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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미남이 아니라서 성공했어요

등록 2007-07-18 17:22수정 2007-08-26 11:59

<커피프린스 1호점>의 이언
<커피프린스 1호점>의 이언
[매거진 Esc] 도대체 누구야
한때 30kg이나 감량했던 ‘천하장사’ 모델 출신, <커피프린스 1호점>의 이언
박상민(26)이 이언이 된 연유는 이렇다. “모델로 한참 활동하던 2004년 소속사 사장님이 강렬한 이미지를 줄 수 있는 예명을 써보는 게 어떠냐고 라이언이라는 이름을 지어 줬어요. 그런데 어디 가서 ‘라이언입니다’라는 말이 입에서 안 떨어지는 거예요. 너무 어색해서 도저히 못 쓰겠다고 하다가 ‘라’자를 떼어낸 이언이 된 거죠.”

라이언에서 이언이 된 사연

이름을 바꾼 게 모종의 계시가 됐을까. 사자처럼 “거칠고 강한 남자 이미지”로 패션쇼의 런웨이를 활보하던 그는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이언이라는 이름만큼이나 순한 웃음의 연기자로 거듭났다. 실수투성이에 곰처럼 힘만 세고 어눌한 ‘커피프린스’의 종업원 민엽이 “라이언입니다”라고 인사하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실없는 웃음이 피식 나온다. “모델 정말 맞아? 에이, 아닌 거 같은데?”라고 놀리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는 2000년에 데뷔한 베테랑 모델이다. 차승원, 강동원 등 모델 출신 배우들이 늘어나는 추세지만 그는 우연하게 배우의 길로 들어섰다. “소속사 사장님이 <남극일기> 임필성 감독님하고 아는 사이였는데, 이 영화 시나리오에 참가했던 이해준 감독님이 씨름 영화를 한다고 해서 시나리오를 감수해 보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시나리오 이야기를 하다가 류덕환하고 저를 나란히 카메라에 잡아 보시더니 연기를 해보면 어떻겠냐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1년에 한두 번 극장에 갈까 말까였던 제가 연기를 하게 된 거죠.” 그렇게 해서 연기를 시작하게 해준 작품이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다.

이 영화에서 씨름부 주장을 연기했던 그는 고등학교 때 전국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씨름 선수 출신이다. 씨름 선수와 모델. 멀고도 멀어 보이는 두 직함은 연기자가 되기 전 그의 인생을 끌고 온 두 가지 일이다. “제가 태어날 때 이만기 선수가 최고 스타였고 민속씨름이 인기였던 시절이었어요. 4.8kg으로 태어난 저는 당연히 씨름 선수가 되야 한다는 게 아버지 생각이셨죠.” 아이들이 장래희망 란에 대통령, 과학자를 쓸 때 단 한 번의 망설임 없이 ‘천하장사’라고 썼던 그의 머릿속에 다른 생각이 들어오기 시작한 건 고2 때 케이블 채널에서 차승원의 패션쇼 워킹을 보면서였다. “그때부터 차승원 선배는 제 우상이었어요. 체대를 갔지만 모델 하려고 30kg을 뺐어요. 1학년 때 체급이 105kg이었는데 졸업할 때는 80kg까지 내려갔죠. 엄청 맞았죠.(웃음)”
<커피 프린스 1호점>에서 단순무식하면서도 귀여운 웨이터를 연기하는 이언.
<커피 프린스 1호점>에서 단순무식하면서도 귀여운 웨이터를 연기하는 이언.

힘들게 얻은 직업이라 그는 모델 일이 마냥 행복했다. 쉽지는 않았다. “촌스럽고, 몸은 우락부락하고, 얼굴도 험상궂고, 어디 쓸 데가 있었겠어요?(웃음) 마침 그때 아시아 모델 대회 같은 게 생겨서 저를 보내버린 거죠. 홍콩, 싱가포르를 오가며 일했는데, 그곳은 마초적인 이미지의 모델이 대세라 꽃미남과 거리가 먼 제가 인기도 얻고 돈도 벌기 시작했어요.” 부드럽고 야들야들한 이미지의 남자 모델과 배우들이 득세하는 한국에 1년 반 뒤 돌아왔을 때 그는 콤플렉스를 차별화의 전략으로 삼아 쑥쑥 자라났다.


우연한 데뷔라고는 하지만 모델 출신 배우들이 화려한 외모를 밑거름 삼아 연기자로 입문하는 데 비해 <천하장사 마돈나>의 씨름 선수와 드라마 <꽃피는 봄이 오면>의 정육점 청년, <커피프린스 1호점>의 웨이터까지 그의 출발은 수수하다. “모델 출신 배우 중에서 저처럼 망가져서 출발하는 사람이 없잖아요. 이런 게 오히려 꽃미남 배우들보다 제 스펙트럼을 넓혀 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드라마에서의 이언과 화보 속의 이언이 같은 사람인 줄 몰랐다는 이야기 들으면 기분 좋아요.”

아직은 패션쇼에서 그의 탄탄한 몸에 감기는 옷처럼 딱 맞는 연기는 아니다. 칭찬보다는 꾸짖음이나 핀잔이 더 많다. “얼마 전에 제 홈피에 누가 ‘너만 나오면 드라마가 불편해진다’고 쓴 쪽지를 보냈어요.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아직 시작이잖아요. 그래도 모델이나 하지 연기는 왜 하냐는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아요. 저는 지금도 모델이고 모델 욕 먹는 거 정말 싫거든요.”

차승원의 워킹을 보고 모델을 꿈꾸다

올해로 8년차로 여자보다 훨씬 수명이 짧은 남자 모델계에서 그는 이미 터줏대감이 된 지 오래지만 10년을 채우는 게 목표다. “그럼 차승원 선배를 따라가는 거죠. 아, 물론 기간으로만(웃음). 덕환이가 차 선배랑 <아들>찍었잖아요. 그때 촬영장 가서 인사도 하고 요새는 술자리에도 가끔 불러 주시는데, 꿈같아요.” 연신 민엽스러운 헤벌쭉한 웃음을 터뜨리며 속내를 터놓는 그의 얼굴에는 ‘낙천적’이라는 그의 성격이 고스란히 쓰여 있다.

역시 방송의 위력이 대단한지 모델 일을 할 때는 그렇게도 반대하던 부모님도 요새는 얼굴이 피었다. “제가 누나랑 9살 차이 나는 막내거든요. 금이야 옥이야 키우셨죠. 요새도 부산에서 자주 전화하셔서는 모르는 사람이 부르면 따라가지 말라고 당부하신다니까요.” 그는 자신을 ‘슬로우 스타터’라고 말한다. “씨름한 지 9년 만에 전국체전 우승하고 모델한 지 8년 만에 베스트 모델상 탔어요. 음, 그러니까 연기는 서른세 살쯤 좋은 상 탈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19살 때 사람들이 27살로 생각할 정도로 겉늙어 보였고, 지금은 다들 27살, 제 나이로 보니까 삼십대쯤 되면 더 근사해지지 않을까요?”

글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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