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영 불법촬영 피해자 5년 만에 첫 언론인터뷰
“‘너가 문제다’ 댓글에 ‘내 잘못인가’ 가스라이팅 당해”
“이 고통 다 겪어봤기에 누군가 죽을 수도 있는 고통이란 걸 알아”
“‘너가 문제다’ 댓글에 ‘내 잘못인가’ 가스라이팅 당해”
“이 고통 다 겪어봤기에 누군가 죽을 수도 있는 고통이란 걸 알아”
젠더미디어 <슬랩> 유튜브 채널 영상 갈무리.
가수 정준영(성폭력처벌법 위반 등으로 징역 5년 확정)으로부터 불법촬영을 당한 피해자 ㄱ씨를 <한겨레>가 만났다. 2016년 8월 정준영을 불법촬영 혐의로 고소한 지 4년9개월 만이다. 그가 언론과 대면 인터뷰를 한 건 처음이다.
불법촬영 피해를 당했을 때 ㄱ씨는 졸업을 두 학기 앞둔 대학생이었다. 취업을 준비하던 평범한 일상은 2016년 2월 정준영의 불법촬영으로 산산조각났다. 동의 없이 ㄱ씨 신체를 촬영했던 정준영은 해당 동영상을 이미 지웠다며 삭제 여부를 확인해주지 않았다. 유포가 두려웠던 ㄱ씨는 정씨를 경찰에 고소했다.
일주일이 지나고 ㄱ씨는 고소를 취하했다. 변호사 선임비용 500만원도 부담스러운 취준생이, 돈 많고 소속사도 있는 유명 연예인을 상대로 법정싸움을 벌여봤자 자신만 더 다칠 것 같았다.
뒤늦게 정준영 피소, 고소 취하가 언론에 보도됐다. 그때부터 ㄱ씨는 하루 3000개 넘는 악성 댓글에 시달렸다. 대중은 그를 ‘정준영 고소녀’로 호명했고, 맹렬하게 불법촬영 동영상을 찾았다.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종일 ‘정준영 동영상’이 떠 있을 정도였다. 동영상 유포를 막으려고 고소했는데, 외려 동영상이 유포되기 쉬운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등교도 못 할 정도로 정신이 피폐해진 ㄱ씨는 결국 학교를 자퇴했다. 2019년 3월 정준영이 불법촬영·유포 혐의로 구속됐을 때도 그는 침묵을 지켰다.
그랬던 ㄱ씨가 스스로 공론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정준영 사건을 다룬 유튜브 채널에 출연한 기자들이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한 것을 알고, 지난 3월 이를 바로잡는 내용의 긴 글을 댓글로 남겼다.
5일 청와대 게시판에 포털 성범죄 기사 댓글난 폐지 등을 요구하는 국민청원((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Temp/vCBwHk)을 올린 그를 <한겨레>가 만났다. 인터뷰는 지난달 25일 진행했다.
성범죄 기사 댓글난 폐지?… 카카오 “진지하게 검토” 네이버 “언론사가 관리”
관련 법안이 발의된 세번째 요구를 제외하면 정준영 불법촬영 사건 피해자 ㄱ씨 요구는 크게 두 가지다.
① 포털 성범죄 기사 댓글난 폐지
<한겨레>가 양대 포털(카카오·네이버)에 물었는데 상반된 입장을 전해왔다. 앞서 연예기사 댓글난을 가장 먼저 폐지했던 카카오는 이번에도 전향적 입장을 밝혔다. 카카오 관계자는 “아직까지 이 사안을 공식적으로 논의한 적은 없으나 고객센터 등 다양한 루트로 피해자나 일반 이용자가 의견을 개진하면 언제든 진지하게 검토하겠다”고 했다.
반면 네이버는 다소 유보적 입장이다. 2018년 각 언론사에 댓글 관리 권한을 넘겼기에 포털 차원의 댓글 폐지는 어렵다는 것이다. 네이버 관계자는 “각 언론사가 자사 기사 댓글을 직접 관리하는 구조로 바꾸었기 때문에 개별 기사의 특성을 파악해 댓글난을 닫거나 제한하는 부분을 네이버가 단독으로 결정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또 기사 내용만으로 2차 가해 발생 가능성을 정확하게 분류하는 일은 기술적으로 어렵고, 이 경우 성범죄 처벌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나 가해자 반성을 요구하는 목소리 등에도 제약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네이버는 다만 성범죄 이슈를 포함, 모든 혐오표현에 대한 필터링 기능은 지속적으로 강화하겠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한겨레>는 <한겨레> 기자들이 작성해 포털에 게재된 성범죄 관련 기사 댓글난 폐지를 실무적으로 검토했다. 네이버 답변과 달리 언론사가 댓글을 관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네이버가 정치·경제·사회 등 섹션별 전체 댓글난 폐지 권한은 각 언론사에 부여했지만, 개별기사에 딸린 댓글창 폐지 권한은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범죄 기사 댓글창을 닫으려면 사회섹션 모든 기사의 댓글창을 닫아야한다. 네이버 정책에 따라 한 번 댓글창을 닫으면 30일 동안 되돌릴 수 없다.
앞서 대법원은 포털에 뉴스와 댓글 관리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는 취지의 판결을 한 바 있다. 2009년 4월 자신에 대한 비난 기사·게시글을 방치하는 등 명예훼손을 방조했다며 포털을 상대로 제기된 위자료 청구소송에서 대법원은 “피해자의 직접적인 요구가 없더라도 포털이 명예훼손성 게시물의 존재를 알고, 기술적·경제적으로 관리·통제할 수 있는데도 이를 하지 않아 타인에게 손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부작위(마땅히 해야하는 조치를 하지 않음)에 의한 불법행위책임이 성립한다”고 판결했다.
② 성범죄 피해자 대상 모욕·명예훼손 가중처벌 성범죄 피해자를 대상으로 모욕·명예훼손 행위를 하면 더 무겁게 처벌해달라는 요구는 법원이 기존 양형기준만 적극적으로 해석해도 받아들여질 여지가 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펴낸 2020년 양형기준에는 피해자에게 극도의 성적 수치심을 야기하는 등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초래한 경우 가중처벌하라는 지침이 있다. 그러나 별도의 양형 지침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장윤미 한국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는 “판사 재량에 기대기보다는 별도 지침을 만들어 제도화하는 게 피해자를 더 확실히 보호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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