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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미스 강원’ 뽑는데 세금 2400만원 쓴 양양군…군수는 시상까지

등록 2021-06-01 07:19수정 2021-06-01 10:31

국가인권위 “여성신체 등급화·전시 미인대회…지자체 예산지원 개선해야”
김진하 양양군수가 ‘미스 양양’으로 뽑힌 지원자에게 트로피를 건네고 있다. 양양군청 홈페이지 갈무리.
김진하 양양군수가 ‘미스 양양’으로 뽑힌 지원자에게 트로피를 건네고 있다. 양양군청 홈페이지 갈무리.

강원도 양양군이 ‘2021 미스 강원’ 선발대회에 군 예산 2400만원을 지원한 것으로 31일 확인됐다. 성인지 예산을 따로 편성해 성평등 문화를 조성하는 데 앞장서야 할 지자체가 성 상품화라는 비판을 받는 미인선발대회에 세금을 쓴 것이다.

양양군청은 지난 13일 양양국민체육센터에서 열린 ‘미스 강원 선발대회’에 보조금 2400만원을 지원했다. 이 행사는 <강원일보>가 주최하고, 하이트진로가 협찬했으며, 양양군과 엘지(LG)헬로비전이 후원했다. 해당 영상은 엘지헬로비전과 유튜브를 통해 송출됐다.

이날 대회는 오는 10월 열리는 미스코리아 본선 참가자를 뽑는 강원지역 예선이다. 김진하 양양군수는 대회장에 직접 나와 ‘미스 양양’으로 뽑힌 수상자에게 어깨 띠와 트로피, 꽃다발을 건넸다. 또 무대에 올라 “저희가 지난해에 이어 (미스코리아 대회를) 2년째 열었다. 다음(내년)에 세번째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 군수는 <강원일보>에도 “미스 강원 선발대회가 다시 한 번 양양에서 열린다면 금액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홍보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내년에도 이 대회를 개최할 뜻이 있음을 나타내기도 했다.

양양군청 홈페이지에 공개된 ‘세입세출예산’ 갈무리.
양양군청 홈페이지에 공개된 ‘세입세출예산’ 갈무리.

그동안 지자체가 미인대회에 예산을 지원하거나 직접 미인대회를 개최하는 관행에 대한 비판은 끊임없이 제기됐다. 실제 경상북도는 ‘2020 미스 경북’ 대회에 5000만원을 지원했다가 여성단체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고 “내년부터 미인대회 예산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같은 이유로 올해 5월에는 밀양시가 주최하는 ‘아랑 모범 규수 선발대회’가 60년만에 폐지됐고, 지난 2019년에는 종로구가 개최하는 ‘단종비 정순왕후 선발대회’ 등도 취소됐다.

그런데도 양양군은 미인대회를 둘러싼 이런 비판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양양군청 관계자는 “‘미스 강원’ 대회는 도민체전 부대행사의 일환으로 개최됐다. 이 예산을 편성하기 전에 여성사회 단체 혹은 상급 기관으로부터 (보조금 지원이)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들었다면 지원을 다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브레이크를 걸지 않았다”고 말했다. 국가와 지자체가 예산을 짜거나 정책을 집행할 때 성평등을 반드시 고려하도록 하는 성별영향평가법이 제정(2011)된 지 10년이 흘렀으나, 양양군은 문제가 될 예산 집행을 걸러낼 역량이 없다고 자인한 셈이다.

앞서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6일 지자체의 미인대회 보조금 지원에 대해 “여성의 신체를 등급화하고 전시하는 미인선발대회의 사회적 의미와 영향력을 고려할 때 지자체장의 예산지원 및 사업운영의 관행 개선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표명한 바 있다.

이 결정은 2019년 6월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회가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한 이후 2년여만에 나왔다.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회는 “성평등을 지향해야 할 지자체가 미인대회를 후원하는 것은 성차별”이라며 지자체장 3명(대구시장, 경북도지사, 대구동구청장)과 대회 주관사인 대구한국일보·대구한국일보 엠플러스 매거진을 상대로 진정을 냈다. 당시 대구시와 경상북도는 약 6000만원에 달하는 보조금을 ‘내고장 축제’에 지원했는데, 이 축제에는 부대행사 격으로 ‘미스 대구’ 선발대회와 ‘미스코리아 대구·경북과 함께하는 불금파티’ 등이 포함돼 있었다.

인권위는 이 사건이 ‘조사대상’이 아니라며 각하했다. 피해자와 피해사례를 특정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러면서도 미인선발대회에 예산 지원의 문제점을 ‘의견표명’ 형태로 덧붙인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은 인권 보호·향상을 위해 정책 개선 또는 시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인권위가 관계기관 등에 권고 또는 의견을 표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인권위는 “피진정인(대구시장, 경북도지사, 대구동구청장)은 지자체장으로서 이 사건과 관련해 예산이 집행되는 목적·내용·영향을 고려해 시민의 인권을 존중하고 성평등에 기여할 책무를 다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 성별영향평가 등을 통해 이 진정사건과 같은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성평등 관점을 반영하여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인권위 관계자는 “이 사안은 국가인권위원회법이 규정한 조사대상에 해당하지 않아 ‘각하’처분이 내려진 것 뿐이다. 각하 사실 자체보다는 인권위의 ‘의견표명’에 방점을 찍고 바라봐 달라”고 말했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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