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이버에 웹카툰 <낢이 사는 이야기>로 인기 끄는 대학생 만화가 서나래씨
[매거진 Esc] 도대체 누구야
네이버에 웹카툰 <낢이 사는 이야기>로 인기 끄는 대학생 만화가 서나래씨
재미삼아 식구들끼리 벌인 고스톱판에서 <타짜>의 정 마담 못지않게 노련한 포즈로 패를 던지다가 막내아들에게 ‘쌍피’를 거슬러 달라고 언성 높이는 엄마. 한없이 근엄하고 무뚝뚝한 얼굴로 흥얼거리는 아빠에게 다가가보니 흘러나오는 노래 가사는 ‘보일락 말락~ 아일락~’. 군대에서 휴가 나와 웬일인지 누나에게 살갑게 굴던 동생이 진정 원했던 건 역시나 용돈이다.
엄마의 말실수는 아이디어의 원천
네이버에 연재되는 웹카툰 <낢이 사는 이야기>(‘이하 낢’)는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며 인기를 모으고 있는 일상만화다. 개인에 초점이 맞춰진 젊은 만화가들의 작품과 달리 <낢…>의 주요 소재는 가족이다. 거기에는 대단한 사건이나 사고는 없지만 피아노 앞에 옹기종기 모여서 ‘즐거운 나의 집’을 부르는 풍경도 없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는 궁금하지 않지만 문득 창문을 열어 훔쳐보고 싶은 옆집 가족의 아옹다옹하는 모습들이 있다.
“얼굴 찍으면 안 되는데, 낢에 대한 독자들의 이미지가 완전히 깨질 텐데….” 카메라 앞에서 쑥스러워하는 서나래(24)씨는 바로 이 작품의 작가이자 주인공, 훤칠한 키가 동그란 캐릭터와 반대지만 표정 곳곳은 많이 닮았다. 이제는 작품당 달리는 댓글만 2000개에 육박하지만 ‘낢이 사는 이야기’는 말 그대로 서씨가 사는 이야기, 일기장이다. 그가 이 일기장을 처음 만든 건 2004년. “어릴 때부터 만화를 엄청 좋아했어요. 중학교 때 보면 교과서마다 만화 끄적끄적 그려놓고 수업시간에 친구들 보여주면서 킬킬거리는 애들 있잖아요, 제가 딱 그러고 놀았거든요.” ‘낢’은 ‘뷁’ 같은 인터넷 용어가 유행했을 때 친구들이 그에게 지어줬던 별명. 그러다가 미니 홈피에 ‘끄적끄적’한 걸 보고 친구들이 재미있다고 부추겨서 홈페이지를 만들게 됐다. 그게 입소문을 타면서 학교 신문에 연재를 하게 됐다. 그래서 폭발적 인기를 얻으며 소개팅 건수가 쇄도했………,던 건 아니라고 한다.
“<스노우캣>이나 <마린블루스>가 나왔을 때 열광적으로 좋아했어요. 웹툰을 시작한 건 <스노우캣> 영향도 큰 거 같아요. 아, 물론 스노우캣은 뭘 해도 간지가 나지만 낢은 뭘 해도 찌질하죠. 스노우캣이 시크하게 에스프레소를 마신다면, 뭐랄까 낢은 방구석에서 라면 먹는 분위기랄까(웃음).” <스노우캣>과 함께 서나래가 열광하는 만화는 우스타 교스케의 <멋지다 마사루> <삐리리, 재규어를 불어봐>다. <낢…>이 일상만화이면서도 무심한 듯, 그러나 ‘무심한 듯 시크하’지는 않은 유머를 구사하거나 캐릭터의 팔다리도 무심하게 자유자재로 늘어나는 게 우스타 교스케의 4차원 유머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 같기도 하다.
<낢…>이 인기를 얻으면서 그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그 자신보다 가족, 특히나 휴대전화를 ‘핸드기’(핸드폰+전화기), 엉덩이를 ‘겅덩이’(궁뎅이+엉덩이)로 말실수하며 수많은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엄마다. 그에 대한 답변은 한 에피소드에 나와 있다. 엄마는 어디서 말실수를 하고 오면 작가에게 이야기해주며 때로는 “이거 너무 약한 거 아니니?”라며 작가의 ‘자체검열’을 은근히 질타하기도 한다. “캐릭터에 엄마가 부풀린 웨이브 머리로 등장하잖아요. 어차피 만화 캐릭터인데 평소에도 부풀린 머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엄청 신경을 쓰세요(웃음). 아빠는 가족 이야기만 그리지 말고 폼나게 시사적인 이슈도 그려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하시기도 해요.” 처음 연재했을 때처럼 댓글에 민감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끔 가족에 대한 악플이 달리면 속이 상한단다. “발로 그렸냐, 이런 글도 종종 올라오지만 그건 불쾌하지 않아요. 제 생각에 이 그림체는 제 이야기에는 최적화된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사랑이야기’로 테마 바꿀까 고민중
서씨는 올 2월에 대학을 졸업한다. 지금까지 대학생 만화가로 활동했던 것처럼 직장인 만화가가 될까, ‘그냥’ 만화가가 될까 꽤나 긴 시간 고민을 거쳤다. 불안하기도 하지만 그냥 만화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만화를 취미로 그리면서 다른 일을 하면 별로 행복하지 않을 거 같아요. 그리고 제가 지난해 휴학을 하고 1년 동안 인턴으로 회사에 다녀봤는데 아무래도 직장에서 성공하기는 힘들 거 같기도 하고, 쿨럭.” 대학생이었던 캐릭터 ‘낢’도 이제 변신해야 하는데 프리랜서의 삶에서 다양하고 공감을 끄집어낼 만한 소재를 찾을 수 있을까가 지금 그의 고민이다. 그래서 요새는 낢의 사랑 이야기라는 새로운 테마로 다시 시작해볼까 생각 중이다. 그럼 이제 핑크빛과 샤방한 꽃무늬 가득한 순정만화로 대변신? “그럴 리가 있나요, 로맨틱한 것과 거리가 먼 현실적인, 그리고 여전히 명랑한 만화가 될 것 같은데요!”
글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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낢의 사생활을 훔쳐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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