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식사에도 티피오(TPO, 시간·장소·상황)가 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듯 매일 새로운 해가 뜨니 아침 밥상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도대체 다른 사람들은 어떤 음식을 아침밥으로 먹고 즐길까? 한 끼라도 거르는 것은 영 서운하다. 그래서 물었다. 아침에 뭘 드세요?
애주가인 아버지 덕에 해장국이 없는 아침상은 기억이 나지도 않을 어린 시절을 보냈다. 콩나물국, 김칫국, 다슬깃국, 시래깃국, 북엇국, 복국 등 국이란 글자가 들어간 웬만한 국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몸이 된 거다. 물론 국물로만 해장하지는 않는다. 짬뽕, 국수, 칼국수, 냉면, 어죽, 메밀묵밥, 제물국수같은 기본 해장 아이템부터 버거, 피자, 파스타까지 그날의 컨디션과 기분에 따라 음식을 골라 먹을 수 있는 해장전문가가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수순이었다. 그 아버지에 그 딸, 아버지의 술 사랑을 그대로 물려받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음식은 이래서 좋고, 저 음식은 저래서 해장으로 좋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해장 음식은 국시기다. 경상도 사람들에게는 ‘갱시기’ 또는 ‘갱죽이’라고 알려진 음식이다. 멸칫국물을 바르르 끓인 뒤 잘 익은 김치와 콩나물 그리고 밥을 넣어주면 끝인 아주 간단한 음식이다. 집집마다 더해지는 재료는 다르지만 보통 가래떡이나 국수를 넣어 걸쭉하게 끓여 낸다. 볼품없다 비웃을 수 있는 모양새지만 맛을 보고 난다면 뜨겁게 영혼을 달래는 그 맛에 빠질 것이다. 한국 사람이라면 거부할 수 없는 중독의 맛이다. 음식작가 장민영
회사에서 팀장을 맡은 터라 매일 아침이 전쟁이고 크게 아침을 챙겨 먹을 시간조차 나지 않는다. ‘아침밥을 챙겨 먹느니 한숨 더 자자’ 생각하는 날이 많다. 하지만 한 끼라도 거르면 어지럽고 기운이 나지 않는 ‘저질 체력’을 지닌 몸, 어쩔 수 없이 회사를 가기 전 뭐라도 입안에 넣어야만 한다. 물 붓고 기다려야 하는 라면이나 누룽지도 시도해 보았지만 시간이 아까운 데다 뜨거워서 급하게 먹기도 힘들었다. 우유에 말아 먹는 시리얼이나 그래놀라 같은 제품들은 어쩐지 속이 허했다. 이런저런 음식을 찾다 발견한 ‘새벽 배송’은 그야말로 눈물 나게 반가웠다. 전날 저녁에 인터넷으로 주문만 하면 아침 출근 전 집 앞으로 식품이 배송되는 시스템을 만나고 아침의 풍경이 달라졌다. 갓 구운 신선한 빵, 상할 염려 없이 소포장된 우유, 요거트 같은 유제품, 각양각색 버터와 잼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고 더할 나위 없이 편리했다. 맛집으로 소문난 베이커리의 빵을 직접 방문해서 기다리지 않고 문 앞에서 받아볼 수 있으니, 이 시스템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갓 구운 빵에 우유 한 잔이면 시간도 절약되고 속도 든든하니, 이젠 아침이 기다려질 때도 있다. 직장인 한성윤
바쁜 직장인을 상대로 점심을 제공하는 요리사 입장에서 아침 식사를 챙겨 먹는 것은 사실 사치다. 남에게 요리해 주는 직업이 가끔 괴로울 때가 이럴 때다. 요리는 주방 노동과 육체노동을 함께 하는 노동의 집약체다. 속이 빈 상태로 요리하기 힘들 수밖에 없다. 날마다 전쟁 같은 아침 시간, 출근하자마자 먹는 것은 단백질 셰이크와 식빵이다. 단백질 파우더 한 스푼에 우유를 적당히 넣고 흔들기만 하면 완성되는 셰이크는 맛도 생각보다 괜찮고 무엇보다 빠르게 속이 든든해진다. 프라이팬에 구운 식빵 한 조각은 별 것 아닐 것 같지만, 셰이크만 먹기 허전한 입을 달래주는 훌륭한 밑반찬이 된다. 시간이 조금이라도 더 나는 날에는 달걀 프라이를 부쳐 샌드위치를 만들거나 베이컨을 구워 호사로운 ‘호텔 조식’을 먹기도 한다. 요리사 김동영
밥을 지어 술을 빚는 막걸리 양조자에게 쌀과 밥은 숙명 같은 존재다. 빵보다는 밥, 보리밥보다는 쌀밥이 좋으니 주변에서는 ‘촌놈 입맛’이라는 놀림을 받기도 한다. ‘아침이 든든해야 하루가 든든하다’는 생각을 가진 터라, 매일 자기 전 ‘내일은 어떤 아침을 먹을까’ 생각하고 자는 것이 일종의 루틴이 된 지 오래다. 요즘 가장 꽂힌 아침 식사는 국밥, 그중에서도 곰탕이다. 맑고 뜨끈한 곰탕 국물이 위장을 타고 내려갈 때의 그 짜릿함에 일주일 내내 곰탕집만을 찾은 적도 있었다. 뜨끈한 곰탕에 흰 쌀밥을 말아 김치 한 점 얹어 먹으면 ‘한국인이라 행복하다’ 생각이 절로 난다. 술이 인생이고, 인생이 술이니 좀 한가로운 날 아침에는 소주도 반 병 곁들인다. 알코올 중독자 취급받기 딱 좋다고? 명색이 양조자인데 뭐 어떤가? 양조자 소지섭
토마토와 모짜렐라 치즈에 바질 페스토를 얹은 샐러드. 백문영 제공
다이어트를 끊었던 적이 있었던가? 다이어트는 운명이자 숙명이다. 사실 굶어서 살 빼는 것은 하수다. 세 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는 것이야말로 건강하고 오랫동안 지속 가능하게 살을 뺄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알았다. 냉장고에는 늘 샐러드용 로메인, 양상추, 토마토 등을 쟁여 놓는다. 풀만 먹어서 질리고 맛없을 것 같지만 풀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맛도, 풍미도 달라진다. 어떤 토핑을 얹느냐에 따라 샐러드의 종류가 달라지니 조합해 먹는 맛도 있다. 제철 과일을 얹어 먹기를 선호하는데 이제 갓 나오는 자두, 복숭아 같은 과일을 얹어 먹어도 맛있다. 조금 더 정성을 들이고 싶다면 토마토에 생 모차렐라 치즈를 곁들여 카프레제 샐러드로 만들어 먹어도 좋다. 소금이나 후추 간을 할 필요 없이 발사믹 소스나 올리브 오일을 한 바퀴 돌려 먹으면 상큼하고 시원한 아침 식사가 완성된다. 집에서 샐러드를 만드는 것이 버거운 이가 있을 수도 있다. 요즘에는 베이커리 같은 곳의 샐러드도 훌륭한 편이다. 간단하지만 포만감까지 있으니 아침 식사로 샐러드만한 것이 없다. 다이어터 윤승원
백문영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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