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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느적거리며 대~한민국!

등록 2007-07-11 16:56수정 2007-07-11 18:54

장훈(34) 감독
장훈(34) 감독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좀비처럼 어기적어기적 걸어다니며 좀비영화 만든 <불한당들>의 장훈 감독
집단으로 움직인다. 생각이 없다. 이걸 좀비만의 특징이라고 하기엔 좀 찔린다. 황우석 사태 때, 월드컵 기간에 집단의 큰 목소리에 자신을 의탁했던 사람이 어디 한두 명인가. 중편 영화 <불한당들>에서 좀비로 변신하는 건 빨간 티셔츠에 빨간 수건을 두르고 ‘대~한민국’을 외치던 바로 우리들이다. 공격당하는 건 이주 노동자들이다.

빨간 티셔츠가 이주 노동자를 공격

“보통 좀비영화에서는 유색인종이나 노동자, 여성 등 ‘타자’가 공포의 대상인데 역전시켜 보고 싶었어요. 동일자로서 저지르는 폭력을 느껴 볼 수 있도록 말이죠.” 장훈(34) 감독은 지난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졸업작품으로 <불한당들>을 완성했다. 이주 노동자 문제라면 다큐멘터리가 떠오르지만 장르영화, 그것도 B급 정서에 충실한 좀비영화로 완성했다니 의아하기도 한데 “순혈주의는 피와 연결되고, 집단성은 좀비의 대표적 특징 아닌가”라는 명쾌한 대답이 나온다.

타자를 공포의 대상에서 주체로 자리바꿈한 게 고전적 좀비영화와 <불한당들>의 차이점이라면, 정치적 색채를 띄면서도 장르 유희적 재미로 가득한 건 공통점이다. 월드컵 경기를 응원하려고 모인 사람들이 좀비로 변해 흐느적거리며 늘어진 테이프처럼 기괴한 목소리로 “대~한민국”을 외치는 풍경은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웃음이 터져나온다.

〈불한당들〉에서 월드컵 한국전을 응원하던 한국인들은 좀비로 변해 이주 노동자들을 공격한다.
〈불한당들〉에서 월드컵 한국전을 응원하던 한국인들은 좀비로 변해 이주 노동자들을 공격한다.
B급 영화의 어리숙하면서도 날 선 부분을 좋아한다는 장훈 감독은 이 영화를 “대놓고 B급으로 찍었다.” “피범벅을 콘셉트로 잡아 산업재해 이미지를 보여 주고 싶었어요. 외국인의 손을 물어뜯는 것도 프레스기에 손이 뭉개지는 것처럼 표현하려고 했죠.” 저예산일 수밖에 없는 ‘존재론적’ B급 영화의 활기는 붉은 물감 범벅인 인물 위에 놓은 돼지곱창과 순대들이 열연하면서 가능했다. 좀비들이 떼거리로 거리로 나오는 장면에서는 감독과 스태프 할 것 없이 모두 어기적어기적 걸어다녔다. 로메로가 친구들과 영화사를 만들고 쌈짓돈을 모아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을 찍었던 과정과 꽤나 비슷하다.

그는 영상원에 들어가기 전 영화 기자로 일할 때 하드고어(피나 내장이 쏟아지는 공포영화의 표현방식)와 기괴한 유머 감각이 뒤범벅된 영화들로 유명한 브라이언 유즈나 감독과 인터뷰를 하다가 “같이 영화 찍자”라는 제안을 들었을 정도로 하드고어의 팬이다. “뭔가를 숨기기보다는 엉뚱한 방식으로 드러내는 게 하드고어의 즐거움”이라고 말하는 그는 좀비영화와 혈연관계에 있는 흡혈귀 영화를 찍어 볼 생각도 가지고 있다. 또 슈퍼히어로 영화나 에스에프 등 다양한 장르를 변주하면서 “즐겁게 만들 수 있는 영화”를 하는 게 목표다.

좀비를 만나면 침을 흘리세요

“자해의 피칠갑의 슬픈 러브 스토리”인 좀비판 로미오와 줄리엣, <리빙데드3>를 좋아한다는 좀비영화 전문가에게 ‘좀비에게서 살아남는 법’을 마지막으로 물었다. “길 한가운데서 좀비들과 만난다면 당황하지 마시고 온몸의 힘을 쭉 빼세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눈에 힘은 풀며 입은 반쯤 여시고요. 침을 흘리면 더더욱 좋습니다. 그리고 좀비와 발맞춰 함께 걷는 겁니다. 자신을 버리고, 좀비들 틈에 들어가 그들과 하나가 되는 게 중요합니다. 하지만 조심하세요. 그렇게 너무 오래 함께 걸으면 아무 생각 없이 좀비가 되는 게 훨씬 편하다고 생각해 버릴지도 모르니까요.” <불한당들>은 12일 개막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감상할 수 있다.

글 김은형 기자,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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