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자 서순주씨
[매거진 Esc] 도대체 누구야?
피카소에서 모네까지, 기획자 서순주씨에게 듣는 미술전 뒷이야기
피카소에서 모네까지, 기획자 서순주씨에게 듣는 미술전 뒷이야기
지난해 열렸던 피카소전의 작품 시가 총액 6000억원. 올겨울 개막하는 반 고흐전의 작품 총액 1조원.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대규모 전시들의 작품 가격만 보면 영화 <스파이더맨>과 <캐리비안의 해적>을 기죽게 하는 ‘블록버스터’급이다. 이에 비하면 약소한(?) 3000억원어치 작품을 모아놓은 모네전(서울시립미술관) 역시 6일 개막 이후 20일 동안 5만5천여 명의 관람객이 다녀가며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이처럼 어마어마한 ‘돈덩어리’는 누가 어떻게 움직이는 걸까. 모네전을 총감독한 서순주(46) 박사는 2004년 대박을 터뜨린 샤갈전에 이어, 마티스와 야수파전, 피카소전을 기획한 인물. 프랑스에서 현대미술을 전공한 뒤 전시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는 서 박사에게 대규모 전시의 흥미로운 전후 이야기들을 들었다.
작품 포장상자 하나에 5백만원까지
-기획에서 전시까지 보통 얼마나 걸리나?
=전시마다 다르지만 유명 작가의 전시는 3년 넘게 걸리기도 한다. 인기 작품은 오래전부터 임대 예약이 돼 있기 때문이다. 또 네덜란드 국립 미술관 두 곳에서 전시작을 모두 가져오는 반 고흐전처럼 한두 미술관의 소장품을 그대로 옮겨오는 전시는 비교적 빨리 진행되는 반면 미술관부터 개인까지 20여 소장처에서 작품을 모은 모네전처럼 다양한 경로로 작품을 수배해야 하는 테마 전시는 준비기간도 길다.
-작품 섭외는 어떻게 하나?
=작가 또는 특정 유파 등 테마가 잡히면 작품 목록을 만들고 소장처를 찾는다. 미술관 소장 작품일 경우 공식적으로 대여 요청을 하기도 하지만 상당수는 현지에서 직접 관계자들을 만나 설득해야 한다. 또 전시 임대료가 따로 없던 예전에는 기획자의 협상력이 중요했는데 대형 전시를 많이 기획하는 일본이 작가들에게 사례를 하면서 최근에는 임대료를 지급해야 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작품 섭외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내가 원하는 작품을 전세계의 여러 기획자들이 다 원한다는 게 문제다(웃음). 모네전만 해도 지금 런던, 뉴욕 등 세계 8개 도시에서 동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작품은 한정돼 있고 원하는 곳은 많으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전시가 성공적이라고 해도 기획자로서는 늘 아쉽다.
-예상 밖의 행운으로 건지는 작품들은 없나?
=이번 모네전의 경우 모네 생전에 그의 작품을 후원하고 거래했던 화상인 뒤랑 루엘의 후손들을 찾아갔다가 그들이 소장하고 있던 정물화 <꿩>과 <과일 타르트>를 처음으로 공개할 수 있었다. 오래전부터 물밑 작업을 한 초상화 <햇살 속의 수잔>도 우여곡절 끝에 섭외가 됐는데 막판에 러시아에서 반출이 지연되는 등 끝까지 애를 먹이다가 개막 이틀 뒤에 극적으로 한국에 도착했다.
-전시 비용은 어느 정도나 드나?
=점점 올라서 최근에는 20억원 가까이 든다. 미술관 작품을 통째로 가져오는 특정 미술관은 작품 임대료가 많이 들고 테마전은 보험료가 가장 비싸다. 보험료는 시가의 0.1% 플러스 알파다. 반 고흐전의 경우 보험료만 10억원이 넘게 드는 거다. 거기에 대여료, 운송료 등이 든다. 미술품은 운송료가 특히 많이 든다. 작품 포장하는 나무 상자만 하더라도 온·습도 조절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개당 500만원짜리도 있다.
-전에도 샤갈전과 피카소전 등을 성공시켰는데 비법이 있나?
=무조건 유명 작가라고 흥행에 성공하는 건 아니다. 유명 작가와 유명한데 사람들이 좋아하는 작가는 구분된다. 대중적으로 성공하는 전시를 위해서는 후자를 잘 선택해야 한다.
-3년 동안 대규모 전시를 기획했는데 전시 문화에서 달라진 점을 느끼나?
=아직 전시 문화가 크게 성숙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조금씩 달라지는 관람객의 태도를 느낀다. 한 예로 전에는 오디오 가이드 대여가 별로 없었는데 이제는 줄을 서서 챙긴다. 그만큼 전시에서 뭔가를 얻어 가려는 적극적인 관람을 하는 거다. 반면 전시 기획에서는 테마를 구성하기보다 손쉽게 특정 미술관의 작품들을 그대로 옮겨놓는 전시들이 많은 건 아쉽다.
오디오 가이드, 이젠 줄을 서 챙기더라
-초보 관람객에게 미술품을 즐기는 팁을 준다면?
=부담 없이 편하게 보라. 전시관에서 두 시간을 본다고 30분 보는 것보다 더 많은 감동을 받는 건 아니다. 보고 나서 잊어버리는 것 같아도 어느 순간 머릿속에서 그 인상은 호출된다. 그렇게 쌓이는 게 심미안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다양한 전시를 많이 보면서 관람 훈련을 하는 게 중요하기도 하다.
-앞으로 기획하거나 구상하는 전시들은 어떤 게 있나?
=반 고흐전은 내년을 겨냥했는데 임대 미술관의 사정으로 당겨지게 됐다. 이후 모딜리아니와 세잔, 르누아르, 클림트전을 준비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렘브란트전을 꼭 해 보고 싶고, 쇠라, 시냐크 같은 작가들을 모아 신인상파전도 만들어 보고 싶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