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의 섹션을 나눠 각각 다른 색을 입힌 마지스의 ‘비트레일러 미러’. 마지스 제공
오래전부터 거울은 무척이나 실용적인 아이템이었다. 과거 대부분 가정집의 욕실 세면대와 화장대 위, 현관 신발장 맞은편 벽은 자연스레 원형이나 사각형 거울이 놓이는 자리였지만, 그저 형상을 비추는 역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요즘의 거울들은 본래의 용도를 넘어 감각적인 디자인 아이템으로 확실히 자리 잡았다. 단순한 형태에서 벗어나 취향대로 여러 가지 모양을 선택할 수 있고 소재도 나무, 플라스틱, 스틸, 아크릴, 스톤, 패브릭 등 다양하다. 색채 또한 프레임의 색은 물론 유리의 색까지 골고루 다채로워졌다.
구스타프 베스트만이 디자인한 ‘커비 미러’. 델라보테가 제공
최근 유명인들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자주 등장해 눈길을 끌고 있는 물결 형태의 거울은 폴트로노바(Poltronova)의 ‘울트라프라골리아 미러’(Ultrafragolia Mirror)다. 이 제품을 디자인한 사람은 멤피스 디자인의 멤버이자 20세기 디자인을 풍미했던 이탈리아 건축가 겸 디자이너인 에토레 소트사스. ‘궁극의 딸기’라는 뜻의 이 거울은 거대한 물결이나 긴 곱슬머리가 연상되는 형태인데 거울뿐 아니라 조명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당시에는 꽤 파격적인 구조의 아이템이었다. 조명을 껐을 때는 하얀색, 켰을 때는 연한 분홍색이 된다.
무스타슈(Moustache)의 ‘조디악 미러’ 또한 그에 못지않게 트렌디한 거울이다. 프랑스 디자이너인 장바티스트 파스트레즈가 디자인한 이 제품은 사각 거울에 잘 부푼 풍선을 알파벳 ‘유’(U)자 모양으로 붙인 듯한 형태로, 광택 있는 매끈한 세라믹 프레임이 거울만큼이나 반짝거린다. 올해로 스물일곱살인 스웨덴 디자이너, 구스타프 베스트만(Gustaf Westman)이 디자인한 거울도 에스엔에스에서 많이 회자되는 제품이다. 어떤 장르에서든 새로운 기류를 형성하고 있는, 이른바 ‘엠제트(MZ)세대’이기도 한 그는 가위로 둥글둥글하게 오려낸 듯한 형태의 ‘커비 미러’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의 에스엔에스에는 사랑스러운 파스텔톤의 커비 미러와 가구들로 가득하다.
부푼 풍선 같은 세라믹 프레임이 거울을 감싸고 있는 무스타슈의 ‘조디악 미러’. 에이치픽스 제공
프레임이 아니라 유리 자체에 변화를 준 거울도 많다. 영국 런던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 듀오, 스튜디오 로소(Studio Roso)가 디자인한 프리츠 한센의 ‘미러’는 유리 위에 특수 반사 프린트를 입힌 거울로, 빛의 유무와 사용하는 사람이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거울의 색상이 프리즘처럼 다양하게 변한다. 형태에 따라 라운드, 오벌, 롱 등 3가지 디자인이 있다. 잉가 상페가 디자인한 마지스의 ‘비트레일 드레싱 미러’(Vitrail Dressing Mirror)는 성당을 장식하는 채색 유리인 스테인드글라스에서 따온 이름 그대로 색깔 있는 유리를 사용했다. 일반적인 거울이 하나의 면으로만 이루어진 것에 반해 이 제품은 3~5개의 섹션으로 나뉘어 섹션마다 각각 다른 색을 입힌 것이 특징이다. 규정된 방향이 없어서 기호에 따라 가로, 세로를 선택해 설치할 수 있다. 셀레티(Seletti)가 이탈리아 매거진 <토일렛페이퍼>(Toilet Paper)와 협업한 ‘토일렛페이퍼 미러’는 골드 프레임의 타원형 거울에 립스틱을 들고 있는 남자들의 손, 색색의 뱀 등의 프린팅이 더해진 제품으로, 레트로 무드의 프린팅 때문에 거울이 아니라 하나의 팝아트 작품처럼 느껴진다.
조약돌의 자연적인 곡선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한 어페어비의 ‘페블 미러’. 어페어비 제공
국내 브랜드에도 디자인이나 소재 면에서 독특하고 특별한 거울들이 많다. 조약돌이라는 이름의 ‘페블 미러’를 선보이는 어페어비(Apairb)가 대표적이다. 돌멩이의 자연스럽고 간결한 곡선을 그대로 담은 페블 미러는 프레임이 없는 형태로 제작되어 어떤 공간에도 부드럽게 잘 어울린다. 핸드메이드 라운딩 가공으로 만들어진 특유의 곡선이 매우 아름답다. 어페어비는 페블 미러의 인기에 힘입어 또 다른 버전인 ‘플러피 페블 미러’도 선보였다. 부드럽고 풍성한 원사가 작은 페블 미러를 감싸는 형태인 플러피 페블 미러는 시각과 촉각까지 만족시키는 감각적인 거울이다. 게다가 크기가 작고 가벼워서 벽에 못을 박지 않고 핀으로만 고정할 수 있기 때문에 원하는 자리에 자유롭게 이동하며 설치할 수 있다.
금속공예를 전공한 여성 듀오 디자이너가 만드는 브랜드, 앤소사이어티(&Society)의 거울은 별도의 프레임 없이 벽면에 그대로 밀착되는 형태여서 간결하고 심플하게 공간을 꾸밀 수 있다. 거울에 특수 프린팅 기법을 사용한 ‘오호리’와 금속 액세서리를 매치해 한층 고급스러움을 더한 ‘덤보’ 시리즈가 대표 아이템이다.
거울은 사람뿐만 아니라 하나의 공간을 비추는 요소다. 남다른 디자인과 아우라를 지닌 거울들은 앞으로도 공간을 꾸미는 소품 그 이상의 오브제로 우리 일상 속에 더욱 깊게 자리 잡을 것이다.
정윤주(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