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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너스의 탄생’이라는 보티첼리의 그림을 보면 사랑과 미의 여신 비너스가 커다란 조개껍데기 위에 유유히 서 있는 모습이다. 모든 사람이 그저 조개껍데기라고 이야기하는 커다란 그 조개는 사실 가리비처럼 생겼다. 반쪽만 남은 커다란 가리비를 살포시 딛고 일어선 여인. 누구나 이 명화를 마주하면 비너스를 먼저 주목할 텐데, 나는 반만 남은 가리비 껍데기에 눈이 갔다. 무슨 뜻인지 궁금했다. 가리비가 진주 대신 여신을 잉태하고 있었다는 뜻일까. 예전엔 가리비를 진주조개라고도 불렀고 실제로 진주 양식용으로 가리비를 많이 길렀다고도 한다. 비너스는 가리비 속 진주로 태어난 거다?
가리비는 이름도 특이하다. 가리비를 언제부터 가리비라고 불렀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고조선 시대의 조개 무덤에서 가리비 껍데기로 만든 가면이 출토된 것으로 미루어 짐작건대 우리와 아주 오랜 역사를 함께한 생물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식탁에 오르기 시작한 건 1990년대 후반이다. 양식이 보편화하면서 가격이 엄청나게 싸졌기 때문이다. 가리비를 예전에는 패주라고도 불렀다는데 사실 패주는 조개껍데기를 여닫을 때 사용하는 일종의 근육을 가리킨다. 가리비는 이 패주의 활동이 활발해서 바닷속을 빠르게 날아다니다시피 하며 사는 생물이다. 그 어떤 조개보다도 움직임이 빨라서 미국 만화영화 <스펀지밥>에서도 ‘바닷속의 새’로 묘사되곤 한다.
가리비 요리법 중 가장 인기 많은 방식이 찜이다. 가리비는 상당히 빨리 익는 편이라 수증기로 쪄도 금방 조리되고 맛도 있다. 물에 넣고 삶아도 되지만 국물에 맛이 다 빠져나가면 가리비 맛이 조금 떨어지게 마련이고 살도 더 쪼그라드는 단점이 있다. 가리비는 다른 조개들처럼 모래펄 속에 들어가 살지 않고 껍질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힘으로 날듯이 움직이며 활동을 활발히 하기 때문에 해감이 거의 필요 없다. 양식 가리비도 그물망에 가둬 모랫바닥에서 좀 떨어진 채로 기르기 때문에 해감이 필요 없는 것은 매한가지다.
시장에서 싱싱한 가리비를 구매해 흐르는 물에 휘리릭 한 번 씻어낸 다음 찜통에 넣고 찌면 간단히 요리가 끝난다. 찜 요리가 귀찮다면 오븐을 이용해보자. 가리비를 넓은 오븐 팬에 펼쳐 담고 화이트와인이나 맥주, 청주 등 술을 위에다 조금 뿌려준다. 그리고 200℃로 예열된 오븐에 넣고 7∼8분 가열해주면 그게 바로 가리비 술찜이다. 이렇게 찐 가리비는 소금간이 따로 필요 없다. 적당히 바다의 간이 배어있으므로 초고추장이나 고추냉이만 조금 곁들여도 좋다. 다진 마늘을 기름에 볶아 기름마늘장을 만들어 찍어 먹으면 감칠맛이 배가된다. 매콤한 맛을 원한다면 고추를 다져서 같이 먹는다. 가리비 특유의 단맛과 고추의 매콤함이 무척 잘 어울린다. 가리비를 조연으로 사용할 경우 라면이나 된장찌개, 각종 국물 요리에 몇 개씩 던져넣으면 국물이 시원해져서 요리의 맛이 업그레이드된다.
마늘과 함께 가리비를 볶다가 물과 기름을 더해 파스타를 만들면 봉골레 파스타가 된다. 봉골레는 이탈리아어로 조개를 뜻하는 단어이면서 조개가 들어간 오일 파스타를 말하기도 한다. 가리비를 넣은 봉골레 파스타를 만들 때는 마늘을 충분히 볶고 가리비와 물을 넣은 뒤 1분간 뚜껑을 닫아 가리비의 입이 열리면 그때 삶은 국수를 넣고 볶아내야 국수가 건조하지 않고 오일 소스도 맛있어진다.
홍신애 요리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