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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말 로버트 레드포드는 월터 살레스 감독에게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의 영화화를 제안했다. 월터는 3년간 2차례에 걸쳐 체 게바라의 행로를 따라갔고, 체의 친구·가족과의 인터뷰, 체의 <나의 첫 번째 큰 여행>과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알베르토의 <체와 함께 한 남미여행> 등을 종합하여 5년 만에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2004년 한국에서 <모터사이클 다이어리>가 개봉됐다. 평론가들은 ‘실재했던 체’와 ‘영화 속의 체’가 다르다고 불평했다. ‘책으로 읽은 체’와 ‘영화 속의 체’를 비교하며 ‘체는 이런 청년이었다’고 강변했다. ‘서울 안 가본 사람을 서울 가 본 사람이 못 이긴다’는 속담이 떠올랐다. 그들도 남아메리카를 직접 종주하며 길 위의 청춘들을 만나면 월터 살레스의 시선에 공감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집 떠난 체와 알베르토는 모터사이클이 부서지기 전까지는 무모하고 철딱서니 없는 청년에 불과했다.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라고 부르지만 바이크 여정은 짧고, 칠레에서 바이크를 버리고 난 후 변화의 단초가 풀린다. ‘두 사람만 올라탄 여정’에서 트럭, 버스, 두 발로 이동하며 ‘민중과 함께 탄 여정’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경로 중 체가 가장 설레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처음으로 아르헨티나에서 칠레로 국경을 넘는 날이었을 것이다. 국경을 넘기 전 마지막으로 묵은 도시는 산카를로스데바릴로체. 안데스 아래 호수들이 꽃잎처럼 내려앉은 ‘레이크 디스트릭트’를 지나며 체는 다짐했다. ‘세상을 돌아다니다가 지치면 아르헨티나로 돌아와 안데스산맥 호숫가에 정착할 것이다.’ 두 사람은 바이크를 선박에 싣고 바릴로체를 떠났다. 여정은 국경 넘어 페우야, 오소르노, 발디비아로 이어졌다.
나는 2016년 10월, 아르헨티나의 바릴로체에서 칠레의 발디비아까지 버스를 타고 단번에 갔다. 체가 지났던 국경은 폐쇄되고 231번(칠레에선 215번) 도로가 새로 생겼기 때문이다. 안데스를 넘는 사이 설산이 진눈깨비를 흩뿌렸다. 오소르노 화산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길 반복했다. 카예카예강, 카우카우 강, 크루세스 강의 합류 지점에 자리한 발디비아에 닿았다. 칠레에서 오래된 도시 중 하나였다.
체가 발디비아에 도착했던 날은 도시 설립 기념행사 기간이었다. ‘발디비아 주간’이라고 부르는데 축제는 2월 초부터 2월 말까지 이어진다. 지금도 이 기간엔 식민지 시절 시위를 재현한 행사를 비롯, 공예품 시장, 강의 여왕을 뽑는 미인대회 등 전통행사가 열린다. 체는 축제의 흥에 취한 시민들의 환대 때문인지 칠레인의 친절을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그리고 신문사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여행계획을 꽤 거창하게 떠들었던 모양이다. 테무코에서의 인터뷰까지 더해져 일약 스타가 되었으니까. 나비효과처럼 미래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을까? 체는 허풍으로 받은 환대와 감탄과 칭찬과 관심에 보답하기 위해 '체의 길'을 갔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예약한 호스텔은 독일식 목조 주택이 늘어선 거리에 있었다. 배낭을 던지고 밖으로 나왔다. 칠레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뒤 유럽인이 경제·문화에 긍정적 영향을 줄 거라는 판단으로 독일에 이민자 유치 사무소를 열었다. 수천명의 독일인을 비롯해 오스트리아, 헝가리인이 발디비아에 정착했다. 지금도 발디비아에선 독일 옥토버페스트와 유사한 맥주 축제가 열린다.
산카를로스데바릴로체를 둘러싼 안데스 산맥과 호수들.
‘강변수산시장’으로 향했다. 바다사자들이 거슬러 와 강가에서 졸고 갈매기가 날아다니는 탓에 바다인지, 강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시장은 “이전에 보지 못한 온갖 상품들이 가득했다. 다양한 먹거리를 파는 시장…모든 것이 아르헨티나와 달랐다”던 체의 일기와 바뀐 게 없었다. 태평양에서 잡은 싱싱한 생선과 조개류가 놓인 좌판 사이 아주머니가 해산물 스튜를 팔고 있었다. 홍합, 조개, 생선이 들어간 스튜 두 그릇을 단숨에 먹어 치웠다. 아르헨티나산 육고기만 먹다가 칠레산 해산물을 먹으니 살 것 같았다.
늦은 오후로 접어들자 젊은이들이 거리를 채웠다. 인구 16만, 한국의 충남 당진시와 비슷한데 아우스트랄종합대학교를 비롯해 산세바스티안, 산토토마스 등 여러 대학과 연구소가 있는 대학도시였다. 10대부터 20~30대 청년이 주축인 젊은 도시였다. 일몰 후 숙소로 돌아오니 나올 때와 달리 숙박객들로 가득했다. 하나같이 명찰을 달고 있었다. 단체관광객인가? “대학 행사에 참석하러 온 사람들이야.” 호스텔 주인이 귀띔해 주었다. 대부분 20~30대였고 금세 친해졌다. 그들은 나를 ’로’라고 불렀다. “로, 내일은 어디 갈 거니?” “코랄만에 다녀오려고” “멋진 곳이지, 식민지 시대 요새도 놓치지 마. 시간 나면 식물원에도 가.” “어디에 있는데?” “아우스트랄대학에 있어. 휴식하기 정말 좋은 곳이야!”
아침에 일어났을 때, 청년들은 콘퍼런스에 참가하러 나간 후였다. 코랄만으로 향했다. 해변 정류소에 버스가 섰다. ‘쓰나미 대피로’ 표지가 있었다. 인류가 지진을 관측한 이래 가장 센 리히터 규모 9.5 지진이 발생한 곳이 발디비아였다. 해안선을 따라가자 ‘안개의 성’이란 요새가 나타났다. 17세기 스페인 정복자들은 네덜란드 해군과 영국 해적을 막기 위해 대포 방어시스템을 구축했다. 스페인 군복 차림의 안내원이 식민지 시절 무용담을 주먹 불끈 쥐고 소리쳤지만 나는 졸음이 쏟아졌다. 내가 보기엔 스페인이나 네덜란드나 영국이나 약탈자이긴 마찬가지였으니까.
아우스트랄대학교로 갔다. 여의도 1.3배 면적의 테하섬에 있었다. 절반은 공원과 녹지고, 절반은 대학건물, 기숙사, 카페, 주택가가 뒤섞인 하중도였다. 중앙도서관 뒤에 식물원이 있었다. 저무는 햇살에 나뭇잎 반짝이는 오솔길을 지났다. 연못엔 연꽃들로 가득했다. 도서관을 나온 학생들이 벤치로 와서 담소를 나눴다. 나무 그늘 아래 청년들이 바비큐를 구워 먹으며 웃음을 터트렸다.
숙소로 오니 콘퍼런스에 다녀온 청년들이 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로, 우리와 같이 한잔 하자!” “좋지!” 맥주를 사 들고 술자리에 동참했다. 국제환경 콘퍼런스에 참가한 젊은이들이라선지 환경에 관한 대화가 이어졌다. 난 한국에선 ‘국립공원에 케이블카를 놓으려는 시도가 반복된다’는 말을 꺼냈다. 다들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산티아고 대학원생인 영국인 제이슨은 “국립공원이면 개발사업을 할 수 없고, 개발사업을 하면 국립공원이 아니잖아?”라고 말했다. (여행 당시인 2016년 한국에선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설치를 둘러싼 논쟁이 뜨거웠고 환경부는 올해 2월 환경영향평가 협의를 통해 이 사업을 허가했다)
나는 제이슨에게 되물었다. “그럼 알프스의 그 많은 케이블카는 뭐니?”
“알프스의 경우 환경에 대한 관심이 낮던 20세기에 설치한 케이블카가 대부분이야. 게다가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여러 나라에 걸친 산맥이다 보니 관광객을 타국에 뺏기지 않으려고 경쟁적으로 놓은 측면도 있어. 한국이 국경이 잇닿는 나라와 경쟁하는 것도 아닌데 자국의 국립공원을 파괴하려는 건 이해가 안 돼.”
일본계 브라질인 카밀라가 말을 이었다. “할머니 고향에 간 적이 있어. 후지산 등산로에 케이블카를 놓지 않는 건 경외감 때문이야. 일본 최고 산을 쉽게 오를 수 있는 곳으로 만들 순 없다는.” “아르헨티나도 마찬가지! 남미 최고봉 아콩카과산을 돈벌이에 이용할 순 없지!” 아르헨티나 멘도사에서 온 디에고가 말했다. “관광수입도 중요해. 그러나 토레스델파이네 국립공원은 편의시설, 잘 보전한 자연으로 트래커를 불러들여. 케이블카를 놓는다면 환경법원에 제소해야지!” 처음 듣는 단어였다. “환경법원이 뭐니?”
“이번 콘퍼런스도 환경법원이 주최한 거야. 환경 파괴, 과도한 개발, 공기·수질오염 등 환경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상급 법원이야. 판사가 법률에 대해선 잘 알겠지만 자연, 생물, 해양 문제에 관해선 전문가가 아니니 올바른 판단을 하긴 쉽지 않아. 그래서 과학전공자와 법률가가 파트너십을 이룬 환경법원을 따로 둬.” “한국에도 환경부가 있긴 해.” “그건 행정부잖아. 정치인이나 정당에게 백년, 아니 천년의 지구환경을 맡길 순 없어. 정부 성향과 상관없이 삼권분립 된 사법부에 환경법원을 따로 둬야지.” 칠레 대학원생인 페데리코가 말했다.
“다른 나라에도 환경법원이 있니?” “1980년 호주의 뉴사우스웨일즈에서 처음으로 설립된 뒤 뉴질랜드, 영국, 캐나다, 미국, 프랑스 등으로 확산됐어. 현재 40여개 나라에 환경법원이 있지. 전 세계적으로 늘어나는 추세야.” 얘기를 듣던 제이슨이 덧붙였다. “사안별 환경운동도 중요하지만, 환경법원처럼 건강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더 중요할 수도 있어.”
호스텔 마당에서 토론이 이어졌다. 지구 반대편의 일이지만, 어느 곳이든 지구였기 때문이다. 토론은 해양오염, 플라스틱 쓰레기로 가지를 쳤다. 청년들의 열띤 목소리를 듣는 사이, 체 게바라가 멕시코시티에서 피델 카스트로 등 혁명가들과 벌이던 논쟁 속으로 빨려 들어간 듯한 기분이었다. 문득 21세기의 체 게바라는 지구환경을 위해 싸우는 활동가 중에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지금 지구 어느 곳에서 철부지 여행자가 파괴되어가는 지구환경을 목격하면서 또 다른 존재로 변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가 또 다른 체 게바라다.
글·사진 노동효 여행작가
화성으로 떠나기 전 인류 삶과 지구 풍경을 톺아보기 위해 여행하는 ‘길 위의 노동자'. ‘지구둘레길’은 작가의 과거 여행을 회고하며 현재적 의미를 톺아보는 여행기다. <남미 히피 로드>, <세계배낭여행자들의 안식처, 빠이>, <푸른 영혼일 때 떠나라>, <로드 페로몬에 홀리다>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