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바롤로 와인을 시음할 수 있는 에노테카.
3년 만에 도착한 이탈리아에서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와인을 사는 거였다. 산지인 이탈리아와 한국에서 와인을 사는 가격은 당연히 차이가 있다. 이탈리아에서 와인으로 이탈리아 왕복 비행기 삯은 어렵지만 제주도 왕복 항공권 정도는 아주 쉽게 뽑을 수 있다.
숙소 주변의 슈퍼에 가서 가장 먼저 고른 건 역시 이탈리아 국민 스푸만테 페라리였다. 페라리는 알프스산맥에 있는 트렌토에서 자라는 샤르도네로 만든다. 알프스의 굳은 기상을 머금어 산도가 쨍쨍한 녀석이다. 한국에서는 페라리 브뤼는 와인전문매체 와인서쳐 기준으로 7만원 안쪽이다. 하지만 이탈리아에서는 각각 13, 25유로다. 한국 돈으로 1만8천원, 3만4천원 정도인 셈. 2병을 모두 샀고, 브뤼는 산 날 바로 마셨다.
최근 유로화 가치가 올랐으니 마시면 남는다는 말이 왜 나오는지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함께 산 건 체레토의 돌체토(13유로, 약 1만8천원)였다. 그런데 750㎖ 레드 와인 1병을 혼자서 먹는 건 좀 무리였다. 결국 3분의 1병쯤은 버려야 했다. 그래서 낸 꾀가 375㎖ 하프 보틀을 사는 거였다. 라티 네비올로 하프 보틀(9유로, 약 1만2천원)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이 와인이 서울에서는 6만원쯤 하니까 거의 20% 가격으로 라티를 즐긴 거다.
라티나 체레토 모두 이탈리아 북서부 피에몬테주에 있는 바롤로 마을에 있다. 26일 이탈리아 친구들과 자동차를 렌트해서 토리노에서부터 바롤로, 바르바레스코를 돌아봤다. 바롤로는 2019년 5월에 방문한 것이 마지막이었는데, 5월 포도밭이 청소년이라면 8월의 포도밭은 중년의 연륜이 느껴졌다. 검은 포도알이 열린 포도나무는 뭔가 더 신성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포도밭 옆에 피에몬테를 대표하는 견과류 헤이즐넛 나무가 심어져 있다는 것도 이번 방문으로 처음 알았다.
바롤로 와인과 함께 토끼 간과 토끼 고기를 즐겼다. 피에몬테 사람들은 토끼 간으로 마카롱을 만들어 먹을 정도로 토끼 고기를 좋아한다. 토끼 요리가 바롤로와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이날 타야린에 대한 갈망도 풀었다. 타야린은 달걀노른자가 들어간 생면으로 만든 피에몬테 특유의 파스타인데 피에몬테 포도 품종인 네비올로나 바르베라와 궁합이 좋다. 화이트 트러플 시즌에는 타야린 위에 화이트 트러플을 잔뜩 올려서 먹기도 한다. 30유로(약 4만원)쯤 하는데 한번쯤은 먹어볼 만하다. 아마 잊을 수 없는 경험으로 기억될 것이다.
또 바롤로에는 한잔에 3~7유로(약 4천~9천원)를 내면 바롤로 와인을 시음할 수 있는 에노테카(와인을 파는 상점)가 있다. 바르바레스코도 시음 가격은 비슷하다. 가끔 2015년 이전의 와인도 있어 시도해볼 만하다. 바롤로는 최소 10년이 지나야 맛있다고 생각했는데 지역에 따라 또 양조법에 따라 가볍게 마실 수 있다는 것을 안 것은 의외의 수확이었다. 10종 이상 시음한 바롤로 가운데 가장 맛있는 와인 1병과 바르바레스코 2015년 1병을 사 왔다. 귀국해서 바로 친구들과 마실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이런 설렘 때문에 와인을 마시는 건가 보다.
권은중 음식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