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ESC

중고 사기…법은 가깝고 반드시 잡힌다 [ESC]

등록 2023-08-11 07:00수정 2023-08-11 14:39

그걸 왜 해? 인터넷 중고거래 사기 체험기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처음 취미에 관한 연재를 시작할 때, 안 그래도 복잡하고 우울한 세상 속에서 재미있어 보이는 일들을 소개하고 싶었다. ‘그걸 왜 해’라는 제목의 연재는 삶이 심심한 누군가에게 ‘그걸 한 번 해보시라’는 권유였는데 이번엔 다른 글을 써보려 한다. 인터넷 중고거래 사기, ‘그걸 도대체 왜 하느냐’고 묻고 싶다.

“흔적 남아서…80% 이상 잡혀요”

긴 취미생활 기간 동안 수많은 중고거래를 했다. 특이한 취미를 즐기면서 괜찮은 물건을 저렴하게 사는 중고거래는 필수였다. 물건 종류와 거래 방법도 다양했지만 한번도 사기를 당한 적이 없었다. 지난 5월에 접한 중고물품은 미개봉 캠핑 장비였다. 정가가 60만원 정도인데 5만원 저렴한 55만원에 나왔다. 사진은 대충 막 찍은 것처럼 생활감이 넘쳤고, 부산에 살고 있다는 판매자의 목소리는 앳되고 선했고 친절했다. 그는 부모님과 저녁 약속이 있어서 물건은 다음날 보내주겠다고 했고, 난 별 의심 없이 알겠다고 한 뒤 송금했다. 그러고 끝이었다.

다음날 전화를 10번 이상 했지만 받지 않았고, 그 다음 날까지도 연락이 되지 않자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놈 반드시 잡고 만다. 어린놈인 것 같은데, 어른의 분노를 느끼게 해주마. 합의는 절대 없다.’

인터넷 사기 신고는 의외로 굉장히 쉬웠다. 사이버경찰청 인터넷 접수창에 판매자와의 문자 메시지, 거래 게시글, 송금 내역 등을 캡처해서 양식대로 써서 접수하고, 가까운 경찰서를 방문하면 된다. 나는 영화에 나오는 우락부락하고 닳고 닳은 경찰관 이미지를 상상했는데, 내가 만난 실제 경찰들은 친절했다. “얼마나 걱정이 많으시냐. 저희가 꼭 잡을 테니 걱정하지 마시라”는 위로. 그리고 인터넷 중고거래 사기 현황까지 전했다. “서울 강남경찰서에만 일주일에 대략 300건 이상 인터넷 사기가 접수되는데 계좌번호 같은 정보가 많이 남아있어 80% 이상은 무조건 잡혀요. 걱정하지 마세요.” 한달에 인터넷 사기로 서울 강남서 관할에서만 300명의 범죄자가 탄생한다는 무시무시한 얘기였다. 이로부터 3일 뒤 수원 남부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범인이 특정됐다고 했다. 범인은 부산이 아닌 수원 거주자였다. 경찰은 검찰로 사건을 송치할 테니 기다려 달라고 했다.

필자가 미개봉 중고 캠핑장비 거래를 위해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친절한 상대방의 태도에 택배비 5000원도 필자가 자발적으로 부담했다. 그러나 상대방은 ‘잠수’를 탔고 결국 구속됐다. 허진웅 제공
필자가 미개봉 중고 캠핑장비 거래를 위해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친절한 상대방의 태도에 택배비 5000원도 필자가 자발적으로 부담했다. 그러나 상대방은 ‘잠수’를 탔고 결국 구속됐다. 허진웅 제공

며칠 전 수원지방법원에서 문자 메시지를 보내오면서 한동안 잊고 있던 사건을 다시 떠올리게 됐다. 범인이 공판을 받기 전까지 돈을 돌려받기 위한 ‘배상명령신청서’를 보내달라고 했다. 재판 날짜가 명시돼있지 않아 수원지법에 전화를 걸었더니 법원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 구속 중이라 공판 일정은 금방 잡힐 거예요. 첫 재판까지 대략 한달 걸리니까 그 전에 보내주세요.” 내가 섬뜩했던 건 ‘구속’이라는 말의 무게였다. ‘부모님과 저녁 식사가 있어서 물건을 내일 보내주겠다’는 앳된 목소리의 주인공은 구속돼 있었다. 범죄를 저질렀고, 촉법소년도 아닌 나이였으니까, 수사기관과 법원은 공정하게 그를 구속했을 것이다. 약간만 싼 가격으로 게시글을 올려도 전국의 많은 사람들이 연락하기 때문에 게시글 하나로도 다중의 범죄가 성립될 수 있다는 게 인터넷 중고거래 사기의 무서운 점이었다. 이번 사건도 나를 포함해 4명의 고소인이 존재하는 ‘다중 범죄’였다.

☞한겨레S 뉴스레터를 구독해주세요. 클릭하시면 에스레터 신청 페이지로 연결됩니다.

☞한겨레신문을 정기구독해주세요. 클릭하시면 정기구독 신청 페이지로 연결됩니다.

어린 나이에 ‘빨간 줄’

그는 아마 돈이 필요했을 것이다. 큰돈은 아니고 몇십만원쯤. 칼 들고 강도짓 할 만큼 심각한 일은 아니었을 거고, 그는 그 정도의 악인도 아니었으리라. 아무튼 돈이 필요한 그는 티브이 코미디 프로에서 보던, ‘중고 장터에서 물건 샀는데 박스 안에 벽돌이 들어있었어요’ 같은 이야기가 떠올랐을지 모른다. 코미디 소재로 쓰일 만큼 익숙한 일. ‘별일 아니니까 나도 한번 해볼까’라는 나쁜 마음이 들었을 거다. 그리고 실행에 옮긴다. 물건 사진을 찍고, 중고장터에 내놓은 다음 통화를 하며, 친절하게 대한다. 부산에 있다고 말하면서 서울말을 썼지만, 5만원이나 물건을 싸게 구할 수 있으니 그런 이상함은 별 게 아니라는 구매자의 판단 미스에 묻혀 넘어가게 된다. 그리고 잠수. 꺼놨던 전화기도 아무 일 없었으면 한 열흘쯤 뒤 다시 켰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이후의 일들은 그가 상상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선다. 사이버경찰청에 고소하는 절차는 생각보다 너무 쉬웠고, 사기에 당한 구매자들은 이 일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 않았다. 경찰은 영화에서와 달리 유능하고 친절했으며 전화기가 꺼졌어도 피의자를 특정했다. 당사자는 걸려도 벌금 정도 내고 말 거라고 상상했을지 모르나, 경찰은 다중 범죄에 도주의 우려가 있어 구속한다고 했다. 구속까지 된 걸 보면 초범이 아닐 수도 있겠다.

범인을 생각하면 솔직히 측은하다. 왜 그런 짓을 했을까? 그 범인의 부모는 어떤 마음일까? 자꾸 떠오른다. 범죄를 치기 어린 실수로 받아주는 건 가까운 사람들이나 그러는 거지, 얼굴도 모르는 생면부지의 타인이 범인의 선처를 요구할 리는 만무하다. 나만 해도 떼인 돈은 꼭 받아야겠다는 마음이니까.

혹시 중고거래 과정에서 사기를 당하면 무조건 신고하시라. 그래야 범죄가 줄어드니까. 행여 중고거래로 돈 떼먹는 일은 꿈도 꾸지 마라. 대부분 잡히고 구속까지 될 수 있다. 인생에 빨간 줄이 그어진다. 내가 55만원 떼인 것보다 그게 더 마음이 아프다. 생판 남인 그 어린 친구의 인생이 너무 안타깝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고 했던가? 거짓말이다. 주먹은 멀지 모르나, 법은 아주 가까이에서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허진웅 이노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낚시든, 악기든, 오토바이든, 세차든, ‘너 좋아하는 게 뭐야?’ 라고 물었을 때 무언가 한가지 서슴없이 대답할 수 있는 삶이야말로 좋은 삶이라고 생각한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ESC 많이 보는 기사

[ESC] 에로영화, 패러디 제목 총정리 1.

[ESC] 에로영화, 패러디 제목 총정리

[ESC] 이렇게 만들면 만두피 안 터져요! 2.

[ESC] 이렇게 만들면 만두피 안 터져요!

[ESC] 오늘도 냠냠냠: 6화 내자동 내자땅콩 3.

[ESC] 오늘도 냠냠냠: 6화 내자동 내자땅콩

[ESC] 사랑·섹스…‘초딩’이라고 무시하지 마세요 4.

[ESC] 사랑·섹스…‘초딩’이라고 무시하지 마세요

[ESC] “12~14시간 공복은 건강 유지의 기본” 5.

[ESC] “12~14시간 공복은 건강 유지의 기본”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