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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권 분석보다, 먹고 생각 안 나는 아이스크림 원했죠” [ESC]

등록 2023-06-24 07:00수정 2023-06-24 10:08

한국의 브랜드 인터뷰 _ ‘녹기 전에’ 박정수 대표

SNS로 캠페인, 기부 소식 전해
키오스크에 반기 ‘세심한 접객’
“내가 죽어도 가게 남았으면”
‘녹기 전에’ 박정수 대표와 ‘피넛버터와 오렌지맛’ 아이스크림. ’녹기 전에’는 매일 아이스크림 메뉴를 바꾼다.
‘녹기 전에’ 박정수 대표와 ‘피넛버터와 오렌지맛’ 아이스크림. ’녹기 전에’는 매일 아이스크림 메뉴를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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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기 전에’는 서울 마포구 대흥역 근처 유명 냉면집 ‘을밀대’ 가는 길에 있는 작은 아이스크림 가게다. 아이스크림 가게인데 애호가가 있고, 에스엔에스(SNS)에 게시물을 거의 매일 올린다. 팔로어가 1만6천명이고, 그들에게 기부 소식을 알리며, 나무 심기 운동을 손님들과 함께한다. 그러는 동안 매출은 점점 늘어 매년 50%씩 성장했고, 그 성장률은 코로나19 기간에도 꺾이지 않았다. 박정수 대표(33)에게 그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들에게는 어엿한 ‘브랜드 정신’이 있었다.

“성체 돼도 멈추지 않는 생장 지향”

―2017년부터 2023년까지 이제 업력 7년차입니다. 지금의 입지는 이른바 흔히 말하는 상권 분석으로 고른 건가요?

“분석을 했는데 그게 그리 중요한 요소는 아니었습니다. 저희는 손님들이 저희를 충분히 인지할 때 더 돋보이는 매장이었어요. 그러려면 손님들이 ‘여기는 가볼 만하다’라는 생각을 해야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저희가 하는 생각이 담긴 콘텐츠를 잘 발행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저희가 마음 편한 곳에 있어야 했어요. 그래서 종로구 익선동에서 마포구 염리동으로 넘어올 때는 기운에 끌려갔어요. 저희는 콘텐츠를 발행함으로써 사람들이 오기 때문에, 저희가 일상을 영위하는 것 자체가 중요합니다.”

―콘텐츠 발행이라 함은 에스엔에스에 게시물을 올리는 것입니까?

“이 가게에서 했던 생각을 공유하는 건 아이스크림 제품 출시와는 또 다르죠. 일종의 미디어 영역이고, (에스엔에스에 올리는) 그 한 줄짜리 문장조차도 저희의 콘텐츠라고 생각합니다.”

―멋진 말씀입니다. 아시다시피 멋진 말을 하는 스몰 브랜드는 많지만 ‘녹기 전에’는 메시지가 매출로 이어지는 브랜드라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진정성이라는 말을 많이 하죠. 그게 보이고 남들이 수긍하려면 쌓인 아카이브가 모두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제 자신이 시간으로 출발한 이야기에 관심이 많습니다. 우리가 한정된 시간을 어떻게 쪼개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가에 대한 생각도 많아요. 이벤트를 할 때, 메뉴를 만들 때 등 모두 한 방향을 향해 그걸 구현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평소에도 최선을 다합니다. 지각 안 하고, 만날 문 열고.”

―그래서 최근 내신 접객 매뉴얼이 흥미로웠습니다.

“7년차가 될 때까지 생각하다 보니 공동체도 의식하게 되고, 아이스크림을 어떻게 전해드리냐에 따라 받는 분의 기분이 굉장히 다를 수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키오스크가 접객의 대리로 사용되는 걸 걱정하며 바라보는 사람으로서 더욱 그렇고요.”

―왜 걱정하십니까?

“‘접객할 때 사람이 없어도 된다’고 모두 은연중에 생각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봐요. 스타벅스와 애플스토어에는 키오스크가 없어요. 사는 주체가 사람인 이상 파는 주체도 사람이어야 가장 기분 좋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손님과 눈을 서로 마주 보고 대화의 진동을 느끼는 일은 오직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에요.”

ㅡ그 말씀대로 구현되려면 접객을 하는 사람들도 준비하고 연습해야겠습니다.

“그래서 가이드를 만든 겁니다. 저희처럼 작은 매장, 커뮤니티나 네트워킹이 중요한 매장은 사람의 기분을 파악해서 내가 어떻게 하면 이분의 기분을 낫게 할 수 있을까를 고려해야 합니다. 접객은 사실 굉장히 고도의 기술이에요. 사람은 서로 교감만 잘 해도 기분이 굉장히 좋아져요.”

ㅡ세간의 요식업 브랜드와는 좀 다른 방식으로 성장하고 자리 잡는 듯합니다.

“저는 성장보다 생장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성장은 동물의 체세포, 생장은 식물세포라고 보면 돼요. 체세포는 굉장히 빠르게 성장하고 성체가 되면 멈추잖아요. 나무는 상대적으로 라이프 사이클이 길죠. 나무 심기를 하면서 의식의 공동체를 만드는 게 결론적으로는 우리 매장에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시민단체 ‘노을공원시민모임’과 서울 마포구 노을공원에 나무를 심는데요. 올해 3월 에스엔에스에 나무 심기 공지를 띄워 100명이 모였고요. 나무 심기는 매달 이어지고 있습니다.”

ㅡ그렇다면 브랜드 스토리나 정신이 사업에 실질적으로 좋은 영향을 끼치는 거네요.

“결과적으로는 그게 항상 엮여 있죠. 이벤트나 마케팅이나 브랜딩을 해서 지표가 늘어나는 건 아주 단편적이고, 장기적이지 않다고 생각해요.”

먹고 생각이 안 나는 아이스크림

ㅡ고도화된 브랜드 알고리즘 같은 걸까요?

“그렇게 보면 되겠네요. 매장에 손님이 다른 손님을 데려오시면 이런 이야기를 하세요. ‘여기는 메뉴가 엄청 많아. 이런 걸 하기도 해. 나무도 심으러 가.’ 이게 병렬적으로 연결돼 있지만 하나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ㅡ아이스크림 맛을 위해서는 어떻게 노력합니까?

“추구하는 아이스크림 맛은 ‘먹고 생각이 안 나는’ 아이스크림입니다. 아이스크림은 보통 식후에 먹는 디저트입니다. 그래서 목에 아이스크림의 잔여감이 남아 있으면 불쾌합니다. 가게는 생각나더라도 맛으로는 생각 안 나게 하려 합니다.”

ㅡ먹고 생각 안 나는 맛을 어떻게 만듭니까?

“깔끔한 재료를 써야겠죠. 목을 불편하게 하는 재료도 있거든요. 아이스크림에는 유화제와 안정제가 들어가기도 하는데, 저희는 유화제는 안 쓰고 안정제는 식물에서 추출한 것만 씁니다. 처음부터 미국 식품의약국(FDA) 기준을 보고 인체에 잘못됐다는 보고가 없는 것만 골랐어요.”

ㅡ향후 목표는 지속적인 생장입니까?

“제가 죽어도 남는 가게를 만들고 싶어요. 그 한 문장만 정해도 결정할 때 방향이 정해지더라고요. 제 다음 세대에 더 잘 됐으면 좋겠어요. 저희는 영리 기업이면서도 좋은 가치를 이야기하고 기부도 하는데, 이런 것들의 밸런스를 고민하며 계속 나아가고 싶습니다.”

ㅡ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메뉴가 있습니까?

“피스타치오에요. 저희는 72시간 동안 어떤 것도 넣지 않고 피스타치오만 갈아서 페이스트를 만들어요. 그걸로 만들어진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그 시간을 먹는다는 느낌이 들어요. 등갈비를 먹으면 뼈가 튼튼해진다는 주술적인 믿음처럼, 그걸 먹으면 뭔가 되게 든든해요. 맛있기도 하고요.”

글·사진 박찬용 ‘아레나 옴므 플러스’ 피처 디렉터

잡지 에디터. ‘라이프스타일’로 묶이는 업계 전반을 구경하며 정보를 만들고 편집한다. <요즘 브랜드>, <첫 집 연대기>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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