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지짐 조리 모습. 달걀은 프라이팬이 조금 좁다 싶게 많이 넣어야 도톰한 반숙지짐이 된다. 박찬일 제공
서양인들, 특히 프랑스나 유럽 사람들은 코스 요리를 좋아한다. 옛날에야 한국처럼 한상에 차려놓고 먹었다. 2차대전 이후 코스 요리가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더운 요리는 덥게, 찬 요리는 차게. 물론 파스타 한그릇이나 고기 한접시 구워서 먹고 마는 경우가 더 흔하다. 코스를 차리고 먹는 행위에 절차와 격식이 있다는 걸 안다. 초대 받아서 갔는데 코스가 안 나오면, 홀대받는 거다. 옛날에 어느 이탈리아인 친구가 밥을 해주겠다고 했다. 전채(애피타이저)는 마트에서 산 튀긴 치즈 말이가 나왔다. 다음으로는 파스타다. 그게 격식이니까. 양파만 넣고 오일 부어 만들었다. 돈도 솜씨도 없지만, 밥 해주는 성의가 가상해서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그러더니 “세콘도를 먹어야지? 준비했다”고 했다.
영어의 세컨드(second)와 비슷한 이탈리아어 ‘세콘도’는 두번째 요리란 뜻이다. 이탈리아에선 ‘메인요리’라고 할 수 있다. 보통은 고기다. 생선이든 고기든 구이든 진한 스튜든 단백질 음식이다. 그가 가스불에 팬을 얹고 달걀 4개를 깨서 넣었다. 뭘 하나 봤더니, 그게 전부였다. 달걀프라이 2개씩을 접시에 담았다. 멋쩍게 웃었다. 거기에 소금간을 하고, 가루치즈를 성의껏 뿌렸다. 사람은 언어가 잘 안 통해도 표정으로 알 수 있는 대목이 있다. 그는 최선을 다해 세콘도를 내고 있는 것이었다. 주머니 사정에 맞는 메인요리가 달걀이었을 뿐이다. ‘아니, 달걀이 메인요리가 될 수 있는가’라고 반문하는 건 우리의 시선이다. 가난의 문제가 아니라 이탈리아인의 감각과 정서이므로 문제가 없다. 달걀은 단백질이고, 팬에 스테이크처럼 지져서 냈으며, 포크와 나이프도 나왔으니까. 빈자의 메인요리로서 손색이 없다. 아니, 손색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메인이 아닌 것도 아니다. 돈이 있어도 일부러 무거운 요리 대신 그렇게 달걀프라이를 먹는 사람도 있다. 관습과 ‘몸이 요구하는’ 메인은 먹어야 하고, 배부르게 먹기는 싫거나 번잡스러워서 달걀 한두개를 고를 수 있다.
안주에서 달걀처럼 광범위한 멀티 플레이어는 드물다. 김치 다음이다. 삶아도 좋고, 지져도 된다. 달걀찜은 잘 만들면 그날 나온 돼지고기구이보다 낫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물만 흥건히 붓고 이상하게 비린내 나게 만드는 계란탕이라는 음식은 별로라고 생각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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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프라이도 안주가 될 때는 변주가 이뤄진다. 팬과 기름을 잘 활용해 ‘달걀 요리’를 만드는 방법이 몇가지가 있다.
첫째, 불과 기름을 활용한 마이야르(조리 과정 중 색이 갈색으로 변하면서 특별한 풍미가 나타나는 화학 반응) 요리. 중국집 간짜장에 올려주는 바삭바삭하고 쫄깃한 달걀프라이가 흔히 맛볼 수 있는 음식이다. 소금과 후추만 치는 것으로도 충분한 안주가 된다. 그러나 보통 내 부엌에서는 힘들다. 중국집은 언제든 기름을 잔뜩 달궈 프라이를 하고, 다시 그 기름을 다른 요리에 쓸 수 있지만 집에서는 곤란하다. 방법은 있다. 팬에 기름을 알뜰하게 넣고도 마이야르를 얻을 수 있다. 팬에 기름을 넣고 기울인다. ‘딥 프라이’ 효과를 얻는 거다. 달걀을 2개쯤 깨어 넣고 팬을 여전히 기울인다. 요새 많이 쓰는 인덕션도 요령을 부리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인덕션에 팬을 접촉시키되, 연기가 날 정도로 달궈지면 팬을 들어 기울인다. 그때부터 인덕션의 열이 전달되지 않지만 잔열로 계란 2개 정도는 얼마든지 튀기듯 지질 수 있다.
둘째, 프리타타(이탈리아 오믈렛)식 조리법이다. 계란물을 팬에 붓고 찢어질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 뒤집어야 하는 수고로움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 우선 팬에 기름을 적당히 두른다. 기름은 많이 넣으면 오히려 좋지 않다. 지름 24㎝ 작은 팬이라면 달걀 4개, 그것보다 하나 더 사이즈가 큰 팬은 6개가 좋다. 기름은 3숟갈. 골고루 발릴 정도면 충분하다. 불은 중약불. 달걀을 깨서 하나씩 팬에 넣는다. 알아서 계란들이 자리를 잡는다. 팬의 크기보다 계란이 많아서, 서로 어깨를 부딪치며 몸을 움츠린다. 이 과정이 중요하다. 계란이 넓게 퍼지지 않으니까 부쳤을 때 두툼해진다. 오믈렛은 두툼한 법 아닌가. 지글지글, 좁은 팬 안에서 많은 계란이 바닥을 지진다. 노른자는 여전히 익지 않아서 또렷하다. 팬을 슬슬 흔들어서 붙지 않게 해준다. 뒤집개로 딱 절반만 뒤집는다. 그럼 반달모양이 된다. 훨씬 두툼해질 수밖에 없다. 아주 흥미로운 오믈렛이 된다. 노른자는 앞뒤로 누르는 흰자 덕에 완전히 익지 않아서 반숙이 된다. 반숙은 완숙보다 더 붉어서 색깔도 예쁘고, 맛도 좋다. 기술이 늘면 반숙, 준 반숙, 완숙에 가까운 미디엄 웰던 반숙도 된다. 반달 모양의 이 달걀프라이식 오믈렛을 그대로 접시에 담아내도 좋고, 잘라서 먹기 좋게 낼 수도 있다. 원한다면 트러플오일이나 트러플페이스트를 발라라. 별로 안 비싸다. 좀 더 기술을 발휘하고 싶으면, 반달모양으로 뒤집기 전에 체더치즈나 돈을 좀 써서 고다치즈를 넣으면 끝내준다. 반달로 뒤집고, 또 한 번 뒤집어서 입체적인 오믈렛을 만들 수도 있다. 3층짜리 오믈렛이다. 그 사이사이에 치즈를 넣는다면 당신은 요리사 수준의 기술을 가졌다.
라거 맥주나 페일에일 맥주가 다 어울린다. 심지어 바이주, 하이볼도 좋다. 와인은 안 될 리 없다. 농담이 아니라 세콘도, 즉 메인이란 말이다. 물론 나 같으면 로제와인을 마시겠지만 화이트나 레드와인도 당연히 된다.
준비물(2인분)
계란 6개
프라이팬 중자(보통 지름 27~28㎝짜리를 가리킨다. 32㎝는 대자다)
소금, 후추
트러플오일 조금(원하면)
고다 치즈 2장
식용유 3큰술
1.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중간불로 가열한다. 팬이 얇으면 2~3분에 원하는 온도에 도달한다. 팬을 돌려서 기름이 골고루 달궈지도록 한다. 달걀을 재빨리 깨서 넣는다. 미리 달걀 6개를 접시에 깨서 펼쳐두고, 스르륵 부어도 된다. 소금을 친다.
2. 계란이 자리를 잡는다. 슬슬 팬을 돌려서 계란 바닥이 붙지 않도록 한다. 즉시 치즈를 올리고 뒤집개로 절반만 뒤집어 2층으로 만든다.
3. 한두번 뒤집어서 골고루 익힌다. 노른자가 완전히 익지 않도록 하는 게 포인트다.
4. 가루치즈나 트러플오일을 조금 뿌려도 좋다. 후추도.
요리사
익명과 혼술의 조합을 실천하며 음주 생활을 한다. 전국 왕대폿집 할매들 얘기를 듣는 중. 사라지는 것들에 매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