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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연이 아니라 강백호가 되고 싶다, 흰 선 넘은 풋살러들 [ESC]

등록 2023-04-01 13:21수정 2023-04-01 13:29

오늘하루운동 풋살
몸 부딪치는 희열, 우연한 행운
여성풋살팀 부족해 ‘진입 장벽’
‘골때녀’ 계기로 전국 100여개
2021년 4월 풋살에 관심있는 친구들을 모아 ‘왕초보' 대상 원데이 클래스를 열었다. 1시간 훈련을 마치고 정식 경기를 하는 모습.
2021년 4월 풋살에 관심있는 친구들을 모아 ‘왕초보' 대상 원데이 클래스를 열었다. 1시간 훈련을 마치고 정식 경기를 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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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이 공을 차기 시작했다! 그 소식만으로 나는 입이 귀에 걸린다. 조금 더 신기하고 고무적인 건 지난해부터 다양한 회사에서 풋살 동호회가 만들어졌고, 본격적으로 공차기를 시작하게 된 친구들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회사 여자풋살 동호회에서 몇 차례 운동하고 온 친구 지수(가명)는 “현대인에게 너무 잘 맞는 운동”이라며 좋아한다. “정해진 시간 안에 결과를 만들어내는 스포츠라는 점이 그래. 다 함께 골을 넣는다! 골을 많이 넣는 팀이 이긴다! 엄청 성과 지향적이잖아? 나도 몰랐는데 내가 성과를 보는 걸 좋아하더라!” 지수는 체육 시간에 땀 흘리지 않고 한쪽에 빠져있는 것이 더 ‘인싸’라고 여겨지던 학창 시절을 지나 요가, 복싱 등 취미 삼을 운동을 찾아다닌 시기도 있었지만 늘 3개월을 넘기진 못했다. 나도 지수와 달리기도 해보고 등산도 가봤지만 이렇게 적극적인 모습은 처음이라 낯설다.

여자 10명 모여 운동하는 진귀한 경험

이처럼 해보기 전까지는 모를 수밖에 없는 게 팀 스포츠, 풋살의 재미다. 축구보단 적은 인원이라 해도 적어도 10명은 모여야 할 수 있는 종목이다 보니, 대부분의 여성들에게는 내가 이 운동과 맞는지 경험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여자 10명을 모아 공을 찰 기회를 만나는 것은 살면서 우연히 만나기엔 어려운 행운이니까.

비슷한 시기에 풋살을 시작한 혜정(가명)도 풋살의 재미에 푹 빠진 듯하다. 평소에 늘 달리기, 자전거, 수영 등 다양한 운동을 꾸준히 하는 친구였기에 풋살은 뭐가 다른지 내게 물었다. “몸을 부딪치며 친해진다는 거. 그게 뭔지 알 것 같아?” 나의 대답이었다. 풋살은 꽤 격렬한 스포츠다. 공만 따라다니면 된다 생각하지만 팔과 다리, 온몸을 부딪치며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격렬함이 주는 매력이 굉장하다. 지옥철에서의 어깨싸움은 피해야 할 일이지만 피치(풋살 경기장) 위에선 몸싸움을 버티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렇게 부딪치다 보면 아무래도 회사 일을 할 때와는 다른 면모들을 발견하게 된다. 나이 많은 선배가 나보다 더 좋은 체력을 뽐내며 악착같이 공을 뺏어내는 모습, 사내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후배가 어깨를 펴고 운동장을 힘차게 누비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나면 서로를 이해하고 생각하는 마음이 쌓여 더 끈끈한 소속감으로 이어진다.

이 소속감을 바탕으로 공동의 목표를 향해 함께 달린다는 것 또한 풋살의 큰 매력이다. 달리기, 수영과 같이 주로 혼자 하는 종목들을 해왔던 혜정은 “혼자 하는 운동들은 스스로 내 한계를 깨고 넘어서야 하니 운동이 잘 안 되거나 성장이 더딜 때 나에게서 원인을 찾을 수밖에 없는데, 팀 운동을 공동의 목표를 향해 달리며 함께 결과를 만들어간다는 사실이 든든하고 위안이 된다”고 했다. 5분만 뛰어도 달리기 30분 한 것 같은 체력 단련은 덤.

풋살의 매력을 묻자 술술 읊는 친구들. 이제 막 풋살을 시작한 친구들의 달뜬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그들이 앞으로 피치 위에서 경험할 기쁨, 좌절, 희열의 감정과 경험들이 그려져 덩달아 숨이 가빠진다. 동시에 풋살의 매력에 푹 빠져 동동거리던 그때의 내가 떠오른다.

풋살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이미 풋살의 매력에 푹 빠져버린 나는 ‘이 재미난 걸 왜 여태 몰랐지? 모든 여자들이 한 번쯤은 공을 차봐야 해!’라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왜 여태 몰랐는가?’를 따져보고자 내가 풋살을 시작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생각해봤다. 축구광 아버지와 남동생 사이에서 내게 축구는 가깝고도 먼 스포츠였다. 두 남자가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내가 직접 하겠다는 생각은 못 했으니까. 그러다 스무살이 넘어 문득 ‘나도 공을 차봐야겠어!’ 마음먹었고, 열심히 온라인에서 ‘여자 축구, 여자 축구팀, 축구 동호회’ 등을 검색해봤지만 손에 잡히는 결과는 미미했다. 동네 인근에서 여성 축구단이 하나 나왔는데 오전 훈련 위주여서 학교 시간표와 맞지 않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서른이 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꽤 오랜 시간 꾸준히 활동하는 여자풋살 동호회가 더러 있었는데, 공을 한 번도 차보지 않은 왕초보 초심자의 입장에서는 이런 팀에 신입회원으로 들어가지 않는 이상 운동장을 기웃거릴 시도도 할 수 없었다. 신입회원을 모집하는 경우에도 ‘왕초보 가능’이란 조건이 있어야 그나마 도전할 용기라도 내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여자풋살팀 전국지도 화면 갈무리. 2021년 11월 마지막으로 업데이트 하면서 100여개 팀을 지도 위에 기록했다.
여자풋살팀 전국지도 화면 갈무리. 2021년 11월 마지막으로 업데이트 하면서 100여개 팀을 지도 위에 기록했다.

해시태그로 여자풋살팀을 모았다

주변에서 공 차는 여자를 본 적이 없는 건 물론이거니와 정보를 발 벗고 찾아 나서도 운동장에 나가는 것으로 이어지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고 어려운 환경이다. 나 또한 이런 어려움을 다 겪은 후에 시작한 만큼 더 많은 여자들이 운동장에 나설 수 있도록 여자풋살 정보 페이지와 전국에 존재하는 여자풋살 동호회를 찾아 지도를 만들기로 했다.

먼저 해시태그로만 찾아볼 수 있는 정보를 한 곳에 그러모았다. #서울여자풋살, #부산여자풋살, #제주여자풋살… 지역을 달리하며 전국의 여자풋살팀을 찾았다. 처음 정리한 표엔 60여개의 팀이 모였다. ‘와 생각보다 많네?’ 주로 사용하는 풋살장을 기준으로 지도를 만드니 나름 전국 곳곳에 점이 찍혔다. 전국 곳곳에 공 차는 여성들이 있다는 걸 눈으로 확인하자 괜스레 마음이 든든했다.

그쯤에는 여자풋살 원데이클래스와 월별 강좌도 많아지고 있던 터라 꼭 팀에 들어가는 게 아니더라도 풋살을 접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정보도 함께 담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페이지를 오픈했고, 여자풋살팀 전국지도의 누적 조회 수는 5만뷰를 넘겼다. 그해 시작한 <에스비에스>(SBS)의 예능 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의 인기와 함께 여자풋살 저변이 급속도로 넓어졌고, 1년 후에는 지도 위에 100개가 넘는 팀을 표시할 수 있었다.

몇 년 새 정말 많은 여성들이 공을 차기 시작했다. 각종 서비스가 생겨나서 마음만 먹으면 집 근처로 풋살을 배우러 갈 수 있고, 원한다면 동호회에 가입할 수 있게 됐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켜면 공을 차는 여성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풋살러’로서의 여정을 시작한 지수가 말한다.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는 슬램덩크의 소연, 아니 소연의 친구쯤으로 코트 밖에 서서 라인을 넘어설 생각조차 하지 않는 사람이었어. 흰 선 안의 세상은 내 것이 아닌 것 같았거든? 그런데 이제 내가 그 선을 넘어섰고, 이왕이면 강백호가 되고 싶어.”

풋살을 시작한 내 친구들처럼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이 터치라인을 넘어 피치 위로 올라왔으면 한다. 이 안에서 부딪히고 넘어지며 더 끈끈하게 연결되길, 공을 차며 피치 위를 누비는 여자들이 더는 낯선 존재가 아닌 날이 오길 바란다.

글·사진 장은선 다큐멘터리 감독

온라인 매체 <닷페이스>에서 사회적 이슈를 담은 숏다큐멘터리를 만들어왔다. 현재는 영상 제작사 ‘두마땐필름’을 운영한다. 3년 전 풋살을 시작한 뒤로 인스타그램 @futsallog에 풋살 성장기를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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