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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정준영 피해자 “2차 가해 판치는 성범죄 기사 댓글창…살인방조”

등록 2021-05-06 04:59수정 2021-11-05 15:48

정준영 불법촬영 피해자 5년 만에 첫 언론인터뷰
“‘너가 문제다’ 댓글에 ‘내 잘못인가’ 가스라이팅 당해”
“이 고통 다 겪어봤기에 누군가 죽을 수도 있는 고통이란 걸 알아”
젠더미디어 <슬랩> 유튜브 채널 영상 갈무리.
젠더미디어 <슬랩> 유튜브 채널 영상 갈무리.

가수 정준영(성폭력처벌법 위반 등으로 징역 5년 확정)으로부터 불법촬영을 당한 피해자 ㄱ씨를 <한겨레>가 만났다. 2016년 8월 정준영을 불법촬영 혐의로 고소한 지 4년9개월 만이다. 그가 언론과 대면 인터뷰를 한 건 처음이다.

불법촬영 피해를 당했을 때 ㄱ씨는 졸업을 두 학기 앞둔 대학생이었다. 취업을 준비하던 평범한 일상은 2016년 2월 정준영의 불법촬영으로 산산조각났다. 동의 없이 ㄱ씨 신체를 촬영했던 정준영은 해당 동영상을 이미 지웠다며 삭제 여부를 확인해주지 않았다. 유포가 두려웠던 ㄱ씨는 정씨를 경찰에 고소했다.

일주일이 지나고 ㄱ씨는 고소를 취하했다. 변호사 선임비용 500만원도 부담스러운 취준생이, 돈 많고 소속사도 있는 유명 연예인을 상대로 법정싸움을 벌여봤자 자신만 더 다칠 것 같았다.

뒤늦게 정준영 피소, 고소 취하가 언론에 보도됐다. 그때부터 ㄱ씨는 하루 3000개 넘는 악성 댓글에 시달렸다. 대중은 그를 ‘정준영 고소녀’로 호명했고, 맹렬하게 불법촬영 동영상을 찾았다.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종일 ‘정준영 동영상’이 떠 있을 정도였다. 동영상 유포를 막으려고 고소했는데, 외려 동영상이 유포되기 쉬운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등교도 못 할 정도로 정신이 피폐해진 ㄱ씨는 결국 학교를 자퇴했다. 2019년 3월 정준영이 불법촬영·유포 혐의로 구속됐을 때도 그는 침묵을 지켰다.

그랬던 ㄱ씨가 스스로 공론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정준영 사건을 다룬 유튜브 채널에 출연한 기자들이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한 것을 알고, 지난 3월 이를 바로잡는 내용의 긴 글을 댓글로 남겼다.

5일 청와대 게시판에 포털 성범죄 기사 댓글난 폐지 등을 요구하는 국민청원((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Temp/vCBwHk)을 올린 그를 <한겨레>가 만났다. 인터뷰는 지난달 25일 진행했다.

-불법촬영 이후 5년 만이다. 또 악성댓글에 시달릴 텐데 인터뷰에 응한 이유는 무엇인가.

“나도, 한국사회도 달라졌다고 봤기 때문이다. 지난 5년 동안 부단히 노력한 끝에 지금은 정서적으로, 생활적으로 많이 안정됐다. 한국 사회도 상당히 달라졌다. 5년 전만 해도 피해자 말을 들어주는 세상이 아니었지만, 이제는 세상이 변했고 2차 가해에 대한 인식도 생겼다. 내가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성범죄 피해자를 보호하는 실질적 해결책을 이 사회에 제시하고 싶었다.”

ㄱ씨는 5일 청와대 게시판에 포털 성범죄 기사 댓글난 폐지 등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을 올렸다. 청와대 국민청원 페이지 갈무리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그 해결책이 뭔가?

“첫째, 포털 성범죄 기사 댓글난 삭제다. 성범죄 기사 댓글난은 불특정 다수 누리꾼이 성범죄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행하는 창구로 쓰이고 있다. 내 경우 고소 사실이 알려지자 ‘정준영 인생을 망쳤다’는 댓글에, 고소 취하 사실이 알려지자 ‘역시 꽃뱀이었다’는 댓글에 시달렸다. 어떤 결정을 하든 2차 가해를 피할 수 없었던 셈이다.

정준영이 불법촬영 혐의로 피소됐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인 나를 질타했다. ‘(피해자) 행실이 문제다’ ‘연예인이라고 혹한 너도 문제다’ 등등 기사 하나에 댓글 3000개가 달리더라. 자려고 침대에 누우니 ‘눈치 없는 년’ ‘피해만 주는 년’ 환청이 들릴 정도였다. 그 상태로 어떻게 학교에 갈 수 있었겠나. 결국 그동안 준비해왔던 취업에 완전히 실패했다.

이런 댓글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나를 가해자로 생각하고 있었다. ‘별것도 아닌 일로 정준영의 인생을 망쳤구나’. 불법촬영으로 거의 6개월간 매일 울고 악몽을 꿨을 정도로 괴로웠는데, 그 고통을 잊고 내가 가해자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던 거다. 오죽하면 정준영에게 “미안하다”는 말까지 했다. 돌이켜보면 댓글에 가스라이팅 당한 것 같다.

댓글은 나를 자기검열하게 만들었다. 내가 겪은 범죄피해를 복구할 수 있는 건 진심을 알 수 없는 정준영의 사과가 아니라 소송을 통한 손해배상이다. 지금은 이런 판단이 가능하지만, 당시에는 꽃뱀이란 비난을 의식해 손해배상 청구도 못했다. 한 푼이라도 받으면 진짜 꽃뱀으로 낙인 찍힐 것 같았다.

댓글에 휘둘리면 나처럼 가해자에게 죄책감을 갖거나 추가 고소를 포기하는 등 비이성적인 판단을 충분히 할 수 있다. 당시 나는 스트레스로 밤에 잠을 못 잤지만, 나보다 더 취약한 누군가는 자살할 수도 있는 일이다. 내가 겪어봤기 때문에, 이 고통이 누군가를 죽게 만들 수 있는 고통이라는 걸 안다. 포털 사이트가 댓글창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할 거면 아예 없애야 한다. 포털이 2차 가해의 장인 댓글난을 그대로 두는 건, 살인을 방조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선례도 없지 않다. 수많은 연예인이 악플로 스스로 목숨을 끊자 연예기사 댓글난을 폐지하지 않았나. 의지의 문제다.

둘째로,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모욕·명예훼손은 가중처벌 해달라. 성범죄 기사 댓글에 달린 피해자를 향한 비난, 조롱, 허위사실 유포는 명백한 2차 가해다. 때문에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모욕·명예훼손은 2차 가해라는 맥락 속에서, 더 무겁게 다뤄져야 한다. 나는 댓글로 2차 가해를 하는 사람이 정준영만큼이나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정준영의 불법촬영 그 자체보다 나를 긴 시간 더 괴롭게 한 것 역시 2차 가해였다.

셋째로, 범죄피해자 개인정보 보호 입법을 촉구하고 싶다. 앞서 말했듯, 범죄피해를 그나마 복구할 수 있는 건 결국 민사소송을 통해 받는 손해배상금이다. 그런데 민사소송을 하면 공탁금을 내거나 재판 결과를 통보 할 때 피해자 개인정보가 가해자에게 공개된다. 이러니 보복이 두려워서 보상 못 받는 피해자도 많을 거다. 이 안은 이미 법안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빨리 통과됐으면 한다.” (※지난해 12월 서일준 국민의힘 의원 등 15명이 판결문에 피해자 성명과 주소 등 신원을 알 수 있는 내용을 가리고 송달하는 민사소송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지난 3월 돌연 에스비에스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끝까지 판다’ 영상에 댓글을 달았다.

“해당 영상은 정준영·승리 단톡방 불법촬영물 유출 사건을 취재한 기자가 기사에 못 담은 얘기를 풀어내는 형식이었다. 거기 출연한 기자가 이렇게 말을 하더라. “(정준영이) 연락을 끊자 (피해자가 불법촬영) 문제를 제기하고, 다시 사귀는 것처럼 하여 고소를 취하했다” “피해자가 정준영 집에 찾아가니 정준영이 매니저를 통해 이 여성을 치우라고 했다”. 첫번째 언급은 사실관계가 다르고, 두번째 언급은 가해자의 악랄함을 강조하기 위해서 불필요하게 피해자를 모욕한 것이다. 기자는 마치 연락 문제로 고소한 것처럼 말했지만, 나는 영상이 유출될까 두렵고, 가해자에게 경각심을 주려고 고소했던 것이다. 정준영이 불법촬영이 자신의 커리어를 다 망칠 수도 있는 범죄라는 것을 인식했(던 것처럼 보였)고, 나 역시 유명 연예인을 상대로 법정 싸움을 지속할 여건이 안 되어서 취하했던 것 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댓글 때문에 고통받을 성범죄 피해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

“피해자를 탓하는 말에 절대 흔들리지 말라. 범죄사실에 있어서 주목받아야 할 것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가해 행위다. 절대 자기 검열하지 않기 바란다.”

-끝으로 남기고 싶은 말은?

“내가 당한 성범죄의 가해자가 유명인이어서, 또 공익제보로 사건의 실체가 드러났기에 사람들이 내 말은 들어준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도 아무 말도 못 하고 2차 피해로 죽어나가는 여성들은 분명 있을 것이다. 댓글난이 살인 현장을 방치하고 있다는 것 다시 한번 말하고 싶다.”

성범죄 기사 댓글난 폐지?… 카카오 “진지하게 검토” 네이버 “언론사가 관리”

관련 법안이 발의된 세번째 요구를 제외하면 정준영 불법촬영 사건 피해자 ㄱ씨 요구는 크게 두 가지다.

① 포털 성범죄 기사 댓글난 폐지

<한겨레>가 양대 포털(카카오·네이버)에 물었는데 상반된 입장을 전해왔다. 앞서 연예기사 댓글난을 가장 먼저 폐지했던 카카오는 이번에도 전향적 입장을 밝혔다. 카카오 관계자는 “아직까지 이 사안을 공식적으로 논의한 적은 없으나 고객센터 등 다양한 루트로 피해자나 일반 이용자가 의견을 개진하면 언제든 진지하게 검토하겠다”고 했다.

반면 네이버는 다소 유보적 입장이다. 2018년 각 언론사에 댓글 관리 권한을 넘겼기에 포털 차원의 댓글 폐지는 어렵다는 것이다. 네이버 관계자는 “각 언론사가 자사 기사 댓글을 직접 관리하는 구조로 바꾸었기 때문에 개별 기사의 특성을 파악해 댓글난을 닫거나 제한하는 부분을 네이버가 단독으로 결정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또 기사 내용만으로 2차 가해 발생 가능성을 정확하게 분류하는 일은 기술적으로 어렵고, 이 경우 성범죄 처벌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나 가해자 반성을 요구하는 목소리 등에도 제약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네이버는 다만 성범죄 이슈를 포함, 모든 혐오표현에 대한 필터링 기능은 지속적으로 강화하겠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한겨레>는 <한겨레> 기자들이 작성해 포털에 게재된 성범죄 관련 기사 댓글난 폐지를 실무적으로 검토했다. 네이버 답변과 달리 언론사가 댓글을 관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네이버가 정치·경제·사회 등 섹션별 전체 댓글난 폐지 권한은 각 언론사에 부여했지만, 개별기사에 딸린 댓글창 폐지 권한은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범죄 기사 댓글창을 닫으려면 사회섹션 모든 기사의 댓글창을 닫아야한다. 네이버 정책에 따라 한 번 댓글창을 닫으면 30일 동안 되돌릴 수 없다.

앞서 대법원은 포털에 뉴스와 댓글 관리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는 취지의 판결을 한 바 있다. 2009년 4월 자신에 대한 비난 기사·게시글을 방치하는 등 명예훼손을 방조했다며 포털을 상대로 제기된 위자료 청구소송에서 대법원은 “피해자의 직접적인 요구가 없더라도 포털이 명예훼손성 게시물의 존재를 알고, 기술적·경제적으로 관리·통제할 수 있는데도 이를 하지 않아 타인에게 손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부작위(마땅히 해야하는 조치를 하지 않음)에 의한 불법행위책임이 성립한다”고 판결했다.

② 성범죄 피해자 대상 모욕·명예훼손 가중처벌 성범죄 피해자를 대상으로 모욕·명예훼손 행위를 하면 더 무겁게 처벌해달라는 요구는 법원이 기존 양형기준만 적극적으로 해석해도 받아들여질 여지가 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펴낸 2020년 양형기준에는 피해자에게 극도의 성적 수치심을 야기하는 등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초래한 경우 가중처벌하라는 지침이 있다. 그러나 별도의 양형 지침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장윤미 한국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는 “판사 재량에 기대기보다는 별도 지침을 만들어 제도화하는 게 피해자를 더 확실히 보호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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