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문기, <이발사 데니얼의 컨템퍼러리 스타일> (2007)
[매거진 Esc] 도대체 누구야?
유머와 위트로 미술판과 음악판을 휘젖는 조문기 혹은 조까를로스의 야릇한 탐구
그는 커다란 가죽 가방을 손에 들고 나타났다. 그에게는 이름이 두 개다. 하나는 본명이자 미술 작가로 활동하는 이름 조문기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인디밴드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의 기타리스트이자 보컬로 활동하는 이름 조까를로스다. 그의 가방이 큰 이유도 ‘조문기/조까를로스’라는 두 개의 이름에서 대략 짐작이 된다. 이 두 개의 이름이 최근 미술판과 음악판에서 일종의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미술가 조문기와 음악가 조까를로스, 그는 ‘도대체’ 누굴까.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을 아십니까
조문기는 서양화를 전공했다. 어릴 때부터 만화를 탐독하며 만화가를 꿈꿨던 조문기는 ‘그때만 해도 전문적으로 만화를 배울 곳도 없고 해서’ 예고와 미대를 거치며 그림을 그렸다. 어린 시절의 꿈 때문인지 그는 키치라는 코드에 유독 끌렸다. 그의 그림에서는 키치적인 코드를 쉽게 읽어낼 수 있다. ‘오빠의 손장난이 너무해’나 ‘파도가 나만 따라와’ 등 그의 그림에는 흥미와 유머, 위트가 있다. 그리고 조금만 살펴보면 그 속에 살며시 숨어들어 있는 그의 메시지가 보인다.
붓을 쥐고 있던 그의 손에 기타가 들려진 것은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했던 2000년 즈음이었다. “미대에는 여자가 많잖아요. 관심 좀 끌어보려고 기타를 치기 시작했어요. 무작정 기타를 친 거죠. 밴드를 만들었냐구요? 아뇨. 그냥 멈췄어요. 재미있자고 한 거였으니까요.”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방황기’에 접어들었다. 여기서 ‘방황기’라 함은, 이렇다 할 직업 없이 돈을 버는 시기라는 뜻이다. 입시 미술학원에서 학생도 가르쳤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벽화도 그렸고, 영화미술회사에 들어가기도 했고, 테마공원 놀이기구 제작하는 일도 했다.
‘방황기’를 보내며 방 안에서 나 홀로 미술 활동과 음악 활동(?)을 하던 그에게 밴드 결성의 기회가 온 것은 2005년이었다. 대학 동기가 자기 전시회 오프닝 공연을 그에게 부탁했고, 그는 음악의 ‘ㅇ’자도 모르는 후배들에게 멜로디언과 북, 베이스를 들려 밴드를 급조했다. 그렇게 급조한 밴드가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이 아닌,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이다. “‘라틴음악’을 하는 밴드이고 싶었어요. 라틴 음악의 ‘ㄹ’자도 모르는데 라틴음악 밴드라고 하기에는 좀 그래서 ‘얼터너티브’를 붙였어요. ‘얼터너티브 라틴음악 밴드’가 된 거죠.” 조문기식 유머다. ‘안토니오 까를로스 조빔’의 이름과 그의 이름 ‘조문기’를 뒤섞어 ‘까를로스 조’, 한국식으로 ‘조까를로스’도 여기에서 탄생했다. 공연을 한번 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괜찮았다. 공연 한번 하고 끝내기엔 못내 아쉬워서 한번이 두번이 됐고, 두번은 세번이 됐으며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은 어느새 홍대 앞 클럽들이 오디션도 보지 않고, ‘혐오감만 주지 않는다면’ 무대를 내주는 밴드가 됐다. 지금 밴드 멤버는 리듬 파트를 담당하는 몬테소리와 멜로디언을 연주하는 후르츠김까지 포함해 3명이다. 다음달에는 첫번째 앨범도 나온다. “제가 ‘황신혜밴드’와 ‘어어부밴드’를 엄청 좋아해요. 공연도 그 밴드들의 키치적이고 퍼포먼스적인 요소에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음악은 공연 위주로 하려고 했는데, 하다보니 조금 더 오래 해도 될 것 같고 또 뭐라도 하나 정도는 남겨도 괜찮을 것 같아서 앨범을 내기로 했죠.” 음악을 한다고 본업을 잊은 것은 아니다. 지난해 7월 홍대 앞 갤러리 미끌에서 첫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이름하야 <이발소맥주달력>전. 전시에는 그가 가장 열광하는 ‘키치의 본고장’ 이발소가 고스란히 들어 있다. “이발소는 벽에 걸려 있는 그림부터 장소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분위기까지 모두 키치의 산물이에요. 남성의 상징인 털을 관리하는 굉장히 마초적인 공간이죠. 지금은 거의 없어졌지만 퇴폐적인 곳도 있었죠. 군대에 있을 때 미술을 전공했다는 이유로 주말마다 병사들 머리를 깎았어요. 이발을 하다보면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귀만 없었으면 하루에 다섯명은 더 깎을 수 있을 것 같은데.’”(웃음) 그가 그린 이발소 연작을 보면 어딘가 성스럽기까지 하다. 이발사와 이발사에게 머리를 맡긴 손님 모두 콧털을 아름답게 기르고 있고, 그들의 표정은 온화하기 그지없다. 이런 이들의 우아한 몸짓이 이발소라는 공간의 본래 성질과 부딪히면서 유머와 재치, 또 메시지를 전달한다. “남자다운 것에 대한 열등감 있었어요” 그는 미술 작가로서의 조문기와 뮤지션으로서의 조까를로스를 되도록 따로 생각해달라고 부탁하지만, 그의 그림과 음악을 보고 있노라면 따로 떨어뜨려 생각하기가 어렵다. 그의 음악의 내용이 그림이 되기도 하고, 그림이 음악으로 다시 태어나기도 하니까. ‘싸이보그 여중생Z’나 ‘미소녀 대리운전’ 등이 그런 경우다. 소재에서도 공통분모가 있다. ‘마초’다. 이발소 아저씨와 대리운전을 하는 미소녀 등 그가 얘기하고 싶어 하는 세계는 마초적인 세계다. “고등학교 때부터 여학생들 사이에서 쭉 지내왔고 제가 몸이 건강한 편이 아니라서 그런지 제게는 남자다운 것에 대한 열등감이 있는 것 같아요. 거기에서 제가 다루는 소재인 ‘마초’가 시작되는 거죠. 마초스러운 것을 드러내놓고 얘기하면서 희화화시키거나 비웃기도 하고, 때로는 마초스러운 것에 대해 솔직하게 얘기하기도 해요. 그런 제 생각들을 미술과 음악이라는 다른 표현방식을 통해 제각각 얘기하는 거죠.” 미술가이자 뮤지션인 ‘조문기/조까를로스’를 동시에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10월21일까지 광화문 일민미술관에서 열리는 ‘야릇한 환대’ 전시에서 그의 미술 작품과 음악을 다 만날 수 있다.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의 공연이 보고 싶다면 10월20일에는 홍대 앞 클럽 ‘타’를 찾아가보시라. 내년에는 그의 두번째 개인전도 열린다. 미술에서 음악까지 ‘종횡무진’…은 아니지만, 자기만의 리듬으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그의 발걸음을 천천히 따라가 보는 것도 꽤 괜찮은 선택 아닐까. 글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방황기’를 보내며 방 안에서 나 홀로 미술 활동과 음악 활동(?)을 하던 그에게 밴드 결성의 기회가 온 것은 2005년이었다. 대학 동기가 자기 전시회 오프닝 공연을 그에게 부탁했고, 그는 음악의 ‘ㅇ’자도 모르는 후배들에게 멜로디언과 북, 베이스를 들려 밴드를 급조했다. 그렇게 급조한 밴드가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이 아닌,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이다. “‘라틴음악’을 하는 밴드이고 싶었어요. 라틴 음악의 ‘ㄹ’자도 모르는데 라틴음악 밴드라고 하기에는 좀 그래서 ‘얼터너티브’를 붙였어요. ‘얼터너티브 라틴음악 밴드’가 된 거죠.” 조문기식 유머다. ‘안토니오 까를로스 조빔’의 이름과 그의 이름 ‘조문기’를 뒤섞어 ‘까를로스 조’, 한국식으로 ‘조까를로스’도 여기에서 탄생했다. 공연을 한번 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괜찮았다. 공연 한번 하고 끝내기엔 못내 아쉬워서 한번이 두번이 됐고, 두번은 세번이 됐으며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은 어느새 홍대 앞 클럽들이 오디션도 보지 않고, ‘혐오감만 주지 않는다면’ 무대를 내주는 밴드가 됐다. 지금 밴드 멤버는 리듬 파트를 담당하는 몬테소리와 멜로디언을 연주하는 후르츠김까지 포함해 3명이다. 다음달에는 첫번째 앨범도 나온다. “제가 ‘황신혜밴드’와 ‘어어부밴드’를 엄청 좋아해요. 공연도 그 밴드들의 키치적이고 퍼포먼스적인 요소에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음악은 공연 위주로 하려고 했는데, 하다보니 조금 더 오래 해도 될 것 같고 또 뭐라도 하나 정도는 남겨도 괜찮을 것 같아서 앨범을 내기로 했죠.” 음악을 한다고 본업을 잊은 것은 아니다. 지난해 7월 홍대 앞 갤러리 미끌에서 첫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이름하야 <이발소맥주달력>전. 전시에는 그가 가장 열광하는 ‘키치의 본고장’ 이발소가 고스란히 들어 있다. “이발소는 벽에 걸려 있는 그림부터 장소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분위기까지 모두 키치의 산물이에요. 남성의 상징인 털을 관리하는 굉장히 마초적인 공간이죠. 지금은 거의 없어졌지만 퇴폐적인 곳도 있었죠. 군대에 있을 때 미술을 전공했다는 이유로 주말마다 병사들 머리를 깎았어요. 이발을 하다보면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귀만 없었으면 하루에 다섯명은 더 깎을 수 있을 것 같은데.’”(웃음) 그가 그린 이발소 연작을 보면 어딘가 성스럽기까지 하다. 이발사와 이발사에게 머리를 맡긴 손님 모두 콧털을 아름답게 기르고 있고, 그들의 표정은 온화하기 그지없다. 이런 이들의 우아한 몸짓이 이발소라는 공간의 본래 성질과 부딪히면서 유머와 재치, 또 메시지를 전달한다. “남자다운 것에 대한 열등감 있었어요” 그는 미술 작가로서의 조문기와 뮤지션으로서의 조까를로스를 되도록 따로 생각해달라고 부탁하지만, 그의 그림과 음악을 보고 있노라면 따로 떨어뜨려 생각하기가 어렵다. 그의 음악의 내용이 그림이 되기도 하고, 그림이 음악으로 다시 태어나기도 하니까. ‘싸이보그 여중생Z’나 ‘미소녀 대리운전’ 등이 그런 경우다. 소재에서도 공통분모가 있다. ‘마초’다. 이발소 아저씨와 대리운전을 하는 미소녀 등 그가 얘기하고 싶어 하는 세계는 마초적인 세계다. “고등학교 때부터 여학생들 사이에서 쭉 지내왔고 제가 몸이 건강한 편이 아니라서 그런지 제게는 남자다운 것에 대한 열등감이 있는 것 같아요. 거기에서 제가 다루는 소재인 ‘마초’가 시작되는 거죠. 마초스러운 것을 드러내놓고 얘기하면서 희화화시키거나 비웃기도 하고, 때로는 마초스러운 것에 대해 솔직하게 얘기하기도 해요. 그런 제 생각들을 미술과 음악이라는 다른 표현방식을 통해 제각각 얘기하는 거죠.” 미술가이자 뮤지션인 ‘조문기/조까를로스’를 동시에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10월21일까지 광화문 일민미술관에서 열리는 ‘야릇한 환대’ 전시에서 그의 미술 작품과 음악을 다 만날 수 있다.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의 공연이 보고 싶다면 10월20일에는 홍대 앞 클럽 ‘타’를 찾아가보시라. 내년에는 그의 두번째 개인전도 열린다. 미술에서 음악까지 ‘종횡무진’…은 아니지만, 자기만의 리듬으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그의 발걸음을 천천히 따라가 보는 것도 꽤 괜찮은 선택 아닐까. 글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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