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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집적거리는 남자들을 보면 자꾸만 나쁜 상상이…”

등록 2007-09-05 19:28수정 2007-09-07 18:04

“그녀에게 집적거리는 남자들을 보면 자꾸만 나쁜 상상이…”
“그녀에게 집적거리는 남자들을 보면 자꾸만 나쁜 상상이…”
[매거진 Esc]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
모든 초보 수컷의 숙명적 공포지
Q
20대 후반 사회 초년생입니다. 소심해서 대학 때도 적극적 대시를 하는 연애는 못 해봤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연애를 못 해봤다는 게 더 맞겠네요. 그러다 직장 선배 따라 한 고급 호텔의 바에 들렀다 그녀를 처음 만났죠. 바텐더였습니다. 한눈에 반했습니다. 혼자였다면 말도 못 붙여 봤겠지만 선배 덕에 농담도 주고받았고 그녀도 몇 번이고 크게 웃었습니다. 난생 처음 자신을 얻은 전 다음날부터 출근하다시피 했죠. 처음엔 친절해도 직업적으로만 대하던 그녀도 두달 연속으로 매일 와 느글느글하게 굴지 않는 반듯한 제 모습에 진심을 느끼게 됐고 그렇게 석달째 만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나면 만날수록 오히려 괴롭습니다. 바에서 그녀에게 집적거리는 남자들을 보는 게 너무 힘듭니다. 나쁜 상상도 하구요. 일을 못할 지경입니다. 그녀가 그만두기만 한다면 어떤 희생을 해서라도 평생 먹여 살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결혼을 해도 바텐더를 계속 한다더군요. 나는 한 사람만 바라보는데 그녀는 그 남자들을 다 즐기는 게 아닌가 의심도 들구요. 평생 단 한 사람만을 위해 목숨도 바치는 게 진정한 사랑 아닌가요. 저는 그녀를 위해 어떤 희생도 각오되어 있는데 겨우 바텐더 하나 못 그만두나요. 이기적인 거 아닌가요. 제 생각과 맞는 다른 여자를 만나야 할까요.

김어준 / 박미향 기자
김어준 / 박미향 기자
A
0. 일생 한 사람과만 사랑하고픈데. 그녀 직업, 수용 안 된다. 저, 미쳐요. 이거네. 근데 문제 본질은 직업, 아니거든. 뭐냐. 당신 그 ‘일생일인’론 말야, 거기서부터 시작하자고. 각오는 하셔. 좀 잔인해요.

1. 2년 전 한 여성지가 ‘부자 구별법’과 ‘차종별 공략’이란 기사로 여론폭격 당한 적 있어요. 뭔 내용이었냐. “파텍필립, 브뢰게 정도면 진정 하이클래스. 허나 희소성 높아 브라이틀링, JLC 정도가 공략 용이. 구찌, 까르띠에같이 번쩍번쩍 로고 강조된 시계, 특히 2백만원 이하는 과시용으로 힘겹게 마련했을 경우 99%.” 브랜드 감별법이지. 그리고 닷돈 금반지와 사슬목걸이에 ‘요즘 회사 어때요’, ‘부모님 뭐 하세요’ 등 백그라운드 질문 위주인 남자는 ‘생계유지형’이며, 스포츠카는 미니스커트로, 지프 오너는 튕기며 대처하라. 뭐 이런 노하우 기술했는데. 방방곡곡 수컷들 울부짖음, 메아리 쳤어요. 천박하다, 사랑에 대한 모독이다, 난리법석. 한겨레조차 “표현과 정보가 노골적이라 품격 의심 된다” 했어요. 그래? 그런 거야?

1-1 그거, 아니거든. 이 분노 기저엔 공포, 있거든. 내 꺼 하나도 안 남을지도 모른단 불안. 좋은 거 다 뺏길지 모른단 조바심. 내 유전자 멸절될지 모른단 생물학적 위기의식. 이거 생태계 모든 수컷의 숙명적 공포라고. 우두머리가 암컷들 독점 후 지들끼리 찌그러진 수컷 원숭이 무리의 궁상, 본 적 있으신가. 인간인 내가 다 슬퍼요. 인간 수컷들, 자신들 욕망이 최소공배수로 보장되는 교배 제도, 발명 않을 수 없었다고. 일부일처, 사랑의 숭고함이 탄생시킨 고귀한 합의, 아니란 거지. 사회적 리비도의 안정 위해 도달할 수밖에 없었던 불가피한 타협이었단 거지. 그러다 보니 무한 방사 본능 타고난 수컷 유전자 통제를 위해 강력한 사회 억압도 병행 발명됐던 게고. 그리하여 윤리 종교, 모두 이 수컷의 욕망 통제와 기회균등 위해 복무하고 있는데. 그런데 이 긴장의 밸런스, 부자들은, 아주, 간단히, 무너뜨리거든. 재벌들 여성 스타 사귀면 어떤가. 씨바지 뭐. 딱히 내 것이 될 확률 제로여도 어쨌든 저 색히가 좋은 거 다 차지하잖아. 근데 한 여성지가 그 불평등을 가이드까지 해버리네. 무력한 일반 수컷들, 꼬추 화나겠어, 안 나겠어. 테스토스테론이 사주하는 이 맹렬한 분노에 하이클래스 브랜드는 하나도 모르겠고 평가절하된 과시용조차 내 손목엔 없단 비애까지 더해 수컷들 비통의 포효가 천지를 진동할 수밖에.

2. 이 스토리가 당신과 뭔 상관이냐. 상관, 아주, 많지. 당신의 그 ‘평생 한 사람과만 사랑하게 해 주세요’ 강령, 미안하게도, 당신이 믿는 만큼 고결한 동기에서 출발한 이데올로기 아니라고. 생물학적 목표 위해 궁리해 낸 방어 이데올로기라고. 못 믿겠나. 당신이 한다는 그 ‘나쁜 상상’ 말야. 그건 당신 연인이 다른 수컷과 경험 통해 혹여 당신 남성성의 열등함을 인지할까봐 갖게 되는 공포가 발동시킨 거라고. 그래서 비교당하지도 발각되지도 않는 밀봉된 관계 속에 안주하고픈 거라. 그러니 당신 강령은 ‘한 사람과만 섹스하게 해 주세요’라고 번역하는 게 훨씬 더 진실에 근사해요. 역시 방어용이지. 어때. 조또, 잔인하지.

3. 사랑에 대한 신화화, 사회적 기능, 분명 있어요. 낭만적이잖아. 스스로 속물성에 학을 뗀, 외로운 우리 모두, 기댈 덴 있어야지. 근데 그 신화화된 가치 신봉하는 당신의 사랑 강령, 사실은 공포에 대처하는 여러 방식 중 하나일 뿐, 유용하긴 해도, 절대가치는 아니란 거. 거기 의지해 상대에게 정당하다며 요구하는 포기, 그거야말로 이기적이란 거. 희생? 사랑의 희생 말하는 자들, 결국 본전 찾아요. 희생한단 의식엔 이미 계산이 전제된 거야. 자기기만적 사기지. 어쩜 좋냐. 당신 고통, 모든 초보 수컷들이 겪는 통과의례야. 버텨. 두번째, 세번째 사랑은 나아질 거야. 세번째 연인과도 변함없다. 그럼 순결서약 한 자 찾는 게 좋아. 안 그럼 의처증에 당신이 말라 죽거나, 아니면 여자가 맞아 죽거나.

PS - 비밀 한 가지만 털어놓자. 수컷들 평생 상상 속 수컷과 침대에서 투쟁해요. 참, 불쌍한 종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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