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통 ‘이남자’(20대 남성) 타령이다. 국민의힘 젊은 정치인이 이남자 마음을 잡아서 선거에서 이겼다고 자찬하자, 더불어민주당 의원들도 이남자를 놓쳐서 졌다고 맞장구친다. 더 이상 ‘여성 우대 정책’을 펴서는 안 된다는 ‘자성’도 잇따른다. 타당한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다.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구조사에서 20대 남성의 72.5%가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를 지지했다는 피상적 현상만이 있을 뿐이다. 이렇게 20대 남성의 표심이 과잉 해석되는 동안 20대 여성들은 정치적 공론의 장에서 밀려나고 있다.
진단이 그르다 보니, 과녁을 한참 벗어난 엉뚱한 해법이 제시되기도 한다. 군가산점 부활이 대표적이다. 여성계에선 성평등 사회로의 변화를 거부하는 ‘백래시’의 한 흐름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치학 박사이자 여성학 연구자인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를 만나 ‘이남자 프레임’이 가진 문제점 등에 대해 들어봤다.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은 1999년 여성할당제 법제화 운동을 위해 꾸려진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여세연)로 출발해 2014년 현재 이름으로 바뀌었다. 인터뷰는 지난 21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했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가 21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나타난 20대 남성의 표심을 두고, 이준석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선거 직후 “민주당이 2030세대 남성의 표 결집력을 과소평가하고 여성주의 운동에만 올인해 참패했다”고 주장했다.
“우선 여당이 여성주의에 올인했다는 데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자처했지만, 막상 문재인 정부와 여당의 인사나 정책을 보면 성평등 의식을 갖췄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물론 몇몇 법안이나 정책이 시행되기는 했지만 여성들의 줄기찬 요구에 떠밀려 한 측면이 강하다.
그리고 젊은 남성들의 표 결집력을 얘기하는데, 왜 꼭 ‘2030 남자’에만 주목하는지 모르겠다. 거의 모든 세대에서 여당 지지율이 빠졌고, 남성만큼은 아니지만 2030 여성들의 지지 철회도 눈에 띄는데, ‘이남자 표심’만 거론하는 건 너무 불균형하다.
또 오세훈 후보를 지지한 20대 남성들이 다 반페미니스트라고 볼 근거도 없다. 20대 남성의 정치 성향을 분석한 여러 연구 결과들을 보면, 그들이 보수화됐다고 보기도 어렵다. 오히려 4050 남성보다 진보적인 것으로 나온다. 이준석 전 최고위원의 말처럼, 반페미니스트 정서를 이용해 젊은 남성의 지지를 끌어냈다고 해석하는 건 오히려 20대 남성들을 무시하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선거가 끝난 뒤 정치권의 논의가 지나치게 ‘이남자 표심’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는데 부연 설명을 해달라.
“우리나라가 남성 중심 사회라는 걸 다시 한번 느낀다. 사실 문재인 정부 들어 20대 남성의 지지율은 급격하게 빠졌지만, 20대 여성 지지율은 늘 남성보다 20%포인트가량 높았다. 그런데 정치권과 언론에선 왜 20대 여성이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는지는 묻지 않고, 20대 남성의 이탈에만 주목했다. 여성들은 성폭력이나 불법촬영물 등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규모 시위를 조직하는 등 엄청난 노력을 벌여 어렵사리 하나씩 성과를 내왔다. 반면 남성들의 문제는 정치권이 알아서 걱정해주고 대책을 내놓는다. ‘여성 우대 정책’ 타령도 그런 맥락에서 봐야 한다.”
―여당의 일부 정치인들도 ‘여성 우대 정책 때문에 20대 남성의 지지를 잃었다’는 취지의 분석을 내놓으며 이준석 전 최고위원의 견해에 동조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번에 오세훈 후보를 찍은 20대 남성들이 정말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 때문에 민주당에 등을 돌렸을까? 그래서 ‘안티 페미’를 내세우면 다시 돌아올까? 그건 너무 단순한 생각이다. 과거 여론조사를 보면 20대 남성의 문재인 정부 지지율은 2018년 하반기부터 큰 폭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20%대로 떨어졌다는 조사 결과도 있었다. 조국 사태, 부동산, 공정, 취업 불안 등 다양한 이유로 민주당에 대한 지지를 지속적으로 철회한 것으로 봐야 한다.
민주당이 패인을 ‘여성 우대 정책’ 탓으로 돌리는 것은 이준석 전 최고위원의 논리를 강화시켜주고, 그가 선점한 프레임에 말려드는 꼴이다. 그런다고 오세훈 후보를 지지한 20대 남성이 돌아올 가능성도 낮을 것이다. 민주당에 ‘패착’이 될 수 있다. 지금 민주당이 할 일은 20대 남성들이 지지를 철회한 진짜 이유가 뭔지,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명확한 근거도 없이 선거 패배의 원인을 페미니즘 탓으로 돌리는 건 무책임하다.”
―정치권이 이렇게 20대 남성의 표심을 분석하면서 ‘젠더 갈등’을 내세우는 이유가 뭐라고 보나?
“남성들 내에 존재하는 다양한 차이들을 사라지게 함으로써 하나로 결집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남성들도 사는 지역, 소득, 직업, 장애 여부 등 각자 처한 상황이 다 다른데 성별을 내세우게 되면 그 차이들이 사라지면서 ‘남성연대’를 형성하기 수월해진다.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대동단결’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는 거다.”
―갈등을 불러일으켜서 정치적 이득을 얻는다는 건가?
“그렇다. 그렇게 해서 지지를 결집시키려는 거다. 여성뿐만 아니라 성소수자 혐오,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데, 그런 것들이 정치적으로 자꾸 동원된다는 느낌이 든다. 이렇게 시민들 간에 존재하는 차이들을 차별로 가져가고 적대감이나 혐오를 부추겨 이용하는 것이 과연 정치가 해야 할 역할인지 의문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그런 정치를 통해 얼마나 미국 사회를 분열시켰는지 충분히 보지 않았나?”
기후·여성·노동·교육 등 다양한 분야의 19개 청년·학생단체가 모인 ‘청년·학생 시국선언 원탁회의’ 활동가들이 23일 서울시청 앞에서 청년 시국선언 선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성별 갈라치기’를 통해 지지 기반을 결집시키려는 정치권의 행태는 어떤 점에서 문제가 있나?
“청년들이 겪는 공통의 문제, 예를 들면 불평등과 같은 구조의 문제를 가림으로써 청년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남성들 사이에도 다양한 층위의 차이와 차별이 존재하는데, 지금처럼 여성, 또는 페미니즘을 적으로 돌리는 방식은 남성 내부에 존재하는 수많은 차이들을 감추고 여성에 대한 적대감만 남기게 된다.
사실 페미니즘 내부에도 계급, 환경 등 다양한 논의가 존재한다. 거듭 말하지만, 젠더 갈등을 계속 얘기하는 건 지금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진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전혀 도움이 안 된다. 누군가를 혐오의 대상으로 삼고 그것을 정당화할 뿐이다.”
―이런 ‘갈라치기 정치’가 지속되면 공동체에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것 같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어떤 특징이 차이로 존중되는 것이 아니라 그걸 차별로 가져가면서 누군가를 배제하는 정치가 이뤄지고 있다. 그게 심화되면 공동체 자체가 분열되고 파괴된다. ‘우리 편 아니면 적’ 이런 식으로 갈라치기 해버리면서 과연 더 나은 사회로 갈 수 있을까? ‘갈라치기 정치’가 민주주의를 붕괴시킬 것이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당 박영선 후보의 지지율이 더 높았던 그룹은 ‘20대 여성’과 ‘40대 남성’뿐이었다. 20대 여성의 표심을 어떻게 봐야 할까?
“양당 체제에서 그나마 ‘차악’이라고 생각해 선택한 것일 텐데, 20대 여성의 지지율도 (과거 여론조사의) 문재인 정부 지지율과 비교하면 20%가량 낮아진 거라 크게 의미를 부여하기는 애매하다. ‘한번 더 기회를 주겠다’는 시그널 정도가 아닐까 싶다. 다만, 우리나라의 2030 여성들이 2015년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해시태그 운동 등 ‘페미니즘 리부트’ 과정을 거치면서 정치 참여에 좀 더 적극적이고 진보적인 성향으로 변하고 있는 것은 맞다고 본다.
최근 선거 결과를 보면 20대 여성의 투표율이 같은 연령대 남성보다 높은 것으로 나온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 출구조사를 봐도 20대 여성의 박영선 후보 지지율이 20대 남성의 2배가량이고, 30대에서도 여성의 지지율이 남성보다 10%포인트 이상 높다. 2030 여성들의 표가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20대 여성의 ‘기타 후보’ 지지율이 15.1%로 다른 연령·성별에 비해 눈에 띄게 높다.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나?
“일부에서는 ‘회색 표심’이라고 표현했던데, 회색이 아니라 젊은 여성들의 선명한 정치적 의사 표시라고 본다. 양당 체제에서 벗어나 ‘다른 정치’를 보고 싶다는 욕구가 표출된 것이다. 20대 여성이 왜 당선 가능성이 희박한 소수정당에 이렇게 많이 표를 줬는지, 이들이 원하는 것이 뭔지, ‘15.1%의 표심’에 대해 민주당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페미니즘의 세례를 받은 20대 여성들이 향후 선거에서 의미 있는 ‘스윙 보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시장 선거에 ‘페미니스트 후보’ 5명이 나왔다. 역대 선거 중 가장 많은 수라고 한다. 어떻게 평가하나?
“성평등을 한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후보들이 많이 나온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거대 양당 후보만 있었다면 투표를 포기했을 유권자들에게 투표소에 나갈 계기를 마련해준 측면도 있다고 본다. 5명 모두 끝까지 완주하며 성평등 가치를 알린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다만 5명의 득표율을 다 합쳐도 2%가 채 안 되는 것은 매우 아쉽다.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는 청년들이 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 걸맞게 페미니즘 정치를 확장하려는 노력을 했는지 생각해볼 시점이 아닌가 싶다.”
―여성의 정치세력화를 위해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
“청년 여성 정치인들이 바로 국회의원에 도전하기보다는 기초의회 같은 좀 더 작은 단위에서 정치를 시작했으면 좋겠다. 많은 여성들이 전략적으로 기초의회에 들어가 아래에서부터 페미니스트 정치를 확산시키면 여성의 정치세력화 측면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을 것 같다. 지역에 발을 딛고 그 지역에서 활동하는 여성단체들과 힘을 합쳐 지역을 바꿔나가는 경험들을 해보자는 거다.
예컨대, 동네 여성들과 함께 ‘여성 친화 도시 만들기’ 같은 것을 해볼 수도 있겠다. 이제는 단지 선거에 출마하는 것을 넘어 실제로 당선이 되어서 변화를 만들어내야 한다. 기초의회는 상대적으로 당선 가능성이 높고 주민들의 삶에도 중요하다는 점에서 여성 정치 운동의 기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가 전임 시장의 성추행 사건 때문에 치러진 것인데, 정작 선거 과정에서는 성폭력이나 성평등 의제가 제대로 부각되지 못한 것 같다.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아쉬운 지점이다. 민주당은 그 문제를 내세워봐야 유리할 게 없다고 생각해서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한 것 같고, 국민의힘도 정략적으로만 접근했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 다시 한번 느낀 거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성차별적인 노동 구조 등 전체 사회 문제를 성인지 관점에서 바라보고 다룰 수 있는 논의 구조가 마련돼 있지 않은 것 같다. 기존의 거대 양당도 그렇고 언론도 마찬가지다.”
―내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겠다는 뜻을 밝힌 박용진 민주당 의원이 모병제와 ‘평등복무제’ 도입을 제안했다. 어떻게 보나?
“남성에게만 병역 의무를 부과하는 건 문제라고 생각한다. 모병제를 포함해 병역제도 개선에 대한 논의도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런 논의가 ‘안티 페미니즘’ 정서에 편승해 불쑥 제기되는 것은 문제다. ‘군 가산점’ 부활 주장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군 복무로 인한 남성들의 불만에는 ‘취업 불이익’ 문제가 가장 크게 작용할 텐데, 이 문제는 여자를 군대에 보낸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정치권에서 이 문제에 대한 답을 내놓으려고는 하지 않으면서 성별 갈등만 불러일으키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이종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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