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에서 한 프리다이버가 다이빙을 즐기고 있다. 이지은 제공
한 치의 오차 없이 물결치듯 움직이는 수천 마리 물고기의 움직임. 그런 풍경은 우리가 익숙한 2차원의 세계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풍경이다. 그리고 그 압도적인 풍경은 다이빙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누구도 느껴볼 수 없다.
“그 기분 알아요? 인어를 만난다면 어떤 느낌일지. 바다 끝까지 내려가면 바닷물은 더 이상 푸른빛이 아니고 하늘은 기억 속에만 있죠. 고요 속에서 떠다니는 거죠.”(영화 <그랑블루>의 대사)
살면서 다이빙을 하는 다른 사람을 만나본 일은 극히 적다. 스물 몇살에 배워서 마흔이 넘도록 열명 남짓도 보지 못했으니 다이빙(프리·스쿠버)이 흔한 취미는 아닌 것 같다. 그럼에도 취미로 다이빙을 소개하고 권하는 이유는 다이빙만의 특별한 매력 때문이다.
우리는 지구과학 시간에 지구의 30% 정도는 육지이고 70%는 바다라고 배웠다. 그런데 그 나머지 70%를 경험해본 사람은 내 생각엔 다이버 말고는 없을 것 같다. 바닷속 세계가 어떤 모습인지 내 눈으로 경험해보는 특별한 느낌. 기억의 심연 속에 존재하는 태아 시절의 엄마 뱃속에서 느꼈을 법한 따뜻하고 편안한 무중력의 경험, 그리고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물속 세계의 주인들. 그런 것들을 만날 수 있는 길은 다이빙 말고는 없을 것이다.
프리다이버는 마치 인어처럼 우아하게 물속을 돌아다닐 수 있다. 이지은 제공
나는 프리다이빙은 배우지 못했고, 스쿠버다이빙은 꽤 오랫동안 즐겨왔다. 그래서 감상에 대한 묘사는 거의 스쿠버다이빙에 관한 것임을 먼저 말하고 싶다. 스쿠버다이빙과 프리다이빙의 가장 큰 차이는 공기통(산소통이 아니다. 일반적인 공기를 주입한 공기통이 맞는 표현)을 가지고 들어가느냐 아니냐의 차이다. 그런데 그 차이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내가 배우지 못한 프리다이빙이 어떤 기분일지 말하는 것은 힘든 일일 것 같다. 다만, 취미로서 다이빙이 갖는 가장 특별한 점은 둘 다 같다. 바로 평소에 볼 수 없던 물속 세계를 내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처음 다이빙을 배운 이집트에서 겪은 일이다. 물속을 여행하며 돌아다니다 대양 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어느새 눈앞에 수천 마리의 바라쿠다 떼가 몰려와 있었다. 시선이 닿는 모든 곳에 삼치처럼 생긴 긴 원추형의 바라쿠다 떼가 온 바다를 뒤덮은 모습은 마치 푸른 바탕에 은색의 긴 줄을 가로로 그어놓은 거대한 벽지 같아 보였다. 그리고 그 광경은 정말 어마어마했다. 그 광경에 매료되어 그쪽을 향해 움직이는 순간, 바라쿠다 떼는 나의 움직임을 눈치채고 방향을 바꾸어 대양으로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치의 오차 없이 물결치듯 움직이는 수천 마리 물고기의 움직임. 그런 풍경은 우리가 익숙한 2차원의 세계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풍경이다. 그리고 그 압도적인 풍경은 다이빙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누구도 느껴볼 수 없다.
한 다이버가 물속에서 정어리 떼를 만났다. 전갱이, 정어리, 바라쿠다 등 100마리 단위, 많게는 1000마리 단위로 몰려다니는 생물들을 만날 때, 인간은 바다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그들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김동현 제공
다이빙을 추천하는 두번째 이유는 무중력의 느낌 때문이다. 다이버들이 물속에서 가만히 떠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부력조절기라는 장치를 통해 물에 가라앉지도 않고 떠 있지도 않는 중성 부력의 상태를 인위적으로 만들기 때문이다.(프리다이빙엔 없는 개념이다.) 그 느낌이 어떤 것이냐면, 체중마저도 느껴지지 않는 우주유영의 느낌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주에 나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예상할 뿐이지만, 그 무중력의 느낌이 2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지반 한곳이 갑자기 움푹 침강한 블루홀이라는, 다이버들에게도 특수한 지형 속에서 경험한 것이었는데, 블루홀의 가운데를 지나가는 다이버는 하늘과 바닥, 벽의 구분 없이 온통 새파란 공간 속에 덩그러니 놓이게 된다. 그때 나는 그 무중력 상태에서 하늘이 어디이고 땅이 어디인지 헷갈려버렸다. 나중에 들은 다이브 마스터의 표현대로라면 나는 머리가 약 45도 정도 바닥을 향한 상태로 하늘을 바닥인 줄 알고 멍청히 떠 있는 듯 보였다고 한다. 고개를 아래위, 옆으로 아무리 돌려봐도 무엇도 보이지 않는 파란 공간, 그 속에서 하늘을 땅 삼아 비스듬히 서 있는 사람을 상상해보라. 그런데 그 느낌이 너무 좋았다.
나중엔 아래위를 포기하고 그냥 그 공간을 유영하고 다녔는데, 그 전으로도 그 이후로도 나는 그런 무중력 공간의 느낌을 가져본 적이 없다.(혹시 안전에 대해 걱정할까 봐 말씀드리면 다이브 컴퓨터라는 시계로 수심을 체크하며 다닌다. 또 다이버는 2인1조가 원칙이다. 둘은 서로 체크하며 혹시 모를 위험한 상황에 대비한다.) 혹시 모른다. 우주여행이 보편화하고 우주유영이 관광상품화된 약 30년쯤 후의 내가 “그래 나 젊었을 때 딱 한번 이 느낌을 느껴본 적이 있지”라고 말할지도. 하지만 현재까지 살면서 별의별 이상한 짓은 다 하고 다니고 있지만, 맹세코 지구의 중력을 거스른 일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번밖에 없다. 세상에 그런 느낌은 정말이지 존재하지 않는다.
프리다이버가 필리핀 보홀에서 다이빙을 즐기고 있다. 뒤에 거북이 지나가는 게 보인다. 김동현 제공
지금까지 다이빙이 얼마나 재미있고 특별한 경험인 줄 아냐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사실 한국은 다이빙을 배우기에 좋지 않은 환경이다. 다이버들 사이에서 “시야”라고 말하는 바닷물의 맑기가 좋지 않기 때문인데, 바다에 플랑크톤이 많을수록 바닷물이 탁해 다이빙을 즐기기가 좋지 않다.(이 탁도는 오염도를 뜻하는 표현이 아니다. 다만, 플랑크톤이 많아 바닷속 환경이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다이빙을 즐겨본 바다 중에서 가장 시야가 좋은 바다는 이집트의 홍해였다. 그곳에선 말 그대로 하늘과 바닥을 착각할 정도로 새파란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그다음이 동남아시아였는데, 어디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플랑크톤이 꽤 많은 타이의 바다는 5m 정도의 시야밖에 나오지 않는 곳도 많다.
정작 우리가 접근하기 좋은 한국의 바다는 사실 굉장히 시야가 안 좋은 편에 속한다. 서해는 조수간만의 차 때문에 펄이 일고 조류가 너무 세서 다이빙을 즐기기 힘들다. 그나마 바다가 맑은 남해, 제주, 동해안을 중심으로 다이빙을 즐기고 있다. 경험자의 말로는 울릉도의 가을 바다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시야가 맑고 바닷속 환경이 좋으며, 겨울의 서귀포 바다도 세계적인 연산호(산호의 일종) 밭을 가진 곳이라 꽤 좋은 포인트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바다가 맑아지는 10월~2월은 점점 바다가 추워지고 거칠어지는 시기이기 때문에 사실 한국이 다이빙을 즐기기에 좋은 환경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그런데도 다이빙이 취미로서 가능성이 있는 이유는 그런 자연환경을 이기기 위해 프리다이빙, 스쿠버다이빙을 배우는 시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올림픽공원엔 초심자를 위한 5m 풀이 있고, 가평에 26m 풀, 또 올해 용인에 30m가 넘는 본격적인 딥 다이빙 풀이 들어설 예정이다.
다이빙을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지금쯤 다이빙을 시작해서 배우기를 권한다. 휴가철에 한국의 바다를 경험하고, 국외 어딘가로 여행을 떠났을 때, 그 압도적인 풍경을 만나보기를!
허진웅 이노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