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1033개 여성단체 공동주최로 열린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고 장자연씨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이 사건을 단순 자살이 아니라고 보고 수사가 되면 공소시효가 10년이 아닌 25년으로 변경됩니다. 범죄의 종류에 따라 공소시효 기간이 다릅니다. 정해진 공소시효 기간이 지나 버리면 증거가 있어도 벌을 줄 수가 없습니다.”
배우 고 장자연씨의 동료 윤지오씨의 얘기는 장씨의 죽음과 관련해 수사기관이 가해자들에게 공소시효 10년짜리인 강제추행과 성매매 알선 혐의를 적용하지 말고 공소시효 25년짜리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씨의 죽음을 단순 자살이 아닌 타살로 보는 시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윤씨는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검찰 과거사위원회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및 고 장자연씨 사건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에 나와 자신을 “유일한 목격자”가 아닌 “유일한 증언자”라고 강조했다. 침묵하는 다수의 가해자에 대한 비판이다. 그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발언은 단호했다. 윤씨는 “제가 대중 앞에서 더욱더 많은 매체와 인터뷰를 하는 건 사실을 전하고 싶고 여러분도 아셔야 할 권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며 “그분(가해자)들 보시라고 인터뷰를 하는 것이다. 이슈가 이슈를 덮는 불상사가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발언이 끝나자 윤씨는 끝내 터져 나온 눈물을 가리려 몸을 돌렸다.
이날 기자회견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성폭력 피해 당사자 ㄱ씨도 모습을 드러냈다. ㄱ씨는 “검찰 민원실에서 김학의의 얼굴이 또렷이 캡처된 사진도 봤는데 검찰은 ‘증거가 부족하다’, ‘영상 식별이 안 된다’고 했다”며 “진술도 하고 증거도 제출했지만 가해자에게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고 말했다. ㄱ씨는 “제삼자들을 통해 오는 협박과 권력이 너무 무서워 세상에 진실을 호소할 수밖에 없다”며 자신에 대한 신변보호도 거듭 요청했다. 그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거듭 “살려달라”고 말했다.
한국 여성의 전화, 성매매 문제 해결을 위한 전국연대 등 1033개 여성·시민단체가 연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은 김 전 차관 사건과 장자연씨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선 오는 31일 끝나는 법무부 산하 검찰과거사위원회의 활동기한을 연장하라고 촉구했다. 앞서 검찰 과거사 사건을 재조사 중인 대검 진상조사단은 두 사건에 대한 추가조사가 필요하다며 활동 기간 추가 연장을 요청했지만 과거사위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단체들은 “과거사위원회 본조사 대상으로 선정된 15개 사건 중 대표적인 여성인권사안인 두 사건에 대해선 의혹들만 계속 불거져 나올 뿐 지금까지 아무것도 제대로 밝혀진 것이 없다”며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를 증거 누락과 사건 뭉개기, 검경 간 책임 공방으로 시간을 허비하더니 조사도 안 끝났는데 활동을 중단하겠다는 무성의하고 무책임한 공권력의 모습을 보인다”고 비판했다. 회견 참가자들은 “검찰 과거사위는 시간 없다. 덮지 말고 끝까지 밝혀내라”, “조사기한을 연장하라”, “철저히 조사해 제대로 진상을 규명하라”고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또 클럽 ‘버닝썬’ 사건과 방송인 정준영 사건 등에서 확인된, 여성의 몸을 매개로 한 ‘성 착취 카르텔’에 대한 제대로 된 수사와 처벌도 요구했다.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를 남성의 놀이와 유흥거리로, 그들의 향응, 뇌물과 상납의 도구로, 남성 간의 유대와 연대를 공고하게 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착취해 이득을 취하는” 문화와 산업이야말로 “한국 사회에서 뿌리 뽑아야 하는 적폐”라는 것이다.
민변 소속으로 고 장자연씨 법률지원단으로 활동하는 전민경 변호사는 “과거사위는 (고 장자연 사건) 당시 검찰의 수사가 얼마나 부실했는지, 부실한 수사 중에도 확보된 중요 증거들은 왜 그렇게 사라졌는지에 대해 답을 해야 한다. 중요 참고인 조사도 반드시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찬진 참여연대 집행위원장은 “법무부와 대검이 오히려 앞장서서 조사팀한테 독립성과 조사의 공정성을 담보해주고 시간의 제약 받지 않고 진상이 낱낱이 드러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다해 김민제 기자
doal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