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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애씨
[매거진 Esc] 한국소믈리에대회에서 5위 차지한
유일한 여성 결선 진출자 박은애씨의 꿈
유일한 여성 결선 진출자 박은애씨의 꿈
소믈리에라는 직업이 있다는 걸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안다. 와인 문화가 빠르게 확산된 탓이다. 레스토랑이나 와인바에서 소믈리에가 와인을 설명하는 것도 이제는 익숙한 풍경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의심도 든다. (몇몇 와인 생산자가 있긴 하지만) 와인 한 병 생산되지 않는 이 땅에서, 와인보다는 소주나 맥주가 더 익숙하고 편안한 이곳에서, 소믈리에는 과연 어떤 존재일까.
“니가 얼마나 알아?” 시비 거는 손님들
프랑스 농수산부 국립 포도주사무국(VINIFLHOR)가 주최하고 프랑스농식품진흥공사(SOPEXA)가 주관한 제6회 한국소믈리에대회에서 5위를 차지한 박은애씨(27)는 이번 대회의 유일한 여성 결선 진출자였다. 물론 유일한 여성 수상자이기도 하다. 대회에 참여한 여성의 비율이 낮았던 것은 아니다.
“여자들의 경우엔 취미 정도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남자들은 ‘직업인으로서의 소믈리에’를 생각하니까 다를 수밖에 없죠. 솔직히 아직까지는 소믈리에라는 이름을 들을 때마다 부담스러워요. 소믈리에는 요리와 서비스와 맛과 와인을 모두 잘 알아야 해요. 갈 길이 멀죠.”
갈 길이 멀다는 그의 말은, 자신의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와인을 즐기기보다는 와인 지식을 과시하는 사람들, 자신의 입에 맞는 와인을 찾아내기보다는 비싼 와인 마신 걸 자랑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레스토랑에서 그에게 “네가 알면 얼마나 알겠냐”는 듯 시비를 거는 사람도 꽤 많다고 한다.
“손님들과의 기싸움을 느낄 때가 있어요. 제가 앞에 서 있는데 ‘소믈리에를 불러달라’는 손님이 있어요. ‘너처럼 어린 게 소믈리에냐?’라는 듯한 표정으로 말이죠. 와인 이름을 일부러 틀리게 말하는 손님도 있어요. 원산지(Appellation 아펠라시옹)를 다르게 말하고는 제 얼굴을 빤히 봐요. 제대로 알고 있는지 아닌지 테스트하는 거죠.”
그는 와인을 접한 지 5년밖에 되지 않았다. 2003년 세종대의 와인스쿨의 마스터소믈리에 과정에서부터 시작했다. 몇 군데의 와인바와 레스토랑을 거쳤고 현재 방배동 서래마을의 프렌치레스토랑 ‘줄라이’에서 일하고 있다. 지금은 누구보다 좋은 소믈리에가 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몇 가지 원칙이 있다. 담배는 피지 않는다. 정기적으로 와인을 마신다. 절대 와인을 과음하지 않는다. 많은 음식을 먹어보면서 미각과 후각을 단련한다. 외국의 와인 잡지를 정기적으로 본다. 목표는 분명하다.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워낙 말하는 걸 좋아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서비스가 자신의 천직이라 생각했다. 그중에서도 ‘특별해 보이는’ 소믈리에야말로 그가 꿈꾸는 삶이었다. 한국소믈리에대회에 참가한 이유 역시 특별해지기 위해서였다. 당찬 이유다. “소믈리에로 빛을 보고 싶었고 스스로를 시험해보고 싶었어요. 상을 받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상을 받으니 기분이 좋기도 해요. 지금까지 해왔던 일에 탄력이 생길 것 같기도 하고요. 뭔가를 이뤄냈다는 성취감보다는 절 자극하고 더 노력하는 기회, 열심히 공부하는 기회가 되겠죠.” 피노 누아 품종의 인기가 찜찜한 이유 그는 와인 중에서도 피노 누아 품종을 좋아한다. 하지만 찜찜하기도 하다. 영화 <사이드웨이>와 만화 <신의 물방울>로 피노 누아가 때아닌 인기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와인을 마시는 데도 단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카베르네 소비뇽이나 메를로의 맛을 경험하면서 천천히 단계를 밟아가며 와인을 음미해야 하는데 피노 누아가 좋다고 하니까 한꺼번에 몰려가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모든 와인에는 제 각각의 장점이 있는데, 그걸 발견하지 못하게 되잖아요.” 갈 길이 멀다고 지름길로 갈 수는 없다. 그는 이번 대회에서 5위를 차지했다. ‘5’라는 숫자의 의미는 대단한 게 아니다. 그가 한국에서 다섯 번째로 훌륭한 소믈리에라는 뜻도 아니고, 그의 앞에 훌륭한 소믈리에가 네 명이나 있다는 뜻도 아니다. ‘1’이나 ‘2’나 ‘5’는 그저 똑같은 하나의 계단에 불과하다. 박은애씨 역시 그걸 잘 알고 있다. 지름길을 찾지 않고 똑바로 제 길을 가다보면, 계단과 계단을 오르다보면, 언젠가는 그가 원하는 특별한 소믈리에가 되어 있을는지도 모른다. 계단과 계단을 올라야 하는 것은 박은애씨의 이야기일뿐만 아니라 우리의 와인문화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박은애씨가 특별한 소믈리에가 되어 있을 때 아마도 한국의 와인문화 역시 성숙해져 있을 것이다. 그때쯤 그를 다시 만나 인터뷰해 보고 싶다. 글 김중혁 기자 pen@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그는 와인을 접한 지 5년밖에 되지 않았다. 2003년 세종대의 와인스쿨의 마스터소믈리에 과정에서부터 시작했다. 몇 군데의 와인바와 레스토랑을 거쳤고 현재 방배동 서래마을의 프렌치레스토랑 ‘줄라이’에서 일하고 있다. 지금은 누구보다 좋은 소믈리에가 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몇 가지 원칙이 있다. 담배는 피지 않는다. 정기적으로 와인을 마신다. 절대 와인을 과음하지 않는다. 많은 음식을 먹어보면서 미각과 후각을 단련한다. 외국의 와인 잡지를 정기적으로 본다. 목표는 분명하다.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워낙 말하는 걸 좋아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서비스가 자신의 천직이라 생각했다. 그중에서도 ‘특별해 보이는’ 소믈리에야말로 그가 꿈꾸는 삶이었다. 한국소믈리에대회에 참가한 이유 역시 특별해지기 위해서였다. 당찬 이유다. “소믈리에로 빛을 보고 싶었고 스스로를 시험해보고 싶었어요. 상을 받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상을 받으니 기분이 좋기도 해요. 지금까지 해왔던 일에 탄력이 생길 것 같기도 하고요. 뭔가를 이뤄냈다는 성취감보다는 절 자극하고 더 노력하는 기회, 열심히 공부하는 기회가 되겠죠.” 피노 누아 품종의 인기가 찜찜한 이유 그는 와인 중에서도 피노 누아 품종을 좋아한다. 하지만 찜찜하기도 하다. 영화 <사이드웨이>와 만화 <신의 물방울>로 피노 누아가 때아닌 인기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와인을 마시는 데도 단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카베르네 소비뇽이나 메를로의 맛을 경험하면서 천천히 단계를 밟아가며 와인을 음미해야 하는데 피노 누아가 좋다고 하니까 한꺼번에 몰려가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모든 와인에는 제 각각의 장점이 있는데, 그걸 발견하지 못하게 되잖아요.” 갈 길이 멀다고 지름길로 갈 수는 없다. 그는 이번 대회에서 5위를 차지했다. ‘5’라는 숫자의 의미는 대단한 게 아니다. 그가 한국에서 다섯 번째로 훌륭한 소믈리에라는 뜻도 아니고, 그의 앞에 훌륭한 소믈리에가 네 명이나 있다는 뜻도 아니다. ‘1’이나 ‘2’나 ‘5’는 그저 똑같은 하나의 계단에 불과하다. 박은애씨 역시 그걸 잘 알고 있다. 지름길을 찾지 않고 똑바로 제 길을 가다보면, 계단과 계단을 오르다보면, 언젠가는 그가 원하는 특별한 소믈리에가 되어 있을는지도 모른다. 계단과 계단을 올라야 하는 것은 박은애씨의 이야기일뿐만 아니라 우리의 와인문화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박은애씨가 특별한 소믈리에가 되어 있을 때 아마도 한국의 와인문화 역시 성숙해져 있을 것이다. 그때쯤 그를 다시 만나 인터뷰해 보고 싶다. 글 김중혁 기자 pen@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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