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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라도 소주도 ‘제로 슈거’…진짜 몸에도 ‘제로’야? [ESC]

등록 2022-11-18 07:00수정 2023-06-30 14:06

달콤한 유혹 앞에서 서성이는 이들 사로잡은 ‘당·칼로리 0’ 유행
“열량 줄였다지만 인공으로 낸 맛”“설탕보단 낫다” 의견 갈려
‘조건부 제로 칼로리 표시 가능’ 기준 이용, 앞뒤 다른 제품도
다양한 제로 슈거 음료수들.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다양한 제로 슈거 음료수들.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탄산음료를 단숨에 세 모금쯤 들이켜면 목구멍이 저릿하고 혀에 풍요로운 단맛이 감긴다. 이 쾌락에 제동을 거는 것은 음료 뒷면 영양성분표에 적힌 ‘당류’ 표시다. 355㎖ 캔 하나에 당시럽, 액상과당, 기타과당 혹은 설탕이 30~40g씩 들어 있다. 한캔만 마셔도 가공식품을 통한 하루 첨가당(식품 제조공정에서 인위적으로 첨가하는 당류) 섭취 권고 기준(성인 50g, 아동 35g 이하)을 위협하니 편의점이나 마트를 서성이며 먹거리의 뒷면을 읽는 머릿속이 더하기 빼기로 분주해진다. 당류도 칼로리도 없는 제로 음료로 깔끔한 빼기. 가능할까?

복잡한 이름, 칼로리 계산 헷갈려!

탄산음료를 끊으면 끊었지 뒷맛 찜찜한 인공 감미료 탄산음료를 마실까 보냐! 한데 올해부터 유독 제로 칼로리 음료로 돌아선 이들의 간증이 이어졌다. “펩시 제로 슈거 라임향이 이전 펩시보다 낫다.” “코카콜라 제로와 오리지널을 구분하지 못하겠다.” 정말 그랬다. 마셔보니 불평이 쏙 들어갔다. 상품 전면에 ‘제로’를 내세우는 캔과 페트병 음료를 보이는 족족 사들이기 시작했다. ‘당류 37g’이 부담스러워 들었다 놨다 하던 닥터페퍼도 제로 칼로리로 출시된다는 복음이 들려왔다. 지난 10월4일부터 코카콜라음료 공식 판매처의 닥터페퍼 제로 칼로리 사전예약 판매를 노렸으나 6차까지 번번이 실패다. 닥터페퍼 제로를 손에 넣어 컬렉션을 완성할 때까지 제로 음료의 뒷면을 집요하게 알아보기로 했다.

롯데칠성음료, 한국코카콜라, 일화, 동아오츠카 그 외 여러 업체의 제로 음료 27종의 뒷면 원재료명에서 단맛 내는 성분은 수크랄로스, 에리스리톨, 아세설팜칼륨, 알룰로스, 아스파탐, 스테비올배당체, 몽크후르츠 농축과즙까지 일곱가지였다. 음료마다 2~3종의 인공 감미료를 쓰고, 롯데칠성음료 실론티 제로를 뺀 나머지 음료들은 아세설팜칼륨이 들어간다. 아세설팜칼륨은 다른 감미료의 좋지 않은 끝맛을 감춰주고 단독으로 쓸 때보다 훨씬 달아지는 시너지를 낸다고 한다. 감미료를 덜 사용하면서 설탕과 더 비슷한 단맛을 내는 방법이다.

보통 탄산음료 355㎖ 한캔의 열량은 140~160k㎈. 농심 웰치 그레이프맛은 192k㎈에 당류 46g으로 유독 높은 편이었다. 웰치 제로의 격한 다이어트 비결은 무열량 대체 감미료일 텐데, 뒷면 영양 정보란엔 탄수화물이 8g이나 된다. 우리는 배웠다. 탄수화물은 g당 4k㎈라고. 그럼 32k㎈는 어디로 증발한 걸까? 여기서 8g의 탄수화물은 알룰로스다. 제로 음료들의 영양 정보란에서 가장 아리송했던 것이 바로 이 녀석의 정체다. 알룰로스는 무화과나 건포도 등에 희소하게 존재하는 당류로 과당 시럽을 효소처리해 대량생산이 가능해진 식품원료다. 알룰로스는 설탕의 70% 단맛을 내지만 칼로리가 극히 낮고 신체에서 에너지로 사용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영양 정보란에서는 열량 계산을 하지 않는 탄수화물로 취급을 하고, 알룰로스 무게가 함께 표시된다. 10g의 탄수화물에서 알룰로스가 6g이라면 나머지 4g만 칼로리로 계산하는 식이다.

제로 슈거 음료수.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제로 슈거 음료수.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앞뒤가 다른 제로 음료도 있다. 롯데칠성음료 탐스 제로 사과·키위향 캔은 앞에는 ‘ZERO CALORIE’(제로 칼로리)라고 표기하고 뒷면에는 ‘총내용량 355㎖, 5k㎈’란다. 5k㎈는 덤이냐고! 소비자를 놀리는가 싶지만, 실험 감도나 오차를 고려해 ‘100㎖당 4k㎈ 미만 제품에 한해 무열량(제로 칼로리) 표시 가능’이라는 식품 표시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해당하는 제품이 제로 칼로리 문구를 사용할 때는 뒷면에 위 내용을 고지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고시를 뒤지다 재미있는 내용을 찾았다. ‘합성향료만을 사용하여 원재료의 향 또는 맛을 내는 경우 그 향 또는 맛을 뜻하는 그림, 사진 등의 표시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탐스 제로는 천연향료 사과향을 0.00005% 넣어서 사과 그림을 쓸 수 있고, 펩시 제로 슈거 라임향은 합성 라임향만 사용해서 앞면에 연두색만 살짝 넣었다. 콜라에 굳이 라임 그림을 넣어 정체성을 흐릴 필요가 없고, 그림을 쓰고 싶다면 극미량이라도 천연 라임향을 넣으면 된다.

제로 슈거 소주 새로. 유선주 객원기자
제로 슈거 소주 새로. 유선주 객원기자

제로 슈거 소주, 칼로리를 줄였을까?

탄산음료 캔 뚜껑 따는 ‘푸칵’ 소리도 좋지만, 주말에는 역시 소주 뚜껑 돌리는 ‘따닥’ 소리가 제격이다. 롯데칠성음료에서 출시한 제로 슈거 소주 ‘처음처럼 새로’(16도)를 같은 회사 ‘처음처럼’(16.5도)과 비교하니 기타과당이 빠지고 에리스리톨이 들어간다. 일반 소주들이 공개하지 않던 칼로리도 적혀 있다. 360㎖ 한 병에 324k㎈. 첨가당이 들어 있지 않은 알코올의 열량일 터. 용량, 도수, 알코올의 비중 등을 따져 계산해보니 얼추 성분표에 쓰여 있는 열량이 맞다. 일반 소주와 차이는 어떨까? 2019년 12월 한국소비자원의 조사 결과로 ‘처음처럼 부드러운’(16.9도)의 칼로리는 408k㎈다. 요즘 소주는 16.5도니까 도수 차이를 고려하면 제로 슈거 소주로 병당 대략 70k㎈를 줄일 수 있는 셈. 술꾼에겐 이 얼마나 희소식인가! 하지만 여기서 멈추면 집요한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소주업계의 무설탕 전쟁은 2007년에 이미 있었다. 진로의 참이슬이 ‘소주도 설탕을 뺐습니다’라는 광고로 선공을 하자 처음처럼은 ‘설탕도 없고 소금도 없다’고 응수했다. 사실 설탕이 아닐 뿐, 두 소주 모두 당류에 해당하는 결정과당과 액상과당이 들어간다. 당시 관련 기사들을 찾아보면 뭐가 더 나은지로 다투는 중에 당시 주류업계 관계자를 통해 소주의 첨가당 양이 드러나기도 했다. ‘소주 단맛의 90%는 감미료인 스테비오사이드에 의해 결정되며 설탕으로 주 감미를 내는 소주는 없고, 들어가는 과당의 양도 병당 0.2g이 채 안 된다’는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일반적인 희석식 소주의 원재료를 살피면 스테비올배당체(스테비오사이드), 효소처리 스테비아, 토마틴 등 무열량 대체 감미료가 쓰이고 있다. 제조 비율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면 소주의 첨가당이 칼로리에 미치는 영향도 크지 않아야 한다.

때에 따라 칼로리가 ‘역행’하기도 했다. 한국소비자원이 2015년 1월 발표한 자료에서 ‘처음처럼 부드러운’(17.5도)의 열량은 347.8k㎈. 일반적으로 도수가 높으면 열량도 같이 올라간다. 그런데 2019년 처음처럼 부드러운(16.9도)은 2015년보다 도수를 0.6도 낮췄지만, 칼로리는 60k㎈가량 더 높다. 과일맛 소주 열풍이 불던 즈음이라 소주에 첨가한 당류도 함께 공개했는데 조사 대상 일반 소주들은 당류의 양이 0~0.3g 정도로 역시 미미했다. 그런 만큼 일반 소주와 제로 슈거 소주를 놓고 선호하는 맛이 아닌 섭취 칼로리를 줄일 목적으로 고르기엔 아직 정보가 충분치 않아 보인다. 2023년부터 주류 열량 표시가 확대되니 칼로리 차이는 곧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닥터페퍼 오리지널(왼쪽)과 닥터페퍼 제로 슈거 제품. 유선주 객원기자
닥터페퍼 오리지널(왼쪽)과 닥터페퍼 제로 슈거 제품. 유선주 객원기자

감미료는 ‘닌자’일까, ‘트로이 목마’일까?

언론에선 제로 음료 시장의 폭풍 성장과 설탕 대체 감미료로 건강을 생각하는 소비자의 선택을 보도한다. 그리고 바로 그 감미료가 오만가지 질병을 일으킨다는 소식을 전하는 것도 언론이다. 이를테면 ‘인공 감미료 섭취한 사람 뇌졸중 위험 높아’ 같은 제목의 기사를 보면 우선 가슴이 철렁한다. 아니, 그런데 어째서 국제 식품 규제 기구들은 이렇게 위험한 감미료를 계속 사용하도록 허가한단 말인가! 불신이 쌓인다. 이런 연구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식품학자 이한승의 <솔직한 식품>은 언론의 헤드라인이 종종 관심과 클릭을 유도하려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호도하는 것을 짚는다. 상관관계란 ‘두가지 요인이 비례하든 반비례하든 연관되어 움직이는 관계’이고 인과관계란 ‘한가지 요인이 원인이 되고 다른 요인이 결과가 되는 관계’를 뜻한다. 대체 감미료의 위험성을 다룬 기사들에 자주 인용되는 여러 역학 연구 논문을 ‘펍메드’(생물학 의학 분야 논문 데이터베이스)에서 찾아보았다. 인공 감미료 섭취군과 비섭취군 중 섭취군에서 고혈압이 더 많이 발생했다는 연구를 보면, 인공 감미료 음료가 고혈압을 유발하는지, 고혈압 위험을 가진 과체중인이 인공 감미료 음료를 선호하는지 불분명해서 인과를 단정할 수 없다는 단서가 붙는다. 관찰 결과 상관이 있으니, 아직 알려지지 않은 메커니즘을 후속 연구에서 밝혀야 한다는 내용인데, 한줄짜리 기사 제목에서 이런 맥락을 읽긴 쉽지 않다.

제로 칼로리 음료의 대체 감미료를 공부하는 과정이 쭉 이성적이지만은 않았다. 식품첨가물을 다루는 책들을 모아 저자들을 식품공학자, 화학자, 의사로 분류하고 출간일 순으로 정렬해 정보를 크로스체크하는 한편, 감미료에 관한 방대한 자료를 갖춘 블로그에서 감미료에 조종당하는 인류 말살 음모론을 흥미진진하게 읽기도 했다. 인공 감미료는 우리 몸에서 대사되지 않고 닌자처럼 사라진다는 주장과 우리 몸을 파괴하는 트로이 목마라는 주장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면서, 인공 감미료가 장내 미생물 생태계의 불균형을 초래해 건강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최신 연구들을 보며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나씩 수집한 제로 슈거 음료들. 유선주 객원기자
하나씩 수집한 제로 슈거 음료들. 유선주 객원기자

몸에 영향 주는 수많은 요소 중 하나일 뿐

식품학자이자 미생물 연구자인 이한승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는 “장내 미생물이 사람의 면역 반응과 관련이 큰 것은 맞지만 이제 연구된 지 10년 된 분야고 인공 감미료와 관련해 명확하게 증명한 아주 엄밀한 연구로 보기엔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고 했다. 인공 감미료를 섭취해 장내 미생물에 영향이 있다고 해도 우리 몸은 다시 균형을 찾아간단다. 하지만 인공 감미료의 단맛으로 더 많은 음식을 찾게 되니, 인공 감미료가 든 음식을 많이 먹어서 좋을 것은 없다고 덧붙였다. 내가 매일 먹어온 음식이나 생활습관, 유전자까지 모두 장내 미생물에 영향을 준다고 한다. 인공 감미료 역시 수많은 요소 중의 하나에 포함되는 것이 당연하다. 애초 우리 몸이 온갖 것들이 들고 나는 공항 같은 곳이고, 내 몸을 하루 3만명이 이용하는 인천공항으로 생각해보니 닌자는 일본에서 온 손님, 트로이 목마는 그리스 단체관광객 같아서 불안이 조금 누그러진다. 대신, 설탕이든 인공 감미료든 단맛 자체에 주의를 기울이고 제한을 두기로 했다.

내가 찾은 방법은 이렇다. 달콤한 쿠키 하나를 포기할 수 없다면, 대신 단맛 나는 음료를 마시지 않는다. 반대로 탄산음료가 간절해 제로 칼로리 음료를 마셨어도 다른 디저트를 먹지 않는다. 좋아하는 나쁜 짓을 계속하기 위해 다른 나쁜 짓을 절제하는 행위에도 쾌락은 있다. 지난 7일 드디어 닥터페퍼 제로 24캔 한짝 주문에 성공하는 바람에 살짝 부끄러운 결심이 되었지만, 오래오래 아껴 마실 생각이다.

유선주 객원기자 oozwis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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