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ESC

[ESC] 채식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겨야죠

등록 2022-04-08 15:16수정 2022-04-08 15:21

비건하고 있습니다
대체육 성공 ‘식감’에 달려
고기와 구분 못할 정도라면
비건 진입 문턱 낮아질 수도
일러스트레이션 백승영
일러스트레이션 백승영

예전에 교사 교류 프로그램으로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사들을 이끌고 인도네시아로 출장을 간 적이 있었다. 현지 학교에서 우리 일행을 위해 만찬을 준비해줬는데, 그중 우리나라의 장조림과 비슷한 요리가 하나 있었다. 생긴 것도 맛도 장조림과 비슷했고, 질기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이 소고기 장조림과 똑같았다. 현지 학교에 물어보니 세계에서 가장 큰 과일이라 불리는 잭프루트를 사용해 만든 요리라는 답을 들었다.

내가 먹고 있는 것이 고기가 아니라 과일이라고? 당시 동남아시아 출장 경험이 많으며 채식을 하던 나도 받아들이기 힘든 답변이었는데, 함께 방문한 교사들은 얼마나 놀랐을까. 그들은 현지 학교에서 장난을 친다고 확신하는 눈치였다. 학교 교장은 문화 차이에 충격을 받은 우리가 재미있다는 듯 본인의 휴대폰에서 잭프루트를 검색해 사진을 보여주었다.

식품시장에서 대체육에 대한 관심도와 수요가 급증하면서 이제는 여러 종류의 대체육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콩이나 밀가루 등의 식물성 재료로 만들어진 대체육이 대부분이며, 배양육과 같이 동물의 세포를 배양하여 만든 고기도 곧 상용화될 전망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내가 인도네시아에서 잭프루트 장조림을 먹었을 때 느꼈던 ‘이게 고기가 아니라고?’ 할 정도의 믿을 수 없는 감정을 느끼게 한 제품은 없었다. 식물성 대체육을 맛보면 맛도 있지만 항상 2% 부족한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콩으로 만든 대체육의 경우 콩 특유의 뒷맛을 완벽하게 잡은 식품조차 항상 식감을 재현하는 부분에서 가장 힘들어한다.

대체육 말고도 맛있는 채식 재료가 많은데, 왜 내가 이렇게까지 대체육과 식감에 집착하는지 궁금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짧고 간단한 답변은 “내가 구제불능의 정크 비건”이기 때문이지만, 이보다는 조금 더 길고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제시하고자 한다.

채식을 윤리적인 이유로 시작한다면 채식의 식감이 중요하지 않은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다. “지금 당장 비인간 동물이 인간활동에 의해 죽어가고 있지 않은가? 인간이 먹을 음식의 식감을 생각하는 것은 사치”라고 누군가가 이야기할 수 있다. 분명 이 말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동물이 기계가 아니듯이). 채식을 하는 사람 중 대다수가 육식을 이미 경험한 적이 있으며, 채식을 한다고 해서 육식에 대한 기억이나 감정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본인이 좋아하던 음식을 다시 먹고 싶다는 감정이 바로 사라지는 것도 아닐 테다. 내가 비건이기 전 나의 솔푸드(영혼의 동반자인 추억의 음식을 의미하는 콩글리시입니다)는 햄버거였다. 비건이 된 이후 찾아가는 비건 식당마다 메뉴에 비건 햄버거가 있는 것을 보면 쉽게 먹을 수 있고 좀처럼 질리지 않는 정크푸드에 대한 애정은 남들도 비슷하게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떡볶이와 같은 포장마차 음식도 마찬가지다. 육고기 식품과 비슷한 맛과 느낌을 낼 수 있는 채식 제품의 개발은 이미 비건을 지향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채식을 도전할 수 있는 문턱을 낮추는 역할을 하기에 비건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식물성 대체육이 씹는 맛을 잘 표현하면 정말 내가 고기를 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착각을 하게끔 한다. 이렇게 음식의 맛만큼이나 음식이 가진 다른 성질, 즉 식감이 중요하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식감’이라는 단어를 파헤쳐보면 말 그대로 음식을 먹을 때 느끼는 감각을 의미한다. 옥스퍼드 대학교의 심리학자인 찰스 스펜스는 <왜 맛있을까>에서 우리가 ‘맛’을 느끼는 데 있어 혀로 느끼는 미각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복잡하고 정교하게 얽혀 있는 여러 감각이 한데 모여 ‘맛’을 느끼게 한다. 여기에는 미뢰를 자극하는 ‘맛’뿐이 아닌 식감, 즉 씹는 느낌에서부터 음식의 냄새, 음식과 그릇의 재질과 색, 그리고 심지어는 소리까지 함께한다. 소리는 음식을 씹을 때 내는 소리도 중요하지만 먹을 때 들리는 음악의 장르와 음역대에 따라서도 느끼는 맛이 강하게 달라질 정도로 인간은 맛을 느낄 때 여러 감각에 의존한다. 맛을 느끼기 위해 음식의 식감은 물론 음식을 먹는 환경까지도 중요하다는 의미다. 이를 대체육에 대입하자면 대체육의 맛과 감각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는 대체육의 색과 향과 질김과 씹을 때의 아삭하는 소리까지도 정교하게 설계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잭프루트. 게티이미지뱅크
잭프루트. 게티이미지뱅크

이렇듯 대체육이 진짜 고기의 맛을 흉내 내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여럿 있다. 심지어 특정한 음식이 ‘맛이 없다’라는 편견 자체가 음식의 맛을 실제로 떨어뜨리게도 하니, 채식 요리는 맛에 대한 많은 편견과 싸워야 한다. 하지만 실망하기에는 이르다. 이미 그 맛을 똑같이 재현한 제품들이 존재한다. 버○킹에서 작년에 선보였던 식물성 버거인 플랜트 와퍼는 감쪽같은 버○킹 와퍼였다.

쫄깃하면서도 바삭한 음식이 당긴다면 요새 서울에서 점차 늘어나는 채소 꿔바로우(궈바오러우)나 버섯이나 가지 등을 이용해 만든 탕수 요리를 시켜 먹을 수 있다. 어느 잇몸 광고 문구처럼, 대체육 또한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하는 날은 먼 미래가 아닌 현실이다.

잭프루트의 경험이 보여주듯, 이미 자연에서 구할 수 있는 것도 많이 존재한다. 이미 훌륭한 채식 재료가 이만큼 많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비건 식당을 운영하시는 많은 분들에게 잭프루트를 대상으로 요리를 연구해볼 것을 촉구하며 글을 마친다.

홍성환(비건인)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ESC 많이 보는 기사

결혼을 약속한 남친이 있는데 다른 남자와 자고 싶어요 1.

결혼을 약속한 남친이 있는데 다른 남자와 자고 싶어요

[ESC] 시래기와 우거지의 차이를 아시나요? 2.

[ESC] 시래기와 우거지의 차이를 아시나요?

물 붓고 끓이면 끝! 얼마나 맛있으면 이름도 ‘맛조개’일까 [ESC] 3.

물 붓고 끓이면 끝! 얼마나 맛있으면 이름도 ‘맛조개’일까 [ESC]

[ESC] “조림? 푹 끓이셔, 끓다 보믄 조려져~이” 4.

[ESC] “조림? 푹 끓이셔, 끓다 보믄 조려져~이”

빈뇨·야뇨·잔뇨…남성질환 ‘찜찜한 불청객’ [ESC] 5.

빈뇨·야뇨·잔뇨…남성질환 ‘찜찜한 불청객’ [ESC]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