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예 다이얼로그’에 전시된 궁중채화서울랩의 매화 연리지 작품. 서울공예박물관 제공
공예에 대한 설명과 예찬은 다양하다. 사전적 의미의 공예는 실용적인 물건에 본래의 기능을 살리면서 조형미를 조화시키는 솜씨다. 공예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 19세기 후반 영국에서 산업화 속에서 공예의 가치를 찾으려 한 미술공예 운동을 이끈 윌리엄 모리스는 “기계란 본질적으로 아름다움을 파괴하고 문명을 타락시키는 것”으로 규정하고 사람, 즉 장인의 예술성을 강조했다. 일제 식민지 시기 조선 공예와 예술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민예’라는 미학론을 처음으로 펼친 미술평론가 야나기 무네요시도 무명의 조선 장인들이 만든 일상품의 아름다움에 눈을 떴다고 한다.
미술평론가 최범은 저서 ‘공예를 생각한다’에서 “공예는 공예품이 아니다. 공예는 기술이며 지식이며 삶의 방식이다. 한마디로 공예는 문화”라고 적었다. 문화로서 공예는 숙련된 기술과 솜씨이며 인간과 세계가 직접 만나는 한 방식이라는 의미다.
미천하고 부족한 식견이지만 그간 공예의 아름다움을 좇아온 나의 정의는 이렇다. 공예는 손의 언어다. 만드는 이의 의도와 철학, 사유와 성찰을 자신만의 공예 언어로 쓴 글을 표현하는 것으로 여겨져서다
. 우리가 말과 글을 오랜 시간 동안 천천히 배우듯 공예가도 부단히 기술을 연마하고 묵묵히 반복하며 자신의 언어를 익히고 진화한다. 그들의 작품은 자연의 정취를 담은 유려한 시가 되기도 하고, 고해성사같이 묵직하고 솔직한 수필로 읽히기도 하며 때론 멈추지 않는 수행자의 경전처럼 웅혼한 대하소설을 마주하는 것 같다. 섬세하고 깊은 언어로 쓰인 공예적 은유를 읽고 음미하는 것이 공예를 알아가는 즐거움이자 더 가까워지는 방법이다. 하여 공예 전시를 찾는 일은 좋아하는 소설가의 신작을 만나러 서점에 가는 것과 다를 바 없이 반갑고 설렌다.
서울 종로구 서울공예박물관에서 특별기획 전시로 마련한 ‘공예 다이얼로그’(9월8일~11월12일)에는 제목처럼 공예적 대화가 가득하다. 분청·금박·채화라는 세 가지 전통 공예를 축으로 세우고, 전통 공예기법을 계승한 작가와 다양한 매체로 현대적인 재해석을 보여준 작가가 대칭을 이루며 소통한다. 먼저 도예가 이강효의 ‘분청산수’와 화가 김혜련의 ‘예술과 암호-분청’이 백토로 자기 표면을 마무리하는 분청에 대한 대화를 이끈다. 14세기 말부터 16세기 중엽까지 200여년간 유행하고 자취를 감춘 분청은 오히려 오늘날 현대 작가들이 탐구하고 영감의 원천으로 삼고 있다. 분청의 편안하고 자유분방함 때문이다. 이강효는 바위같이 듬직한 도자기에 마음에 떠오르는 산·바람·물을 흐르듯 자연스럽게 그려냈고, 김혜련은 귀얄 기법(굵은 붓으로 백토 바르기), 덤벙 기법(자기를 백토물에 담그기)
등
분청에 표현된 옛 그림을 대형 캔버스에 먹으로 담아 현대적으로 표현했다. 이들은 장르와 시대의 구분에 구애받지 않고 분청에 깃든 회화적 특성을 각자의 방식으로 선보였다.
분청으로 산수를 그린 이강효의 도자기와 전통 분청을 회화로 표현한 김혜련의 작품이 어우러진 모습. 서울공예박물관 제공
예로부터 지위와 권력을 상징하고 염원을 담아 문양을 새긴 금박은 국가무형문화유산 제119호 금박장 보유자 김기호와 섬유예술가 장연순이 함께 이야기를 풀어냈다. 잊힌 공예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빛나게 계승된 금박은 조선 철종 때부터 대대로 금박장 가업을 잇는 5대손 김기호의 ‘천상열차분야지도’로 펼쳐지고, 장연순의 ‘중심에 이르는 길III’을 통해 음양오행이 융화되는 철학적 사유를 표현했다.
낯선 분야이기도 한 채화는 국가무형문화재 궁중채화 보유자 황수로와, 현대적 확장을 모색하는 궁중채화서울랩이 함께했다. 채화는 비단과 모시, 종이 등으로 만들어 왕실의 진연(궁중 잔치)을 장식하는 귀한 꽃이었다. 조선 왕실이 사라지면서 100여년간 단절되고 옛 기록으로 남아 있던 채화를 연구하고 재현해 오늘날 꽃피우게 한 주인공이 바로 황수로 장인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붉은색과 흰색의 매화가 핀 두 나무가 뒤엉킨 연리지로써 하늘과 땅을 연결해주는 신수목을 표현해 궁중채화의 현대적 발화를 성스럽게 표현했다.
국가무형문화재 금박장 보유자 김기호가 금박으로 새긴 ‘천상열차분야지도’. 서울공예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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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8월31일에 개막한 2023 청주공예비엔날레(10월15일까지)에서는 동시대 공예가 시대와 조우하는 다채로운 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총 57개국에서 251개 참가자(개인 작가 또는 팀)가 3181점의 작품을 출품한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는 ‘사물의 지도-공예, 세상을 잇고, 만들고, 사랑하라’이다. 모든 존재에 대한 올바른 태도와 윤리적 실천을 통해 현대문명이 직면한 위기를 성찰하는 ‘새로운 공예론’을 고민하고 희망을 모색하겠다는 자리다. 인간을 위한 다양한 기물을 제작해온 공예 역시 반성이 필요하다는 자각을 선행해 진정성을 높였다.
본전시는 총 다섯 개의 소주제로 구성돼 사물에 대한 서사가 이어지고 맥락의 중심에는 생명·자연·인간·생태가 자리 잡았다.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이 넘나들며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작품마다 완성도와 미감이 뛰어나 전시 흐름이 쫀쫀하고 매력적이다. 특히 ‘생태적 올바름을 위한 공예가들의 실천’에서는 폐기물을 재료로 사용하거나 업사이클링하고, 수리하는 등 공예가의 윤리적 실천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영국 출신의 실리아 핌은 해진 옷과 일회용 종이가방까지 바느질 수선으로 되살리는 작품을 선보이며 공예의 순수함에 대한 담론을 제기했다. 오는 10월15일까지 청주 문화제조창에선 이번 비엔날레의 주빈국으로 초청된 스페인의 공예 전시와 청주국제공예공모전까지 함께 열린다.
공예 전시를 관람할 때는 직관적으로 와 닿는 느낌과 조형미를 음미하는 것도 좋지만 각 작품에 녹아든 공예가의 깊은 생각과 숙련된 기술, 재료의 선택 등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보기를 권한다. 공예품은 자연과 인간, 문화적 유전자까지 다채로운 요소가 결합되어야 완성할 수 있고, 그들의 수고로운 이야기가 담긴 한 권의 책과 같다. 손의 언어로 한 땀 한 땀 새긴 공예가의 진심이기도 하다.
박효성 리빙 칼럼니스트
잡지를 만들다가 공예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우리 공예가 가깝게 쓰이고 아름다운 일상으로 가꿔주길 바라고 욕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