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민기가 출연한 드라마 <작은 신의 아이들>. 조민기 촬영분을 폐기하고 다시 촬영중이다.
“다음 터질 사람이 누군지 귀뜸 좀 해달라”는 말이 문화예술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한숨처럼 터져나온다. 최근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 운동이 일면서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성추행 가해자들이 등장하는 탓이다. 심지어 배우 오달수씨가 ”성추행은 사실무근”이라며 입장문을 낸 당일 ”그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피해자가 등장하면서 영화계와 방송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조재현이 주연을 맡았던 <크로스>. 제작진은 조재현 촬영분을 최대한 들어내는 편집을 하고 있다.
드라마 <크로스> 제작진은 비상이 걸렸다. 조재현씨가 24일 성추행 사실을 인정하면서 주인공을 하차시켜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조씨는 <크로스>에서 선림병원 장기이식센터장 고정훈으로 출연해 신광교도소 의무사무관 강인규(고경표)와 함께 극을 이끌어 간다. 극의 중심을 잡는 인물인 만큼 갑자기 극에서 빼기가 쉽지 않다. <크로스> 제작진도 “당장은 어렵지만 가능한 빠른 시간에 해당 캐릭터를 하차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애초 14회까지 등장하는 조씨 출연분을 12회로 줄이는 등의 논의가 진행 중이다. 제작진은 “(26, 27일 방송분인) 9~10회는 드라마 스토리를 이해할 수 있는 선에서 조씨의 촬영분이 최대한 편집될 것”이라고 밝혔다. 25일 성폭력 사실을 스스로 밝힌 배우 최일화씨가 출연 예정이던 <손 꼭 잡고, 지는 석양을 바라보자>(문화방송, 3월21일 방영 예정)도 해당 배역을 교체했다. 2월24일 방송예정이던 <작은 신의 아이들>은 조민기씨의 성추행 의혹이 드러나면서 방영 일정을 3월 4일로 늦췄다. 조민기씨 대신 이재용씨를 투입했고, 조씨 촬영분을 폐기하고 다시 촬영중이다.
조근현 감독의 성추문으로 현재 상연중인 영화 <흥부>가 비상에 걸렸다.
이병훈 음악감독의 성추문으로 현재 상연중인 영화 <흥부>가 비상에 걸렸다.
”성폭행 연루는 사실무근”이라며 결백을 호소했던 배우 오달수씨에게 피해를 입었다는 증언이 추가로 나오자 영화계와 방송계는 ‘집단 멘붕’에 빠졌다. 오씨가 가해 사실을 부인한 당일 저녁 피해자가 방송을 통해 “성추행은 물론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하면서 사실상 오씨의 주장이 설득력을 잃게 됐기 때문이다. 이 피해자는 “동료에게 자신도 그런 일이 있었다고 들었다”고 말해 추가 피해자가 있음도 드러냈다.
천만 요정으로 불리는 오씨는 이미 개봉한 <조선명탐정: 흡혈괴마의 비밀>을 시작으로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컨트롤>, <이웃사촌> 등 네 편의 영화에 이름을 올린 상태다. 또 3월 방영예정인 <티브이엔> 드라마 <나의 아저씨>도 촬영중이다. 이 때문에 영화계와 방송계는 ‘믿었던 도끼에 발등을 찍히는 것 아니냐’며 충격에 휩싸였다. 티브이엔 쪽은 “상황을 파악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영화계 한 관계자는 “오달수씨가 부인해 그 말을 믿고 있었다. (만일 성폭행 등이 사실이라면) 드라마는 중간에 배우를 교체하면 되지만, 영화는 최악의 경우 다 찍은 작품을 개봉하지 못할 수 있어 피해를 가늠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영화계에서는 현재 상영 중인 영화 <흥부>도 최대의 피해자 중 하나로 꼽고 있다. 이 영화의 메가폰을 잡은 조근현 감독, 음악을 담당한 이병훈 음악감독이 차례로 성폭력 의혹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특히 조근현 감독은 다른 뮤직비디오 촬영 관련 면접 중에, 이병훈 음악감독은 전작인 <쎄시봉> 촬영 중에 발생한 일로 <흥부>와는 직접적 관련이 없음에도 곤욕을 치렀다. <흥부> 관계자는 “문제적 인물임을 모르고 작업을 함께했다는 것도 죄라면 죄라서 전화를 받을 때마다 ‘죄송하다’는 사과를 하고 있다”며 “특히 여성인 (제작사) 대표님의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또 다른 한 영화계 관계자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영화계 미투 운동에 연루된 사람들의 명단을 작성해 이제부터 절대 (영화 작업에서) 엮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말을 서로 나누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윤호진이 연출할 예정이었던 뮤지컬 <웬즈데이>는 제작이 불투명해졌다.
문화예술계 미투 운동의 시작이었던 공연계도 파장이 일고 있다. 윤호진 연출가의 성추행 논란으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소재로 한 신작 뮤지컬 <웬즈데이>도 제작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올해 12월 개막을 목표로 했던 뮤지컬의 28일 제작발표회는 이미 취소됐다. 윤씨가 대표로 있는 에이콤인터내셔널 관계자는 “위안부 단체에 누가 되면 안되기 때문에 (제작여부를) 고민중”이라고 말했다. 윤 대표가 연출을 맡았던 <명성황후>는 안재승 조연출이 투입돼 3월6일부터 공연을 올린다. 공연계 한 관계자는 “미투와 연루된 배우가 나오는 작품에 관객들의 항의도 이어지고 있다”면서 “당장 공연계가 술렁이고 있지만 예전에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 출연료 미지급 사태가 논란이 된 후 시장이 바로 잡혔듯 이번 미투 바람도 공연계의 바람직한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국립극장장 최종후보에 올라있던 김석만(67)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는 온라인 상에서 25일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됐으며 26일 문화체육관광부는 김 전 교수가 후보에서 탈락됐다고 밝혔다. 김 전 교수는 이날 “피해자가 오랫동안 느꼈을 고통과 피해에 대해 뼈아프게 사죄한다”면서 “피해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책임을 지겠다”고 공식사과했다.
남지은 유선희 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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