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ESC

[ESC] 라켓에 닿는 공의 짜릿함…테니스, 힙스터를 홀리다

등록 2021-11-04 10:59수정 2021-11-05 14:03

ESC 커버스토리: 테니스 르네상스
코로나 시대 비접촉 스포츠로 다시 주목받는 테니스
실내테니스장 1년 새 두배 증가, 중장년 남성 스포츠 이미지 탈피
속성코스 도입해 2030서 인기…“일상 활력 주고, 도전 욕구 자극”
서울 서초구의 실내 테니스장 테니스 판타지에서 수강생들이 연습을 하고 있다.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서울 서초구의 실내 테니스장 테니스 판타지에서 수강생들이 연습을 하고 있다.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지난 30일 토요일 밤, 서울 강남 고속터미널역 근처 아파트단지. 오르막 골목길에 있는 불 꺼진 건물 현관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B2’ 버튼을 누르자 갑자기 다른 세상이 나타났다. 새로 칠한 듯 새하얀 페인트 배경 사이로 피트니스 클럽에서 나올 법한 미국 댄스곡이 흘렀다. 이곳은 실내 테니스장 테니스 판타지. 대표인 이건우·김보헌씨가 반갑게 맞았다.

“6년 전보다 5배 정도 성장한 거 같아요”라고 말한 이건우 대표는 중학교 3학년 때까지 테니스 선수였다. 하지만 공부로 ‘전향’해 체육교육학을 전공하고 테니스 마케팅 관련 일을 하다 올해 5월 실내 테니스 연습장을 차렸다. 꼿꼿이 선 다리에는 종아리 근육이 벽돌을 박아둔 듯 선명했으나 그는 석사 논문을 준비하는 학구파 스포츠맨이다. “스포츠는 자기표현의 한 수단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돈만 쓰는 걸 넘어 시간과 노력도 써야 하니까요. 2010년대 들어 자기표현 스포츠로 러닝이 있었고, 사이클이 있었죠. 그다음이 테니스입니다.” 이 대표가 말하는 동안 수강생들이 하나씩 들어왔다.

2030 세대 사이에서 테니스가 큰 인기다. 서울 서초구에 있는 실내 테니스장 ‘테니스 판타지’에서 한 여성 수강생이 연습을 하고 있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2030 세대 사이에서 테니스가 큰 인기다. 서울 서초구에 있는 실내 테니스장 ‘테니스 판타지’에서 한 여성 수강생이 연습을 하고 있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가장 핫한 스포츠”

“자! 믿을 수 없겠지만 오늘 여러분은 실제로 테니스를 해볼 거예요.” 교육장에 들어가자 이 대표의 목소리가 무대에 오른 래퍼처럼 커졌다. “원래 테니스 수업에서 시합을 바로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요”라고 소곤소곤 말하던 사람이 맞나 싶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테니스의 진입장벽 중 하나가 시합으로 가기까지의 기간이다. 골프는 빠르면 한달 연습으로 필드에 나갈 수 있지만 테니스는 주 2회씩 6개월은 강습을 받아야 시합이 가능하다. 그래서 이곳은 약식 훈련 코스를 자체 개발했다. 스트레칭부터 아주 간단한 랠리까지 한시간에 다 된다.

이날 모인 사람은 총 10명. 남자 6명, 여자 4명이었다. 여자는 레깅스를, 남자는 반바지를 입었다. 4명은 테니스 경험이 전혀 없었다. 상관없었다. 프로그램만 따라가면 되니까. 코스는 맨몸 스트레칭, ‘테니스 드릴’이라 하는 기본적 스텝, 라켓과 익숙해지는 라켓 드리블 뒤 공 없는 상태에서의 스윙 연습으로 이어졌다. 코치들이 공을 던져주는 스윙 연습까지 하고 아주 단순한 랠리까지 맛보는 코스가 10분씩 이어진다. 쉬워 보이니 나도 라켓을 잡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인스타그램에서 테니스가 핫하다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보고 시작하기로 했어요.” 29살 회계사 김수연씨는 이날 테니스를 처음 치기에 이르렀다. 김씨는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다 테니스를 체험하고 싶어졌다고 한다. “웨이트트레이닝보다 테니스는 사진 찍을 것도 많고 옷도 예뻐요.” 수업이 재미있었으니 앞으로도 레슨을 들을 거라고 했다. 목표는 경기에 나갈 정도까지의 수준 향상.

호텔리어 김수진씨의 사연도 인상적이었다. “회사와 집만 오가는 일상에 활력을 가지려 테니스를 하게 됐어요.” 그는 테니스가 까다로워서 도전 욕구를 자극한다고 했다. “잘 쳤을 때의 쾌감”이 있으니까. 이런 사람들이 테니스를 계속 칠 것이다.

“처음엔 우리도 이런 프로그램을 내키지 않아 했어요. 아직도 어르신들은 ‘왜 이런 거 하냐’고 해요.” 훈련 코스에 감탄하자 이 대표가 대답했다. 테니스는 그만큼 오래된 애호가, 즉 ‘고인물’이 많다. 이곳 대표들도 동네 테니스장에서 ‘물 뜨는 것부터 시작한’ 세대다. 오늘날 테니스 입문자는 이런 풍조에서 완벽히 벗어났다. 지금의 테니스는 인터넷에 기반한 21세기 네트워킹의 산물이다. 테니스 판타지도 에스엔에스와 메신저 앱을 활용해 사람을 모았다. 어르신을 모시는 테니스 문하 생활 없이도 바로 게임을 해볼 수 있다. 테니스 전문지 <테니스피플>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실내 테니스장은 1년 만에 2배 가까이 증가해 270개. 회원이 100명씩만 있다고 해도 2만7천여명의 테니스 동호인이 있다는 얘기다. 테니스가 진입장벽을 낮추고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서울 서초구의 실내 테니스장 테니스 판타지에서 수강생들이 연습을 하고 있다.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서울 서초구의 실내 테니스장 테니스 판타지에서 수강생들이 연습을 하고 있다.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비접촉 스포츠의 매력

다음날인 31일 일요일 오전. 테니스 하기 좋은 날씨였다. 기온은 적당히 서늘했고, 햇살도 적당했고, 테니스 코트 둘레로 슬슬 단풍들이 열리고 있었다. 예향의 고장답게 경기 수원 권선동 올림픽공원 테니스장의 5개 코트에는 사람이 꽉 찼다. 하지만 공 튀는 소리 말고는 소음이 없었다. 입구에서 맨 안쪽에 있는 5번 코트는 레슨 코트다. 레슨 코트 한쪽 천막 휴게실에서 키 큰 중년 남성이 나오며 말했다. “운동 시작하자.”

이날 레슨 수강생은 회사원 이승목(40)씨다. 그는 신체 접촉이 적은 개인 구기 종목을 찾다가 4년째 테니스를 하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삶은 체력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체력전을 위해서 운동을 해야 하는데, 구기 종목은 재미가 있고, 테니스는 그중에서도 남다른 묘미가 있었다. “운동량이 상당히 많아 체력 증진에 직접적 도움이 됩니다. 골프처럼 자세가 중요하기 때문에 일종의 정신 수양 효과도 있고요. 상대와 랠리를 지속하려면 남을 배려할 줄 알아야 해서 조금 성숙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실력이 비슷한 사람을 찾기는 어려워요.”

서울 서초구의 실내 테니스장 테니스 판타지에서 수강생들이 연습을 하고 있다.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서울 서초구의 실내 테니스장 테니스 판타지에서 수강생들이 연습을 하고 있다.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이승목씨의 말은 2021년 테니스 인기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신체 접촉이 적다는 테니스가 코로나19 불황을 뚫고 인기를 얻은 결정적인 요인 중 하나다. 스포츠의 1인당 평균 전용 면적에서 테니스는 (압도적 1위인 골프에 이어) 최상위권에 속하는 종목이다. 테니스 자체가 사회적 거리두기 스포츠인 셈. 골프와 비교되는 것도 시대의 한 조각이다. 21세기가 되면서 골프 등 구시대 상류층 스포츠가 ‘힙’한 중산층 성향 스포츠로 넘어오는 분위기고, 테니스 유행 역시 그 분위기의 일환이다. ‘비슷한 상대가 필요하다’는 건 테니스를 축 삼는 느슨한 커뮤니티를 말하며, 느슨한 커뮤니티는 도시 여가 산업 성공의 핵심 조건이다.

경기 수원 권선동 올림픽공원 테니스장에서 연습 중인 사람들. 박찬용 제공
경기 수원 권선동 올림픽공원 테니스장에서 연습 중인 사람들. 박찬용 제공

신기술도 거들어

“중심이 앞으로 싹 와야지. 왼발 앞에 촥!” 이씨는 코치와 연습을 시작했다. 전날 밤 반포보다 동작 지도가 훨씬 자세했다. 연습하는 모습을 보니 운동량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 테니스 코트의 가로변은 10.973m, 세로변은 11.9m다. 여기를 사냥개처럼 계속 뛰어다니며 공을 치기 가장 좋은 장소에 순간적으로 자리 잡은 후 스윙의 표준에 맞춰 내가 원하는 곳으로 공을 날려 보내야 한다. 여섯달은 해야 경기에 나설 수 있다는 말이 실감 났다.

“강습 포인트도 달라졌는데, 이건 라켓 기술과 관련이 있어요.” 자세한 코칭을 보며 ‘역시 숙련자 대상의 개인 강습은 다른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예전 라켓은 소재 기술이 덜 발달해서 정확한 동작으로 쳐야 했는데, 요즘은 반발력 등 라켓 성능이 좋아져서 맞추기만 해도 넘어가요. 그 때문에 젊은 코치들은 정확한 동작보다는 재미 자체를 강조하지요.” 연습을 끝낸 이씨가 말했다.

신기술도 테니스의 인기를 거들고 있다. “비디오 기술도 있으니 스마트폰만 있으면 자세를 확인하며 고칠 수 있죠.” 이씨는 그 말과 함께 코트 한쪽에 매달려 영상을 찍던 스마트폰을 꺼냈다. 반포에서도 개인용 모션 트래커를 이용한 자세 교정을 추천했다.

“레슨만 받으면 실력이 안 는다고 해서 클럽에 가입했더니 백발의 할아버지가 나오는 거예요. 테니스는 너무 잘하시더라고요.” 20년째 테니스를 하고 있는 39살 직장인 이정수씨의 회상처럼 과거 테니스는 중간이 없는 스포츠였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것이 바뀌는 지금, 테니스 역시 점차 변하더니 코로나라는 변수를 만나고 의외의 성장까지 했다. 부족한 코트는 실내 연습장으로 채우고, 어려웠던 동호인 모집은 인터넷으로 해결한다. 운동의 목적은 기량 향상뿐 아니라 멋 부리기이기도, 새로운 인간관계이기도 하다. 이 모든 흐름을 타고 새로운 테니스인들이 오고 있다. 바로, 테니스 르네상스다.

박찬용 칼럼니스트 iaminseoul@gmail.com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ESC 많이 보는 기사

세상에서 가장 긴 이름, 746자 1.

세상에서 가장 긴 이름, 746자

결혼을 약속한 남친이 있는데 다른 남자와 자고 싶어요 2.

결혼을 약속한 남친이 있는데 다른 남자와 자고 싶어요

혀끝에 닿는 술맛, “감렬한데!” 3.

혀끝에 닿는 술맛, “감렬한데!”

“기러기 아빠라” “접대 위해서”…딱 걸린 남자들 4.

“기러기 아빠라” “접대 위해서”…딱 걸린 남자들

연탄불에 보글보글 끓던 빨간 국물 5.

연탄불에 보글보글 끓던 빨간 국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