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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큼하고 순수한…뉴질랜드 화이트 와인의 최고봉 [ESC]

등록 2023-05-27 12:00수정 2023-05-28 09:27

권은중의 생활와인 누알라 소비뇽 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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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소비뇽 블랑은 와인계의 ‘엄친아’다. 와인 소비자가 많이 참고하는 와인 커뮤니티 비비노의 평점(5.0만점)이 대부분 4점대를 기록하고 있다. 2만원대의 중저가 와인들도 대부분 그렇다. 이런 뉴질랜드 와인 중 평점이 가장 높은 것이 누알라 소비뇽 블랑이다. 2018년 빈티지는 무려 4.5점을 받았고 2022년 것도 4.4점이다. 2018년 빈티지는 비비노에서 그해 수많은 화이트 와인 중 1위로 뽑히기도 했다. 물론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을 사시사철 즐기는 나에게 비비노 평점은 주요한 참고 대상은 아니다. 하지만 4.5점이라니? 이 정도면 엄친아 중에 엄친아 아닌가. 그래서 늘 호기심이 생겼던 와인이다.

지난 주말 후배 부부가 도봉산 정상이 보이는 자신의 집 옥상에서 바비큐 파티를 한다고 나를 초대했다. 이날 함께 초대받은 일행 가운데 한 사람이 이 와인을 들고 와 ‘엄친아’를 만날 기회를 가졌다. 나는 바비큐라고 해서 으레 고기 중심일 줄 알고 이탈리아 레드를 들고 갔다.

하지만 후배의 남편(전직 셰프)은 수박부터 구웠고 널찍한 옥상에서 키운 루콜라와 민트, 시소 잎에 올려 샐러드로 내주었다. 도봉산 정기 머금은 살랑살랑한 미풍을 맞으며 구운 수박 샐러드와 함께 마신 누알라는 상큼했다. 누알라는 마오리족 말로 ‘순수’라는 뜻인데 이름 그대로였다. 쨍하면서도 섬세했다. 가냘프고 우아한 백조의 날갯짓과 하얀 레이스의 식탁보에 놓인 열대 과일의 정물이 떠올랐다.

구운 갑오징어를 올린 감자요리.
구운 갑오징어를 올린 감자요리.

이어서 갑오징어가 그릴에 올려졌다. 갑오징어 바비큐는 갑오징어를 무척이나 즐기는 이탈리아에서도 잘 못 봤다. 이탈리아에서는 주로 토마토소스와 콩과 함께 졸여 먹는다. 누알라와 갑오징어 매칭은 좀 더 짜임새가 있었다. 여릿여릿해 보이는 누알라의 반전이었다.

누알라는 향을 끌어내기 위해 저온 발효를 한다. 또 화이트 와인으로는 특이하게 약간의 찌꺼기와 함께 발효해 중층적인 향을 입혔다. 여기에 약간의 미네랄 감도 있어 그릴에 구운 갑오징어의 풍미에도 와인이 전혀 밀리지 않았다. 4.5점을 받은 ‘순수’(누알라)에는 나름의 꼼꼼한 연출이 있던 셈이다. 누알라를 생산하는 와이너리는 2010년 프랑스 양조가를 영입해 와인의 정석대로 뉴질랜드의 지역 특징을 와인에 반영해왔다. 누알라 와인이 라벨에 암모나이트의 화석을 그려놓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해가 지자 후배의 집 옥상에는 빨랫줄처럼 걸어놓은 알전구가 켜졌다. 휴일에 캠핑을 즐긴다는 후배 부부의 젊은 감각에 모두들 감탄하고 있을 때 블루투스 스피커에서는 선우정아의 ‘도망가자’가 나왔다. “도망가자/ 멀리 안 가도 괜찮을 거야/ 너와 함께라면 난 다 좋아/ 너의 맘이 편할 수 있는 곳.”

도봉산을 보면서 설악산쯤에 앉아있다는 착각을 주는 건 노래 가사처럼 탁 트인 풍광과 맛있게 구워진 바비큐 음식과 상큼한 누알라 와인 덕분일 것이다. 수억년을 견디는 암모나이트 껍질처럼 딱딱하고 아름다운 추억을 또 하나 새기는 토요일 저녁이었다.

글·사진 권은중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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