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가요 대중화를 이끈 <노래를 찾는 사람들> 정규앨범 1,2,3집. 이정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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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볕 내리는 날 뜨거운 바람 부는 날/ 붉은 꽃잎 져 흩어지고 꽃향기 머무는 날/ 묘비 없는 죽음에 커다란 이름 드리오/ 여기 죽지 않은 목숨에 이 노래 드리오/ 사랑이여 내 사랑이여.’
43년이 지났지만 ’오월의 노래’만 들으면 가슴이 먹먹하다. 1980년 광주에서 수많은 희생이 있었지만 아직 발포 명령자조차 밝히지 못했다. 학살자 전두환은 사죄도 없이 죽었다.
‘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너의 붉은 피/ 두부처럼 잘리워진 어여쁜 너의 젖가슴/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전두환과 신군부가 권력을 찬탈한 1980년대 초반 대학가 집회 현장에서 많은 이들이 5월 광주에서 벌어진 계엄군의 학살을 고발하는 또 다른 ’오월의 노래’를 목놓아 불렀다. 하지만 그 때, 그 어떤 ’오월의 노래’도 정식 음반에 담을 수 없었다. 서슬 퍼런 시절이었다.
그 강고한 벽에 균열을 낸 건 김민기였다. ‘늙은 군인의 노래’, ’아침이슬’ 등을 작사·작곡하며 유신 정권 저항 문화의 아이콘이었던 김민기는 민중가요가 담긴 프로젝트 음반 발매를 시도한다. 김민기는 서울대학교 ‘메아리’ 등 대학 노래패에서 활동했던 이들이 노래운동을 위해 창립한 ‘새벽’ 멤버를 중심으로 1984년 첫 음반을 냈다.
서라벌레코드사를 통해 발매한 <노래를 찾는 사람들 1집>이다. 그런데 대학가나 시위 현장에서 불리던 대표적 민중가요는 담기지 않았다. 전두환 정권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해 음반을 내는 데 최우선 목표를 두고 그 벽을 넘을 만한 서정성 짙은 곡을 선정한 탓이다. 당시 공연윤리위원회회는 특히 김민기가 음반을 내고 합법적으로 다시 활동하는 것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며 음반에서 그의 이름만 빼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1집엔 조영남이 부른 건전가요 ‘너와 내가’를 비롯해 모두 10곡이 담겼는데, 일제 강점기 저항시인 이상화의 시에 곡을 붙인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김기수가 작사·작곡한 ‘일요일이 다 가는 소리’ 정도가 이른바 당시 운동권에 익숙한 노래였다. 그래서 대중적 반응은 고사하고 운동권에서도 반향 없이, 시쳇말로 그냥 잊혔다.
<노찾사 1집>은 ‘87년 민주화 운동’이 폭발하면서 화려하게 소환됐다. 서울음반이 1987년 5월31일 재발매했는데 6·10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이 들불처럼 번지면서 노찾사는 집회현장에서 대중에게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엘피(LP) 수집가들은 1984년 발매 뒤 잊힌 서라벌레코드사 음반을 구하는 데 집중한다. 초반에 발매량도 적었기에 나름 귀한 대접을 받는다. 반면 6월 항쟁 이후 대박 난 서울음반의 재발매반은 지금도 웬만한 엘피판매점에 가면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짠내수집가인 나 역시 1집 초반을 찾아 오랜 세월 헤매고 다녔지만 아직 손에 넣지 못했다. 10년 전인 2013년 서울 중구 황학동 한 디브이디 수리점에서 단돈 3천원에 구한 재발매반에 만족하고 있다.
87년을 경험한 세대인 나에게 노찾사 정규 앨범 1·2·3·4집 엘피를 온전히 모으는 건 ‘짠내수집 버킷리스트’ 가운데 하나다. 1989년 10월 서울음반이 제작한 <노찾사 2집>, 1991년 3월 같은 회사가 제작한 <노찾사 3집> 초반은 비교적 쉽게 찾았다. 2집은 동묘 노점에서 5천원, 3집은 신설동 풍물시장 인근 노점에서 1만원에 샀다.
<노찾사 2집>엔 익숙한 민중가요가 많다. 광주의 비극을 은유와 서글픈 서정으로 노래한 그 ’오월의 노래’를 비롯해 4·3 제주 항쟁을 다룬 ‘잠들지 않는 남도’ , 그리고 80년대 집회 현장에서 떼창한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광야에서’, ‘그날이 오면’ 등 대표적 민중가요가 담겼다. 특히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하얀 나비 꽃 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라는 노랫말이 담긴 ‘사계’는 당시 방송사 대중가요 인기차트 상위권에 진입한 히트곡이었다. 지금도 봄만 되면 ‘사계’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온다. 혼성그룹 거북이가 다시 부르는 등 다양한 리메이크 버전도 탄생했다. 1집에선 이젠 전설이 된 김광석이 노래도 부르고 하모니카도 불었다면, 2집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로 유명해진 안치환이 참여했다. 노찾사 2집은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고, 무려 80만장이나 팔렸다고 한다.
<노찾사 3집>엔 양성우 시인의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김지하 시인의 ‘녹두꽃’이 담겼다. 그리고 고인이 된 백기완 선생이 노랫말을 만들고 김종률이 곡을 붙인 ‘임을 위한 행진곡’이 뒷면 마지막 트랙에 담기면서 3집의 가치는 정점을 찍었다. 국가가 주관하는 5·18 기념식에서 불릴 만큼 ‘80년 광주’를 상징하는 대표곡으로 자리 잡았지만 박근혜 정부에선 제창 여부를 두고 논란을 빚을 만큼 보수 쪽엔 알레르기 반응을 유발하는 노래다.
노찾사 정규앨범 중 가장 귀한 대접을 받는 건 <노찾사 4집>이다. 기존 운동권 감성으로는 변화한 시대에 대응하지 못한다고 판단한 노찾사는 1994년 발매한 이 음반을 통해 대변신을 모색했다. 소설가 공지영이 노랫말을 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비롯해 ‘동물의 왕국’, ‘끝나지 않은 노래’, ‘우리 큰 걸음으로’, ‘떠나 와서’ 등의 새로운 스타일의 곡을 다수 실었다. 팝 발라드, 록, 포크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시도한 것이다. 특히 ‘끝나지 않는 노래’는 노찾사 멤버 가운데 솔로로 독립한 김광석, 안치환, 권진원 등 쟁쟁한 가수들이 함께 불렀다. 노찾사가 자체 기획해 서울음반을 통해 엘피, 시디, 카세트테이프로 동시 발매할 만큼 힘을 쏟았다. 그런데 주목받지 못했고 노찾사 마지막 정규 앨범이라는 비운의 음반이 됐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5월 들어 온라인 중고 엘피점, 당근마켓은 물론 신설동 풍물시장과 동묘, 황학동 엘피 전문점을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어디에도 <노찾사 4집> 엘피는 고사하고, 시디도, 카세트테이프도 없었다. 황학동 한 엘피전문점 사장은 “1990년 초 국외에선 엘피 제작을 끝내고 시디로 넘어간 시기라 국내에서도 94년 나온 노찾사 4집이 엘피 시대의 거의 마지막 음반이고, 그나마 팔리지 않아 몇장 찍지도 못했다. 어딘가에서 발견하면 최소 50만원을 받으려 할 것”이라고 귀띔하며 “음질이 그때와 같을 순 없지만 재발매반을 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레트로 열풍을 타고 다시 엘피를 찍어내는 마장뮤직앤픽쳐스는 지난해 노찾사 38주년을 기념해 <노찾사 1,2,3,4집 박스반> 500장을 특별 제작해 서울국제오디오쇼에 출시했고 <노찾사 4집> 재발매반은 추가 제작되기도 했다. 이렇게 유통되는 노찾사 엘피는 4만원대 중반의 할인가로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짠내 수집이 아니고 그저 새 제품 구매일 뿐이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내 손안에 꼭 올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기다린다. 1집 초반과 4집 초반을 내 손에 들고 버킷리스트 완성을 외칠 그 날을 고대한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