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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제임스 본드는 왜 롤렉스에서 오메가로 갈아탔나

등록 2021-09-30 04:59수정 2021-09-30 10:11

007 최신작 ‘노 타임 투 다이’ 개봉
애초 원작 설정은 “007 시계는 롤렉스”
90년대 후반 되며 실용적 오메가 부각
〈007 노 타임 투 다이〉에서도 제임스 본드는 오메가 시계를 찬다. 유니버설픽쳐스 제공
〈007 노 타임 투 다이〉에서도 제임스 본드는 오메가 시계를 찬다. 유니버설픽쳐스 제공

영화 ‘007’ 최신작 <노 타임 투 다이>가 29일 개봉했다. 21세기 007의 이미지를 이끈 대니얼 크레이그의 007 은퇴작이고, 코로나19라는 사상 최대의 국제적 전염병 때문에 개봉이 몇년이나 지연된 작품이기도 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영화 속 세계는 비슷할 것이다. 뭔가 불길하게 중얼거리는 악당이 나타나고, 우리의 007은 멋진 구두를 신은 채 무릎 관절이 나갈 듯 격렬히 전세계를 뛰어다닐 것이다. 연말 캐럴처럼 익숙하면서도 신나는 풍경이다.

20세기 007에겐 롤렉스

007의 세계에서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장수 상품이 모두 그렇듯 007 역시 급진적이지만 티 나지 않는 변화를 계속했다. 숀 코너리에서 대니얼 크레이그로 캐릭터 이미지 자체를 바꿨다. 경계가 명확하던 20세기를 지나 경계가 흐릿해진 21세기로 넘어오며 시대적 분위기 역시 반영했다. 그동안 시계도 바꿔 찼다. 롤렉스에서 오메가로.

007의 세계를 거칠게 도식화하면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전기는 ‘숀 코너리-20세기-롤렉스’다. 전기 007은 영국 귀족의 우아한 면모를 가진 엘리트 하이테크 요원이었다. 007 세계관의 창조주 이언 플레밍이 아예 원작 소설에 “007의 시계는 롤렉스다”라고 적어두었다. 숀 코너리는 <닥터 노> <선더볼>에서 롤렉스를 차고 등장했고, 각각의 시계는 특별한 기능이 있기도 했다.

롤렉스는 럭셔리이기 이전에 튼튼한 시계였다. 그때의 기계식 시계, 특히 다이버 시계 등의 대형 손목시계는 견고한 고성능 계측기였다. 목숨을 건 모험을 떠나려면 튼튼한 시계를 차야 한다. 지금 스위스 고가 시계와 그때의 시계는 다르다. 롤렉스 서브마리너 같은 시계의 이미지는 굳이 치환하면 카시오 지쇼크 같은 것에 더 가까웠다.

스위스 시계가 지금 귀금속이 된 이유는 세상이 변했기 때문이었다. 스위스의 기계식 손목시계는 저렴하고 정확한 일본 쿼츠 시계에 패배했고, 살아남기 위해 귀금속이 되었다. 그동안 냉전이 끝나고 소련 제국이 붕괴하며 세계는 2극 냉전 시대에서 다극 국지전과 테러리즘의 시대로 넘어갔다. 숀 코너리와 롤렉스의 전기 007 역시 시대의 흐름을 따랐다. 거대 악당과 우아하게 싸우는 자본주의의 귀족 영웅 007도 변했다. 20세기 007이 숀 코너리나 피어스 브로스넌 유의 고풍스러운 남자였다면 21세기의 007은 사연 있어 보이는 강인한 남자다. 그 결과가 숀 코너리에 이어 가장 장수하는 21세기의 007 대니얼 크레이그다.

영화 〈노 타임 투 다이〉에서 제임스 본드가 착용한 오메가 씨마스터 007 에디션. 오메가 제공
영화 〈노 타임 투 다이〉에서 제임스 본드가 착용한 오메가 씨마스터 007 에디션. 오메가 제공

영국 해군 시계는 오메가

그동안 007은 시계도 바꿔 찼다. 007은 1995년 피어스 브로스넌 주연의 <골든아이> 이후 내내 오메가를 찬다. 대니얼 크레이그 역시 본인이 등장한 모든 007 영화에서 오메가를 찼다. 007 애호가에게 혁명적인 설정 변화는 1995년 작 <골든아이>의 의상 총괄이었던 린디 헤밍으로부터 왔다. “1995년에 롤렉스는 너무 번쩍거리는 느낌이었어요. 도시남자 문화의 한 부분처럼 느껴졌달까요, 그때의 본드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어요.” 헤밍이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플레밍의 원안은 어쩌고? 논리적 구멍이 있었다. 007은 설정상 영국 해군이다. 당시 영국 해군의 정식 지급 시계는 오메가였다. 린디 헤밍은 어릴 때 아버지의 군인 출신 친구가 오메가를 찼다는 사실을 떠올리다가 시계를 바꾼다는 생각까지 갔다. 그동안 롤렉스의 이미지도 변해 있었다. 헤밍의 말처럼 90년대의 롤렉스는 이제 요원이 차기엔 조금 부담스러울 만큼 멋있는 시계였다. 오메가는 아무래도 수수했다.

이 에피소드 뒤에 장클로드 비버라는 마케터가 있었다. 비버는 스위스 시계 업계 역사상 최고의 마케터 중 하나다. 그는 영화제작사가 바라던 것보다 훨씬 높은 개런티를 지급한 뒤 해당 장면을 영화 개봉 6개월 전부터 프로모션용으로 사용했다. 영화 간접광고(PPL)의 시작점이자 007 앞광고의 시작점이었다. 훗날 그는 피어스 브로스넌이 파란색 오메가 씨마스터를 차고 나온 <골든아이>가 개봉한 뒤 시계가 몇천개씩 팔려나갔다고 회고했다. 마케팅의 승리였다.

오메가의 대표 모델인 씨마스터 플래닛오션. 오메가 제공
오메가의 대표 모델인 씨마스터 플래닛오션. 오메가 제공

마케팅의 승리

그 결과가 지금의 007, 살인 면허 보유자이자 지구 최고의 글로벌 ‘앞광고’ 모델이다. ‘대니얼 크레이그-21세기-오메가’가 말하자면 후기 007이다. 대니얼 크레이그는 선배들처럼 귀족적인 느낌 대신 현장 요원처럼 피 흘리고 얻어맞고 맨몸으로 싸우며 새로운 시대의 적들을 물리쳤다. 다만 007의 모든 의상은 광고 계약이 끝난 세계의 명품이고, 오메가 역시 협찬 물품 중 하나다. 상징적인 장면이 있다. 2006년 <카지노 로얄>에서 기차에 마주 앉은 본드걸 베스퍼 린드(에바 그린)가 제임스 본드에게 묻는다. “당신, 전직 에스에이에스(SAS) 요원 타입, 헤픈 미소, 비싼 시계, 롤렉스인가요?” 본드는 말이 짧다. “오메가.” 본드걸이 탄식한다. “아름다워.”

이 장면은 예술일까, 광고일까? 알 수 없는 일이고, 아마 둘 다일 것이다. 상업과 예술은 이제 라테의 커피와 우유처럼 한몸이 되어버렸다. 이런 시대에는 리스크도 최신형이다. 코로나19라는 글로벌 전염병이 창궐하며 다중집합시설과 관련된 영화산업이 직격탄을 맞았다. 그래서 원래는 영화 개봉과 함께 나왔어야 할 007 오메가 한정판 역시 2020년에 출시가 되어버렸다. 경계가 허물어지는 시대의 리스크는 이렇게 의외의 논리 구조에 따라 예상도 못 한 곳에서 폭발한다.

최신형 007 오메가 시계 역시 새로운 시대의 귀금속이다. 오메가는 늘 같은 값의 롤렉스보다 더 섬세한 세공을 한다. 재료로는 티타늄을 써서 놀라울 만큼 가볍다. 그만큼 비싸기도 하지만 코로나19 이후의 고가 시계 품귀 현상 때문에 지금은 구할 수도 없다. 이런 원고를 적으면 꼭 ‘그래서 사라는 거냐’라는 말이 돌아온다. 구매는 개인의 판단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잘 만든 시계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최신형 마케팅의 산물이라고도 생각한다. 마케팅은 남이 한 의미 부여다. 나는 남이 한 의미 부여엔 큰 관심이 없다.

박찬용(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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