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무, 액젓, 고춧가루 등으로 양념을 만들어 넣고 시원하게 무친 달래 김치. 홍신애 제공
☞한겨레S 뉴스레터를 구독해주세요. 검색창에 ‘에스레터’를 쳐보세요.
“고추 먹고 맴맴 달래 먹고 맴맴.”
어릴 적 무심코 부르던 노래의 뜻을 가만 생각해보면 달래도 고추만큼 맵단 뜻인 걸까. 달래가 매웠나? 고개를 갸우뚱할 만한 질문이지만 달래를 씹으면 약간 아린맛이 나는 건 사실이다. 매운맛은 실제 여러 가지로 나뉘는데 우리가 흔히 맵다고 하는 고추의 매운맛은 캡사이신 성분 때문이다. 후추의 매운 맛은 피페린 성분, 마늘의 아린맛을 내는 알리신 성분 등을 비롯해 마비가 되는 것 같은 얼얼함의 대표주자 화자오(사천 후추)까지 매운맛은 사실 한 가지로 통일되기 어렵다. 어릴 적 부르던 노래는 의외로 한국의 다양한 매운맛을 표현하고 있었다. 고추의 캡사이신 성분도 맵고, 달래의 아린맛을 주는 알리신 성분도 맵다고 표현한 선조들의 지혜!
미국에 살 때 집에 작은 뒷마당이 있었다. 초봄, 아직 바람이 차가웠지만 푸릇푸릇한 것들이 나타나기 시작해 쳐다보니 얇은 부추 같은 게 삐죽 나와 있었다. 설마 달래인가 싶어 뽑아보니 달랑달랑 동그랗고 작은 뿌리가 달려 있다. 세상에 이게 웬 횡재인가 싶어 한 줌 가득 뽑아 들고 바로 씻고 다져서 달래간장을 만들어 따끈한 밥에 쓱싹 비벼 먹었다. 버터도 한 조각 넣었다. 직접 캔 달래로 만든 양념장에 비벼 먹는 밥. 충격적으로 맛있었지만 이후 달래를 캐는 횟수는 현저히 줄었다. 너무 많이 났기 때문이다. 나중엔 잡초 수준으로 돌변해 거추장스러워졌다. 크기가 커지면 보기 흉하게 꺾이고 휘어졌다. 결국 다 갈아엎어 버렸는데 다음 해에 또 났다. 질기고 질긴 생명력은 그 특유의 아린맛을 닮았다. 알리신…. 이름도 참 아리게 생겼다.
한국에서 달래는 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식재료 중 하나다. 언 땅을 뚫고 올라온 냉이, 달래 이런 나물들이 보이면 겨울이 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노지의 나물들은 철을 알리기에 충분한데 사실 달래는 이제 사철 재료다. 한국인의 달래 사랑이 지극해서인지 그 사랑에 부응하기 위해 개발된 하우스 재배가 꽤 오래전부터 성공적이라 이젠 가격이 문제지 제철이고 아니고가 중요하지 않은 시대가 왔다.
달래로 만드는 요리 가운데 가장 클래식한 것은 단연코 달래장이다. 별다른 것 필요 없이 다진 달래와 간장, 참기름 약간만 있으면 최고의 맛을 낼 수 있다. 달래의 알싸함과 간장의 달짝지근한 감칠맛, 그리고 참기름의 고소함은 누구에게나 맛있게 느껴진다. 된장찌개에 달래를 넣으면 찌개가 한결 가볍고 부담 없어진다. 이걸 ‘향긋하다’고 표현하는데 나에게 이 말뜻은 ‘더 많이 먹어도 부담스럽지 않다’는 뜻으로 다가온다. 달래는 찌개에 고기가 있거나 없거나 주인공이 된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것은 달래 부침개다. 달래를 통으로 동그랗게 말아 밀가루 반죽에 슬쩍 담갔다가 넉넉하게 두른 기름에 지져낸다. 밀가루 반죽에 약간의 간장과 참기름으로 밑간해 놓으면 얇게 옷을 입혀도 감칠맛이 살아나 달래와 조화를 이룬다. 열을 받은 달래는 향이 더 진해지고 아린맛은 줄어들고 단맛이 더해진다. 마늘을 구우면 단맛이 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아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달래로 김치를 담그면 그야말로 밥도둑이다. 평양이 고향인 집안 어른들의 초봄 김치 레시피를 큰맘 먹고 공개한다. 채 썬 배 혹은 무, 길게 자른 달래, 소금과 액젓, 고춧가루를 넣고 간단히 버무린다. 배나 무에서 나온 다디단 국물과 알싸한 달래가 어우러진 맛이 상큼하고 시원하다. 오래 놔두고 숙성해서 먹는 김치가 아닌, 바로 버무려 며칠 만에 먹어버리는 그야말로 봄 제철 김치다.
홍신애 요리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