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복무 중 성전환 수술을 하고 복귀해 여군으로 복무를 이어가고 싶다고 밝힌 육군 변희수 하사가 22일 오후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성소수자 군인들이 차별받지 않는 환경에서 복무했으면 한다. 성정체성을 떠나 이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 될 기회를 달라”고 호소한 뒤 울먹이며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절벽 앞에서 발 디딜 곳 없던 변희수 하사는 용감하게 자신을 세상에 드러냈습니다. 군은 언제까지 비겁한 태도로 일관할 건가요?” 최초의 트랜스젠더 군인 변희수 하사가 결국 강제전역 당하는 걸 지켜본 전직 육군 장교 ㄱ씨는 28일 <한겨레>에 말했다. ㄱ씨는 2017년 ‘육군 성소수자 색출사건’ 때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수사를 받다 스스로 전역을 택했다. 용기있게 공개 기자회견을 열어 “이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 될 기회를 달라”고 눈물로 호소하고도 그날 자정을 기해 강제전역한 변 하사를 보면서 ㄱ씨는 만감이 교차했다. 그는 “군대가 여전히 성소수자를 품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2017년 3월 벌어진 육군 성소수자 색출사건은 장준규 당시 육군참모총장이 성소수자 군인을 색출하라고 지시했다는 군인권센터의 폭로가 나오면서 처음 알려졌다. 육군 중앙수사단은 동성 군인 간 성적 행위를 처벌하는 군형법 92조6항을 위반했다며 성소수자 군인들을 수사했고, 그해 4월 한 육군 대위가 구속됐다. 시민 4만여명이 석방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내며 항의했지만 성소수자 군인 23명이 형사입건되고 그중 9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11명은 혐의는 인정되나 재판엔 넘기지 않는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해군에서도 같은 색출사건이 벌어졌다. 한 성소수자 군인이 병영생활상담관을 찾아 다른 군인과 합의 아래 성관계를 가진 일을 이야기했고, 상담관의 보고로 헌병의 수사가 시작됐다. 색출된 군인 1명은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성소수자 군인 색출사건부터 변 하사의 강제전역까지, 성소수자 군인은 성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이유로 의사에 반해 군을 떠나거나 떠날 위기에 놓였다. 성소수자란 이유로 전역하거나 전역 위기에 처한 군인은 현재 변 하사까지 모두 5명이다. 성소수자 색출사건 때 기소유예된 육군 간부 2명은 지난해 장기복무 선발에서 탈락하거나 진급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아 전역을 앞두고 있다. 성행위 방식까지 물어보는 군검찰의 수사에 모멸감을 느껴 스스로 전역을 택한 군인도 2명(군인권센터 집계)이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은 “유죄 판결을 받은 다른 군인들도 같은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높아 전역하는 성소수자 군인은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성소수자 군인들은 단지 남과 다른 정체성을 가진 것이 죄가 되느냐고 반문한다. 전직 장교 ㄱ씨는 “성소수자가 다르고 특이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군대에는 더 특이한 사람이 많다. 성소수자가 군의 전투력을 약화시킨다는 실증적인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임관 후 고된 훈련을 거치면서 군에 대한 자부심만큼은 높았다. 그런데 색출사건을 겪은 뒤부터 내게 군대는 소름끼칠 정도로 두려운 존재가 됐다”고 털어놨다.
육군본부의 변 하사 강제전역 결정 뒤 시민사회에서도 성소수자 군인에 대한 차별을 중단하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성명에서 “이번 결정은 군이 특정한 남성 신체만을 군에 복무할 수 있는 자격으로 설정하고 그에 부합하지 않는 존재를 차별하고 배제한 시대착오적 관행을 되풀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노동조합총연맹도 성명을 내어 “변 하사의 전역은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이자 노동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라고 짚었다.
김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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