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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피한 정면충돌, 여친 편에 서라!
[매거진 Esc]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
Q 신앙생활 강요하는 모친과 그럴 생각 전혀 없는 여친 사이에 끼였어요
사내 커플로 5년 연애해 온 30대 초반 직장인입니다. 연애도 할 만큼 했고 나이도 차 결혼해야 하는데 엄두가 안 납니다. 어머니는 독실한 크리스천입니다. 평소에도 교회 활동에 바쁘고 주말엔 저 데리고 교회 다니는 게 큰 기쁨이십니다. 솔직히 제게 깊은 신앙이 있는 건 아니지만 대학 시절 아버지 돌아가시고 누이들 시집간 뒤라 실망시켜 드리고 싶지 않아 군소리 없이 교회 다니고 있죠. 결혼하면 아들 며느리와 당연히 매주 교회에 나가는 걸로 기대하고 계십니다. 문제는 제 여친이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거란 거죠. 자기 주장 강한 그녀는 결혼 뒤 신앙생활 할 생각 없다고 이미 못 박은 상태입니다. 또 어머니는 아들 결혼식장도 교회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지만 여친은 그런 생각 전혀 없답니다. 지금 여친과 결혼하자면 어머니와 여친 사이를 중재해야 하는데 두 여자 다 고집 꺾을 성격이 아니라 엄두가 나지 않아요. 그렇다고 사랑하는 여친과 헤어질 생각은 없어요. 어머니와 인연 끊을 수도 없는 노릇이구요. 둘 다 행복한 방법이 없을까요?
A1-1. 무엇보다 우선, 삼가 위로의 염부터 전하는 바다. 그 문제, 양자 공히 해피할 방도, 없거든. 나도 미안타 씨바. 대뜸 없다 해서. 하지만, 어느 일방의 복종 혹은 포기 이외 해법, 난망이다. 그거 모친에겐 절대자의 나와바리고 여친에겐 시시비비의 영역이거든. 그 둘 사용언어, 전혀, 사맛디 아니하시다. 소통 불가. 그러나 당신 건의 본질은, 사실, 종교, 아니다.
1-2. 모친에게, 신규 영입되는 처자의 집안 계명 수용은, 마땅하다. 얼마나 마땅하냐. 모친이 독실한 건 모친 사정이거든. 그런데도 당사자에겐 묻지도 않고, 동반예배와 교회예식이 기정사실이다. 타인의 개종마저, 마땅한 게다. 너-무 마땅해 그게 폭력적이란 걸 인지, 못한다. 사달은 바로 그 지점부터. 모친 케이스는 마침 그게 신앙에 의해 강화됐을 뿐, 집안 계율에 대한 복속 요구, 모든 며느리가 당면한다. 그러나 여친은 이미 마이웨이 택했다니. 이제 남은 건, 바지 똥 싼 포즈로 불효자와 마마보이 사이 낑긴 당신. 이를 어쩌면 좋나.
2-1 낭패불감일 땐, 기본부터 되짚자. 자, 대체, 결혼이 뭐냐. 두 어른이 하나의 독립 채산 가족, 창설하는 거다. 부모 가족에 인수합병, 아니라고.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 가족 시스템, 이 ‘어른’ 육성에, 실패하고 있다. 삶의 불확실성, 제 힘으로 맞서는 어느 순간, 아이는 어른이 된다. 그런데 우리 시스템, 그 대면, 부모가, 최대한, 지연시킨다. 부모의, 내가 널 어떻게 길렀는데-채권, 그리 확보된다. 그리고 그렇게 삶 자체를 위탁한 아이들, 결혼하고도, 평생 누군가의 자식으로 산다. 2-2 그래서, 이 땅에서 효도는, 채무다. 허나, 삶 자체의 변제, 애당초, 불가능한 거다. 그리하여 대한민국에서, 효도, 죄의식이 되고 만다. 명절은 그 죄의식 탕감받으러 가는 날. 길이 막혀 다행이다. 갇힌 시간만큼 속죄의 진정성은 입증되니. 반면 그 죄의식이 버거운 자들, 그 대리 지불, 자식된 권리로 합리화해 버린다. 유학도 결혼도 자식된, 합당한 권리. 그거 풀서비스 못하는 부모는 자격 미달자. 이들에게 부모는, 유산이다. 2-3 우리 사회, 이 과도 사육과 성장 지체를, 효와 사랑이라 부른다. “이 세상에 없어도 유학 보내고 결혼 시키는 아버지 있습니다”란 보험 광고, 그 뒤틀린 멘탈리티 위에 탄생했다. 부모는 디져도 돈은 남겨야 한단다. 지랄. 부모 자격 갖고 어따 대고 협박인가. 죽는 것도 서러운데. 더구나 이 병든 패러다임에선, 자식은, 자식인 게 유세가 된다. 미친 거지. 3-1 이제 다시 당신 스토리. 고부 갈등에 관한 처세술, 참, 많다. 모친 앞에선 모친 편, 아내 앞에선 아내 편, 이런 거. 그거, 때때로, 유용하다. 그렇게 통역 윤색이나 화법 기름칠로 소소한 갈등, 피할 수 있다. 하지만 처세는, 처세다. 회피술이지 돌파술, 못 된다. 양단 간에 피치 못할 정면충돌엔 소용, 안 닿는다. 그래서. 지금, 당신에게 지금 필요한 건 처세가 아니라, 입장이다.
3-2 내 결론은 그렇다. 여친 편에, 서시라. 그렇게 입장, 세우시라. 결혼은 당신이 당신 의지로 상대 인생에 적극 개입해 체결한 약조다. 책임, 당신에게 있다. 게다가 여친은 모친 교회생활, 안 말리잖아. 그 역은 왜 당연한가. 하나도, 안 당연하다. 그로 인한 부모 배신감은, 부모 된 자의 숙명이다. 그 감당, 부모 몫이다. 그거 당신이 대신 할 수 없다. 제 몫, 제가 감당하는 게 어른이다. 그 기대가 정당하든 않든, 그에 부응치 못한 거, 미안해하는 건, 옳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충분히 미안해하고, 그리고 여친 편에, 서시라. 그렇게 입장 분명히 세운 후, 처세를 해도 해야 한다. 그거 패륜 아니다. 패륜은 자식이 유세인 줄 아는 거, 그래서 생전엔 물론, 죽은 부모에게조차 유학·결혼 바라는 거, 그런 게, 진짜 패륜이다.
PS-자식이 부모에게 갖춰야 할 건, 효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예의 그리고 애틋한 연민.
김어준 방송인
2-1 낭패불감일 땐, 기본부터 되짚자. 자, 대체, 결혼이 뭐냐. 두 어른이 하나의 독립 채산 가족, 창설하는 거다. 부모 가족에 인수합병, 아니라고.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 가족 시스템, 이 ‘어른’ 육성에, 실패하고 있다. 삶의 불확실성, 제 힘으로 맞서는 어느 순간, 아이는 어른이 된다. 그런데 우리 시스템, 그 대면, 부모가, 최대한, 지연시킨다. 부모의, 내가 널 어떻게 길렀는데-채권, 그리 확보된다. 그리고 그렇게 삶 자체를 위탁한 아이들, 결혼하고도, 평생 누군가의 자식으로 산다. 2-2 그래서, 이 땅에서 효도는, 채무다. 허나, 삶 자체의 변제, 애당초, 불가능한 거다. 그리하여 대한민국에서, 효도, 죄의식이 되고 만다. 명절은 그 죄의식 탕감받으러 가는 날. 길이 막혀 다행이다. 갇힌 시간만큼 속죄의 진정성은 입증되니. 반면 그 죄의식이 버거운 자들, 그 대리 지불, 자식된 권리로 합리화해 버린다. 유학도 결혼도 자식된, 합당한 권리. 그거 풀서비스 못하는 부모는 자격 미달자. 이들에게 부모는, 유산이다. 2-3 우리 사회, 이 과도 사육과 성장 지체를, 효와 사랑이라 부른다. “이 세상에 없어도 유학 보내고 결혼 시키는 아버지 있습니다”란 보험 광고, 그 뒤틀린 멘탈리티 위에 탄생했다. 부모는 디져도 돈은 남겨야 한단다. 지랄. 부모 자격 갖고 어따 대고 협박인가. 죽는 것도 서러운데. 더구나 이 병든 패러다임에선, 자식은, 자식인 게 유세가 된다. 미친 거지. 3-1 이제 다시 당신 스토리. 고부 갈등에 관한 처세술, 참, 많다. 모친 앞에선 모친 편, 아내 앞에선 아내 편, 이런 거. 그거, 때때로, 유용하다. 그렇게 통역 윤색이나 화법 기름칠로 소소한 갈등, 피할 수 있다. 하지만 처세는, 처세다. 회피술이지 돌파술, 못 된다. 양단 간에 피치 못할 정면충돌엔 소용, 안 닿는다. 그래서. 지금, 당신에게 지금 필요한 건 처세가 아니라,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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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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