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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만, 늘 새로운 맛’ 젤라토, 커피만큼 강력한 트렌드 될까 [ESC]

등록 2022-06-18 09:00수정 2022-06-18 10:16

커버스토리: 젤라토 전성시대

가게마다 다른 개성, 매일 색다른 맛을 즐길 수 있는 재미
도토리와 꿀, 곶감과 생강 등 아이디어와 순발력으로 승부
350종 이상의 다양한 맛을 선보인 ‘녹기전에’의 젤라토.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350종 이상의 다양한 맛을 선보인 ‘녹기전에’의 젤라토.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사람이 좀 많을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취재 문의를 하려고 연락한 곳은 모두 똑같은 말을 했다. 취재하는 날은 일요일, 촬영 장소는 젤라토 집. 실제로 가보니 말 그대로였다. 사람들이 계속 파도처럼 드나들어서 사진을 한 컷 찍을 때마다 기다려야 했다. 커플, 가족, 엄마와 딸, 오토바이를 타고 혼자 온 남자, 모두 각자의 이유로 젤라토를 주문해 한 숟갈씩 떠먹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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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케이 디저트’로 등극?

젤라토는 간단히 말해 이탈리아에서 아이스크림을 일컫는 이름이다. 미국에서 먹는 아이스크림과 구분되는 개념이다. 젤라토와 아이스크림의 차이는 공기 양의 차이다. 아이스크림이든 젤라토든 숙성시킨 유제품 액상 믹스를 공기와 섞어 냉동시킨다는 조리법은 같다. 아이스크림의 재료와 공기 비율은 1:1, 젤라토의 재료와 공기 비율은 보통 1:0.3이다. 젤라토에 들어가는 공기가 더 적으니 더 진한 맛이 난다. 서울에는 약 2년 전부터 눈에 띄는 젤라토 가게가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젤라토 숍 ‘녹기 전에’에서 자체 집계한 젤라토 가게 현황을 보면, 현재 수도권에만 100여곳이 성업 중이다.

“커피 (트렌드) 다음은 젤라토인 걸까 생각해요.” 젤라토가 유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울 종로구 경복궁 인근 서촌에서 ‘스쿠퍼 젤라또’를 운영하는 차상혁은 디저트 문화의 발달, 그중에서도 서양식 후식 문화의 정착이 원인이라 추측했다. 사람들이 밥을 먹고 후식을 먹게 되고, 외국 경험이 많아져 서양식 디저트에 대한 수요와 이해도가 높아진 게 젤라토 인기의 한 축일 거라는 논리였다. 거기 더해 사람들의 커피 소비량이 많아지며, 커피와 함께 즐기면 좋을 단것에 대한 수요도 높아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오랜 ‘케이(K) 디저트’였던 믹스커피에 들어 있던 커피와 당류를 분리시킨 뒤 각각 고급화시켜 즐기고 있는 셈이다.

과일을 듬뿍 넣은 ‘스쿠퍼 젤라또’의 메뉴들.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과일을 듬뿍 넣은 ‘스쿠퍼 젤라또’의 메뉴들.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저는 아이스크림은 재미라고 생각해요.” 서울 마포구 지하철 공덕역 근처 염리동에서 ‘녹기 전에’를 운영하는 박정수씨는 공학적이면서도 형이상학적인 관점으로 젤라토의 인기를 분석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젤라토는 입안에서 녹는 과정에서 온도가 변하는 음식이다. 사람은 온도 변화에 따라 맛을 느끼는 감각이 달라지므로 젤라토는 첫맛과 끝맛이 달라지고, 그 과정에서 만드는 사람이 여러 구상을 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젤라토나 아이스크림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일종의 화학식에 가까워서 해당 공식을 숙지하고 제조 요령을 익히면 다양한 재료를 배합해 메뉴를 만들 수 있다. 실제로 ‘녹기 전에’는 지금까지 350종 이상의 메뉴를 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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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변수로 맛의 재미 더해

가게마다 맛이 다르다. 젤라토 가게들의 결정적인 특징이자 젤라토 가게를 집집마다 찾아다니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녹기 전에’는 극단적으로 메뉴가 많은 경우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젤라토 가게는 자체적으로 계속 새로운 메뉴 개발을 한다. 이 다양성이 젤라토 가게의 아이스크림이 대형 빙과회사의 아이스크림과 견주었을 때 결정적인 경쟁력이다. 개별 젤라토 가게 사장님들은 큰 회사라면 상품화하지 못할 용기 있는 상품들을 날렵하게 만들 수 있다. 이를테면 이번 취재에서 본 제품 중에는 도토리꿀, 곶감과 생강, (콩과 팥을 섞은)콩팥 등이 있었다. 큰 회사라면 도저히 따라할 수 없는 순발력과 아이디어다.

‘녹기 전에’에서 젤라토를 고르는 손님들.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녹기 전에’에서 젤라토를 고르는 손님들.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박정수 ‘녹기 전에’ 대표.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박정수 ‘녹기 전에’ 대표.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즉 매일의 젤라토 가게에는 매일 새로운 아이스크림이 있다. 매일 수도권 100여곳, 전국 200여곳의 매장에서 어딘가 하나쯤은 새로운 메뉴가 생겨난다. 거기 더해 젤라토 가게마다 모두 맛이 다르다. 각 재료를 어떻게 배분하느냐, 어떤 당류를 써서 어떤 단맛을 만드느냐, 얼마나 숙성시키고 얼마나 공기를 넣어 어떤 질감을 만드느냐, 단맛과 신맛, 짠맛과 쓴맛 등 맛의 요소를 얼마나 섞느냐에 따라 계속 맛이 달라진다. 매일의 변수가 맛의 재미가 된다. 그러나 새로운 메뉴라 해도 기본적으로 단걸 얼린다는 개념은 같다. 소비자의 입에서 느껴지는 맛은 ‘알 듯하나 새로운 맛’이다. 말하자면 안전한 모험이니 요즘 사람들이 좋아할 수밖에.

소비자 입장에서 매일 맛이 변한다는 게 좋은 일만은 아닐 수도 있다. ‘그래 이 맛이야’ 싶은 똑같은 맛을 즐기고 싶을 수도 있고, 매일 변하는 매장 정보를 아는 것도 쉽지 않다. 여기서 에스엔에스(SNS)가 역할을 한다. 에스엔에스 계정으로 매일의 정보를 업데이트하면 되니까, 많은 젤라토 전문점들이 인스타그램 등 에스엔에스 채널을 통해 소식을 열심히 알린다. 요즘 젊은이들의 스마트폰 소지율은 사실상 100%에 가까우니 전혀 무리 없다. 젊은이들 역시 에스엔에스로 화답한다. 요즘 식당들은 벽에 작고 귀여운 로고나 글자를 붙여둔 경우가 있다. ‘여기 대고 사진 찍으시라’는 일종의 포토 스폿이다. ‘스쿠퍼 젤라또’ 벽 한켠에도 그런 곳이 있었고, 취재 중 찾아온 젊은이들이 거기서 인증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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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즐기는 도시 피서

또 하나의 변수가 있다. 위드 코로나 시대다. 사실상 코로나 시대가 끝난 듯 유동인구가 많아지다 보니 걸어다니며 먹을 수 있는 젤라토의 인기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실제로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 해제 뒤 외출·모임 관련 물품이 ‘집콕’ 관련 제품보다 판매율이 늘었다고 한다. 온라인 식품몰 마켓컬리는 지난달 2일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되는 날을 기점으로 전후 20일 상품 판매량을 비교해보니 와인·캠핑·스포츠 용품 등 판매량이 증가하고 마스크·밀키트 등 코로나가 정점일 때 판매량이 많았던 제품군이 감소세를 보였다고 밝혔다.

'스쿠퍼 젤라또'를 운영하는 차상혁(왼쪽)과 김혜진 부부.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스쿠퍼 젤라또'를 운영하는 차상혁(왼쪽)과 김혜진 부부.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야외에서 눈치 보지 않고 디저트를 즐길 수 있다 보니 ‘녹기 전에’는 근처 유명 평양냉면집 을밀대에 다녀오는 길에 사먹고 나가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1차, 2차를 모두 찬 음식으로 해결하니 이야말로 도시 피서다. ‘스쿠퍼 젤라또’가 요즘 바쁜 이유 중 하나는 청와대 개방이다. 이들은 청와대 개방 이후 늘어난 인파를 몸으로 느낀다고 말했다. 젤라토는 걷는 사람을 위한 디저트니까.

그런 변수들이 모여 2022년 서울 젤라토 먹는 사람들의 풍경이 만들어진다. 학원 다녀오는 친구들이 젤라토 하나를 사서 나눠 먹는다. 서촌 나들이를 나온 친구들이 무슨 맛을 고를지 고민하며 수다를 떨다 사서 나간다. 동네 사람들, 나들이 나온 사람들, 매일 먹는 사람들과 가끔 먹는 사람들, 이 모든 사람들이 젤라토 가게 쇼윈도 앞에서 안전한 모험을 즐긴다. 모두의 젤라토 중 같은 젤라토는 없을 것 같다. 보통 젤라토는 두 가지 맛을 팔고, 모두 다른 조합을 택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디저트 부문에서는 사회가 조금씩 다양해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박찬용 칼럼니스트 iaminseou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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