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맛이 꿀맛’이라는 말은 정확히 하면 요즘에만 해당한다. ‘햅쌀’이란 말도 12월 해를 넘기기 전까지만 유효하다. 생각해보면 길지 않은 시간이다. 바야흐로 지금은 쌀의 계절이다.
왜들 그렇게 햅쌀을 외치는가? 대부분의 먹거리는 영양소로 그 가치를 측정한다. 신선함이란 것도 최대치의 영양소를 함유하고 있다는 친숙한 표현이기도 하다. 쌀이 신선하다는 것 역시 가장 많은 영양 성분을 가지고 있을 때를 말한다. 수확 철인 지금이 바로 그때다.
예전에 흥미로운 논문이 하나 나왔다. 한국인이 섭취하는 단백질의 주재료가 고기나 달걀, 두부가 아닌 쌀이란 연구 결과였다. 쌀은 탄수화물 덩어리 아니었어? 반문하는 분들이 계시겠지만 쌀에는 탄수화물 말고도 단백질, 비타민, 무기질, 식이섬유 등 수백종의 영양 성분이 응집해 있다. 이순신 장군의 고봉밥은 적군을 물리치는 데 쓰이고 나의 고봉밥은 똥배와 팔뚝으로 간다는 오해는, 사실 ‘도정’에 그 비밀이 있다.
쌀도 껍질을 벗겨 먹는다. 이걸 도정이라고 한다. 사실 껍질에 쌀 영양 성분의 95% 정도가 응집되어 있어서 껍질을 완전히 다 벗기지 않는 게 좋다. 현미가 건강하다는 말도 여기서 나온다. 더 많은 영양소, 유효한 영양 성분, 쌀 껍질이 포인트다.
사과는 껍질을 까 놓고 15분만 지나도 갈변한다. 갈변하면 영양가가 떨어지고 맛이 없다며 사과를 내다 버리지만 쌀은 1년 후에도 밥해 먹고 2년, 3년 묵으면 떡을 해 먹는다. 쌀도 산화되고 상하고 변한다는 걸 소비자는 잘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햅쌀 맛이 좋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것은, 한편으로 쌀과 껍질의 관계를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젠 잊지 말자. 쌀 껍질을 깎고 나면 최대한 빨리 먹어야 한다는 것을.
쌀은 조금씩 사서 냉장 보관하며 먹는 게 좋다. 2~4㎏ 정도의 소포장 현미를 대형마트에서 사고 원하는 상태로 도정한다. 껍질의 절반을 살린 오분도미로 도정하면 부드러운 밥맛과 껍질의 영양 모두를 얻을 수 있어서 오분도미를 추천한다.
요즘 쌀은 밥을 한다고 불릴 필요가 없다. 예전과 다르게 엄청난 개량 과정을 거쳐 발전한 쌀들이 대부분이다. 물도 가릴 게 없다. 수돗물이나 정수기 물, 생수 그 어떤 물도 다 쌀 씻고 밥 짓는 데 적합하다. 버섯, 껍질 깐 밤, 마늘 등을 밥 뜸을 들일 때 밥 위에 얹고 5~10분 더 기다렸다가 살살 저어서 먹으면 그야말로 최신 유행 솥밥이다. 맛있는 밥은 밥이면서 곧 반찬이 된다. 시원하게 잘 익은 김치 쭉 찢어서 곁들이면 충분하다. 따끈한 밥 한 그릇. 이 맛이 바로 가을이다!
홍신애 요리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