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전화했다.
“너, 앞으로 뭘 쓸지 내가 다 안다. 돼지꼬리족발, 수구레에 등골 같은 게 뻔하다. 안 봐도 4K(고화질 동영상)야 인마.” 돈이 없는 이들은 족발 대신 돼지꼬리를 펴서 족발처럼 양념해서 파는 걸 먹기도 하고(등장 시기는 1990년대 이후인 듯하다), 수구레는 70년대 최고 인기인 저렴한 대중 안주였다고 한다. 아 참, 우랑숙회나 탕도 있었다. 거시기 참, 힘센 아저씨들의 마초 지수 증강에 먹던 안주였다. 요새는 거세우가 태반이라 구하기도 힘들다. 일부러 사러 가실 건 없을 것 같다.
전화한 친구는 마장동파다. 도축장은 사라졌지만, 마장동 가던 선수들의 결기는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다. 시중에 없는 안주를 찾아 먹는 별난 기호의 소유자들이 마장동에 집결했다. 남도에서 육회 유행이 서울에 오기 전에 이미 마장동에서는 먹고 있었다. 슬쩍 이런 안주를 내놓는 주인아저씨들의 자부심과 공치사가 대단했다.
“이 이놈 구하느라 새복부터 기다렸제. 소 응뎅이에 도장 찍자마자 받아왔다니까.” 경매도 안 하고 나온다고 했다. 고기가 냉 받기 전에(찬 기운의 냉장고에서 찬 바람 맞기 전에) 얼른 먹어야 제멋이라고. 등골은 언제부터인가 금지가 되었다고 했다. 광우병 때문일까. 도살장에서 뺀 등골은 도부(도축기술자를 이르는 옛말)중에서도 대빵의 몫이라고 했다. 돼지도 뒷고기가 있듯이 소도 그랬다. 암암리에 도부들의 차지가 되던 옆구리 부위들 말이다. 그런 걸 술집에서 팔아야 마장동의 인기업소였다. 아마도 시중에서 꽃등심이란 말이 나온 것도 마장동이 처음이 아니었나 싶다. 신조어도 많이 만들어냈다. 떡 사시미(육회가 차지다고 해서)를 접시에 붙여서 뒤집어도 안 떨어지는 묘기(?)도 이미 오래전 마장동에서나 보던 아주머니의 기술이었다. 안 그래도 기름진 등심에 참기름장을 찍는다거나, 갈비보다 더 좋은 채끝등심을 갈비뼈에 붙여내는 것도 마장동이었다고 기억한다. 습한 날 골목에 들어서면, 이미 낮게 깔려 자욱하게 번지던 헤모글로빈 냄새. 현금 애호 시절이라 거스름돈을 받으면 간혹 천원짜리에 피가 묻어 있던. 얼마나 장사가 잘 되었던지 국방색 전대가 꽉 찰 때쯤이면 이동 현금수납 손수레를 끌고 온 은행원에게 맡기던 광경들. 이젠 마장동에서 돈 제일 잘 버는 사람은 인터넷 판매 상인이라는 말이 우스갯소리가 아닌 시대가 되어버렸다. 새벽에 와서 안줏거리를 사던 식당주인들. 그들이 제일 좋아하던 소기름, 수입 소의 싸구려 뱃살(이게 나중에 모두 ‘차돌’이라는 이름으로 국민 정육이 되고 있다)을 산 비닐 포대를 들고 바삐 택시를 잡던 모습. 도매 일을 마친 상인들이 생고기 넣은 김치찌개에 소주를 마시던 장면도 이젠 잘 보기 힘들어졌다. 마장동에서 술에 취해서 나오면 호황기에는 택시도 손님으로 안 받아준다고 했다. 신발 바닥에 기름기 있다고 말이다. 하염없이 신설동으로 걸어가면서 입가심할 호프집을 찾곤 했다. 마장동에 갈 때 사람들은 그랬다. 몸보신 좀 하겠구나. 고기를 안 먹어도, 마장동 술집에서는 호흡으로 살이 찐다고 했던가. 기름 연기가 가게에 꽉 차 있었으니까. 앞에 앉은 친구 얼굴이 잘 안 보여도 한 병까지는 더 먹어도 된다고 했다. 간만에 기름기로 몸보신으로 했으니, 취해도 더 마실 수 있다는 뜻이었다.
‘깐 양’이라는 말을 히트시킨 소 부산물 손질 전문 아줌마들도 마장동의 조연이었다. 소 내장 한 보를 받아다가 미끈거리는 작업장에서 허리 굽혀 잡것들을 손질하던 아줌마들의 신기한 솜씨도 눈에 선하다. 냄새나는 소 내장이 그렇게 말끔하게 씻겨서 식당주인이 좋아하는 재료가 되었다. 깨끗하게 씻어서 얼음 듬뿍 넣은 함지를 노점에 내놓고 팔았다. 근수도 넉넉하게 달아줬다. 십수 년 전만 해도 소 부산물은 정말 쌌다. 돼지는 말할 것도 없고, 요새는 왜 그리도 비싼지. 하여튼 그때는 소 부산물을 한 보따리 사다가 술안주 할 요량을 하면, 돌아오는 발걸음이 즐거웠다. 내가 개발한 안주는 ‘내장 짜글이’. 무교동이나 을지로 노포 곱창전골집 중에는 더러 고추장을 풀어서 자글자글하게 만들어주는 집이 있었다. 찌개의 농도가 진해지면 그게 짜글이다. 밥을 넣어서 안주로 먹기도 좋았다. 요새 유행하는 식으로 밥을 볶아도 기막히겠다. 참기름과 부추, 양파 다진 것이나 넣어서. 자, 여러분들도 나 따라 하면 서울 뒷골목 노포집 요리사가 된다.
재료는 대충 이렇다.
내장: 소 곱창 반 근(300그램), 깐 양 반 근.
채소: 깻잎 한 묶음, 연한 배추 열 잎, 대파 두 줄기, 청양고추 두 개, 생강 약간, 마늘 다섯 톨. 부추 약간
기타: 쌀뜨물, 소주 두 잔, 밀가루 한 큰술, 찬 밥 반 그릇, 소기름 약간(콩팥 쪽에서 나오는 두태기름이 제일 좋다), 참기름 한 큰술, 향이 좋은 고춧가루 한 큰술, 고추장 두 큰술. 그리고 다시다와 약간의 설탕까지.
1. 소 깐 양은 밀가루로 바락바락 씻어서 미리 2시간 삶아서 먹기 좋게 잘라둔다.
큰 뚝배기나 냄비에 소기름을 녹여서 천천히 가열한다. 연기가 나면 다진 마늘을 볶다가 대파를 우르르 넣고 살짝 더 볶는다. 참기름 한 큰술을 넣고 설탕을 넣는다. 연기가 나자마자 고춧가루를 뿌린다. 태우지 말고, 곧바로 손질한 곱창(곱이 흘러나와도 괜찮다)을 둘둘 말아서 그대로 넣어 3~4분 볶는다. 깐 양을 넣는다. 소주를 붓는다. 쌀뜨물 세 컵을 붓는다. 곱창이 얼추 익으면 가위로 먹기 좋게 자른다.
2. 고추장을 넣고 밀가루를 풀어 넣어 농도를 조절한다. 다시다와 설탕을 조금 넣는다. 깻잎, 배추, 대파, 청양고추, 생강 아주 약간을 넣어 국물 맛을 낸다. 간이 모자라면 소금으로 조절한다.
3. 중간 불에 20분 정도 끓어야 곱창이 먹기 좋다. 마지막에 부추를 넣는다. 파를 다져서 얹으면 향이 좋다. 소주 안주로 먹다가 밥을 넣어 볶아 먹는다. 이거 먹고 다음 날은 물이 엄청 먹힌다. 짜서 짜글인가.
박찬일(요리사 겸 음식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