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방송, 문화방송, 교육방송 제공
[매거진Esc] 너 어제 그거 봤어?
토론문화의 끝을 보여준 EBS의 <토론카페>, 그리고 아쉬웠던 <거침없이 하이킥>
토론문화의 끝을 보여준 EBS의 <토론카페>, 그리고 아쉬웠던 <거침없이 하이킥>
범이가 미국으로 떠났을 때 민호의 기분이 이랬을까. 9개월 동안 시청자들의 배꼽을 간질이고 가슴을 녹였던 <거침없이 하이킥>이 시청자들과 작별을 고했다. 색깔 있는 연애 시트콤 <소울메이트>의 작가 조진국(<고마워요, 소울메이트>저자·사진 오른쪽)씨와 결석 한 번 없이 <…하이킥>을 시청했던 정석희(방송 칼럼니스트)씨가 <…하이킥>의 추억을 더듬었다. 또 인터넷을 불질렀던 교육방송 <토론카페>의 말실수 해프닝과 <미녀들의 수다>를 통해 ‘대화의 매너’를 짚어봤다.
정석희 드라마의 결말에 대해서 이렇게 말이 많은 건 <발리에서 생긴 일>과 <파리의 연인> 이후 처음인 것 같다. 특히 민-민(민용-민정)라인의 결말에 대한 추측이 종방 한 달 전부터 분분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좀 아쉽다. 사랑이 별거 아니고 어떻게든 살려면 살아진다는 게 인생이라는 걸 아는 세대지만 시트콤까지 이렇게 허무한 인생을 가르치는 결말로 끝났어야 했나.
조진국 시청자 입장에서 분하기도 하다. 서민정은 민용의 모든 상황을 감내하면서 그렇게까지 어렵게 사랑했는데 그냥 좀 사랑하게 놔두지 너무 매몰차게 끝난 것 같다.
서민정이 민용 좀 사랑하게 놔두지~
정 윤-민(윤호-민정)의 열린 결말이 더 심난하다. 내가 마흔아홉 살인데 나보다 열 살 어린 신승훈이나 김민종과 내가 나란히 있다고 그림이 되겠나?(웃음) 물론 윤호가 열 살 차이 별거 아니란 말로 누나들 가슴에 불을 지르긴 했지만, 열 살 차이, 별거 맞다.(웃음)
조 다른 이야기지만 시트콤 하나 끝날 때마다 시트콤이 죽었네, 부활했네, 천편일률적인 제목으로 기사들이 쏟아져나온다. 시트콤이 좀비인가?(웃음) 외국처럼 시트콤이 동시적으로 대여섯 개씩 방영된다면 모를까 딱 하나 가지고 죽였다, 살렸다 진단하는 건 이상하다.
정 나는 엄마라서 그런지 자꾸 준이가 눈에 밟혔다. 첫 회가 준이의 나레이션으로 시작했는데 민용과 신지의 갈등을 보여주기 위해 아기를 끌어왔다가 그 용도가 약해지니까 좀 방치되는 느낌도 들었고, 캐릭터를 만들었을 때는 작가가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 거 아닌가, 아쉬웠다.
조 작가 입장에서 보면 그거 너무 힘들다.(웃음) 아무래도 시청자들이 더 주목하는 캐릭터에 좀더 집중할 수밖에 없다. 이 정도면 캐릭터 안배도 훌륭하고 전체적으로 이만한 수준의 시트콤을 뽑아낸다는 건 대단히 힘든 일이다. 다만 뒤로 갈수록 멜로 드라마적 요소가 강해지면서 김병욱 시트콤의 참맛이 좀 약해진 거 같다.
정 그러는 바람에 박해미와 정준하로 대변되는 중년 부부의 삶이 이야기 속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서 가족 시트콤이라는 타이틀이 희미해졌다.
조 이순재, 나문희, 박해미 등 대단한 연기파들이 시트콤에 투입된 것도 좋았다. 많은 배우들이 시트콤을 쉽게 생각하고 드라마의 전 단계로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데, <…하이킥>은 극본뿐 아니라 배우들의 연기력을 통해 시트콤이 하나의 완전한 장르라는 걸 증명했다.
정 최민용과 정일우가 없었다면 이렇게 열심히 봤을까 싶다. 둘 다 까칠한 성격 아닌가. 속정 있는데 잘 드러내지 않고. 남편이 그랬는데 연애할 때 생각났다. 남편도 민용이처럼 데이트하고 헤어지면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아서 그게 참 서운했다. 물론 나도 서 선생처럼 살갑고 애교 있는 성격이 아니라서 표현하지 못했는데, 드라마에 나오는 애정 표현들이 너무 예뻤다.
이안, 전여옥·신정아와 도매금으로…
조 지난 주말은 교육방송 <토론카페> 때문에 인터넷이 시끄러웠다. 그 프로그램은 안 봤는데 검색어 순위에 낯선 이름인 이안이 계속 1위에 오르니까 동영상을 찾아보게 되더라. 전거성도 뜨셨더라.(웃음)
정 이슈가 된 건 이안의 발언이었지만 전원책 변호사가 시종 패널을 깔보는 듯한 태도가 실은 더 불쾌했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사고하고 사색하는 여자가 한 명이라도 있었냐는 이야기는 웃음도 안 나오더라. 사실 적절하게 맞붙을 수 있는 패널을 구성하지 않은 방송사가 더 문제 아닌가. 전거성 반대편에 전여옥 의원 정도를 붙였으면 모를까.(웃음)
조 지난주는 완전히 여성 수난사의 주간이었다. 전여옥에, 신정아에, 이안까지 말 뒤집고, 거짓말하고, 막말하는 세 명이 마치 서울시스터즈처럼 반짝이 옷 입고 나와서 노래를 하는 것 같더라. 이안의 경우 사실 수위는 가장 낮았는데 두 언니들 때문에 도매금으로 더 뭇매를 맞은 거 같다.
정 이제 와서 잘잘못을 가릴 필요는 없겠지만 아무튼 우리나라 토론 문화의 끝을 본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나쁜 토론이었다. 이안은 이번 사건으로 이미지를 많이 망치긴 했지만 그 덕에 사람들이 전원책 변호사의 발언을 찾아보고 군대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을 테니 그래도 의미 있는 역할을 했다고 본다.
조 그런데 왜 군대 문제만 나오면 꼭 남자 대 여자의 대결로 가는지 모르겠다. 남자를 군대 보내는 사람은 엄마나 여동생 아닌가. 나도 군대 갔다 온 남자지만 꼭 군대 이야기만 나오면 여자들과 싸우려는 일부의 남자들이 참 답답하다.
정 특히 이안은 서울대 출신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더 욕먹은 것 같기도 하다. 서울대 나온 여자가 저렇게 머리가 비었냐는 식으로.
조 내 주변에 서울대 나온 사람 중에는 안 똑똑한 사람도 많던데?(웃음)
정 <미녀들의 수다>도 볼수록 대화의 매너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조 처음엔 재미있었다. 미녀들도 나오고.(웃음) 평범한 외국인들의 한국에 대한 생각을 듣는 것도 신선하고. 그런데 언론에서 과도하게 출연자들을 스타로 띄우면서 아마추어적인 신선함이 점점 떨어진다. 그리고 거기 나오는 남자 패널은 거기 왜 앉아 있나 모르겠다.
<미녀들의 수다>, 패널들의 지분거리는 느낌
정 나쁘게 말하면 남자 패널들이 미녀들에게 지분거린다는 느낌이 든다. 또 출연자들의 드레스 코드를 맞추는데, 외국의 문화를 보려면 그들이 어떻게 입는지도 보여 줘야 하는 거 아닌가. 늘 하나의 콘셉트로 의상을 통일하니까 꼭 미인대회를 보는 것 같다.
조 지금처럼 조금 뜨면 바로 연예인이 돼 버리는 상황이라면 패널들이 계속 바뀌는 게 나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궁금한 건 준코나 사오리가 아니라 일본 여자들의 생각이니까.
정 맞다. 점점 패널들 이야기가 한국 사람 비위 맞추는 식으로 바뀌고 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준코의 성희롱 문제로 시끄러웠지만 프로그램 자체도 그런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싶다. 심야 프로그램임을 감안해도 내 딸이 거기서 “왜 그렇게 야하게 말하세요?” 이런 말 들으면 속상할 것이다.
조 <미녀들의 수다>라는 제목에서 나오는 뉘앙스를 감안해서인지 솔직히 수위가 문제가 있다고 보지는 않았다.
정 타깃이 젊은 남자층이라면 오히려 그들의 관심사로 주제를 국한하면 좋은데 ‘한국의 아줌마’ 이런 식으로 보편적인 주제를 들고 나오니 양다리를 걸치는 것 같다.
조 그건 맞다. 차라리 <야심만만>처럼 질문의 색깔을 분명히 정하면 거의 매주 터져나오는 오해와 사고들이 좀 줄어들 것 같다. 좀더 발랄하고 발칙해졌으면 좋겠다. 진행자 남희석도 개그맨 출신답게 좀더 유쾌하게 진행을 했으면 한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 최고의 대사
“사람들은 늘 무언가를 무너뜨리고 무언가에 의해 무너져내린다”(<그라운드 제로>)
“드라마가 시작됐을 때 이 내레이션을 듣고 꽂혔다. 정말 무너져내리는 느낌이랄까. 제목(9·11때 무너진 쌍둥이 빌딩의 터를 가리키는 말)이 주는 외부적, 심리적 느낌이 한 문장 안에 잘 맞아떨어졌다.”(조진국)
“박철민이라는 좋은 배우, 하지만 텔레비전에서는 만년 조연 배우에게 주연의 기회를 줬다는 게 이 드라마가 선사한 최고의 행복 아니었을까 싶다.”(정석희)
■ 최악의 커플
교육방송 <토론카페>의 전원책과 이안
“운동에도 체급이 있듯이 적수라면 공격과 수비가 적절하게 오갈 수 있어야 하는데 한마디로 싸움이 안 되는 파트너였다.”(조진국)
“토론의 기본 자세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주는 계기였다. 두 사람은 ‘역지사지’라는 게 무슨 뜻인지 다시 한번 사전을 찾아보셨으면 한다.”(정석희)

너 어제 그거 봤어?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