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목공을 막 시작한 견습생 시절, 스승의 공방 ‘레진우드’에서 목재를 다듬는 모습. 송호균 제공
거창하게 말하면, 운명 같은 걸까. 우리 부부가 서울을 떠나 살게 되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 “시골에나 내려갈까”라는 말은 야근과 회식에 지친 부부가 이따금 서로를 위로하는 레토릭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아이 둘을 낳았고, 각자의 직장을 떠나 제주에 내려와 정착한 게 벌써 8년째다. 한겨레신문사가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했고 기자가 천직인 줄로만 알았다. 평생 취재하고, 읽고, 쓰는 게 직업이었던 사람이 목수가 됐고, 작년에는 (심지어) 목공방을 열었다.
제주에 정착한 뒤 2020년 한겨레 이에스시(ESC) 지면의 객원기자로 잠시 일하던 시절이었다. “목공 기획 한번 해볼까?” 당시 팀장이었던 박미향 기자의 한 마디에 인생이 바뀌었다. 처음엔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았다. 마침 주택살이를 시작해 대문 앞에 놓을 택배함이 하나 필요하던 참이었다. 서귀포의 목공방 ‘레진우드’의 문을 두드린 것도 그저 우연이었다. ‘원데이 클래스’에 등록했다. 말 그대로 하루 만에 뚝딱뚝딱. 거대한 4*8판재(가로 1220㎜, 세로 2440㎜의 나무판. 판 형태를 이룬 목재의 기본 단위)를 거침없이 재단해 상자 형태의 택배함을 만들어 내는 스승 정영선(43) 대표의 솜씨는 경이로웠다. 행복한 취재였고 그만큼 마감도 즐거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레진우드’의 문하생이자 하나뿐인 직원으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내가 먼저 스승을 졸랐다. 당시엔 목공을 직업으로 삼겠다는 생각은 당연히 없었다. 스승의 공방에는 일손이 필요했고, 몇년간의 육아와 살림에 지친 나는 뭔가 몰입할 일이 필요했다. 나름 풀타임으로, 열심히 일하긴 했지만 본업인 육아 일정에 따라 출퇴근 시간은 비교적 자유롭게 하기로 했다.
레진우드는 가구와 소품을 제작하는 ‘소목’ 공방이다. 보통 ‘목수’라고 뭉뚱그려 이야기하는데, 같은 목수라도 장르가 있다. 우선 목조주택을 짓는 ‘대목’이 있고, 가구나 가정용 소품을 만드는 ‘소목’이 있다. 그리고 건물 내부의 공간을 구성하고 마감하는 인테리어 목수도 있다.
각각의 목수들은 각자의 긍지가 있다. “우리가 진짜 목수”라고 하는 은근한 경쟁심리도 있다. 대목은 전통적으로는 ‘도편수’라 했고, 요즘은 일반적으로는 ‘대목장’이라 부른다. ‘빌더’라고도 한다. 꼭 전통한옥만이 아니라 서양에서 유래한 ‘경량목구조’ 주택이나 통나무집도 이 빌더들의 작업 무대다. 이들은 그야말로 맨땅 위에 뚝딱뚝딱 집 한 채를 지어내는 진정한 능력자들이다. 요즘 각광받는 인테리어 목수 또한 사람의 손이 닿는 공간의 성격과 품격을 직접 디자인하고 빚어낸다는 자부심이 있다. 사업적으로 봐도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집단이기도 하다. 주택뿐 아니라 상가나 식당 등 수요가 많아서다.
주로 소규모 공방에서 일하는 ‘소목’은 어떤 의미에선 가장 편집증적인 유형의 목수라 할 만하다. 목공방을 운영한다는 사람을 유심히 관찰해 보면 재밌는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주택 건축이나 인테리어 현장에선 어느 정도 용납되는 오차도 이들은 견뎌내지 못한다. 1~2㎜의 틈도 그들에겐 ‘하자’다. 멀리서는 보이지 않지만 만져보면 알 수 있다. 소목의 작업은 주로 만질 수 있는 것들이다. 여럿이 하는 공동 작업보다는 혼자 사부작사부작 일하길 즐긴다.
돈이 되든 되지 않든,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일을 선호한다. 취향도 상대적으로 분명하고 자존심도 세다. 스승은 “그냥 목수가 아니라, 목공예장임을 자각하고 그 경지를 지향해야 한다”고 했다. 얼마간의 수입이 생기면 공방의 장비를 업그레이드하거나, 눈여겨봤던 목재를 구입한다. 장비의 세계에는 끝이 없고, 목재 가격은 늘 오를 뿐 떨어지는 일은 결코 없다. 그래서 소목의 수중에는 대체로 돈이 없다. 대신 장비가 좋아지거나 나무가 쌓인다. 슬프지만 사실이다.
나무의 결을 그대로 살린 좌식 테이블. 스승과 함께 만들었다. 송호균 제공
스승을 따라 나 또한 소목이 됐다. 취재하고 기사를 쓰는 대신 자재를 나르고 나무 다듬는 일을 하나하나 배워갔다. 노트북과 취재수첩 대신 각종 전동공구와 수공구, 목공용 기계를 다뤘다. 나무를 만지고, 그 나무로 실용적인 물건을 완성하는 과정은 예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즐거움을 줬다. 스승의 공방 레진우드의 주력상품은 거대한 한 장 원목의 맛을 그대로 살려 완성하는 ‘우드슬랩 테이블’이다.
수종도 다양하다. 가장 널리 알려진 북미산 호두나무 ‘월넛’은 짙은 색감과 나무 고유의 문양이 차분하게 아름답다. 단풍나무인 ‘하드 메이플’은 특유의 화사로운 색과 부드러운 질감이, 화려함의 극치를 자랑하는 ‘망고’는 공간의 성격을 한순간에 바꿔버리는 발랄한 존재감이 좋다. 자줏빛 심재와 변재(심재는 원목의 안쪽 부분, 변재는 바깥 부분)의 대비가 극적인 ‘파덕’, 들어보면 깜짝 놀랄 만큼 무겁고 튼튼한 ‘웬지’, 꽤 비싼 목재인 ‘부빙가’…. 목공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름도 생소한 다양한 원목을 만지고 작업할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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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은 늘 설레고 행복했다. 서울의 직장 생활에선 느껴보지 못한 종류의 감정이다. 오늘은 또 무슨 작업을 하게 될까. 공방 문을 열고 작업실 안에 들어서면 향기로운 나무 냄새가 푸근했다. 먼지와 톱밥을 뒤집어쓰며 땀을 흘리다가도, 이가 시릴 정도로 차가운 물 한 모금이면 부러울 게 없다. 땀 흘려 일하면서 일상생활에 쓸모 있고 아름답기까지 한 물건을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 낸다는 보람이면 그것으로 족했다.
공방 지하의 ‘쇼룸’도 스승과 함께 지었다. 아무것도 없는, 지저분하기 그지없는 버려진 주차장 공간을 추가로 임대해 서귀포 최대 규모의 ‘우드슬랩 전시장’으로 만들겠다는 스승의 포부에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벽을 짓고 바닥과 천장을 만들어 내는 인테리어 작업까지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어쨌든 목수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사람들이다. 일정한 시간과 장비, 자재가 주어지면 만들어 낸다. 그게 된다는 걸 알게 됐다.
목수의 길은 평생 배우고, 연구하고, 연마해야 하는 것이라고 배웠다. 이제 막 그 길을 걷기 시작한 사람이 ‘목업’에 대해 글을 쓴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는 부끄러운 일이다. 하지만 목공에 관심은 있지만 어떻게,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지 궁금한 누군가에게는 작은 이정표라도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고 있다. 연재를 통해 창업 과정의 노하우뿐 아니라 좋은 원목 가구를 고르고 관리하는 방법 등 일반적인 가정에서 활용할 수 있는 정보도 최대한 담아보려 한다.
나무공방 쉐돈 대표
한겨레 기자로 일했다. ‘이대로는 도저히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내기 어렵다’고 생각해 2016년 온 가족이 제주도로 이주했다. 본업은 육아와 가사였는데, 취미로 시작한 목공에 빠져 서귀포에서 목공방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