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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희 2집 등 희귀 엘피 68장…“2만원에 그냥 가져가”

등록 2023-06-17 09:00수정 2023-06-17 10:51

나의 짠내수집일지 최저가 싹쓸이 ‘동묘에서 생긴 일’
서울 동묘 인근 한 골동품점에서 단돈 2만원에 구입한 가요, 애니메이션 수록곡 엘피들. 둘째줄 노란 라벨(왼쪽에서 둘째)이 이정화의 ‘싫어’ 등이 수록된 <매혹의 하이보이스 황규현 누구일까?>, 빨간 라벨(왼쪽에서 셋째)이 ‘안개’가 실린 <정훈희 골든 2집>이다. 이승철과 <알라딘> 삽입곡 음반도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서울 동묘 인근 한 골동품점에서 단돈 2만원에 구입한 가요, 애니메이션 수록곡 엘피들. 둘째줄 노란 라벨(왼쪽에서 둘째)이 이정화의 ‘싫어’ 등이 수록된 <매혹의 하이보이스 황규현 누구일까?>, 빨간 라벨(왼쪽에서 셋째)이 ‘안개’가 실린 <정훈희 골든 2집>이다. 이승철과 <알라딘> 삽입곡 음반도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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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왔구나, 왔어!’

모두가 로또 복권 1등 당첨 같은 횡재를 꿈꾸지만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엘피(LP)를 수집하는 이들 역시 고가 희귀 음반을 저렴하게 손에 넣는 날을 기대하지만 대부분 바람으로 끝날 뿐이다. ‘아날로그의 역습’이라 불릴 정도로 레트로 열풍이 불면서 엠제트(MZ)세대까지 엘피 수집 대열에 뛰어들면서 예전보다 더 큰돈을 들여야 귀한 음반을 구할 수 있다. 하지만 발품 팔다 보면 가끔 뜻밖의 행운이 찾아오기도 한다.

지난 5월22일, 언제나 그렇듯 ‘혹시나’하는 마음으로 퇴근길에 동묘 인근 골목을 헤집고 다녔다. 한 골동품점 앞에서 재킷 없는 엘피, 이른바 ‘알반’ 30여장을 발견했다. 먼지를 뒤집어쓴 알반 더미를 뒤졌다. <정훈희 골든 2집>이 있었다. 알반은 수집가치가 떨어진다. 재킷 자체가 작품으로 평가받는 데다, 엘피를 완성하는 필수 구성 요소이기 때문이다.

“아저씨 오기 전에 얼른 가져가”

하지만 <정훈희 골든 2집>은 알반이라도 구해야 할 처지였다. 엘피를 모으는 걸 알고 우리 집을 찾는 이들은 정훈희의 ‘안개’를 틀어달라고 한 적이 많았다. 지난해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 삽입곡으로 정훈희·송창식이 함께 부른 ‘안개’가 인기를 끌면서 생긴 일이다. 그런데 내가 가진 1500장이 넘는 엘피 목록에 정훈희의 ‘안개’는 없다. 이른바 ‘고고춤’이 유행하던 1978년 히트레코드사가 이봉조·마상원·김준규·황문평 등 작곡가 12명의 히트곡을 담아 발매한 <최고히트 가요 GOGO 생음악 1집> 엘피를 오래전에 구했는데 이 음반에 이봉조가 작곡하고, 마상원이 편곡한 연주곡 ‘안개’가 들어있다. 빠른 템포의 ‘안개’를 듣는 귀 호강에도 사람들은 “연주곡 말고 정훈희가 부른 안개를 듣고 싶다”고 아쉬워했다.

오아시스 레코드가 1972년 11월에 낸 <정훈희 골든 2집>엔 ‘안개’(1970년 동경가요제), ‘너’(1971년 그리스 국제가요제) ‘좋아서 만났지요’(1972년 동경가요제) 등 국제 가요제 수상곡 3곡을 비롯해 12곡의 히트곡이 수록됐다. 더욱이 2면 5번 트랙에 실린 ‘눈 속의 연인들’은 재미있는 사연까지 간직하고 있다. 정훈희는 1972년 4월 발표한 ‘빗속의 연인들’이 인기를 얻으며 재기했다. 하지만 그해 여름 기록적인 폭우로 홍수가 나면서 서울 시내가 물바다가 된 뒤 방송에서 이 곡이 나오면 시민 항의가 빗발쳤다. 정훈희는 결국 그해 11월 음반을 내면서 가사와 제목을 ‘눈 속의 연인들’로 고쳐 취입했다. 이런 사연을 담은 <정훈희 골든 2집>은 안 그래도 귀한 음반인데 영화 <헤어질 결심>으로 수집 열풍이 불면서 더욱 귀하신 몸이 됐다.

그런데 엘피를 수집하는 이들이 뻔질나게 오가는 동묘 한복판, 그것도 엘피 전문점 바로 옆집 골동품점에서 이 음반을 발견한 건 행운이다. 순간 마음속으로 가늠했다. ‘주인은 얼마를 달라고 할까?’ 재킷 없는 알반이지만 나름 힙한 ‘안개’가 실렸고, 재킷까지 있었으면 수십만원을 호가할 테니 5만원까지 쓸 결심을 했다. 언제 또 이 음반을 만난다는 보장도 없고, 한장은 꼭 갖고 있어야 한다는 욕심에 ‘희귀 음반도 최대 3만원을 넘기지 않고 산다’는 짠내 수집 원칙을 깨기로 한 것이다.

“사장님, 이거 얼마예요?” 한 10만원쯤 부르면 흥정을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거 만날 거기 내놓는 것도 힘들어 죽겠어. 한꺼번에 만원에 가져가요. 우리 아저씨 오기 전에 얼른 다 가져가요. 이제 가게 문도 닫아야 하니까.”

주인아주머니는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엘피 전문점 옆에서 골동품을 전문으로 취급하면서 재킷 없는 엘피 더미를 매일 잘 보이는 곳에 옮겨 놓는 게 힘겨운 듯했다. ‘이거 웬 횡재?’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먼지 쌓인 엘피 30여장을 통째로 집어 들었다. 그랬더니 아주머니가 가게 한구석을 뒤지고 알반 20여장을 더 갖고 나왔다. “자 이거까지 만오천원 줘요. 어때? 매일 옮기는 게 힘들어서 다 처분하는 거야. 이 정도면 거저야 거저.” 미국 잡지 <리더스다이제스트>가 낸 클래식 엘피 세트 사이에서 변진섭·이승철 등 가요 음반도 눈에 띄었다.

이쯤이면 대박이다 싶어 얼른 2만원을 건네고 거스름돈 5천원을 받으려 했다. 아주머니는 또 가게 안으로 들어가더니 잡동사니 사이를 헤집는다. “여기도 몇장 더 있네. 그냥 2만원에 다 가져가는 거로 하지? 응?“ 나는 답했다. “아~ 예 예, 그냥 다 싸주세요. 가져갈 수만 있게.“ 아주머니는 마대자루같이 질기고 큰 검은 비닐봉지에 모든 엘피를 쓸어 담듯 넣었다.

한장당 300원…15년 수집역사 최저가

심장이 쿵쾅쿵쾅…‘이 집 아저씨가 들어와 마음 변하기 전에 얼른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하며 재활용품 수거하는 고물장사처럼 어깨에 검은 보따리를 둘러메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집에 와 보따리를 풀었다. <정훈희 골든 2집>뿐이 아니었다.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 ‘희야’ 등 히트곡이 실린 이승철 정규 1집 <이승철 Part1>(아시아레코드·1988년)과 그 후속작인 <이승철 Part2>(아시아레코드·1989년>, 정규 2집인 <이승철-노을 그리고 나>(아시아레코드·1990년) 등이 나왔다. ‘홀로 된다는 것’ ‘새들처럼’ 등이 실린 변진섭 1집 <변진섭 독집앨범>(한국음반·1988년), ‘너에게로 또다시’ ‘희망사항’ 등이 담긴<변진섭 2집>, 김현식·신형원·권인하·강인원이 함께 만든 컴필레이션 음반 <비 오는 날의 수채화 1>(지구레코드·1989년) 등 다른 가요 음반도 여러 장 섞여 있었다.

가수 이름조차 없는 음반 한장이 눈을 끌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인터넷을 검색했다. 앨범 이름 자체가 <매혹의 하이보이스 황규현 누구일까?>(성음·1971)였다. ‘애원’ 등으로 인기를 구가한 황규현의 노래뿐 아니라 이 음반엔 1960년대 스타였던 조애희의 ‘그 사람 바보야’, 이정화의 ‘싫어’도 함께 수록돼 있었다. 재킷까지 온전히 갖춘 미개봉 엘피가 50만원을 호가하는 나름 희귀 음반이었다. 입이 찢어진다. 캔맥주 한잔 하며 밤새 음반을 닦고 분류했다.

<라이온킹>, <인어공주>, <알라딘 >등 애니메이션 삽입곡 음반도 있었다. 클래식 음반 세트 등을 포함해 모두 68장이었다. 엘피 한장당 약 300원꼴이니 짠내 수집 15년 만에 가장 저렴하게 구매한 셈이다. 재킷 없는 알반이어도 걱정 없다. 몇년 전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가 수록된 <다시 불러보는 노래 백설희 이미자>(지구레코드·1968) 알반을 먼저 구하고 나중에 빈 재킷을 찾아 채워 넣은 것처럼 돌고 돌다 보면 언젠가 ‘완전체’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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