작품이 맞나 싶더라.
와, 재벌가 사모님이 보면 미치겠다 정 김정수 작가는 <누나> 때부터 색깔을 조금 바꾼 것 같다. 속물 재벌가와 평범한 집안의 갈등이라는 건 김 작가가 처음 도전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요즘 주말극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엄마들의 천태만상이 흥미롭다. <엄마가 뿔났다>의 김혜자가 가장 전형적이거나 가장 평범한 우리들 엄마에 속하는데, 요즘 드라마 속에서는 오히려 드문 경우에 속한다. 드세고, 욕심 많고, 속물적인 엄마들이 대세다. 조 <행복합니다>를 보면 재벌가 사모님인 이휘향이 딸의 애인을 미행시킨 다음 미행했던 사람에게 몇백만원을 현금 뭉터기를 집어주는 장면이 나오던데 재벌가 사모님들은 진짜 그럴까? 정 잘은 모르지만 재벌가 사모님들도 이런 장면 보면 미칠 거 같지 않을까.(웃음) 드라마 속 재벌가 사모님들은 하나같이 괴상망칙하게 그려지니까 말이다. 그런데 <겨울새>의 재벌 사모님 윤미라 같은 캐릭터는 비교적 현실감 있게 그려진 것 같다. 교양 있고 점잖아 보이지만 사실은 자기 자식만 중요한 줄 알았지, 남의 자식이야 어떻게 되든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조 <겨울새>를 보면 초창기에는 박원숙이 진짜 천하의 나쁜 엄마로 등장했는데 뒤로 갈수록 박원숙과 윤미라가 대조를 이루면서도 묘하게 역전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재미있다. 정 박원숙은 무식하고 거친 데 비해서 윤미라는 어떻게 보면 아주 지능적이다. 같이 키운 자식이나 다를 바 없는데 자기 배 속에서 나온 자식이 아니라고 영은이(박선영)를 사지로 몰아가지 않나. 오로지 자기 아들과 떼어놓기 위해서 말이다. 생각하면 돈만 밝히는 것보다 그게 더 섬뜩하다. 조 <천하일색 박정금>의 이혜숙도 자기 자식 위해서 남의 자식 인생 망치는 짓을 태연하게 한다. 사실 진짜 악독한 엄마인데 드라마에서는 그런 엄마가 나왔을 때 더 열심히 보게 된다. 센 악역이 나올수록 드라마의 긴장 구도가 더 커지기 때문인 것 같다. 정 이혜숙을 봐도 그렇고 그 모든 엄마들의 공통점은 내 자식을 위해서 나쁜 짓도 서슴지 않는다고 하는데, 가만 보면 그게 자식을 위한 게 아니라 결국 나 자신을 위하는 거다. 내 딸을 재벌가나 ‘사’자 한테 시집 보내려는 건 자식 호강을 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결국 나를 광내기 위해서 아닌가.
자식들도 옛날식 엄마를 더 좋아할까
조 아까 윤미라 이야기도 하셨지만 장미희도 그렇고 “나를 속물적인 사람으로 몰지 마라”고 대놓고 이야기하면서 교양이라는 포장으로 자신의 허영심을 숨긴다. 그런 속물성에 비하면 이휘향이나 박원숙의 패악질은 귀엽게 보일 때도 있다.
정 여기서 교양병은 어떤 약으로도 고칠 수 없는 불치병에 가깝다. 스스로 너무나 교양 있고 우아하시기 때문에 이들은 자신의 잘못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논리적 알리바이를 가지고 있는 거지.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오랫동안 드라마 속 어머니들이 고두심이나 김해숙으로 대변되는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이미지였는데 요즘 드라마가 바뀐 건 달라진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혼율이 높아진 이유 가운데 하나는 옛날처럼 ‘힘들어도 그 집 귀신이 돼라가 아니라 못 살겠으면 돌아와라’라고 말하는 엄마들이 많아졌다. 이제는 엄마들 스스로가 <엄마가 뿔났다>의 김혜자 같은 엄마가 되길 원하지 않는 거다.
조 그건 남편과 아들이 바라는 엄마겠지. 나도 항상 따뜻하고 자식을 위해서 모든 걸 다 바쳤던 우리 엄마가 그리우니까 말이다. 여자들의 교육 수준이 전반적으로 훨씬 높아졌으니까 그만큼 자의식도 강해지고 욕심도 많아진 엄마들을 드라마가 자연스럽게 반영하는 거겠지.
정 엄마들뿐 아니라 자식들도 헌신적인 옛날 엄마를 좋아하는지도 의문스럽다. 우리 딸도 허구한 날 뭐 사달라고 하니까 ‘너 지금이라도 재벌가 사모님이 사실은 내가 니 진짜 엄마다 이러고 짜잔 나타났으면 좋겠지?’라고 농담처럼 말하곤 한다. 젊은 아이들일수록 김혜자처럼 푸근하지만 경제력 없는 엄마가 좋냐, 장미희처럼 이기적이지만 돈 많은 엄마가 좋냐 하면 아마 만만치 않게 의견이 갈릴걸?
조 드라마가 현실 속에서 변하는 어머니상을 보여주는 것도 의미는 있지만 방송의 기능 중 하나는 저게 맞는 거다라거나 옳은 거다라는 걸 보여주는 것도 있는데, 요새는 그런 게 너무 없어서 아쉽다.
따뜻한 가족 풍경 보여주는 것도 필요
정 맞다. 옛날에는 드라마를 보면서도 뭔가 교훈을 얻을 만한 인물들이 꽤 많았던 것 같은데 이제는 진짜 찾아보기가 힘들다. 전에 문화방송 주말 드라마 <누나>에서 할아버지의 대사 가운데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말해주면서 심금을 울리는 게 많았는데 그 할아버지는 치매였잖아.(웃음) 그런 게 뭔가 상징적인 것 같기도 하다.
조 그런 의미에서 <엄마가 뿔났다>의 3대 가족은 현실적으로는 오히려 보기 힘든 집안 이야기지만 방송에서라도 정 있고 따뜻한 가족의 풍경을 보여주는 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 맞다. <엄마가 뿔났다> 같은 홈드라마가 식상하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여기서 할아버지가 편찮을 때 엄마가 자식에게 아는 척해 드려라, 말하고 손주가 할아버지한테 전화해서 안부 묻고 하는 건 노인을 떠받든다기보다 어른이라거나 집안이나 사회에서 약자가 된 노인에 대한 배려 같은 행동들이다. 그런 걸 배우는 드라마의 존재는 중요하다.
정리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징글징글한 주말 드라마 모친들의 행진 엄마가 돌아왔다. 지난주에 이어 ‘주말 드라마 전성시대’ 2편이 될 오늘의 이야기 주제는 주말 드라마의 엄마들이다. 하지만 고두심과 김해숙으로 대변되는 주말 드라마 ‘전속’ 한국의 전통적인 엄마들은 더 이상 찾기 힘들다. <엄마가 뿔났다>의 장미희를 비롯해, <천하일색 박정금>의 이혜숙, <행복합니다>의 이휘향, <겨울새>의 박원숙과 윤미라까지, 지금 드라마 속 엄마들은 누가 최고의 속물인가를 두고 치열하게 경쟁한다. 자식 둔 처지의 엄마라서 이런 엄마들이 더 징글징글하다는 칼럼니스트 정석희(사진 오른쪽)씨와 따뜻한 드라마 속 엄마를 그리워하는 작가 조진국씨가 이야기를 나눴다. 정석희 요즘 리모콘에 불난다.(웃음) 같은 시간 방영하는 <엄마가 뿔났다>와 <천하일색 박정금>뿐 아니라 요새 볼만해진 <겨울새>와 <조강지처 클럽> <대왕세종> <행복합니다>도 방영시간이 겹치는 바람에 왔다갔다 바쁘다. 조진국 <행복합니다>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전원일기> <쑥부쟁이>를 쓴 김정수 작가의 작품이 맞나 싶더라.
와, 재벌가 사모님이 보면 미치겠다 정 김정수 작가는 <누나> 때부터 색깔을 조금 바꾼 것 같다. 속물 재벌가와 평범한 집안의 갈등이라는 건 김 작가가 처음 도전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요즘 주말극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엄마들의 천태만상이 흥미롭다. <엄마가 뿔났다>의 김혜자가 가장 전형적이거나 가장 평범한 우리들 엄마에 속하는데, 요즘 드라마 속에서는 오히려 드문 경우에 속한다. 드세고, 욕심 많고, 속물적인 엄마들이 대세다. 조 <행복합니다>를 보면 재벌가 사모님인 이휘향이 딸의 애인을 미행시킨 다음 미행했던 사람에게 몇백만원을 현금 뭉터기를 집어주는 장면이 나오던데 재벌가 사모님들은 진짜 그럴까? 정 잘은 모르지만 재벌가 사모님들도 이런 장면 보면 미칠 거 같지 않을까.(웃음) 드라마 속 재벌가 사모님들은 하나같이 괴상망칙하게 그려지니까 말이다. 그런데 <겨울새>의 재벌 사모님 윤미라 같은 캐릭터는 비교적 현실감 있게 그려진 것 같다. 교양 있고 점잖아 보이지만 사실은 자기 자식만 중요한 줄 알았지, 남의 자식이야 어떻게 되든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조 <겨울새>를 보면 초창기에는 박원숙이 진짜 천하의 나쁜 엄마로 등장했는데 뒤로 갈수록 박원숙과 윤미라가 대조를 이루면서도 묘하게 역전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재미있다. 정 박원숙은 무식하고 거친 데 비해서 윤미라는 어떻게 보면 아주 지능적이다. 같이 키운 자식이나 다를 바 없는데 자기 배 속에서 나온 자식이 아니라고 영은이(박선영)를 사지로 몰아가지 않나. 오로지 자기 아들과 떼어놓기 위해서 말이다. 생각하면 돈만 밝히는 것보다 그게 더 섬뜩하다. 조 <천하일색 박정금>의 이혜숙도 자기 자식 위해서 남의 자식 인생 망치는 짓을 태연하게 한다. 사실 진짜 악독한 엄마인데 드라마에서는 그런 엄마가 나왔을 때 더 열심히 보게 된다. 센 악역이 나올수록 드라마의 긴장 구도가 더 커지기 때문인 것 같다. 정 이혜숙을 봐도 그렇고 그 모든 엄마들의 공통점은 내 자식을 위해서 나쁜 짓도 서슴지 않는다고 하는데, 가만 보면 그게 자식을 위한 게 아니라 결국 나 자신을 위하는 거다. 내 딸을 재벌가나 ‘사’자 한테 시집 보내려는 건 자식 호강을 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결국 나를 광내기 위해서 아닌가.
맨 위부터 시계반대방향으로 〈겨울새〉의 두 엄마와 〈엄마가 뿔났다〉, 〈천하일색 박정금〉, 〈행복합니다〉의 속물 엄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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