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어제 그거 봤어?
[매거진 Esc] 너 어제 그거 봤어?
<무릎팍 도사> <1박2일>이 최전방 독해진 쇼 프로 전국시대의 흐름을 짚다
<에스비에스> ‘야심만만’이 방송 시작 5년 만에 막을 내렸다. 한때 20%가 넘는 시청률을 자랑하며 최고의 토크쇼로 성가를 드날렸으나 최근에는 5~6%까지 추락한 시청률에 허덕이다 퇴장했다. 장수 프로였던 ‘야심만만’의 종영은 예능 프로그램의 한 시대가 끝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매거진t>의 백은하 편집장(사진 오른쪽)과 차우진 기자가 ‘야심만만’의 종영을 통해 쇼 프로 전국시대의 재편화 양상을 짚어봤다. 여기서 퀴즈. 저문 ‘야심만만’과 뜬 ‘무릎팍 도사’, 뜨고 있는 ‘1박2일’의 진짜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백은하 영화 개봉 전에 배우들이 ‘야심만만’에 출연하는 게 코스처럼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거기서 얼마나 재미있는 토크를 펼치느냐가 흥행에 영향을 끼치기도 하고. 그만큼 최고의 인기 프로그램이었는데 근래의 추락은 어떤 토크를 원하느냐, 곧 시청자의 요구가 바뀐 걸 보여준다.
차우진 한국에서 예능 프로가 5년 지속된 건 드문 일이기에 의미도 있는데 끝낼 시점을 제대로 못 잡아 초라하게 문을 닫은 건 좀 아쉽다. 과도기라는 생각도 드는데, 이제는 사람들이 토크쇼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져서 자기 경험 같은 현실감 있는 이야기가 아니면 재미가 없어한다. 리얼리티 쇼가 그런 욕구들을 채워주고 있고.
쾌락이 만들어지는 경로의 변화
백 아직도 기억 나는 게 전 직장에서 엘리베이터 타면 젊은 직원이건 나이든 아저씨건 “어제 봤어?” 그러면서 너도나도 ‘야심만만’ 이야기를 했다. 초대손님이 실제로는 어떻게 살건 그와 상관 없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면 최고가 됐는데, 20세기적 토크쇼의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무릎팍 도사’와 비교하면 그 변화가 한 눈에 들어온다. 이제는 그냥 재미있는 남의 말이 아니라 진행자와 초대손님이 일대일로 마주앉아 집중적이며 솔직한 자기 이야기를 끄집어내기를 열망하는 거다.
차 강호동만 봐도 ‘야심만만’이나 이전 프로그램에서는 정리하는 진행자였다면 ‘무릎팍 도사’에서는 장악력 있는 호스트 역을 해낸다. 그 힘으로 30분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데 1, 2년 전 케이블에서 시작해 공중파의 ‘무릎팍 도사’에까지 도착한 독해지는 토크쇼의 변화와도 연결된다.
백 ‘무릎팍 도사’를 보면서 ‘방송에서 저런 말을 해도 돼?’하는 심정적 기준치가 확 무너진 거지. 그래서 사람들에게 좋은 말 해주는 착한 방송이 아니라 치부나 약점을 건드렸을 때 발끈하며 나오는 생생한 재미를 공중파 방송사와 시청자, 연예인이 다 알게 되고, 단련됐다.
차 그에 견주면 ‘야심만만’은 명언도 전해주고 교훈도 주고 착한 프로그램이었는데, 사람들의 감수성이 바뀌었다. 김구라만 봐도 4, 5년 전 텔레비전 출연은 언감생심이고 인터넷에서 논란이 얼마나 많았나. 이랬던 그가 지금은 공중파의 온갖 프로그램에 등장하면서 자신의 캐릭터도 유지하지 않나.
백 ‘무릎팍 도사’는 문소리 불러다 곧바로 미스캐스팅 이야기하고 ‘라디오 스타’는 김국진의 이혼경력을 캐릭터화하는데, ‘야심만만’이 힘받기는 힘든 상황인 거지. 사회적 해석의 과잉·확대일 수도 있는데, 요즘 사람들은 타인보다 내가 어떻게 생각한다가 훨씬 중요한 것 같다. 그러니까 설문조사나 두루뭉술한 통계 같은 건 안 먹힐 수밖에.
차 쾌락이 만들어지는 경로와 밀접한데, 옛날에는 어떤 안전망 안에서 편하게 쾌락을 누렸다면 지금은 눈높이를 딱 맞추고서 팽팽하게 긴장하거나 감정이입을 하면서 직접적으로 쾌락을 만들어낸다. ‘무한도전’이나 ‘1박2일’ 같은 리얼리티쇼가 그런 쾌락의 최전방에 있다. 그게 사실 보는 사람도 디게 피곤한 건데 말야!(웃음)
백 ‘무릎팍 도사’에서 강호동이 양반다리하고 앉아 있는 게 시청자가 안방에서 텔레비전 보는 자세와 흡사하지 않나. 그야말로 티브이쇼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낮은 자세인 거다. 또 그게 ‘1박2일’의 쾌락과도 맥이 닿는다. 요새는 ‘무한도전’ 팬·‘1박2일’ 팬 갈리고, 리얼버라이어티·야생버라이어티로 나뉘는데 ‘1박2일’이 계속 강조하는 건 ‘우리 이렇게 고생하고 있어’다.
연출력보다 카메라 대수가 중요해진 시대
차 이승기가 계속 이래도 안 믿겠지? 눈밭에 텐트에서 자는 거 안 믿겠지? 진짜 물에 빠진 거 안 믿겠지? 이렇게 확인하며 이게 진짜라는 걸 확인한다.
백 그러면서 옛날에는 저 하늘에 있던 스타들이 땅으로 내려온다. 그게 현재 스타 포지션의 높이이기도 하다. 멀리서 빛나는 별이 아니라 길 가다가 내가 ‘직찍’할 수 있고, 그의 미니홈피도 들어가고, 나보다 더 개고생하는 거 보면서 즐거워하고 따지고 보면 꽤 가학적인 즐거움이다.
차 카메라의 존재감도 달라졌다. 옛날에는 카메라를 안 보여줬는데 이제는 카메라를 비롯해 피디나 스태프도 화면 안으로 서슴없이 들어오고, 등장인물들도 카메라를 노골적으로 의식한다.
백 예전예는 연출력이 중요했다면 지금은 얼마나 많은 카메라를 설치해 등장인물들의 디테일을 잘 잡느냐가 관건이다. 출연자들은 스스로 캐릭터를 잡아가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걸 잘 안다. 이게 경지에 오르면 ‘무한도전’의 정형돈처럼 존재감 없는 게 캐릭터로 승화되기도 하고.(웃음) 출연자들은 정글에 던져지고 오히려 시청자들이 ‘트루먼 쇼’의 피디 자리에 앉은 거다. 하지만 여기 트루먼은 영화처럼 당하고 있지 만은 않고 각자 치열한 머리싸움을 한다는 거지.
차 통제 못하는 상황의 변칙성도 재미의 중요한 요소다. ‘1박2일’의 이수근이 딱 그런 캐릭터인데, 힘들다고 울고, 자기가 못한다고 울고, 그렇게 직접적으로 보여주면서 캐릭터 만드는 과정이 이야기나 재미의 요소가 되는 거다. 그게 가학적이지만 철저히 관음적인 몰래카메라의 가학성과는 또다른 점이다.
시청자의 집착과 친밀도 더 강해졌다
백 ‘무한도전’이 이런 계보의 신기원인데, 지금은 너무나 메이저가 됐지만 처음엔 못난 이들 보는 측은함이 있었다. 장동건·정우성 나와서 어떻게 5분 안에 여자를 꼬셨나가 아니라 평균 이하들이 나와서 어떻게 차였나를 얘기해주는 것 같은 안도감을 주면서 말 그대로 2인자, 3인자의 성공신화를 보여줬다. 그래서 더 도덕성을 요구할 수밖에 없고 정준하 사건에 큰 실망을 느꼈던 거다.
차 프로그램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로 받아들이면서 리얼이라고 생각했던 게 쇼라고 보여지니까 더 배신감을 느끼는 거고, 그보다 훨씬 못하고 더 야생적인 것을 보고 싶은 욕구가 ‘1박2일’에 대한 호감으로 이어졌다. ‘무한도전’ 골수 팬에서 ‘1박2일’로 돌아선 사람들 상당수가 ‘무한도전’을 강하게 비판한다.
백 헤어진 연애와 비슷한 거지. 네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 어떻게 나한테 거짓말을 해? 이런 배신감. 확실히 ‘무한도전’에서부터 인기 쇼는 즐겨보는 정도가 아니라 밀착감 강한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 앞으로 쇼의 형식은 다양해지겠지만 시청자의 집착이나 친밀도는 더 강해질 것 같다.
차 포맷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시청자와의 관계를 어떻게 맺느냐에 따라 첨단이 될 수도 있고, 낡은 프로가 될 수도 있겠지!
백 이제 프로그램은 텔레비전을 벗어나서 탄생하고 발전하고 소멸하는 것 같다. 블로그나 게시판 활동만 봐도 그렇다. 티브이 속 내용물은 어느 때보다도 ‘핫’하고 일상과 밀착되지만 티브이라는 개념 자체는 무의미해진다. 숨가쁘면서도 극적인 미디어 환경의 변화다.
정리 김은형 기자
쾌락이 만들어지는 경로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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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 한국방송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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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하고 원초적이고 독해진 오락 프로그램의 전성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야심만만’이 결국 종영했다. ‘야심만만’. 에스비에스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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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팍 도사’. 문화방송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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