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서 시작한 일에서 의미를 찾아내어 품질 좋은 물건으로 완성한다. ‘니프티 레이어’는 그렇게 만들어진 한국의 가방 브랜드다. 두꺼운 천 가방인 캔버스백을 만들기 위해 방수가 되는 원단을 먼저 개발했다. 선문답과 하나 마나 한 말들 사이에 있는 일련의 ‘브랜딩’과는 확연히 다른 시도였다. 왜 그랬는지, 해보니 어떤지, 앞으로 어쩔 것인지, 궁금한 게 많아 니프티 레이어 전명지(40) 대표를 만났다.
ㅡ니프티 레이어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 같아요.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하셨어요?
“2019년부터 준비해 올해 4월부터 서비스를 시작했어요. 경력은 20년 정도 됐습니다. 처음에는 동대문시장의 의류 도매 쪽에서 일을 했고, 의류 생산 납품 회사 실장으로도 일했습니다. 가족이 다 의류 일을 하고 있어요.”
ㅡ니프티 레이어는 가방을 바로 만들기보다 먼저 원단을 개발했는데요. 소형업체가 원단부터 개발하려면 투자가 필요했을 텐데요.
“맞아요. 이렇게까지 힘들 줄 알았다면 안 했을 거예요. (그동안 일을 해오며) 원단 발주를 워낙 많이 하다 보니 원단 개발이 큰일이라는 생각이 별로 없었어요. 캔버스백에 방수나 발수 기능을 넣으면서 겉으로 티가 안 나게 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방수 처리를 하면 번들거리거나 캔버스 특유의 촉감이 사라졌어요. ‘이것만 고치면 돼’라고 생각했는데 하나를 고치면 또 문제가 생기고, 그렇게 약 3년이 걸렸습니다. 그러다 굉장히 좋은 발수 전문가를 만나게 됐고요. 저희는 한국 분과 일하려고 합니다.”
ㅡ왜요?
“제가 일을 해오며 한국 봉제 산업에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어요. 요즘은 단가 때문에 외국으로 (생산기지를) 많이 이전합니다. 한국에서 장인정신을 갖고 하시는 봉제공들이 아직 계세요. 그런데 그런 분들이 소외되고 도태됩니다. 그분들은 (스스로를 알리는 게 아니라) 만드는 일밖에 할 수 없거든요. 그런 어르신들께 일을 줄 수 있는 업체가 늘어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사업을 하니 마진 등이 당연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어떤 브랜드는 한국 봉제 산업을 지켜 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ㅡ그런 용기 있는 선택을 하기 위한 다른 수입원이 있습니까?
“저는 이 사업 외에도 발주처 요청에 맞춰 생산관리 실무를 대행하는 별도 사업체 일을 계속하고 있어요. 그 사업체가 없었다면 이 선택을 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ㅡ한국의 의류 제조업계 근로자나 사장님들에 대한 애정이 있으신가 봐요.
“저희 엄마가 그 사장님들 중 한 분이에요. 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미싱 소리를 듣고 자랐어요. 그분들이 하는 일이 굉장히 존경스러워요. 그러나 그분들은 충분히 존중받지 못하고 계세요. 프랑스는 봉제나 자수하시는 분들이 장인이에요. 반면 한국에서는 의류 납품하는 사장님들이 소진되는 것 같아요. 잘하시는 분들인데도 인정을 덜 받으니까 일감도 드문드문 들어오고. 단가 깎으려고 다른 회사와 계속 비교당하고. 그런 상황이 안타깝죠.”
ㅡ그래서 숙련 근로자들의 고급 기술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가방 중 그러데이션 염색을 한 게 있어요. 그 작업을 맡으신 사모님이 수동으로 가방을 기계에 걸어서 올렸다 내렸다를 수백번 해요. 그러면서 최적의 색을 계속 보는 거예요. ‘이 정도 컬러가 됐으니 멈춰야겠다’거나 ‘두 번 더 담가야겠다’ 등으로 판단하면서요. 그 사모님이 작업하시는 걸 옆에서 보면 굉장히 존경스러워요. 이런 고급 기술을 아무도 못 배우는 게 아쉬워요. 이분들이 부나 명예를 얻어서 사람들이 이 직업에 더욱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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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프티 레이어의 숄더백. 니프티 레이어 누리집 갈무리
ㅡ원래 좀 고집이 있으신가요?
“그런 편이에요. 저희 브랜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 가지가 있어요. 기능적이어야 하고, 아름다워야 하고, 오래 쓸 수 있어야 해요. 그러려면 튼튼해야 하니까 봉제 방식이 조금 더 어렵더라도 정석으로
가야 하고요. 기능적이어야 하니까 모든 아이템에 속주머니나 오염 방지 등의 기능이 있어요.”
ㅡ물건이 좋아도 사람들에게 알려져야 팔리잖아요.
“제가 고무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부분은 반품률이에요. 실물을 받아보신 분들은 반품하지 않아요. 판매는 서서히 늘고 있고요. 이 브랜드가 이렇게 지속되면 우리는 오래 갈 거라는 비전이 있어요.”
ㅡ월 매출은 어떻게 되나요?
“400만~500만원 정도 팔려요. 이 매출이 나오면 보통 브랜드들은 운영을 못 해요. 처음에는 50만원도 안 나왔는데 지금은 너무 좋아요(웃음).”
ㅡ신생 브랜드로서 원단을 만들고 특허까지 받는 건 개인사업자 입장에서 남다른 일인 거 같습니다.
충분히 홍보해도 될 텐데, 그러지 않는 이유가 있나요?
“그게 지금 고전하는 부분이에요. 저는 비투비(B2B)를 하던 사람이라 비투시(B2C) 사업의 화법을 익히지 못한 상태예요. 어떻게 하면 소비자분들에게 자연스럽게 얘기할 수 있을까 고민스러워요. 특허나 기술 개발을 알리는 게 조심스럽기도 해요. 저희는 조금 더 (세련된) ‘패션 브랜드’로 인식되고 싶어서요. (어떤 사실을) 어떤 정도의 농도로 얘기하는 게 적절한지 고심합니다.”
ㅡ요즘 많은 브랜드가 나옵니다. 로고만 만들어 기성품에 얹은 뒤 ‘브랜드’라고 내세우는 경우도 많아요. 니프티 레이어는 반대로 하고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고전을 하죠. 티가 안 나니까. 저는 그게 좋아요. 저희 브랜드의 내부 목표가 저희 가방이 빈티지 제품으로 팔릴 날까지 하는 거예요. 브랜드의 로고를 만들고 그 로고를 잘 배치해서 제품의 디자인 요소로 활용하는 로고 플레이 제품은 너무 예쁘지만 빈티지로 팔렸을 때 촌스러워 보일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너무 트렌디한 건 맞지 않는 것 같아요. 버티는 시간도 필요해요. 저는 저희 브랜드가 유일하게 가지지 못한 게 ‘역사’라고 생각하거든요. 아직 얼마 안 됐으니까. 저희 브랜드가 역사를 가지게 되면 달라질 거예요.”
글·사진 박찬용 ‘아레나 옴므 플러스’ 피처 디렉터
잡지 에디터. ‘라이프스타일’로 묶이는 업계 전반을 구경하며 정보를 만들고 편집한다. ‘요즘 브랜드’, ‘첫 집 연대기’ 등의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