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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홧김이혼 줄어” “행복추구권 침해”

등록 2006-01-26 15:22수정 2006-01-26 15:41

올해 이혼 숙려제를 둘러싼 공방이 치열했다. 사진은 지난 11월 17일 서울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린 한국여성의전화연합 주최 ‘이혼은 가족해체인가’ 토론회의 한 장면. 〈한겨레〉자료사진
올해 이혼 숙려제를 둘러싼 공방이 치열했다. 사진은 지난 11월 17일 서울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린 한국여성의전화연합 주최 ‘이혼은 가족해체인가’ 토론회의 한 장면. 〈한겨레〉자료사진
서울가정법원, 이혼 숙려기간 연장 추진에 여성계 반발 ‘성명’
“이혼숙려제도 도입한 이후 이혼 철회 비율이 크게 늘어나 ‘홧김 이혼’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3월부터 숙려기간을 현행 1주일에서 3주로 늘리겠다.”(서울가정법원)

“국가가 개인의 결정권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제도다. 아무런 대안 없이 숙려기간만 연장하는 것은 또 다른 고통을 감수하라는 것이며, 각종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여성단체)

서울가정법원이 3월부터 이혼숙려기간을 현행 1주일에서 3주로 늘리기로 방침을 정하자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연합,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여성단체들이 법원의 ‘이혼숙려 기간 연장’ 방침에 반대하고 나섰다.

법원은 “22일 이혼 숙려 및 상담 제도를 도입한 지난해 3월부터 12월까지 협의이혼을 신청한 사건 5958건 가운데 이혼을 취하한 경우가 1027건(17.2%)으로, 2004년 취하율 9.99%에 두배 가까이 늘었다”며 “이 제도가 충동적인 이혼을 방지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볼 수 있어 숙려기간을 늘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혼숙려제도는 ‘경솔한 이혼’을 막기 위해 협의이혼을 신청한 부부에게 일정 기간 ‘숙려기간’을 주고 재고하도록 한 뒤 이혼 확인을 해 주는 제도다. 지난해 3월부터 서울가정법원에서 시범실시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한나라당 안홍준 의원이 숙려기간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경우 가정법원이 직권 또는 당사자 일방의 신청에 따라 6개월의 숙려기간을 주도록 하는 ‘민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제출했다.

또 열린우리당 이은영 의원도 법원의 이혼절차 개시일부터 3개월의 ‘숙려기간’을 갖게 하는 ‘이혼절차에 관한 특례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 법안에는 가정폭력이나 질병 등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3개월간 숙려기간을 거치며, 미성년 자녀가 있을 경우 외부 기관의 상담을 받아야만 법원이 이혼을 확인해주거나 조정·화해·결정 등을 판결하도록 하고 있다. 상담은 법원 상담과 법원 외 상담이 있는데, 법원 외 상담인은 부부에게 비용을 청구할 수 있다. 현재 이혼·가족 상담은 시간당 5만원에서 많게는 10만원대. 법안이 통과되면 상당 비용은 대법원이, 시간은 법원이 정하도록 했다.

이 의원은 당시 “신중하지 못한 이혼을 막기 위해 숙려기간을 두도록 하면 무분별한 가족 해체를 방지하는 효과가 있으며 사회·경제적 비용도 절감돼 국가의 건강한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며 “미성년자인 자녀가 있는 경우엔 상담을 통해 친권·양육 문제를 합의하도록 했고 미성년 자녀가 없는 경우에도 상담을 권고하도록 했다”고 입법 취지를 설명했다.

◇ 충동적 이혼 감소?…“글쎄~”

서울지방법원의 발표에서 보듯 긍정적 성과가 나오고 여론도 찬성쪽으로 기우는 편이지만, 이견은 존재한다. 우선 여성단체들의 반발이다. 이들은 서울지방법원이 숙려기간 연장 방침을 표시하자 24일 성명을 냈다. “이혼 숙려기간의 연장은 여전히 이혼에 대해 부정적 편견을 드러내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여러 아픔을 감수하고 어렵게 이혼을 결심한 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연장하는 것”이라며 “숙려기간 동안의 주거 및 생활비, 자녀양육 문제 등에 대한 아무런 대안도 없이 숙려기간만을 연장하는 것은 무책임한 정책 결정”이라고 성명서는 밝혔다.

이들은 “국가가 뚜렷한 근거 없이 이혼에 개입해 이혼율을 줄여보겠다고 하는 것은 개인의 인권과 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이혼을 취하한 부부가 원만한 가족생활을 유지하고 있는지, 다양한 이혼 사유가 해소되었는지 등에 대한 사후모니터 없이 숙려기간만을 연장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이혼숙려기간 강제 등 관련법 제정을 통해 유료상담을 의무화해 물리적·경제적 부담을 주면서까지 이혼율만 낮추려고 할 것이 아니라 원만한 이혼 및 이혼 후의 생활안정을 돕는 쪽으로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 “무료상담등 이혼절차 전반에 법제도 보완 필요”

누리꾼들의 의견도 분분하다. 지난해 11월 인터넷 포털 사이트 네이트닷컴이 누리꾼을 상대로 `이혼숙려제 법제화’에 대한 의견을 물은 결과, 찬성이 약 54%(416명), 반대가 46%로 팽팽했다. 그러나 토론실(toronsil.com)에서 실시하는 여론조사 결과는 ‘찬성’이 77.8%로 ‘반대’(22.22%) 의견을 앞서고 있다.

제도 도입을 지지하는 누리꾼은 “이혼율이 높아지면 그것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가 된다. 건강한 사회는 건강한 가정으로부터 만들어진다”며 “이혼숙려제가 이혼을 줄일 수 있다. 숙려기간을 법으로 강제하는 것이 사생활 침해라는 일부 주장은 지나친 피해의식”이라고 보고 있다.

반대 의견을 밝힌 누리꾼들은 “숙려기간이 또 다른 고통이 될 수 있으며, 성급한 도입보다는 이혼에 대한 문제점을 전반적으로 점검해야 한다”며 “누구나 결혼과 마찬가지로 이혼할 권리가 있는데, 이혼숙려제는 이 권리뿐 아니라 개인의 행복추구권도 침해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네이버>에서 ‘daya12’는 “이혼숙려제 도입 취지를 알겠지만, 정말 이혼이 필요한 사람에겐 숙려제 없이 이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으며, ‘sail15’도 “이혼을 결심한 부부들이 신속하고 간편하게 이혼절차를 밟을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이혼을 인위적으로 막을 경우 가정불화만 심해지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반대입장을 밝혔다.

◇ 열린우리당 유승희 의원 “이혼숙려기간 연장에 반대”

한편, 열린우리당 유승희 의원도 이혼숙려기간 연장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유 의원은 24일 자신의 홈페이지(ysh21.or.kr)에 ‘이혼숙려제도, 누구를 위한 제도인가’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가정법원의 ‘이혼숙려제도’는 이혼율을 줄이기는커녕 유료상담을 의무화 해 협의이혼 절차에서 담당자들이 불필요한 비용을 강제수납케 함으로써 고통만 가중시키고 있다는 여성계 의견에 공감한다“며 “진정으로 법원이 이혼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들어주고, 이혼율을 줄이며, 이혼하는 가정의 자녀복리를 생각한다면, 이혼하는 사람들이 선택적으로 무료 상담 및 교육, 중재(조정)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 의원은 지난해 11월 ‘이혼은 가족해체인가, 부부갈등의 해결방법인가’ 토론회에서도 “이혼은 개인 자유 영역인데 국가가 개입해 강제적 규제를 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법안의 목적이 이혼 방지보다는 원만한 혼인 해소와 이혼 뒤 안정된 생활을 돕는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한바 있다.

이 토론회 발제를 맡았던 한국여성개발원 변화순 선임연구위원도 “이혼은 가족의 해체라기보다 해결해야 할 부분이 새로이 형성되는 과정으로 봐야 한다”며 “이혼을 가족 해체라는 부정적 측면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부부갈등을 긍정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한 방법이라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박소현 상담위원은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숙려제도는 국가가 만들어 놓은 이혼이라는 제도를 보다 책임있게 운영하자는 것”이라면서 “무조건 이혼을 막자는 것이 아니라, 불가피하다면 이혼을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주자는 취지”라며 찬성입장을 밝히는 등 여성계 내부에서도 팽팽한 의견차이가 있음을 보여줬다.

유 의원은 여성단체들의 의견을 담은 ‘협의이혼절차와관련한지원등에관한법률(가칭)'을 준비 중에 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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