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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요즘 세상에 무슨 서점이냐고요?

등록 2022-08-27 11:30수정 2022-08-27 11:56

연남동 독립서점 여행

에세이 가득 ‘무슨서점’
여행사 사장이 차린 ‘책크인’
엠제트 세대 손님 몰리는
전국구 인기 ‘서점 리스본’
낮고 좁은 연남동 끝자락에
개성있는 독립서점들
책방 주인의 취향이 반영된 에세이가 많은 무슨서점.
책방 주인의 취향이 반영된 에세이가 많은 무슨서점.

“다들 ‘(요즘 세상에) 무슨 서점이야’라고 해서 서점 이름을 ‘무슨서점’이라고 지었어요.”

새 인테리어 기운이 남아 있는 합판 벤치에 앉아 무슨서점 대표 신연실(37)이 말했다. 무슨서점은 서울 연남동과 경의선숲길의 최서단을 말하는 ‘끝남동길’에 3주 전 문을 연 독립서점이다. 독립서점은 보통 특정한 주제의 서가를 가진 곳이 많다. 무슨서점은 주로 에세이를 취급한다. 그는 무슨서점을 두고 “내 책장이 커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처럼 남의 책장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무슨서점에 진열된 책들.
무슨서점에 진열된 책들.

동네의 소박한 커뮤니티가 된 서점

신연실은 단정하고 은근한 멋쟁이다. 취재를 위해 만난 날은 남색 셔츠를 청바지에 넣어 입고 있었다. 약 10평쯤 되는 무슨서점은 주인이 고른 에세이집들과 주인이 골라 온 문구류로 채워졌다. 엷은 베이지색으로 칠한 벽에는 고양이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진한 색 합판으로 책장과 테이블을 꾸몄고 큰 창 밖으로 옆집 벽돌 벽이 보였다. 이 모든 게 사장의 개성이고, 사장의 개성이 독립서점의 첫째 매력이다. 신연실은 한겨레 교육문화센터 서점 창업 수업을 들으며 사장의 개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했다. “공간 운영에 내가 녹아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사장이 궁금해서 오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벽에 붙은 포스터들은 신연실이 좋아하는 것들이라고 했다.

“덜 세련된 동네의 친근한 분위기가 좋았어요.” 신연실이 끝남동길을 고른 이유다. 이곳은 ‘서울에 아직 이런 곳이 있나’ 싶은 분위기가 있다. 골목은 좁고 건물은 낮다. 연남동 번화가에 비하면 한결 조용한 분위기다. 그 사이로 공들였지만 멋을 덜 부린 식당들이 원래 있던 정물처럼 자리한다. 부동산에는 요즘 서울에서 보기 힘든 ‘재건축 반대 서명’ 같은 문구가 붙어 있다. 신연실은 그 조용한 동네를 닮은 서점을 열었다.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다른 분야와 연결되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요. 원하는 모습의 서점을 오래 운영하고 싶어요.” 대표의 목표도 그 동네처럼 소박하고 품위 있었다.

“그러게요. 제가 이걸 왜 시작해서 이 고생을….” 끝남동 초입 건물 2층에, 창문이 큰 가게에서 ‘책크인’ 대표 고윤경(37)이 말했다. 다만 그의 말투는 회한이 아닌 코미디에 더 가까웠다. 고윤경은 내내 긍정적이고 유쾌한 사람이었고, 책크인은 고윤경의 성정이 그대로 드러난 공간이었다. 읽다 보면 떠나고 싶어지는 책들 사이로 가볍게 마시기 편한 와인들이 보였다. 무슨서점의 목표인 ‘원하는 모습의 서점 운영’을 이룬 곳이라 봐도 되겠다.

여행과 관련한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책크인.
여행과 관련한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책크인.

책크인은 2019년 서교동에서 문을 열어 2020년 6월 지금의 자리인 끝남동으로 이사했다. ‘체크인’이 떠오르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책크인은 여행책 전문 서점이다. 여행책 전문 서점이라 해도 대형 서점 여행책 코너 평대에서 볼 수 있는 ‘○○국 완전정복’ 같은 책은 없다. 대신 도시의 역사나 특정 도시에서 즐길 수 있는 미식 관련 책 등이 보인다. 여행을 간접적으로 말하는 책, 조금 더 입체적인 책, 여행을 상상하게 하는 책이 자리한다. 고윤경은 “여행의 풍미를 높여주는 책들을 두고 싶었어요”라는 말로 표현했다.

인간의 모든 자취는 그 삶을 암시한다. 여행서점 책크인 대표 고윤경은 전직 여행사 직원이자 현직 여행사 대표다. 그는 하나투어 이주패키지팀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오지 여행사와 유럽 전문 여행사를 거쳐 자기 여행사를 차렸다. 여행업계 종사자들은 필연적으로 (여행 중의 각종 변수를 견디니) 강인하고 (기쁨을 원하는 손님을 상대하니) 낙천적이다. 그 결과 여행업 종사자들은 함께 이야기하기 즐거워지는 사람들이 된다.

고윤경도 그랬다. 그는 같은 일을 오래 하다 보니 환기를 해보고 싶어서 여행사를 병행하며 여행서점을 열었는데, 그때 코로나가 왔다. 여행업은 코로나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업계 중 하나다. 누구의 탓도 아닌 신종 글로벌 전염병 앞에서 업계가 말 그대로 궤멸하던 중, 책크인의 손님들은 꾸준히 그를 찾았다. 고윤경은 “제가 늘 힘들다고 해서 저를 격려해주려 단골분들이 계속 찾아준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와인과 책을 함께 파는 책크인.
와인과 책을 함께 파는 책크인.

그건 친근하고 이야기 나누기 좋은 사장님의 겸양일 뿐이었다. 섭외를 위해 찾았던 19일 금요일 오후에도 바 테이블 자리에 단골 한명이 앉아 있었고, 둘은 친근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편히 앉아 있기 좋은 공간의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책과 와인을 함께 파는 그의 수완도 현실의 사업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책은 하나도 안 사고 와인만 사 가시는 손님도 있어요.” 고윤경이 역시 유쾌하게 말했다.

“(대형 서점의) 매대에 안 오른 좋은 책을 저희 매대에 올리고 싶어요.” 고윤경은 서점업을 모르고 이 일을 시작했다면서도 독립서점의 매력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실제로 책크인에 있는 책들은 대형 서점에서라면 얇은 책등만 보일 책들이 많다. 파리의 미식 책, 여행을 다루는 인디 잡지…. 그의 말대로 여행의 풍미를 높여줄 책들이 몇병의 와인과 함께 놓여 있다. 거기에 여행을 잘 알고 유쾌한 사장님이 있으니 단골이 많다는 것도 이해가 갔다. “1년만 더 하는 게 목표인데요, 저는 여행업도 그렇게 시작하다가 10년 했어요.” 왠지 그렇게 될 것 같았다.

신간이 가득한 서점의 정석

“초기에는 단골이 많았죠. 서점 근처로 이사 온 친구도 있었어요.”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창밖을 바라보며 서점 리스본 대표 정현주(50)가 회상했다. 그는 2017년 서점 리스본을 열기 전 성공한 라디오 작가였다. <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 등 베스트셀러도 여러권 냈다. 그는 라디오 작가로서 자신의 일을 “한 인물을 사랑받게 하는 직업”이라 표현했고, 본인의 책으로 스스로도 사랑받았다. 그의 서점도 사랑받았다. 서점 리스본은 끝남동을 넘어 연남동 권역에서 가장 유명한 독립서점 중 하나다. “서점을 라디오 프로그램처럼 운영했어요”라고 정현주가 정리했다.

서점 리스본에 빼곡히 꽂힌 책들.
서점 리스본에 빼곡히 꽂힌 책들.

하지만 현실의 서점은 동화가 아니다. 많은 독립서점이 출점 3년을 넘기기 힘들다. 독립서점들이 술이나 물건을 팔거나, ‘굿즈’라 부르는 자체 제작 상품을 제작하거나, 커뮤니티 혹은 북토크를 운영하는 건 변절도 비밀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생존 방식이다. 서점 리스본도 다 해봤다. 그 모든 방식은 성공했다. 서점 리스본은 커뮤니티 서점으로 많은 팬을 모았다. 식물 책에 물뿌리개를 함께 파는 식으로 큰 매출을 올렸다. 온라인 매출도 훌륭했고, 자체 제작한 에코백 등의 굿즈 역시 꾸준히 팔리고 있다.

정현주가 대단한 점은 그 모든 걸 성공시킨 뒤 서점의 정석으로 돌아간 것이다. 여기 있는 건 정현주의 개성 자체고, 그 이전에 그냥 좋은 책들이다. 그가 좋아하는 문학, 그가 관심 있는 과학, 심리, 여성주의, 환경 책. 정현주는 책을 고르는 데 업무시간의 대부분을 쓴다고 했다.

생존과 성공을 지나 건강한 지속을 목표로 하는 독립 6년차, 정현주가 말한 서점의 기본은 취향도 커뮤니티도 아닌 신간이었다. “큐레이션을 한다고 구간 서적을 가져다 두면 사람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책일 경우도 많아요. 결국 사람들을 부르는 건 신간이에요.” 서점 리스본엔 이제, 단골 아닌 손님이 더 많고, 서점 주인의 취향을 반영하는 구간보다 신간이 더 많다. 온라인 판매보다 오프라인에 치중한다. 정현주가 기본을 유지하면서 몇년간 버티자 일어난 일들이다. 독립서점계에서는 기적 같은 일이다. 정현주는 그 어려운 일을 해내고도 겸허했다. “코로나 때 (고생해서) 이 두개가 빠졌어요. 그러면서 내려놓는 법을 깨달은 것 같아요.”

그 결과 지금의 서점 리스본은 단골 대신 전국에서 사랑받는 서점이 되었다. 취재를 하는 중에도 부산에서 왔다는 20대가 책을 고르고 갔다. “좋은 책을 더 많이 알리고 싶어요”라는 정현주의 말이, 끝남동의 작은 서점 안에서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다양한 신간을 갖춰둔 서점 리스본.
다양한 신간을 갖춰둔 서점 리스본.

책의 재미 알려줄 이 다시 나타난다면

“젊은이들이 책을 안 읽는다는 말을 믿지 않아요.” 정현주가 말했다. 그 역시 그의 말대로였다. 섭외를 위해 찾았던 19일과 촬영을 위해 찾은 21일, 모두 작은 서점 안에 사람들이 가득했다. 연령대는 모두 20대로 보였다. 무선 이어폰을 끼고 눈을 가리는 버킷 햇을 쓴 요즘 사람 차림의 여성들이 줄지어 서점을 찾아와 이런저런 책을 사 갔다. 사람들이 책을 떠난 게 아니라 책의 재미를 알려줘야 할 사람들이 너무 쉽게 포기했던 건 아닐까. 서점 리스본에서 책을 고르던 젊은이들을 보며 생각했다.

“이제는 양적 성장을 하지 않는 채로 성장하고 싶어요”라는 정현주의 말도 그런 맥락이었다. 그는 앞으로 지역의 독립서점 컨설팅을 도와주고 싶다고 했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고, 거기서 좋은 책을 소개해주는 서점이 있다면 서점과 책과 동네 모두에게 좋은 일일 테니까. 그런 서점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라도 끝남동길을 한번쯤 가보는 게 좋겠다. 영화 <탑건: 매버릭>의 대사처럼, 언젠가 책이 다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게 오늘은 아니다. 끝남동길의 독립서점들이 그 증거처럼 서 있다.

연남동 맛집 대기 걸고 책 보러 갑시다!

끝남동 독립서점 즐기기 꿀팁

끝남동 가는 법

주소만 보고 서울 연남동 혹은 홍대입구역으로 온다면 많이 걸어야 한다. 시내버스 정류장으로는 ‘연희104고지’ 혹은 ‘사천교’와 가깝다. 지하철역은 수도권 전철 경의중앙선 가좌역과 가깝다. 서울 외 지역에서 기차로 올 경우 서울역에서 750번 버스를 타면 연희104고지와 사천교까지 한번에 온다. 경의중앙선 가좌역은 공항철도 공덕역에서 환승하면 금방이다.

독립서점 잘 즐기는 방법

① 거의 모든 독립서점이 인스타그램 등 에스엔에스(SNS) 계정을 운영한다. 헛걸음 않으려면 휴무일을 확인하고 가는 게 좋다.

② 독립서점 주인들은 책이 좋아 책방을 하는 사람들이다. 무슨 책을 읽으면 좋을지 말해줄 준비가 되어 있다. 다만 으레 갖춰야 할 매너를 갖추길.

③ 주말에는 생각보다 사람이 많다. 이럴 때 주인과 이야기하기는 힘들 거라는 걸 고려하자.

끝남동의 독립서점들

① 무슨서점: 올해 8월 새로 문을 연 독립서점. 대표 신연실은 잡지 에디터와 콘텐츠 에이전시를 거쳐 독립서점을 열었다. 서점 주인의 취향이 반영된 에세이를 전문으로 취급한다. 오래 앉아 있을 수 있는 책상과 수입 문구류 등 소소한 볼거리가 있다. 나는 여기서 일본인 커피 로스터 쇼노 유지의 <아무도 없는 곳을 찾고 있어>와 전직 <지큐>(GQ) 에디터였다가 지금은 대리기사 일을 하는 이재현의 <오늘 밤 남의 차를 몹니다>를 샀다. 근처에 작고 개성 있는 식당이 많이 있어 식당의 대기 목록을 걸어두고 여기 와서 책을 사는 손님도 많다고 한다. 그런 오후를 보내면 좋을 것 같다.

주소 연남동 487-262

연락처 0507-1312-6278

영업시간 12:00~20:00, 월요일 휴무

② 책크인: 여행을 주제로 삼는 독립서점. 대표 고윤경은 실제로 여전히 여행사를 운영한다. 서점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여행 관련 서점이 아닌 도시의 역사나 특정 주제의 책 등 읽다 보면 그 지역으로 가고 싶어지는 책들을 취급한다. 응용 여행서적 서점이라 봐도 되겠다. 와인과 간단한 안주도 팔기 때문에 평일에 한가히 와서 와인 한잔 마시며 책을 읽을 수도 있다. 주인이 현업 여행업계 종사자이기 때문에 한가한 평일에 가면 여행 상담을 할 수 있다는 점 역시 큰 장점이다. 나는 여기서 아프리카 여행책을 한권 샀다. 역시 이 서점에서나 있을 법한 책이었다.

주소 연남동 241-80

영업시간 12:00~19:00, 화요일·수요일 휴무

③ 서점 리스본: 연남동을 넘어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독립서점 중 하나. 독서 커뮤니티 등 프로그램도 운영하다 코로나 이후 정통 서점으로 전환해 오히려 성공했다. 시, 소설, 에세이 등 문학 서적 사이로 역사, 과학, 심리 등 서점 주인의 안목과 취향이 반영된 책들이 놓여 있다. 테마가 있는 서점은 구간이 많은 반면 이곳은 꾸준히 신간을 들여놓았다는 점도 중요하다. 책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부터 여러 책을 읽는 사람들까지 두루 즐겁게 책을 고를 수 있다. 나는 여기서 영국 역사가 A. J. P. 테일러의 <기차 시간표 전쟁>을 샀다. 궁금하던 신간이었고 대형 서점에선 역시 쉽게 눈에 띄지 않았던 책이었다. 연남동 일대 서점이나 가게들이 많이 쉬는 월요일에 자영업자들을 위해 문을 연다고. 대신 목요일에 쉰다.

주소 연남동 375-117

연락처 070-4233-3905

영업시간 13:00~20:00, 목요일 휴
박찬용 칼럼니스트 iaminseou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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