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로 다시 등장한 들로리언. 페블비치 콩쿠르 델레강스 제공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자동차 페스티벌은 무엇이냐고 물으면 자동차 좀 안다는 사람들 열이면 아홉 페블비치 콩쿠르 델레강스를 꼽는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리는 자선 이벤트이자 대규모 클래식카 행사다. 유럽을 대표하는 빌라 데스테 콩쿠르 델레강스에 맞서는 북미 지역 자동차 이벤트다.
콩쿠르 델레강스는 프랑스어로 ‘우아함의 경연’을 의미한다. 말뜻 그대로 최고의 상태로 복원된 클래식카를 모아서 그중 최고를 뽑는 것이다. 전세계 부자들과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자동차 회사에서도 놓칠 리가 없다. 그래서 몇몇 자동차 회사는 특별함을 강조한 모델을 페블비치 콩쿠르 델레강스에서 선보인다. 올해 페블비치 콩쿠르 델레강스는 8월20일과 21일 양일간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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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수 있는 차 찾기 어렵지만…
미국의 튜닝 메이커 헤네시 퍼포먼스 엔지니어링에서 24대만 한정 생산하는 하이퍼카인 베놈 F5 로드스터를 공개했다. 베놈 F5의 최고 출력은 1817마력으로 이전까지 하이퍼카의 정점에 있었던 부가티 시론의 1500마력을 월등히 뛰어넘는다. 단순 마력으로만 보면 탱크에 버금간다. 진한 파란색으로 뒤덮인 외관에는 빨간색으로 된 라인으로 멋을 냈다. 멋도 멋이지만 베놈 F5 로드스터의 특징이라면 가벼운 무게다. 차체는 알루미늄으로 이루어진 충돌 구조물과 중앙부 객실을 제외하면 전부 탄소섬유로 제작됐다. 무게는 1360㎏에 불과하다. 1817마력이라는 엄청난 힘과 가벼운 무게 때문에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2.6초이며 최고 속도는 시속 400㎞를 넘긴다. 부자들은 미학적인 것도 좋아하지만 물리적으로 빠른 것도 사랑한다.
베놈 F5 로드스터. 페블비치 콩쿠르 델레강스 제공
이런 부티 나는 행사에 마세라티도 빠질 수 없다. 그들 역시 언제나 부자들의 행사 중심에 서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마세라티는 V6 미드십 슈퍼카 MC20의 로드스터 버전인 첼로를 선보였다. 차체부터 프레임까지 하나로 통합해 탄소섬유로 제작한 ‘카본파이버 모노코크’로 설계·제작됐다. 그리고 마세라티 차량 최초로 버터플라이 도어를 사용한다. 마세라티는 그동안 페라리의 파워트레인을 받아서 사용했지만 이번엔 특별히 V6 엔진을 개발했다. 실내는 간결하고 기능적으로 디자인돼 정통 스포츠카답다는 평가를 받는다. 페블비치 콩쿠르 델레강스에 함께 전시된 다른 차들과 다르게 MC20 첼로만의 특징이 있는데, 가격과 희소성을 생각했을 때 그나마 구매하기 손쉽다는 점이다. 이 행사에서 살 수 있는 차를 찾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럭셔리 브랜드가 내놓은 차를 보는 재미도 있지만 이번 페블비치 콩쿠르 델레강스가 특별하게 다가왔던 건 전기차 브랜드들 참가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전기차로 변신한 들로리언이었다. 들로리언은 영화 <백 투 더 퓨처>에 나온 타임머신 차량이다. 40년 만에 부활을 알리며 전기차 브랜드로 다시 등장한 들로리언이 공개한 모델은 전기 세단 알파5다. 알파5는 매끈한 외관 디자인이 특징인데, 덕분에 공기저항계수(Cd)가 0.23이다.(0에 가까울수록 공기저항을 덜 받는다.) 여기에 들로리언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옆으로 올려서 열리는 걸윙 도어를 적용했다. 배터리 용량은 100㎾h로 1회 충전 시 483㎞(미국 환경부 기준)를 달릴 수 있다. 들로리언은 2024년부터 이탈리아에서 알파5를 생산할 계획이다.
또 하나의 전기차 기대작은 렉서스의 브랜드 첫 전용 전기차 RZ 450e다. 올해 하반기 출시 예정인 RX 450e는 도요타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e-TNGA를 기반으로 만든 소형 전기 스포츠실용차(SUV)다. 렉서스 전기 네바퀴굴림 시스템인 다이렉트4를 적용하며 앞바퀴 축에 150㎾, 뒷바퀴 축에 80㎾의 출력을 제공한다. 배터리 용량은 71.4㎾h에 불과하지만 주행가능거리는 유럽 기준(WLTP) 400㎞가 넘는다. 소형 하이브리드에서 강점을 보여왔던 도요타의 노하우가 RX 450e에서도 이어졌다는 평가다. 실내는 테슬라의 신형 모델 S에서 첫선을 보인 요크 스타일의 운전대(위쪽 그립 없이 양쪽으로 잡는 운전대)가 특징인데 과연 조종 감각은 어떨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콩쿠르 델레강스에 출품된 페라리 차량들. 페블비치 콩쿠르 델레강스 제공
그리고 역시나 자동차 페스티벌의 백미는 바로 콘셉트카다. 올해에도 브랜드의 미래를 책임질 콘셉트카 상당수가 선을 보였다. 링컨은 올해 브랜드 100주년을 기념으로 한 1922년 모델 L의 콘셉트카를 공개했다. 공기역학을 고려한 유선형의 디자인, 타고 내릴 때 자동차 천장이 열리는 구조가 눈에 띈다. 재미있는 건 실내 바닥이 디스플레이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탑승자의 기분과 분위기에 따라 배경이 바뀐다. 그리고 운전대가 없다. 당연히 자율주행을 의식해 만든 디자인이다.
우리에겐 익숙하지 않은, 혼다의 프리미엄 브랜드 아큐라도 브랜드의 첫번째 전기 스포츠실용차 콘셉트를 선보였다. 파란색으로 외장을 두른 프리시전 EV 콘셉트이다. 색만큼이나 외관의 형태가 특이하다. 이탈리아의 고급 요트에서 영감을 받은 기능과 디자인의 조화가 이 콘셉트의 주요 특징이다. 앞부분이 뾰족하게 튀어나와 있고 인상적인 캐릭터 라인을 두툼하게 그려 크고 역동적인 실루엣을 표현했다. 실내는 다양한 재활용 소재를 포함해 환경 친화적인 가죽과 목재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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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의 행사
콩쿠르 델레강스에서 마지막으로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재미는 경매다. 희소성이 높고 진귀한 클래식카들이 대거 등장한다. 올해 가장 높은 가격에 팔린 경매 차량은 1937년 부가티 타입 57C 아탈란테로 가격은 1034만5천달러(약 140억원)였다. 역대 최고가를 기록했다. 이 외에도 1990년형 페라리 F40은 396만5천달러(약 53억5천만원), 1994년 부가티 EB110 슈퍼 스포츠는 316만7500달러(약 43억원)에 낙찰됐다. 페블비치 콩쿠르 델레강스는 매년 경매 수익금과 자선행사로 모금한 기부금으로 자선 파트너인 컴퍼니 파운데이션을 통해 1만명이 넘는 아이들을 돕는다. 올해 자선금 규모는 총 350만달러(약 47억원)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곱씹게 하는 대목이다.
김선관(자동차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