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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내 몸의 한계를 마주하고 싶은 당신께

등록 2022-03-31 13:51수정 2022-03-31 14:18

그걸 왜 해?: 자전거
봄은 자전거를 타기 좋은 계절이다. 허진웅 제공
봄은 자전거를 타기 좋은 계절이다. 허진웅 제공

자전거를 추천하는 이유는 중간에 포기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달린 거리만큼 반드시 다시 돌아와야 한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어도 포기할 수 없는 구속력이 있다. 꾸역꾸역 가다 보면 언젠가는 목표한 곳이 나올 거다.

언제였을까? 자동차를 타지 않고 10㎞를 넘게 이동해본 마지막 기억은. 군대 시절엔 경험이 있었던 것도 같다. 그걸 행군이라고 불렀지 아마. 내 자의는 아니었지만, 꽤 먼 거리를 걸어서 움직였다. 그때 차를 타면 넉넉잡아 두시간이면 닿을 거리를 밤새 졸음과 싸우며 고통스럽게 걸었다.

그게 억울하고 분했었나 보다. 차를 타면 금방인데, 하염없이 걷고 또 걸어도 도대체 목적지가 보이지가 않는 게 나는 너무나 억울했다. 그래서 그 이후로 그 오랜 시간 동안 나는 몸을 그렇게 쓰지 않았나 보다.

자동차가 더 편리하고, 시간도 적게 걸리니까. 그렇게 합리적이고, 계산이 바른 사람이라서 지금 내 몸은 이런가 보다. 40대에 접어든 나는 건강검진을 받는 게 두려운 사람이 되었나 보다. 아마도 중성지방, 그리고 지방간, 과체중, 동맥경화 등등. 분명히 의사 선생님은 한숨을 내쉴 거고, 운동과 식사조절을 말씀하실 거다. 그래. 그러기 전에 올해는 건강검진 준비를 좀 일찌감치 해보자.

디데이(D-Day)를 10월 건강검진의 날로 잡고, 그날 담당 의사 선생님께 건방진 눈빛을 쏴줄 준비를 해보자. 매번 죄짓는 느낌으로 “네네. 선생님 운동 열심히 하겠습니다. 술 그만 마실게요” 이런 말 말고, “제 신체 나이가 몇 살입니까? 하하하” 이렇게 호탕하게 웃어볼 준비를 하자.

운동 시간이 모자란다고? 아니다. 시간은 없고, 할 일은 많고, 출퇴근도 매일 해야 하는 우리에게 딱 맞는 취미가 하나 있다. 바로 자전거. 자전거로 출퇴근하기다.

자전거를 타고 산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짜릿하다. 허진웅 제공
자전거를 타고 산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짜릿하다. 허진웅 제공

봄, 자전거와 사랑에 빠지다

이번 주말, 아마도 남쪽 동네는 한참 벚꽃이 활짝 피었을 테고, 서울이나 경기도 근처는 이제 막 벚꽃이 피기 시작했거나, 오늘내일하고 있을 거다. 어떤 사람은 봄이 왔다 간 줄도 모르고 금방 여름을 맞이하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은 봄의 꽃들이 하루하루가 다르고 똑같은 나무의 녹색도 매주 다르다는 걸 몸으로 느낀다. 도시에는 별로 없을 것 같지만, 그런 사람들이 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다. 내가 처음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계절도 이 계절이었다. 6년 전 이사를 왔는데, 이사 온 아파트가 한강 탄천을 따라 회사까지 연결된 아파트였다. 거리는 20㎞.

이사 올 때 다짐한 게 있었다. 출퇴근을 자전거로 해보자. 막상 그렇게 생각했지만 20㎞라는 거리는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 거리였다. 버스로는 40분 정도 걸리는 거리. 그렇게 생각하면 짧은데, 기름을 쓰지 않고 내 땀만으로 그 거리를 간다는 게 도대체 상상이 안 갔다. 처음 자전거를 타고 경기 성남에서 서울로 출근을 연습하던 날이었다. 벚꽃이 날리고 있었고, 날은 따뜻했고, 마침 황사도 없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별로 안 힘든 게 아닌가? ‘안장통’이라고 자전거를 타면 누구나 겪게 되는 엉덩이 깊은 곳에서 시작되는 기분 나쁜 고통이 일주일 정도 뒤따랐지만, 내가 내 힘만으로 도시를 건넜다니! 그 말도 안 되는 성취감은 오래갔다.

“자전거 타고 출퇴근하세요? 거리가 얼마나 되는데요?”라는 질문에 “한 20㎞ 돼요”라고 대답할 때, “우와” 하는 눈빛과 그 경애에 찬 표정이 너무 좋았었나 보다. 그렇게 나는 자전거에 슬슬 빠져들었다.

자전거를 탈 땐 항상 로드킬에 유의해야 한다. 허진웅 제공
자전거를 탈 땐 항상 로드킬에 유의해야 한다. 허진웅 제공

쫄쫄이는 편한 옷이었다

그 여름 나의 목표는 남한산성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한 지 석달쯤 지난 초여름의 어느 아침, 아이들과 함께 남한산성을 향하는데 경사가 한참 급한 남한산성의 도로 위를 자전거를 타고 오르는 사람들이 보였다. 도저히 나는 못 입을 것 같은 쫄쫄이를 입고, 숨을 헐떡이며 산을 오르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아니, 웃고 있는 게 아닌가? 도대체 왜? 산을 왜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지? 평지를 타면서 슬슬 기분 좋은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막 웃어재낄 그런 장르의 취미는 아닌데. 도대체 왜 저 사람들은 저렇게도 기분 좋게 웃고 있는 거지? 그 기분이 궁금하기도 하고, 또 그걸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남한산성? 나 거기 자전거 타고 올라가봤잖아~” “우와, 장난 아니다!” 그 경애의 눈빛이 또 보고 싶어 어느 일요일 아침 남한산성에 혼자 올랐다. 집에서 출발해 남한산성을 돌아오는 데 걸린 시간은 4시간 정도. 5년 전 일인데 지금도 기억하는 걸 보면, 그때 나는 나 스스로가 너무 자랑스러웠었나 보다. 그날을 준비하기 위해 망설이며 쫄쫄이를 샀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몸이 한계에 닿을 때쯤 깨달았다. 쫄쫄이는 멋으로 입는 게 아니었다. 쫄쫄이는 편해서 입는 거였다.

자전거를 탄 뒤 마시는 콜라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 허진웅 제공
자전거를 탄 뒤 마시는 콜라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 허진웅 제공

인생 콜라를 맛보다

한창 자전거에 빠져 유튜브를 섭렵하던 시절이었는데, 유튜브의 세계엔 자전거로 춘천을 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같이 자전거를 타던 나의 전 회사 선배와 함께 “가다가 안 되면 중간에 돌아오면 되지 뭐”라며 다짐을 하고, 새벽 일찍 자전거를 타고 나섰다. 서울에서 춘천까지 약 100㎞. 인간이 인간의 몸만으로 그 거리를 갈 수 있다는 것도 상상이 안 되었고, 더군다나 내 몸이 100㎞를 달린다는 건 더 상상이 안 되던 그 거리. 겁을 잔뜩 집어먹고 길을 나섰다. 미사리를 지나고, 양평 대교를 건너 국수를 한 그릇 먹으면서 둘이서 서서 얘기를 했었는데, 어라. 생각보다 갈 만한데라는 표정이었던 게 생각난다. 아저씨가 되고 나서 한번도 내 몸을 믿지 못하던 내가, 내 몸을 믿을 만하다고 느꼈다는 게 대견하고 뿌듯했었다. 그런데 강촌을 지날 때, 아니나 다를까, 한계가 왔다.

주말 새벽, 무념무상의 페달질을 하다 보면, 도시에는 없을 것만 같은 풍경을 만나기도 한다. 허진웅 제공
주말 새벽, 무념무상의 페달질을 하다 보면, 도시에는 없을 것만 같은 풍경을 만나기도 한다. 허진웅 제공

“차 타면 금방인데 이런 비합리적인 여행을 도대체 왜 한단 말인가?” 합리적 의심이 들기 시작했고, 몸은 천근만근 무거워지고 페달을 밟는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을 때, 편의점이 하나 나타났다. 그런데 내 몸은 이온음료가 아닌 당을 요구하고 있었다. 탄산 가득한 콜라의 그 자글자글하는 소리와 짜릿한 목 넘김이 간절했었다. 오늘 이 이야기를 왜 군대 이야기로 시작했냐면, 그때 콜라의 맛은 마치 훈련소 시절, 초코파이를 화장실에서 숨어서 삼킬 때의 강렬함 같은 것이었다. 단돈 1000원으로 느낄 수 있는, 세상에서 한번도 마셔본 적 없는 엄청난 쾌감의 음료. 가치로 보자면 100만원도 아깝지 않은 그 맛을 나는 그때 맛보았다. 그래, 사실은 이 말이 하고 싶었다. 자전거를 타고, 내 몸의 한계에 도전해보고,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콜라를 마셔보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언제 몸의 한계에 닿아보겠는가? 자전거를 추천하는 이유는 중간에 포기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달린 거리만큼 반드시 다시 돌아와야 한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어도 포기할 수 없는 구속력이 있다. 꾸역꾸역 가다 보면 언젠가는 목표한 곳이 나올 거다. 그 전에 포기하고 싶어도 자전거라는 물건이 있어서 포기할 수 없고, 그래서 한계의 한계까지 나를 몰아붙일 수 있다. 그러다 정 안 된다 싶을 땐, 콜라 한잔 마시고, 농담 좀 하다 보면 여유가 생기고 다시 갈 수 있다. 평소에는 우리가 경험할 수 없는 지금 내 몸의 한계를 마주하는 그런 경험을 당신에게도 꼭 소개해주고 싶었다.

허진웅 이노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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