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게 공을 찬 다음 날이면 ‘할라아사나’(쟁기자세)에서 무릎을 편 채 발끝을 땅에 내려놓기가 어렵다. 정인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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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니는 요가원은 아담하다. 30㎝ 간격으로 촘촘히 매트를 깔아도 최대 12명 정도가 겨우 들어간다. 그래서 사전 예약 제도를 운영한다. 매주 목요일 오전 선생님이 누리소통망(SNS) 플랫폼 ‘밴드’에 공지를 올리면, 다음 주 일정을 고려해 댓글 형식으로 예약을 해야 한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금세 수강생이 몰려 원하는 때에 수련하기가 어렵다.
지난 8일 목요일에도 계획한 일정대로 이번 주 수련을 신청했다. 그런데 몇 분 뒤 스마트폰 알람이 울렸다. 월요일 새벽 수련을 반려한다는 청천벽력같은 선생님의 ‘대댓글’이 달려 있었다. “예약 불가. 결석이 너무 많아 페널티 적용합니다.” 최근 들어 일주일에 네 번씩 새벽 수련에 가겠다고 신청해 두고 두 번을 겨우 출석하거나 아예 한 번도 출석하지 못한 주가 늘어, 벌을 받게 된 것이다. 덕분에 평소 같으면 요가원에 있어야 할 월요일 새벽 이 시각, 매트 위가 아닌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붙잡고 있다.
야근 당번에, 술 약속에…빽빽한 저녁 일정을 피해 나름대로 수련 계획을 짠 것인데, 차질이 생겨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나의 연이은 ‘노쇼’로 불편을 겪었을 동료 수련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선생님께 섭섭한 마음도 표현할 수 없었다.
지난 1년간 매주 적어도 세 차례는 꼬박꼬박 나갔던 새벽 수련에 요즘 들어 소홀해진 데에는 나름의 변명거리가 있다. 요가만큼 매력적인 다른 운동 종목에 최근 들어 푹 빠지게 된 것이다. 바로 풋살이다. 50년 가까이 남성 기자들을 위한 축구 대회만 개최했던 한국기자협회가 올해 처음으로 여성 기자들을 위한 풋살 대회를 열기로 하면서, 우리 회사에도 동호회가 꾸려졌다. (<한겨레21> 1463호
공 좀 하니? ‘골 때리는 그녀들’이 된 기자들)
집에서 요가원까지는 40분이 조금 안 걸린다. 새벽 수련이 시작되는 6시40분에 맞추려면 집에서 적어도 6시에는 출발해야 한다. 5시20분에는 눈을 떠야 하고, 그러려면 전날 밤 11시에는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늦어도 밤 10시 이전에는 귀가해 잘 준비를 해야 다음 날 수련, 그리고 이어지는 업무에 지장이 없다. 다행히 코로나19 대유행 시기를 거치며 불필요한 저녁 자리가 줄어, 밤 11시 언저리에 잠자리에 드는 루틴을 꽤 오랫동안 지킬 수 있었다.
정인선 기자가 할라아사나(쟁기자세)를 수련하고 있다. 요가공존 제공
풋살을 시작했다는 말에 요가 선생님은 “안 그래도 이 운동 저 운동 하는데 뭐 한다고 하나를 더 늘리냐”며 고개를 내저었다. 이어 “그럴 시간에 차분히 앉아서 명상하는 시간을 늘리는 게 요가 수련에 깊이를 더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선생님 예언처럼 풋살은 여러모로 요가 수련에 방해가 됐다. 혼자서 내면에 집중하는 요가 수련과 달리, 서른 넘어 처음 맛본, 승패가 분명한 팀 스포츠는 너무나 자극적이었다. 퇴근 뒤 늦은 밤까지 동료들과 공을 차고 돌아오면 11시가 다 되어 귀가하게 되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최대한 빨리 샤워를 마치고 잠자리에 누워도, 그 날의 연습 경기 장면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리플레이돼 흥분을 가라앉히기 어려웠다. 한참을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든 다음 날 가뿐하게 일어나 요가원으로 향하는 건 기적에 가까웠다.
기적처럼 몸을 일으켜 출석에 성공한 날에도 전날 신나게 공을 찬 후과가 온 몸으로 느껴졌다. 안 그래도 뻣뻣한 다리 뒤 근육이 더욱 뻣뻣해졌다. 패스와 슛을 하려고 여러 차례 강한 힘을 순간적으로 쓰다 보니, 장거리 달리기를 하고 난 다음 날과도 차원이 다르게 다리가 무거워졌다. 몸이 비교적 부드러웠던 때는 쉽게 할 수 있었던 ‘할라아사나’(쟁기 자세)를 할 때, 발등은커녕 발가락 끝조차 바닥에 닿지 않았다. 그래서 한동안은 요가 블럭을 발아래에 받치거나, 두 무릎을 펴는 대신 구부린 채 이마 위에 올려둬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 공을 차다가 동료와 부딪혀 오른쪽 발목을 접질렸다. 그 바람에 요가에서 ‘접근 불가’ 동작이 더 많아졌다. 안 그래도 발목 가동성이 좋지 않아 어려웠던 ‘비라아사나’(영웅 자세)나 ‘파드마아사나’(연꽃 자세), ‘에카파다 라자카포타 아사나’(반 비둘기 자세) 모두 더 먼 곳으로 달아났다. ‘괜히 다른 운동에 한눈을 팔았나? 그동안 쌓아 온 요가 수련이 모두 말짱 도루묵이 되면 어쩌지?’라는 조바심이 고개를 들었다.
오는 7월1일로 예정된 풋살 대회만 끝나고 원래 리듬으로 돌아가면 된다고 자기 위로를 하다가도 덜컥 겁이 났다. 살다 보면 풋살처럼 즐거운 자극이든, 아니면 업무 스트레스와 같은 부정적인 자극이든, 내 의지와 상관없이 크고 작은 자극이 계속해서 찾아 올 텐데, 그때마다 좋은 핑계가 생겼답시고 수련을 게을리하다가는 요가와의 거리가 점점 멀어질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저녁보다 새벽 수련을 좋아한 것은, 이 시간만큼은 여러 자극이 주는 유혹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자라는 직업의 특성상, 내일은커녕 당장 두세 시간 뒤에도 언제 어디서 어떤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할지 모르다 보니, 잠을 줄여서라도 바깥 자극과 분리된 시간을 확보해두지 않으면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기자 생활, 더 넓게는 직장인으로서의 생활을 오래, 건강하게 지속하려면 하루 한두시간 매트 위에 오르는 시간만큼은 꼭 확보해 둬야겠다는 생각이 직장 생활 연차가 쌓일수록 강해졌다.
얼마 전 읽은 인터뷰(<동아일보>
필즈상 허준이 교수 “자극 없애려 몇달째 똑같은 식사… 15분 모래시계 놓고 집중”)에서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스스로가 “자극적인 것에 약한 사람”이라며 “일상을 깨뜨릴 수 있는 자극을 피하려 매일 같은 식당에서 같은 메뉴를 먹고, 좋아하는 노래조차 연구에 방해가 될까 봐 듣지 않는 때가 있다”고 말했다.
허 교수만큼 엄격할 자신은 없지만, 적어도 스스로 어떤 자극에 얼마만큼 빠져들어 있는지 알아차릴 자신은 있다. 때로 들쭉날쭉한 새벽 요가 수련 출석부, 그리고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몸 상태를 지금처럼 계속 곁에 두고 리트머스 시험지 삼는다면, 어느 순간에 어떻게 찾아올지 모르는 새로운 자극들을 언제든 반갑게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
정인선 기자
ren@hani.co.kr
한겨레신문 빅테크팀에서 국내외 정보기술(IT) 산업을 취재한다. 일하지 않는 시간엔 요가와 달리기, 등산, 사이클, 케틀벨 등 각종 운동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