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세상을 뜨기 직전 성추행 의혹을 시인하는 취지의 발언을 한 사실이 검찰 수사로 확인되면서, 박 전 시장 지지자를 중심으로 한 진실 공방이 변곡점을 맞게 됐다. 이 사건을 직권 조사하는 국가인권위원회의 발표 내용과 수위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빈손으로 끝난 경찰 수사가 피해자에 대한 추가 피해를 키웠다고 비판했던 지원단체 등은 2차 가해가 잦아들기를 기대하고 있다.
피해자를 지원하는 서울시장위력성폭력사건공동행동은 박 전 시장 발언이 공개된 30일 오후 입장문을 통해 “검찰 발표로 그동안 인정되지 않았던 박 전 시장 사망 동기와 경위가 드러났다. 피해자가 밝히고자 했던 피해가 존재했음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어 “피해는 존재하지 않고, 그런 일은 없었으며, 정치적 음해 목적의 일방적 주장이라고 말해왔던 사람들”을 지칭해 “박 전 시장 스스로 인정했던 것을 은폐하고 침묵해온 행위를 규탄한다”고 했다. 특히 박 전 시장 생전 발언을 직접 들었던 당시 서울시장 비서실장, 기획비서관, 젠더특보를 향해 사죄와 법적 책임을 요구했다. 이들이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박 전 시장 지지자 등의 2차 가해를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박 전 시장 죽음의 배경이 일부 확인된 만큼 이제는 이 사건을 다루는 우리 사회 논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려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권수정 서울시의회 의원(정의당)은 박 전 시장을 여전히 감싸는 서울시 전·현직 관계자들을 향해 “우리는 이 사건 이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 반성할 부분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고 했다. 권 의원은 “박 전 시장을 정말 사랑하고 추모한다면 ‘저희가 세상을 바꿔가겠다’고 나서야 한다. 그게 박 전 시장을 진정으로 위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2차 가해는 쉽게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공동행동 쪽은 “검찰 수사결과 발표 이후 피해자 실명에 이어 사진까지 유출·유포됐다”고 했다. 이 때문에 피해자 지원단체 등은 지난 8월부터 성추행 의혹 전반에 대한 직권조사를 해온 국가인권위 조사결과 발표에 기대를 걸고 있다.
국가인권위 조사 대상에는 박 전 시장 성추행 의혹에 대한 사실관계, 서울시 관계자들의 묵인·방조 여부, 이를 가능케 한 구조, 성추행 사건 처리 절차 등이 포함됐다. 앞서 최영애 인권위원장은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직권조사 결과 발표 시기에 대해 “12월 말 정도를 예상한다. 때에 따라서는 조금씩 늦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국가인권위는 지난 29일 차별시정위원회를 열어 박 전 시장 관련 직권조사 사건을 안건으로 상정해 심의했다. 내용이 중대하거나 사회적으로 미칠 영향이 광범위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안건을 전원위원회에 회부할 수 있다. 사안의 중요도 등을 고려할 때 박 전 시장 사건은 전원위원회에서 의결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조사결과 발표 시기는 내년 1월 중순 이후가 될 수 있다. 조사보고서 보완 등을 이유로 의결이 미뤄지는 경우에는 발표 시기가 더 늦어질 가능성도 있다. 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는 “2차 가해는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의 모든 자료를 넘겨받은 국가인권위가 서둘러 조사결과를 밝혀야 한다”고 했다.
김미향 김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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