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채소 키우는 사람들의 모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텃밭이 아니라 집에서. 언뜻 신기하게 느껴지면서 동시에 어떤 감정일까 궁금했다. 유튜브 검색을 했는데 한 크리에이터가 부정적인 영상을 올려놓았다. 요약하면 이랬다. 들이는 돈에 비해 수확량이 적다. 그러니까 돈 주고 사 먹는 게 낫다. 진딧물이 생기는 등 관리가 어렵다. 그러니까 돈 주고 사 먹는 게 낫다. 그래서 ‘이 주제로 기사를 쓰는 게 올바른가’라는 의문을 이틀 정도 품었다. 포털 사이트에서 관련 기사를 검색해보았다. 없었다.
‘즐거운 채소 집에서 키우기’ 모임을 운영하는 황문정 대표에게 연락했다. 그는 텃밭에서 채소를 길렀고, 그 경험을 집 안으로 옮겨오고 싶어 이 모임을 시작했다. 텃밭을 갖기 어렵고, 매일 채소가 자라는 걸 보고 싶은 사람들이 이 모임에 참여한다. 메신저로 ‘돈 주고 사 먹는 게 낫다’는 그 동영상을 보냈다. 황 대표가 대답했다. “저런 마음이면 못 키우죠.”
어떤 마음이면 키우는 걸까?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모임에 대해 이야기했다. “저는 학생들에게 방울토마토 화분 하나와 바질 화분 하나를 드려요. 며칠 전에 한분이 토마토를 따서 드셨대요. 단체메시지방에서 모두 축하해주었어요. ‘첫 수확 하셨네요’라고요.” 첫 수확. 멋진 말이다. 그래서 그를 만나러 갔다. 채소 농부가 되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방울토마토는 5월에 심어요. 8주면 수확할 수 있어요. 9월까지 수확이 가능합니다. 이 방울토마토 1모종에 열매가 10개 맺었어요.”
창가 선반 위에 놓인 방울토마토 화분을 가리키며 황 대표가 말했다. ‘10개’와 ‘맺었습니다’라는 언어가 귀여워서 웃음이 나왔다.
채소 농부는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물, 빛, 바람이 필요해요. 사람도 그렇잖아요.” 앞의 2개는 이해가 됐다. 사람도 적정량의 물을 마셔야 하고, 햇빛을 쬐어야 한다. 바람은?
“산책할 때, 시원한 바람이 불면 기분 좋잖아요. 그때 우리 안에서 많은 게 충전되죠. 식물도 그래요. 바람은 습도를 조절해주고 식물이 상쾌한 상태로 머물 수 있게 도와줘요.”
‘즐거운 채소 집에서 키우기’ 모임을 운영하는 황문정 대표가 집에서 화분 속 쑥갓을 솎아주기 하고 있다. 다른 화분엔 방울토마토, 케일, 고추를 심었다. 스튜디오 어댑터 염서정
토마토 화분에는 토마토가 2개 매달려 있었다. 예뻤다. 마트에서 사다 먹을 때는 방울토마토가 예쁘다고 느낀 적이 없는데, 화분에 심어져 자란 방울토마토는, 예뻤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와, 이걸 어떻게 먹어, 아까워서, 라는 생각이 들었다.
탁자 위엔 딸기 화분이 있었다. 시들어서 붉은빛이 바랜 딸기 하나가 매달려 있었다. 멍하니 보고 있었더니 이상하게도 마음이 안정됐다. “6월까지 세차례, 모두 14개를 따 먹었어요. 새콤한 맛이 좋았습니다. 딸기는 여러해살이 작물이라 올해 겨울까지 잘 키워 내년 봄에 다시 열매를 따 먹을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어요.”
실내 화분에서 딸기 열매가 맺힌 모습. 황문정 제공
잎이 무성한 화분도 있었다. 식물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보자마자 “바질이네요”라고 했을 것 같은데, 나는 봐도 몰랐다. “바질이에요. 금세 자라요. 어제도 따서 먹었어요.” 채소 농부가 ‘따서 먹었다’고 말할 때마다 어떤 감정일까 궁금했다. 물어보면 답해줄 수 있을까. 명료하게 대답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다. 철학적인 질문이니까. 그러나 농부는 자신의 인식 역시 키우는 사람일까?
“내가 자연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저 역시 이 순환의 일부로서 기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그러니까 예쁘고 귀여운 방울토마토를 따 먹는 것도, 한해의 기운을 다한 딸기 줄기를 지키는 것도 그저 그 ‘일부’라는 것. 애당초 실용의 영역이 아니었다. 들이는 돈과 수확량을 비교하는 식의 접근으로는 이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 막연한 기쁨, 우주의 일부로서 다른 생명을 만나는 신비, 소멸과 탄생에 대한 수긍.
그래도 진딧물은 많이 싫은데. “바질 향이 방울토마토에 해충이 생기지 않게 도와줘요. 아직까지 화분에 진딧물이 생겼다고 말하는 학생은 없었어요. 화분 한두개 정도만 기르는 거면 잘 안 생겨요.”
채소 농부는 농약을 뿌리지 않는다고 했다. 집에서 키우는 거니까. 혹시라도 진딧물이 생기면? “마요네즈와 쌀뜨물을 물에 섞어서 분무기로 뿌리면 2~3일 후에 사라져요. 저는 이러한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역시 식물을 기르는 과정이라고 믿어요. 모든 것들이 자연의 일부로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거예요.”
집에서 채소를 기르는 농부를 한명 더 만났다. 서울가드닝클럽 권오은 실장. 서울가드닝클럽은 도심에서 자연과 머무를 수 있는 다양한 공간을 만든다. 권 실장은 굳이 집에서 로메인상추, 오크상추, 적겨자, 고수를 기르고 있다.
“네, 셰프로 비유하면 집에 와서도 요리를 하는 거죠. 부모님이 밖에서만 식물 기르지 말고 집에도 좀 해달라고 하셔서요. 마침 회사에서 채소 모종을 구매했다가 남은 게 있었어요. 그걸 집으로 갖고 왔어요. 재활용 분리수거 하는 곳에 갔더니 스티로폼 박스들이 있더라고요. 가로 50㎝, 세로 30㎝ 정도 되는 거 2개 갖고 와서 모종을 심었어요.”
오크상추, 케일, 적겨자채 등 잎채소. 권오은 제공
나는 ‘돈 주고 사 먹는 게 낫다’는 문제의 동영상에 대해 이야기했다. “네? 수확량 적지 않은데.” 그건 당신이 능숙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자, 동의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진딧물 같은 해충이 생긴 적이 없어요.” ‘여러분, 왜 이런 문제 틀려요?’라고 말하는 선생님 같았다. 비결이 있겠지? “창문을 항상 열어두었어요. 베란다에서 키웠거든요. 해충은 습한 환경에서 발생해요. 환기를 잘하면 안 생겨요. 우리 몸도 똑같잖아요. 바람이 통하지 않는 곳에서 오래 누워 있으면 땀띠가 생기죠.”
권 실장이 모종으로 심은 채소들은 여전히 잘 자라고 있다. 수확량도 많아서 잘 따서 잘 먹고 있다. “채소 덕분에 가족들과 대화가 많아졌어요. 오늘은 얼마큼 자랐네, 오늘은 이만큼 땄네, 뭐 해 먹을까,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거죠. 그게 굉장한 기쁨이에요. 그리고 따는 게, 재밌어요. 직접 기른 걸 바구니 가득 딴다고 생각해보세요. 아, 가끔 저녁에 고기를 딱 몇점만 먹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그때 상추를 몇개만 똑 따서 고기랑 먹으면 정말 좋아요.”
풍경이 그려져서 나는 하마터면 ‘저도 한번 길러볼까요’라고 말할 뻔했다. 온갖 식물을 죽여온, 저승의 손을 가진 내가. 아냐, 나는 못해.
“7월이니까, 미니당근이나 래디시를 길러보면 좋을 것 같아요. 짧은 시간에 씨앗이 열매가 되는 과정을 경험해볼 수 있어요. 뿌리채소여서 수확할 때 흙에서 뽑는데, 그것도 재밌어요.” 잎을 잡고 위로 뽑는다는 말 같았다. 그러면 흙 속에서 미니당근과 래디시가 쑥 나오겠지. 와, 정말 재밌겠는데!
권오은 서울가드닝클럽 실장이 수확한 래디시와 미니당근. 권오은 제공
“과채류용 흙을 사서 퇴비와 섞은 후에 2~3㎝ 정도 구멍을 만들고 씨앗을 넣으면 돼요. 씨앗끼리 거리는 10~15㎝ 정도로 맞춰주시고요. 잎이 생길 때까지는 흙을 촉촉한 상태로 유지해주세요.”
이렇게 간단하다고? 잎이 생긴 이후에는 물을 며칠에 한번 줘야 하는지, 혹시라도 벌레가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당장 당근을 키울 사람처럼.
“며칠에 한번 물을 준다, 이런 개념으로 생각하면 어려워요. 꼭 맞는 방법도 아니고요. 사람이랑 똑같아요. 물이 몸에 필요하다고 해서 종일 마시면 안 되는 거잖아요. 사람마다 적정한 물의 양도 다르고요. 식물이 자라는 걸 잘 보세요. 어떻게 적응하고 있는지. 자꾸 보면 알게 돼요. 물을 너무 자주 주면 채소들이 자라기에 습한 환경이 되기도 해요. 그때그때 흙의 상태에 따라 물을 주는 게 좋아요. 속흙이 말라 있다면 그때 듬뿍 주세요. 그리고 해충이 생긴다고 그 채소를 못 먹는 것은 아니에요. 친환경 농약 등으로 적절한 조치를 취해주면 돼요. 이런 것 역시 채소를 수확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야 해요.”
두명의 선생님이 같은 이야기를 한다. 받아들이는 공부를 하는 거라고. 뜬금없는 소리지만, 나는 항상 과하게 반응한다. 누군가 하는 말, 도로 위에서 끼어드는 차, 예상 밖의 날씨 등 여러 자극들에. 모든 것이 그저 삶의 일부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매일 자라는 채소 줄기들을 보고 있으면 조금은 의연해지려나.
☞한겨레S 뉴스레터를 구독해주세요. 클릭하시면 에스레터 신청 페이지로 연결됩니다.
☞한겨레신문을 정기구독해주세요. 클릭하시면 정기구독 신청 페이지로 연결됩니다.
그래서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집에서 채소를 기르는 것이 그들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고요가 찾아왔을까?
“하루 종일 들여다봐요. 햇볕이 좋으면 좋은 대로,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바람이 강하게 불면 부는 대로 잘 지내고 있는지, 확인하는 거죠. 애정을 쏟을 대상이 생겨서 만족스럽습니다.” 서울 화곡동에 사는 프리랜서 채송희씨가 말했다. 송희씨는 황문정 대표의 채소반 학생이다. “바질은 성장 속도가 빨라서 하룻밤만 자고 일어나도 전날에 비해 무성해져 있어요. 반면 방울토마토는 집으로 데리고 온 날부터 시들시들했는데, 계속 지켜보며 물도 주고 비료도 주니 어느새 새순이 돋고 있더라고요! 내가 이 친구를 살려냈다는 마음이 들어 뿌듯했습니다. 더 잘 키워서 친구들에게 맛보여주는 게 목표입니다.” 그의 채소에는 진딧물이 생기지 않았다.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돌보면 건강하게 자라는 걸까. 내가 방울토마토 줄기라면, 필사적으로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것 같다. 종일 나를 지키는 주인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황당한 이야기지만, 정말 그럴 것 같다. “이사를 앞두고 있는데, 더 넓은 집으로 이사 가면 바질 같은 허브류를 더 들이고 싶어요. 열매채소도 더 키워보고 싶고요.”
또 다른 학생, 서울 목동에 사는 회사원 이지원씨가 2주 동안 키운 방울토마토는 열매 5개만 맺은 뒤 안타깝게도 운명을 달리하였다. “원인은 과습이었던 것 같아요. 진딧물은 생기지 않았어요. 바질과 방울토마토 모종을 화분에 옮겨 심고 와서 다음날 바로 바질 잎을 따 먹었어요. 며칠 후에 빨갛게 익은 방울토마토를 먹었고요. 정말 신기했어요. 내 손으로 키운 토마토를 먹다니!”
안타깝게 사망했지만 지원씨의 방울토마토는 죽기 전까지 제 할 일을 했다. 먹을 수 있는 걸 기르는 건 보는 식물을 기르는 것과는 다른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것 같다.
“맞아요! 직접 뜯어서 먹는 게 새로웠어요. 자연의 선물을 받는 느낌이랄까!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가 파스타 만들면서 집에서 키우는 허브를 뚝뚝 뜯어서 넣는 모습을 봤을 땐 집에 무슨 허브가 있어, 이랬는데 그걸 저도 할 수 있더라고요. 주말에 파스타를 해 먹거나 토마토 매리네이드를 만들 때마다 창문을 열고 바질 잎을 똑똑 떼어서 넣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알아서 잘 자라주니 채소에게 고마울 따름이에요.”
집에서 채소를 기르는 즐거움은 배부름의 기대 같은 게 아니다. 침대 위의 이불을 털고 바닥의 먼지를 닦듯 각자의 일상을 가꾸는 일이었다. 작은 화분이지만, 그 안의 흙이 주는 생명의 기운이 우리를 덜 외롭게 하는 것 같다고 적으면 과장일까? 안 키워봐서 모르겠다. 그래서 이 글을 썼다. 누군가 위로를 받고 기쁨을 느꼈다고 하니, 한번쯤 해보면 좋지 않을까 해서. 열매가 많이 열리지 않더라도, 불행하게도 벌레가 생기고 시들어버려도, 바라보며 기대하는 순간들이 마음 가득 충만한 기운을 전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여기까지 쓰고 나흘이 지났다. 그동안 놀랍게도 내면에서 유혹의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울려 퍼졌다. ‘할 수 있어어, 너도 기를 수 있다고오.’ 지금 나는 미니당근 씨앗을 앞에 두고 이 기사를 마무리하는 중이다. 채소용 흙과 거름, 스티로폼 상자도 샀다. 곧 흙과 거름을 섞을 것이다. 수확할 수 있을까? 매일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다. 지금도 설레니까. 일단 해보려고 한다.
이우성 시인·슈퍼 크리에이티브 콘텐츠 크루 ‘미남컴퍼니’ 대표
쉽게, 새싹 채소부터 도전!
새싹 채소는 씨앗을 발아시켜 싹이 튼 지 일주일 정도 지난 어린 채소를 말합니다. 대표적으로 콩나물, 숙주나물, 무순이 있어요. 요즘은 브로콜리, 메밀, 적겨자, 보리, 청경채, 적양배추도 새싹 채소로 먹기도 합니다. 쉽게 기를 수 있어요.
1. 새싹 채소용 씨앗을 구입합니다. 일반 씨앗은 살균 소독 처리가 되어 있어요. 새싹 채소용 씨앗은 살균 소독 처리가 되어 있지 않아요. 그래야 나온 싹을 바로 먹을 수 있거든요!
2. 씨앗을 4~5시간 물에 불립니다.
3. 거즈천이나 키친타월을 접시나 채반에 깔고 물을 뿌립니다. 불린 씨앗을 잘 펼쳐놓습니다. 이때 씨앗이 뭉치지 않게 고루 펴야 해요. 그래야 곰팡이가 피지 않고, 과습도 방지할 수 있어요.
4. 어두운 천이나 종이로 덮어 빛을 차단하세요. 싹이 틀 때까지 분무기를 사용해 수시로 물을 줍니다.
5. 싹이 나오면 그때부터 햇빛이 잘 드는 곳에 두고 매일 한차례 물을 줍니다. 보통 5일 정도면 먹을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