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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인 것보다 ‘나다운 디자인’ 선보이는 황금세대 [ESC]

등록 2023-09-16 10:00수정 2023-09-16 10:11

리빙 ‘디자인 한류’ 이끄는 MZ

젊은 디자이너 ‘세계적 주목’
글로벌 브랜드 협업도 늘어
“문화적 풍요 속 성장한 결과”
디자이너 노용원의 ‘바비: 새로운 클래식’. 쓰레기장에서 수집한 장난감과 금속을 재료로 의자·사방탁자 등을 모티프로 만든 작품이다. 노용원 제공
디자이너 노용원의 ‘바비: 새로운 클래식’. 쓰레기장에서 수집한 장난감과 금속을 재료로 의자·사방탁자 등을 모티프로 만든 작품이다. 노용원 제공

지난 5일 서울 성동구 금호동의 한적한 주택가. 저녁이 되자 멋지게 차려입은 ‘힙스터’들과 예술계 인사들이 이 골목으로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다. 전시를 보기 위해서다. 이들의 목적지는 폐허처럼 보이는 잿빛 건물이다. 혁신적인 디자인을 선보여 온 글로벌 브랜드, 나이키랩(NikeLab)은 이곳에서 ‘리버전(Reversion):회귀’를 주제로 지속가능성의 가치를 담은 전시를 열었다. 이 전시를 주도한 것은 엠제트(MZ)세대 한국 작가와 디자이너 10명이다.

재활용소재와 세라믹, 패브릭 등으로 플라스틱 의자, 신발, 각종 조형물 등 저마다 개성 있고 독특한 작품을 선보인 이 전시는 주최 브랜드는 물론 관람객들로부터 호평을 받으며 막을 내렸다. 이 전시를 총괄한 나이키의 지속가능성 팀 ‘아이에스피에이(ISPA) 링크 액시스’는 “지속가능한 소재와 제조 방식을 택한 우리의 제품을 선보이기 위한 최적의 공간에서, 한국을 무대로 활동하는 예술가들과의 협업은 자연스러웠다”고 밝혔다.

‘2023 프리즈 서울’ 주간을 맞아 나이키랩 서울이 서울 금호동에서 전시한 ’리버전(Reversion):회귀’ 전. 나이키코리아 제공
‘2023 프리즈 서울’ 주간을 맞아 나이키랩 서울이 서울 금호동에서 전시한 ’리버전(Reversion):회귀’ 전. 나이키코리아 제공

“새로운 소재·아이디어 돋보여”

벨기에에 거점을 두고 현대 디자인과 작품을 선보이는 명성 높은 갤러리, ‘콜렉터블’의 창립자인 리브 바이스버그는 “세계 디자인계엔 한류 열풍이 불고 있다”며 “20~30대 디자이너를 중심으로 새로운 소재와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디자인이 갤러리스트들의 눈을 사로잡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최근 한국의 엠제트 세대 디자이너들이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 2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전세계 디자인의 큐레이터’라고 불리는 명사 로사나 올란디가 주최하는 지속가능성 디자인 시상식 ‘로 플라스틱 프라이즈’의 최종 후보에 노용원(31)씨가 이름을 올렸다. 노씨를 최종 후보에 올린 ‘로사나 올란디 갤러리’는 “그를 세계에 소개하게 돼 매우 영광”이라고 했고, “그가 버려진 장난감과 반짝이는 소재, 버려진 금속 물질로 만든 컬렉션은 폐기물이 디자인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증거나 마찬가지”라며 그의 작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인테리어, 가구 디자인과 도예 등 디자인과 공예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을 진행하는 디자이너 설수빈(30)씨 역시 지난 6월 글로벌 가구 브랜드 이케아·한국디자인진흥원·주한스웨덴대사관에서 주최한 ‘코리아+스웨덴 영 디자인 어워드’에서 최우수상(‘기억의 조각’)을 공동 수상했다.

디자이너 김하늘과 패션 브랜드 ‘무신사 스탠다드’가 협업으로 제작한 ‘히든 커브스 시리즈’. 폐상자로 만든 가구다. 김하늘 제공
디자이너 김하늘과 패션 브랜드 ‘무신사 스탠다드’가 협업으로 제작한 ‘히든 커브스 시리즈’. 폐상자로 만든 가구다. 김하늘 제공

디자이너 김하늘(25)씨는 코로나19 기간 동안 버려진 폐마스크를 녹인 친환경 신소재를 개발해 가구를 만들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2021년 5월 뉴욕타임스, 같은해 8월 비비시(BBC)에 소개됐고 나이키, 롤스로이스 등 글로벌 브랜드와의 협업도 이어졌다. 폐타이어를 재활용해 만든 의자로 주목 받는 디자이너 강영민(31)씨도 빼놓을 수 없다.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알렉산더 왕에게 협업 제의를 받기도 했고, 리복과도 함께 디자인 작업을 했다.

국내보다 국외에서 더 유명한 디자이너도 있다. 네덜란드를 거점으로 한 글로벌 디자이너·아티스트 그룹 ‘네네 콜렉티브’의 수장은 한국인이다. 디자이너이자 큐레이터로 활동하는 김소윤(35)씨가 이끄는 네네 콜렉티브는 ‘스토리텔링’ 작업을 기반으로 그로테스크하고도 독창적인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네네 콜렉티브’는 지난 3월 그래픽과 시나리오 작업을 기반으로 가정에 있는 평범한 가구들을 재해석한 전시를 선보였다. 네네 콜렉티브 제공
‘네네 콜렉티브’는 지난 3월 그래픽과 시나리오 작업을 기반으로 가정에 있는 평범한 가구들을 재해석한 전시를 선보였다. 네네 콜렉티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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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재주 좋고 즐거움 지향

한국의 엠제트 세대 디자이너들은 자신들이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이유를 어떻게 분석하고 있을까. 우선, 이른바 ‘케이(K) 컬처’ 바람과 무관치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디자인 명문 사관학교로 불리는 네덜란드 에인트호번 디자인 아카데미 출신인 박찬별(29)씨는 “전시장에 서 있으면 다가와서 한국 사람이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며 “단순히 국적에 대한 호감과 호기심으로 시작된 대화가 결국 작업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것이 한국 드라마를 통해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한 이해가 늘었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디자이너 박찬별의 찰흙으로 일상 물건을 빚은 작업인 ‘사물동사(object verb)’. 물건을 사용한다는 행위의 근본적 의미를 탐구했다. 박찬별 제공
디자이너 박찬별의 찰흙으로 일상 물건을 빚은 작업인 ‘사물동사(object verb)’. 물건을 사용한다는 행위의 근본적 의미를 탐구했다. 박찬별 제공

한국적인 특수성을 꼽기도 한다. 노용원씨는 “한국에서 교육을 받은 디자이너들은 기본적으로 손재주가 좋다. 구상한 작업물을 직접 만들기도 하지만, 을지로처럼 다양한 소재를 다루는 장인들이 모여있는 지역에서 도움을 받는 데도 좋은 환경”이라고 했다. 먼저 길을 닦은 선배 디자이너들의 공도 언급됐다. 김하늘씨는 “처음 디자인을 시작할 때만 해도 새로운 소재와 아이디어로 가구를 만드는 것이 생소했지만, 앞서 디자인을 해 온 국내 디자이너들이 많은 도전 끝에 아트 퍼니처의 길을 열었고, 우리가 그 길을 걷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디지털 네이티브인 이들은 홍보에도 적극적이다. 쇼트폼 콘텐츠를 만들어 작업을 알리고 전통적인 방식으로 포트폴리오를 들고 발품을 팔기도 한다. 설수빈씨는 “작품을 선보이는 기회는 오롯이 직접 다가가고 적극적으로 잡아야 생긴다”고 말했다.

한옥 창살에서 패턴을 착안해 적용한 디자이너 설수빈의 ‘그리드 체어’. 설수빈 제공
한옥 창살에서 패턴을 착안해 적용한 디자이너 설수빈의 ‘그리드 체어’. 설수빈 제공

엠제트 세대보다 한발 먼저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았던 디자이너 김진식(40)씨는 ‘후배들의 약진’을 이렇게 설명한다. “다소 학구적이었던 기존 세대에 견줘 ‘즐거움’을 지향하는 요소가 커진 디자인 산업 트렌드를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세대라고 생각해요. 윗세대만 하더라도 ‘외국의 디자인이 더 좋다’는 일종의 사대주의가 있었죠. 이미 첫 발을 떼면서부터 문화적 풍요와 함께한 이들에겐 한국적인 것보다 ‘나다운 것’이 더 중요해요.”

황형신(42) 계원예대 리빙디자인 교수는 이렇게 평가했다. “이 세대는 스타 디자이너가 되기보다는 자신의 언어를 잘 쓰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합니다. 이전 세대가 상대적으로 소극적으로 작업을 전개했다면 이 세대들은 그들이 협업하고 싶은 브랜드에 직접 제안을 하며 자립하려 해요. 이렇게 각자도생하고자 하는 성향은 기존의 동문, 동향 등을 기반으로 그룹을 형성해 작업을 전개하려는 것보다 훨씬 좋은 방식입니다. 앞으로 국내 디자이너들의 활약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기회는 직접 찾아보려, 내재된 능력을 발현하고 노력하는 이들에게 비로소 주어진다. 지금 한국의 젊은 디자이너들은 그런 방식으로 현재를 산다. 시대 정신에 부응하고 나의 언어를 벼리며. 서울이라는 도시의 문화 예술적 화양연화는 더 오래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박민정 포스트오피스 시니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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