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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해 선생님 기록에 도전해볼까요?

등록 2007-10-31 21:22수정 2007-10-31 22:37

도대체 누구야? / 김인협 악단장
도대체 누구야? / 김인협 악단장
[매거진 Esc]도대체 누구야?
‘전국노래자랑’ 27년 역사와 함께한
최고 터줏대감 김인협 악단장

‘전국노래자랑’ 없는 일요일 대낮을 상상할 수 있을까? 이 프로그램이 사라진다고 세상이 발칵 뒤집히지야 않겠지만 리모컨을 장난감 삼아 빈둥거리는 일요일 한낮의 달콤한 휴식에 미세한 빈틈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으리라. 올해로 27년, 12월이면 1400회를 맞이하는 일요일의 한 식구 ‘전국노래자랑’(한국방송)에는 프로그램과 같이 나이를 먹어온 터줏대감이 있다. 프로그램이 처음 만들어진 1981년 “딱 1년만 하겠다”는 다짐을 하고는 피디들의 “1년만, 1년만 더” 말을 듣다가 27년 동안 악단을 이끌어 온 김인협(67) 단장이다.

제목만 듣고도 천 곡은 바로 연주

인생의 3분의 1을 ‘전국노래자랑’과 함께 보낸 그에게 정확한 숫자를 요구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제목만 듣고 바로 연주할 수 있는 곡 수가 “최신곡 말고는 거의 다 머리에 입력돼 있으니까 천 단위는 넘어가고” 부르는 이의 키를 맞춰 편곡한 악보 수는 “케이비에스 캐비넷 하나 정도”는 채울 것이며, 그동안 함께 일한 피디 수는 “40명은 넘고 50명은 안 될 것”같다.


“지역 축제가 많은 봄, 가을이 제일 바빠요. 10월에도 집에 못 들어간 날이 더 많아. 그래도 천직이라 그런지 아프지도 않아!(웃음) 송해 선생님이 여든 넘은 나이에 정정한데 내가 아플 수 있겠어요?” 김 단장은 예나 지금이나 8인조 악단을 이끌고 전국을 다닌다. “버스 짐칸 바닥이 부실해서 그 사이로 드럼이 빠져나가 분실되고, 앰프 진공관이 부서지고, 일고여덟 시간 에어콘 없는 버스에서 시달리다가 내리면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먼지로 뽀얘지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이야 차 좋지, 길 잘 닦였지, 힘들게 뭐 있어?”라고 오히려 반문한다.

한번 지역에 내려가면 3일이 걸려야 프로그램 녹화가 끝난다. 첫날은 예심을 보는데 부산은 구마다 1000명이 넘게 몰렸다. 김 단장이 가장 바쁜 이튿날은 1차 예심 통과자 40~50명 가운데 본선 진출자 15명을 뽑는데, 그는 출연자들의 키에 맞게 곡을 밤새 편곡하고 악기 편성을 한다. 마지막날 녹화라고 안심은 못한다. “초창기 때는 이런 일이 많았어요. 리허설을 하는데 어디서 술 냄새가 나는 거예요. 한 출연자가 긴장돼서 술을 드시고 온 거지. 그러다가 정작 녹화 때는 사라졌어. 무대 뒤에서 잠이 든 거지. 또 노인 분들은 꼭 한잔 걸치고 올라와 ‘너네는 애비 에미도 없냐’ 언성 높이고. 지금이야 술은 나이를 막론하고 절대 엄금이죠.”


김 악단장은 명절 특집 때면 지휘봉을 잡고 평소에는 건반을 연주하는 1인 2역을 한다.
김 악단장은 명절 특집 때면 지휘봉을 잡고 평소에는 건반을 연주하는 1인 2역을 한다.

다른 사람은 말하는 목소리 몇 마디만 들어도 키를 척 뽑아내는 ‘절대 음감’의 소유자지만 본인이 노래하는 건 딱 질색. 그럼에도 송해씨의 짓궂은 장난 때문에 그의 노래 실력은 여러번 전파를 탔다. “선생님이 88년부터 사회를 봤는데 그 전에 동양방송(TBC) ‘가로수를 누비며’부터 같이 일했어요. 그러니까 방송에서도 계속 장난치고 애들한테 만날 저 할아버지한테 가서 용돈 받아라, 이러니 그렇게 나가는 돈만 일년에 몇 십만 원이에요. 근데 송해는 꼭 ‘오빠’고 나는 할아버지야.(웃음) 난데없는 무대 결혼식 주례를 시키지 않나. 지방 가서도 내가 밴드하고 따로 술 마시면 ‘거기 뭐해, 빨리 일루 와’ 전화를 하셔요. 내가 안 가면 이 양반이 또 삐친다구!”(웃음)

청주 출신으로 초등학교 때 형이 구해 온 기타로 독학하며 음악을 시작한 김 단장은 서라벌 예대에서 음악을 공부했다. 청주방송에서 5년, 카바레에서 밴드생활을 10년 가까이 한 뒤 70년대 동양방송의 악단에 들어갔다.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으며 들어간 방송사였지만 ‘전국노래자랑’을 하면서는 명절날 하루도 쉬지 못했다. “명절엔 늘 특집이잖아요. 지방에 내려가니 차례를 지내기는커녕 아침까지 굶죠. 명절에 문 여는 식당이 없잖아요. 점심은 녹화하는 체육관에서 컵라면 먹고. 이제는 이골이 나서 처량하다는 생각도 안 들죠.” 딸의 결혼식을 앞두고는 일찌감치 녹화를 조정해 일주일을 쉬게 됐는데, 갑자기 로스앤젤레스 촬영이 잡히는 바람에 결혼식을 부랴부랴 한 달 앞당기기도 했다.

“팀워크 생각하면 혼자 빠지긴 미안하지”

노래방은 ‘전국노래자랑’의 흐름을 바꿔놓은 가장 큰 요소다. “다들 노래방에서 노래를 하니까 가사를 못 외워요. 유행에도 민감하지. 요새는 박상철과 장윤정이 인기 곡(레퍼토리)인데 희망곡이 겹칠 때가 많아. 그래서 조정을 해야 하는데 가사를 끝까지 외우는 게 준비한 한 곡밖에 없으니까 아주 애먹을 때가 흔하죠.”

요새는 가끔 은퇴를 생각하기도 하지만 ‘전국노래자랑’의 팀워크를 생각하면 혼자 빠지기는 미안하단다. “실력이야 나만한 사람이 없겠어요? 하지만 우리 악단, 조명팀, 무대팀, 송해 선생님까지 다들 십년 넘게 함께하면서 ‘나’가 따로 없는 팀이에요. 한번은 진해 공연에서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불어서 세트를 붙잡던 사람이 바람에 날아갔어요. 부랴부랴 병원에 실어 보내고 너나할 거 없이 세트를 함께 고쳤죠. 그래서 술 마실 때 농담 삼아 피디에게 사람을 교체하려면 아예 싹 바꾸고 새 출발해야지 한두 명 바뀌면 오히려 융합이 안 될 거라고 말하기도 하죠.” 그래서 체력만 되면 송해씨처럼 최고령 현역 활동 기록에 도전해볼까도 생각중이라는 김 단장은 언제라도 ‘딩동댕’ 실로폰 소리가 울리면 건반 칠 준비가 돼 있는 청년 음악인이다.

글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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